엄마가 사흘 만에 집에 왔다. 외할머니는 여전히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다. 그래도 나는 반가워서 엄마를 부르며 안으려고 했다.
   “엄마, 엄마……”
   그런데 엄마는 대충 나를 안은 뒤 바로 말했다.
   “지연아, 네가 해줄 일이 있어. 너,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책 읽어드렸잖아. 지금 책 좀 읽어줘. 녹음해서 할머니 들려드리려고. 너무 긴 책은 고르지 말고.”
   엄마가 말하면서 나를 방으로 밀었다.
   “어, 알았어. 당장 찾아볼게.”
   나는 내 방으로 와서 생각했다.
   ‘엄마가 좀 이상하네. 내 눈을 보지도 않고 얘기했어. 그리고 그사이 잘 지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며칠씩 먼 산에 다녀왔을 때는 지겨울 정도로 칭찬해줬으면서……’
   엄마는 등산 동아리를 하는데 한 달에 두 번씩은 가까운 산에 가고, 일 년에 두 번씩은 멀리 있는 산에 가느라 며칠 동안 집을 비운다. 다녀올 때마다 “우리 지연이, 다 컸네. 엄마 없이 밥도 챙겨 먹고, 진짜 기특하네. 고마워.” 이 말을 너무나 많이 해서 늘 내가 그만 좀 말하라고 짜증내듯 말해야 멈추곤 했다.
   나는 서운했지만 꾹 참고 책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눈에 띄는 책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어린이책으로 나온 심청전, 홍길동전, 춘향전 같은 책을 할머니한테 읽어드렸다. 그런데 이 책들은 길다. 그래서 일단 제목에 ‘할머니’가 들어간 책을 찾아보았는데 『놀이 할머니』 한 권밖에 없었다. 몇 장을 넘겨봐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읽은 적이 없는 책 같았다. 그래도 그 책으로 골랐다.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이 생긴데다 정말로 주인공이 할머니였다. 두께도 얇아서 녹음하기에도 적당할 것 같았다.
   엄마는 안방에 모로 누워 있었다.
   “엄마, 책 정했어.”
   내 말에 엄마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일어났다. 눈이 벌게져 있었다.
   “그래, 얼른 녹음하자.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병원에 가야 하거든.”
   엄마의 목소리가 축축했다. 엄마가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다가 나한테 주며 말했다.
   “녹음 버튼을 못 찾겠네. 너, 찾을 수 있지?”
   “응, 힘들면 누워 있어. 내 방에서 녹음해서 갖다줄까?”
   엄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누웠다. 나는 방에 와서 녹음하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에 ‘놀이 할머니’가 살았어요. 할머니는 평생 일만 하느라 놀 겨를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놀이 할머니’가 되었을까요? 한번 들어보세요.
   칠순 생일이 지나고 어느 날부터 할머니의 몸이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했어요.
   “이대로 나이들어 죽으면 정말 억울하겠다. 더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할머니는 평소에는 잘 보지 못했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볼 때는 재미있지만 보고 나면 왠지 모르게 멍했어요. 그래서 집에 있는 책 중에서 한 권을 골랐어요. 책은 은근히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책만 읽으며 놀려니 지루했어요. 어느 날 할머니는 문득 깨달았어요.
   ‘그래, 같이 놀 사람이 필요하구나. 그렇지, 어려서 놀던 게 제일 재미있었지. 애들하고 놀아야겠다.’
   그다음날부터 할머니는 동네를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어린아이를 한 명도 만나지 못했어요. 아이를 만나면 하나씩 주려고 사둔 사탕만 자꾸 까먹게 되고요.
   “아니, 요즘 애들은 정말, 스마트폰으로 게임만 하고 밖에서는 안 노는 거야?”
   그래서 할머니는 작정을 하고 몇 정거장 떨어진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어요.


   나는 1/3쯤 읽다가 일시 멈춤을 눌렀다. 목도 말랐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읽는 재미가 없었다. 할머니한테 읽어줄 때는 할머니가 불쑥불쑥 참견을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다 아는 내용이면서도 매번 같은 부분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질 때는 “이거이 불쌍해서 어쩌나.”라고 말하고, 춘향이가 감옥에 들어갈 때는 “내레 변학도 가만 안 두갔어.” 이렇게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읽다 말고 “연꽃 타고 다시 살아나잖아.”라고 대꾸하고, 또 “나중에 이몽룡이랑 만나잖아. 그러니까 할머니, 계속 들어봐.”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귀찮았는데…… 엄마 옆에 가서 녹음할까?’
   나는 물을 마시고 잠깐 안방으로 가보았다. 엄마는 자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내 방으로 와서 다시 녹음 버튼을 눌렀다.

   운동장에는 구름다리 하는 애들이 몇 명 있었어요. 아이들 쪽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마음이 두근두근하며 설레었어요.
   ‘이제 진짜 제대로 놀 수 있겠구나!’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아이들한테 내밀며 말했어요. 좀 쑥스러웠지만 정말이지 반가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어요.
   “얘들아, 이거 먹을래?”
   그런데 아이들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동시에 물었어요.
   “누구세요?”
   “왜 이걸 주세요?”
   할머니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서 쭈뼛거리다가 겨우 말했어요.
   “너희들이 예뻐서…… 아니, 너희들하고 놀려고……”
   할머니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 아이가 불쑥 말했어요.
   “왜 할머니가 애들하고 놀아요? 얘들아, 좀 이상한 할머니 같지?”
   할머니는 당황스러웠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서둘러 대답했어요.
   “나, 이상한 할머니 아니야. 저 아랫마을에 살아. 너희들하고 놀고 싶어서 왔어.”
   진심을 말하는데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어요.
   아이들은 더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바로 책가방을 메고 가버렸어요. 할머니는 벤치에 주저앉았어요.
   ‘요즘 애들은 모르는 사람하고는 안 노는구나. 그래, 그렇지, 세상이 얼마나 험해…… 그래도 그렇지, 나같이 상냥한 할머니가 사탕까지 주며 놀자고 하는데 쌩하고 가버리다니. 땅따먹기도 하고 사방치기도 하고 싶었는데…… 이제 누구하고 놀지?’
   할머니는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한참 앉아 있었어요. 나잇값도 못하는 할머니가 된 것 같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혼자 읽으니 자꾸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할머니가 옆에 있다고 상상하거나, 주인공 할머니를 우리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우리 할머니도 이야기 속 할머니처럼 몸이 마르고 평생 일을 하셨으니까.
   드디어 다 녹음하고 저장한 뒤 엄마에게 휴대 전화를 갖다주었다. 그사이 엄마는 주방에서 된장국을 만들고 있었다. 엄마가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썼네, 고맙다. 할머니가 네 목소리 듣고 일어나실 거야.”
   “할머니 많이 아파?”
   내 물음에 엄마가 가만히 있다가 울먹이며 말했다.
   “응, 좀 많이 편찮으셔.”
   “그래서 중환자실에 계신 거야?”
   “응, 폐렴이 심하게 들어서…… 그래도 운 좋게 금방 자리가 나서 입원했고 중환자실 자리도 금방 생겼어.”
   “운이 좋다고?”
   “그럼, 요즘 병원에 자리가 없어서 입원도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는 환자들이 꽤 많거든. 그에 비하면 할머니는 운이 좋은 셈이야. 그런데……”
   엄마가 무슨 말을 더 할 듯하다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뒤돌아섰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와서 생각했다.
   ‘운이 좋다잖아. 몇 년 전에도 입원하셨다가 건강해져서 퇴원하셨잖아.’
   나는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을지 톡을 하려다가 말았다. 엄마처럼 나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엄마는 다음날 새벽에 다시 병원으로 갔다. 이모들과 함께 병원 근처 큰이모네 집에 머물면서 하루에 한 번 10분 동안 한 명씩 할머니를 면회한다고 했다.
   주말이 지나 개학을 해서 시간이 바쁘게 흘렀다. 한 학년이 올라간 건데도 6학년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나보다 한참 작았는데 몰라볼 정도로 커버린 아이도 있었지만, 방학 때 종종 만난 친구들도 뭔가 달라진 듯했다. 키나 몸집이 커지기도 했고 눈빛이나 표정 같은 게 달라 보이기도 했다. 초등학교의 최고 학년이어서 그럴까? 작년까지만 해도 교실이 널찍해 보였는데 이제는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든 꽉 차 보였다. 우리가 커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가 내는 목소리, 눈빛 등등 우리의 모든 것이 쭉쭉 뻗어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에 엄마가 빨리 병원에 오라고 전화를 했다. 전화 받고 10분도 안 되어 출발했고 길도 막히지 않았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였다. 아빠가 큰이모를 보자마자 울며 말했다.
   “저희가 늦었네요……”
   이미 얼굴이 벌게진 큰이모가 아빠 손을 잡고 같이 울었다. 나는 넷째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 엄마는 어디 있어요?”
   사실 다섯째 딸인 엄마와 넷째 이모는 만날 때마다 싸웠다. 내가 보기엔 싸우는 건데 어른들은 “쟤네는 언제 철이 들려나, 쯧쯧.” 하며 내버려두었다. 외할머니가 넷째 이모보다 막내딸인 우리 엄마를 예뻐해서 넷째 이모는 평생 질투한다고 했다. 그런데 넷째 이모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링거 맞고 있어. 엄마가 잠깐 정신을 잃었어.”
   아빠도, 오빠도, 나도 모두 깜짝 놀랐다.
   “괜찮아, 곧 정신이 들었어. 막내잖아. 속을 얼마나 끓였는지……”
   넷째 이모가 말하다 말고 눈물을 흘렸다.
   그날은 병원에 오래 있지 않았고 밤늦게 언니 오빠들을 따라 큰이모네 집에 가서 잤다. 다음날 일찍 장례식장에 가니 남자들은 까만 양복을, 여자들은 까만 한복을 입고 있었다. 오빠도 까만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나도 친척 언니들처럼 상복이란 걸 입고 싶었는데 안 입어도 된다고 했다. 입고 싶다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모든 어른이 정신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사진으로 만나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실감이 났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엄마랑 할머니를 뵈러 간 게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짧은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연한 개나리색 한복을 입은 채 웃고 계셨다. 엄청나게 많은 하얀 국화가 할머니를 둘러싸고 있었다. 꽃향기가 좁은 방안에 점점 퍼지고 있었다.
   절을 하지 못한 사람은 절을 하라고 큰이모가 말했다. 나는 막내딸인 엄마의 막내여서 맨 끝이다. 엄마랑 넷째 이모도 일곱 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초등학생도 나밖에 없고 중고등학생도 오빠밖에 없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내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내가 녹음한 놀이 할머니 이야기였다.

   할머니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동네의 경로당에 갔어요. 자기도 할머니면서 나이든 사람들하고 노는 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일부러 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별수 없죠. 맨날 혼자 놀 수는 없으니까요.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경로당에 다니며 노인들이 어떻게 지내나 지켜보았어요. 텔레비전 보거나 수다떨다가 점심 먹은 다음, 종종 1점당 100원 내기 화투를 치는 게 고작이었어요. 그런데 매번 여자들만 점심 준비와 설거지를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남자들이 설거지라도 하라고 할머니가 말해도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날 밤 할머니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어휴……, 이런 노인들하고 놀 수 있으려나?’


   ‘이걸 왜 지금 틀어놓지?’
   나는 궁금했지만 모두 조용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와 오빠 차례가 되어 절을 하고 나서 할머니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큰이모가 내 곁으로 와서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막내 손주 지연이. 엄마가 제일 이쁘다고 했잖아……”
   정말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 할머니가 약과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지연아, 내 니 오빠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도, 이모들도 모두 딸만 낳았는데 우리 엄마만 아들인 오빠를 낳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눈에 띄게 오빠를 챙겨주었다. 얄미울 정도로.
   “실은, 니가 제일 좋다야.”
   나는 바로 대꾸했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라우. 왜 니 오빠를 위했냐 하면은, 딱 보니 니 오빠는 속이 너무 여린 거라. 차려준 밥도 못 먹을 애더라구. 기래서, 내 일부러 더 편을 든 거지. 뭔 뜻인지, 우리 지연이가 알간?”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했다.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할머니, 정말, 내가 제일 좋은 거지?”
   “그럼, 그럼, 정말로 니가 제일 좋다야. 엄마한테, 이모들한테 물어보라우.”
   나는 엄청 기뻐서 할머니를 꼭 안았다.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말랐는데 안으면 늘 폭신하다. 그날 집에 가서 오빠한테 할머니가 해준 말을 자랑했지만 오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제 할머니하고 못 안는구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옆에 있던 오빠도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손님들이 한두 명씩 오기 시작했다. 오빠는 제일 큰 형부를 도와 조의금 봉투를 받는 곳에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아무도 딱 한 가지 일을 맡기진 않았다. 대신 뭐 가져다달라거나 누구 불러달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왔다갔다하느라 힘들기도 하고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만나는 어른마다 “이야기를 녹음하다니, 기특하네―”, “저 목소리가 너라면서? 어린애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대?” 하며 칭찬해주었다. 용돈을 주는 어른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엄마가 시킨 거라고 바로 말했을 텐데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오전이 후딱 흐른 것 같았다. 아빠가 오빠와 나를 불렀다.
   “곧 입관식 하는데, 너희들, 할머니한테 마지막으로 인사할래?”
   ‘입관식’이 뭔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대충 느낌이 왔다. 솔직히 속으로 ‘좀 무섭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오빠가 고개를 끄덕하는 걸 보고 얼떨결에 나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로 내려가니 실내인데도 좀 쌀쌀했다. 할머니한테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가까운 친척들이 다 모여 있어서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할머니 얼굴만 보였다. 살아계셨을 때보다 너무 많이 말라서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주무시는 듯 편안한 얼굴로 누워 계셔서 더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모와 이모부들이 모두 울면서 한마디씩 했다.
   “평생 일하느라 놀지도 못한 우리 엄마, 흑흑 하늘나라에서는 실컷 노세요.”
   “배우고 싶은 거 많았던 우리 엄마, 이제 맘껏 배우세요, 엉엉.”
   “일 그만두시고 몇 년 쉬지도 못했는데…… 장모님, 편히 가세요, 헉헉.”
   “흑흑흑, 이야기 좋아하는 우리 엄마, 이야기 들으며 편안히 가세요.”
   “보고 싶었던 아버지하고도 꼭 회포 푸세요, 엉엉엉.”
   “살아생전 못 가본 고향, 엉엉엉…… 이제 마음껏 가세요.”
   넷째 이모와 우리 엄마는 대성통곡을 하며 서로 안고 울었다.
   오빠는 “할머니, 감사했어요. 못 잊을 거예요.”라고 짧게라도 인사했는데 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후부터는 손님들이 제법 왔는데 엄마와 이모들의 친구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도 이모들도 수다를 마구 떨었다. 꼭 친구들하고 노는 것 같았다. 바로 좀 전까지도 눈물이 마를 사이가 없었던 어른들이 얼굴이 벌건 채로 이야기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혹시 연극을 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엄마의 기분이 좀 나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나는 평생 받을 칭찬을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다 받는 것만 같았다. 하나같이 이야기 녹음에 대한 칭찬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픈데도 칭찬을 받으면 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궁금한 게 있어서 오빠 옆에 가서 앉았다.
   “오빠, 정말 할머니가 운이 좋은 거야?”
   오빠가 돌 씹은 것 같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른들이 다 우리 할머니 운이 좋대. 오래 안 아파서 운이 좋고, 입원해서 운이 좋고, 여든 여섯까지 큰 병 없이 사셔서 운이 좋고, 곧 증손주도 보실 거니까 운이 좋고, 다 이렇게 말했어.”
   “그렇지, 운이 좋으셨네. 그렇네.”
   “그런데 돌아가셨잖아. 그래도 운이 좋은 거야?”
   오빠가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어휴, 너 같은 어린애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내 입이 삐죽 나왔다.
   “오빠도 모르면서.”
   “내가 왜 몰라? 고딩하고 초딩하고 같냐? 남은 가족들 마음 편안해지라고 손님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근데 실제로도 우리 할머니 정도면 운이 좋은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아……, 이제 이해된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구나.”
   “초딩 주제에 무슨 이해를 한다는 거야?”
   오빠가 한심하다는 듯 말해서 나는 쏘아보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오늘은 참기로 했다. 꿀밤도 약하게 먹이고, 뭐 물어보면 매번 ‘바보, 멍청이’라는 말부터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오빠가 친한 척하며 말했다.
   “그런데, 너, 이야기는 참 잘 골랐네.”
   “무슨 이야기?”
   오빠가 할머니 사진 쪽을 가리켰다.
   “아, 놀이 할머니 이야기…… 실은, 엄마가 얼른 녹음하라고 해서, 제목에 ‘할머니’가 들어간 책으로 고른 거야.”
   칭찬받을 때마다 아무 말도 못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오빠한테라도 말하니 속이 좀 시원했다.
   “이런 걸 운이 좋다고 하는 거야. 우연히 골랐지만 내용이 지금 상황이랑 딱 어울리잖아.”
   “그래? 뭐가 어울려?”
   오빠가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다.
   “지금은 나도 말을 못 하겠다. 네가 생각해 봐. 내용도 다 알잖아.”
   “알긴 알지, 그런데……”
   그때 새로 손님이 오셨고 오빠는 자동 인형처럼 벌떡 일어섰다. 나는 어디 있어야 하나 두리번거리며 왔다갔다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놀이 할머니 이야기가 왜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장례식장 옆 작은 방에 들어갔다. 병원에 오기 전에 가방을 쌀 때 웬일인지 놀이 할머니가 떠올라 그 책을 챙겨왔었다. 나는 그 책을 꺼내서 다시 읽었다. 어떤 이유로 이 이야기가 우리 할머니의 장례식에 딱 어울리는지 꼭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어도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정확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육개장을 먹으며, 꿀떡을 집어먹으며 책 내용을 물어보고 고개를 끄덕하며 웃던 게 좀 이해가 되었다.

   경로당으로 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가벼워요. 할머니의 품에는 둘둘 말린 하얀 종이가 있고 가방에는 12색 색연필이 들어 있어요. 오늘은 무릎 아픈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넓은 상에 큰 종이를 깔고 땅따먹기를 할 거예요. 자기 땅을 많이 갖기 위해 욕심부리고 허탈해하고 깔깔 웃을 친구들을 생각하니 할머니는 웃음이 절로 나왔어요.
   이렇게 해서 할머니는 동네의 ‘놀이 할머니’가 되었어요. 이제 경로당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를 목이 빠지게 기다려요. ‘오늘은 놀이 할머니가 무슨 놀잇거리를 가지고 오려나?’ 하고 기대하면서요. 아이들처럼 때론 싸우고 토라져도 결국엔 화해하며 끝이 나니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그럼 이제 놀이 할머니는 경로당 친구들과 노는 것으로 만족했을까요? 아닌 것 같아요.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버스를 타고 동네 초등학교로 간답니다. 자기를 알아봐주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나타나길 바라면서요.
   혹시 운동장에서 어떤 할머니를 만난다면, 용기 내어 “놀고 싶어 오셨어요?”라고 물어보세요. 아니면, 운동장에서 어떤 할머니가 “같이 놀래?”라고 물어보면, 친구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한번 놀아주세요. 혹시 알아요? 정말 정말 신나고 재미있을지요? 하하하.


   밤에는 어른 몇 명만 남고 모두 큰이모네와 할머니네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우리집 식구들은 넷째 이모네 식구들과 할머니네로 갔다. 넷째 이모와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에 둘도 없는 우애 좋은 자매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싸우면 며칠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한테 물어보려고 기다렸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장례식장에 가려고 나서는데 현관문 앞에 꽃무늬 지팡이가 보였다. 몇 해 전, 오빠와 내가 돈을 모아서 할머니 생신 선물로 사드린 지팡이였다.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어서 가볍고 녹이 슬지 않는 데다 2단이라 접어서 가방에 넣을 수도 있다. 할머니가 엄청 신기해하며 좋아하신 기억이 났다.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나왔다.
   “엄마, 이 지팡이 가져가도 돼?”
   엄마가 금방 눈물이 글썽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지팡이를 꺼냈다. 지팡이를 펴서 기다란 제사상 위에 놓았다. 할머니에게 필요할 것 같았다.
   마지막 날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에 큰이모가 나를 불렀다.
   “지연아, 이 지팡이 네가 둔 거야?”
   “네. 혹시 먹을 음식만 상에 둬야 해요?”
   큰이모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할머니 가실 때 지팡이 짚고 가시라고 올려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있던 어른들이 빙긋 웃었다.
   “이제 할머니는 지팡이가 필요 없어. 어디든 자유롭게 가실 수 있거든. 그러니까 이 지팡이는 이제 내가 가져가야겠다. 그래도 되지?”
   “네, 그럼요.”
   내 대답에 큰이모가 연하게 웃었다. 큰이모가 제일 나이 많고 다음 달에 할머니가 되니 큰이모를 드려도 되겠다 싶었다. 물론 한참 뒤에나 쓰겠지만 말이다.
   잠시 후, 큰이모가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여기 모여보세요!”
   제사상 앞에 다 같이 모였다. 오빠가 할머니 사진을 들고 있었다. 큰이모가 편안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다들 사흘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우리 엄마 이제 마음 편히 가실 거예요. 다음 달에 내 손주 태어나고 백일 지나 또 모입시다. 그리고, 이제 이 휴대 전화 끌게요.”
   그때까지도 놀이 할머니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나보다. 며칠을 계속 들으니 마치 텔레비전 광고 음악 같아서 오늘은 별로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큰이모가 휴대전화의 녹음 파일을 멈춘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한 듯 조용했다. 마치 마법에 걸렸다가 풀려나서 현실로 돌아온 듯했다. 그때 침묵을 깨며 넷째 이모가 또 나를 칭찬해주었다. 이 칭찬은 좀 새로웠다.
   “지연이 목소리 들으며 우리 모두 잘 버텼단다. 언제 또 책 읽어주렴.”
   저쪽에 서 있던 엄마가 나를 보며 웃었다. 정말 정말 몇 달 만에 보는 엄마의 웃음이었다.
   “예, 이모들 집에 갈 때마다 책 한 권씩 들고 갈게요.”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다 저마다의 표정으로 웃었다.
   이제 정말 장례식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각자 짐을 들고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나는 오빠 품속의 할머니 사진을 보며 입관식 때 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를 속으로 말했다.
   ‘할머니, 하늘나라에서 재미나게 노세요. 그리고 어디든 마음껏 가세요. 고향도 가시고, 이모들 집도 가시고, 우리집에도 꼭 오세요.’

김민경

요즘 세상을 경험하며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의 삶에 관심이 간다. 모두가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작은 새’ 동인이며, 쓴 책으로 동화 『우리 동네에 놀러 올래?』, 청소년소설 『앉아 있는 악마』,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가 있다.

2022/03/29
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