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세상의 얼굴

민병훈

지난겨울 개편 호 발행 이후 어느덧 두 계절이 지나 가을의 초입에 다다랐습니다. 그동안 첫 출발의 흥분과 설렘은 가라앉힌 채 우리가 가고자하는 길의 방향을 예리하게 다듬고 수정하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무엇보다 《비유》가 문학과 현실,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어떤 만남을 주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 국립극장에서 연극 <맥베스>를 관람한 뒤 집으로 가는 길에 맥베스 부인의 대사가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세상을 속이려면 세상과 같은 얼굴을 보이세요.” 그가 말하는 세상과 같은 얼굴이란, 어쩌면 작가에 의해 감각화 된 동시대의 표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이번 호에는 수많은 얼굴이 있습니다. 소휘의 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낯선 환경으로 인해 굳은 얼굴을 한 전학생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주운 모자에서 “동글하고 말랑한 느낌”의 거품이 만들어지자 친구들은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달려옵니다. 주인공은 이사 후 처음으로 온 세상이 포근하다고 느낍니다. 이승은의 소설 속 주인공 역시 친구들과 다른 얼굴을 한 자신에 대해 걱정합니다. 누리호가 발사되는 순간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찾아간 해변에서, 주인공 수아는 숨죽인 채 바라봤던 수호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립니다. 최예솔의 소설은 과거 친구의 연인이었던 한규의 “후후” 웃는 얼굴에서 시작해 나의 웃음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실비의 시에는 작약을 사랑한 외계인의 감정이, 안현미의 시에는 가까운 이가 사라져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이,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누군가의 인상처럼 시를 다 읽고 난 뒤에도 아른거립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 윤미희와 이혜미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모른 채 일상에서 찍은 음식 사진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음식 메뉴 공유에서 시작한 글은 각자가 처한 현실의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이를 통해 두 작가는 식탁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듯 “함께 (먹고) 있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판도’의 김형중은 실무로서의 문학비평을 말하며 우리가 몰랐던 비평가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비평가의 생애 주기를 세 단계로 구분한 뒤 자신이 겪은 생생한 경험을 기반으로 비평 작업 ‘실무’에 대해 고찰할 지점을 설명합니다.
  ‘리뷰와 비평’의 박혜진은 나르시시즘의 고통을 다룹니다. 나르시시즘은 익히 알려져 있듯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해 황홀과 쾌감을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만 나르시시스트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르시시스틱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박혜진은 신이인의 시에 반영된 나르시시즘 시대의 절망과 이를 극복하려는 어떤 적극성에 대해 말합니다. ‘요즘 이야기’의 안희제는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캔슬 컬처를 “음모론의 마음”과 연결합니다. “캔슬 컬처에 담긴 위험과 안전에 대한 감각을 붙들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지 질문합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설명 체계로서의 음모론 대신 질문 체계로서의 사랑”을 제시합니다.
  동시대의 단일한 얼굴이란 환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얼굴을 뚜렷하고 맑은 눈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어떤 얼굴은 간혹 언젠가 내가 지었던 표정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을 통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