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것들. 앙상한 겨울나무. 나뭇가지 위에 쌓인 하얀 눈. 쓰레기 분리수거장과 놀이터. 그네와 미끄럼틀. 찬 바람에 몸을 움츠린 채 아파트 단지 안을 걷는 사람들.
  “호날두야, 안녕.”
  수호가 베란다 밖으로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손을 흔든다.
  “안녕, 호날두야.”
  수아도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호날두가 지나간 후에는 메시가 등장한다. 까만 눈에 갈색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
  “메시 쉬한다!”
  메시가 나무 아래에 멈추더니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눈다.
  호날두와 메시는 수아와 수호만 부르는 이름이다. 베란다 앞을 지나는 개들에게 수호가 좋아하는 축구 선수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겨울 내내 수아와 수호는 베란다에서 해를 쬐며 논다.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베란다 바닥에는 온열 매트가 깔려 있어 따뜻하다. 봉긋한 이마에 볼이 발그레한 수아는 얼마 전 아래 앞니를 두 개 뺐고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수호는 곧 여덟번째 생일을 맞는다.
  “너 그거 알아? 우주인은 물 대신 오줌 마셔.”
  수아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수호는 거실에서 엄마와 과학 다큐멘터리를 봤다.
  “쉬를 싼 다음에 물로 바꿔서 마시는 거야. 우주에는 먹을 것도 없고 공기도 없고 물도 없거든.”
  수호가 코밑을 긁적이며 우주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호의 코에는 가늘고 투명한 산소줄이 달려 있다. 가느다란 줄이 수호 방에 놓인 산소통까지 길게 이어진다.
  “오줌을 마신다고? 말도 안 돼.”
  다큐멘터리에서 봤다고 수호가 여러 번 말해도 수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삐죽인다.
  “진짜야.”
  “오빠가 지어낸 거잖아.”
  “진짜라니까. 엄마! 내 말이 맞지!”
  수호는 엄마를 찾아 거실로 나간다.

거실에는 축구 경기가 중계중이다.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수호와 아빠가 TV 앞 소파에 앉아 국가 대항전을 보고 있다.
  “슛! 골인!”
  한국 선수가 골을 넣자, 수호가 소파에서 펄쩍 뛰어오른다. 골 세리머니를 따라 하며 거실을 뛰어다닌다. 그 바람에 산소줄이 수납장 모서리에 걸려 빠져버린다. 아빠가 산소줄을 연결해주고 가만히 앉아서 보라고 잔소리를 해도 수호는 베란다에서 주방까지, 현관에서 욕실 앞까지 신나게 달린다. 경기가 끝날 쯤에는 녹초가 되어 소파에 드러눕는다.
  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수아는 소파 옆에서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다.
  “발표회 할 때 떨렸어?”
  수아가 율동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수호가 묻는다.
  “아니, 하나도 안 떨렸어.”
  수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젓는다.
  며칠 전 어린이집 발표회에서 이 율동을 했는데 그날 수아는 떨리기보다는 속이 상했다. 아무도 발표회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출근해야 했고 엄마는 겨울 동안 외출 금지인 수호를 돌봐야 했다. 그래도 수아는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실력을 뽐내어 선생님과 친구 민서의 할머니에게 칭찬을 받았다.
  엄마 찾아 음매 아빠 찾아 음매
  수아는 손차양하듯 한 손을 이마에 대었다가 방망이질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아 허공에 두드린다.
  “오빠도 나중에 발표회 해봐.”
  “난 그런 거 안 해. 유치하게 그게 뭐냐?”
  “재밌는데. 나 칭찬도 많이 받았어.”
  수아가 자랑을 늘어놓자 심드렁하게 누워 있던 수호가 심통을 부린다. 수아를 향해 음매에, 하며 혀를 내밀더니 염소 대가리라고 놀려댄다.
  “내가 왜 염소 대가리야? 왜 놀려!”
  “너가 먼저 발표회 못 해봤다고 놀렸잖아.”
  “내가 언제? 오빠가 놀렸다고 엄마한테 이를 거야!”
  “이 바보 멍충아! 골 세리머니가 뭔지도 모르는 게.”
  수호가 수아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는다.

초인종이 울리고 잔뜩 골이 나 있던 수아가 현관으로 달려나간다.
  “내가 나갈 거야.”
  현관이 열리자마자 수아는 두 팔을 벌린다.
  “이모!”
  늘 수아를 예뻐하는 이모에게 안기려는데 현관에 들어선 이모는 뒤로 주춤한다. 이모의 품에는 갓난아기가 안겨 있다.
  “수아 동생이야.”
  이모가 주먹을 꼭 쥔 채 입을 오물거리는 작은 아기를 보여준다. 안녕, 하고 수아는 아기에게 인사한다. 아기의 피부는 빨갛고 머리털이 없고 눈도 찌그러졌지만, 좋은 냄새가 난다.
  초인종이 또 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도착한다. 식탁에는 생일상이 차려져 있다. ‘8th HAPPY BIRTHDAY. 수호’ 거실 커튼에는 큰 글자와 함께 화려한 장식이 붙어 있다. 엄마가 생일 케이크 초에 불을 붙여 온다. 이모부는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한다. 고깔모자를 쓴 수호가 촛불을 끄려고 입술을 오므린다. 몇 번 불어도 촛불이 꺼지지 않아 아빠가 대신 불어준다. 가족들이 준비한 선물이 수호 옆에 쌓인다. 반짝이는 리본으로 포장한 선물 상자에서 수아는 눈을 뗄 수가 없다.
  “오빠, 소원 뭐 빌었어?”
  선물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수아가 묻는다.
  “우리 학교에 축구부 생기게 해달라고.”
  “오빠, 학교 못 가잖아.”
  수호는 입학식 날만 학교에 가고 출석은 거의 하지 못했다.
  “야, 내가 왜 못 가. 아빠가 내년에 간다고 했는데에.”
  수호가 말끝을 늘이며 아빠를 쳐다본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물을 뜯어보자고 한다. 로봇으로 변신하는 필통, 게임기, 축구화. 선물 상자를 열 때마다 수호는 감탄을 쏟아낸다.
  “임수아! 내 유니폼 어디 있는지 진짜 몰라?”
  축구화를 손에 든 수호가 인상을 쓰며 묻는다. 며칠 전 사라진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이 떠오른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수아는 흥, 쏘아붙이고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흰색 머리띠를 하고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수아가 양손을 허리춤에 올린다. 전주의 박자에 맞춰 뒤꿈치를 살짝살짝 들어올리며 수아는 활짝 미소 짓는다. 좌우로 고개를 까닥일 때마다 수아의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오른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노래가 울려퍼지고 수아는 무릎을 굽혔다 펴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드높이 뻗는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염소가 있어.”
  “어쩜 이렇게 잘하니?”
  수호 생일상을 점심으로 먹고 거실에 모여 앉은 가족들이 수아를 보며 손뼉을 친다. 이모부는 캠코더로 수아를 촬영하고 수아는 율동을 하며 방긋방긋 웃는다. 발표회 때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노래가 반절쯤 지났을 때 수아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다. 부풀어오른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그라든다.
  “수아야, 왜 그래?”
  아빠가 묻지만, 수아는 대답이 없다. 수아는 가만히 서 있고 아기 염소 노래만 울려 퍼진다.
  “까먹었어?”
  수호가 물어도 대꾸가 없다. 수아는 이모를 보고 있다.
  아빠가 노래를 끄자, 거실은 적막해진다. 그때 할머니가 얘가 계속 왜 이래, 하며 옆에 앉은 이모의 등짝을 때린다. 이모 품의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고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러 베란다로 나간다.
  “나 오줌 마려워.”
  화장실에 간 수아는 변기에 앉아 있다가 그냥 일어난다. 아까는 율동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금방 쌀 것처럼 오줌이 마려웠는데 오줌이 나오지 않는다. 수아는 화장실 문을 조용히 닫고 현관을 빠져나와 놀이터로 간다. 집에서 가까운 놀이터가 아니라 옆 단지 놀이터로 간다. 엄지 손을 입에 물고 놀이터 그네에 앉아 소리 없이 울던 이모를 떠올린다.

*

“수아야.”
  속삭이듯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은정이 손짓한다. 손짓을 따라 올려다보면 키 큰 소나무 줄기와 솔잎으로 꽉 들어찬 하늘이 보인다. 은정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나무줄기 끝에는 청설모가 앉아 있다. 꼬리를 둥글게 말고 다음 행선지를 정하려는 듯 두리번거린다. 앞서 걷던 윤호와 소미가 돌아본다. 인기척에 놀란 청설모가 재빠르게 달아나고 넷은 다시 숲을 걷는다.
  6월의 초여름. 수아와 은정, 윤호와 소미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소나무숲을 걷는 중이다. 대학 새내기인 넷은 첫 여름방학을 맞아 차 한 대를 빌려 짧은 여행을 왔다. 기숙사 룸메이트인 수아와 은정, 같은 동아리인 윤호와 소미는 교양 수업에서 만나 팀별 과제를 하며 친해졌다.
  시원한 나무 그늘과 상큼한 솔향을 즐기며 걷다보니 짙은 초록잎과 검은 흙빛 나무 기둥 사이로 연한 하늘빛이 보인다. 곧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다!”
  소미가 외치며 바다로 뛰어들 것처럼 달려나간다.
  “갈아입을 옷 챙겨올걸.”
  은정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물에 발이라도 담가야지.”
  윤호가 바짓단을 접어올린다. 수아도 샌들을 벗고 젖은 모래를 밟는다.
  넷은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찌푸린 채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변을 걷는다. 여행 일정에 없던 해변 나들이는 오전에 갑자기 추가되었다. 누리호 2차 발사를 볼 수 있는 해수욕장이 숙소에서 멀지 않았다.
  “성공할까?”
  “성공하든 안 하든 난 소원 빌 거야.”
  “무슨 소원?”
  “우리 매장 진상 손님, 다른 데로 가게 해달라고.”
  소미는 편의점에서 오 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오 개월째 거의 매일 그 손님을 본다고 한다.
  “너무 소박한 거 아니야?”
  “그럼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할까?”
  소미가 호탕하게 웃으며 방금 한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고, 정말 그렇게 되고 싶다고 덧붙인다.
  은정은 장학금을 탔으면 하고 윤호는 형의 취업을 고대한다. 그래야 다음 학기에 휴학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근데 소원 빌면 누가 들어주는 거야?”
  “우주인?”
  “달나라 토끼?”
  “외계인?”
  한 단어씩 보탤 때마다 장난기 섞인 웃음이 터져나온다. 파도가 높이 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웃음이 잦아든 후에 수아는 잠시 눈을 감는다. 수아는 조금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친구들과 해변에 있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름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코끝에는 한겨울의 찬 공기가 걸려 있고 해변의 젖은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데도 놀이터 그네에 혼자 앉아 있는 것 같다. 숲에 들어서면서 십사 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수호의 여덟번째 생일 파티의 기억은 오래되어 흐릿하지만, 몇몇 순간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

놀이터 그네에 앉아 보던 풍경.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퍼석한 눈가루. 모래에 반쯤 파묻힌 과자 봉지와 부서진 플라스틱 장난감 조각. 끼익 끼익,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소리.
  “수아야. 거기서 뭐하니.”
  친구, 민서의 할머니가 수아에게 다가온다. 수아는 엄지손가락을 입에서 빼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춥니, 아가? 입술이 파래졌네.”
  할머니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서자 민서의 할아버지가 수아를 반긴다.
  수아는 바로 옆 동인 민서의 할머니 댁에 몇 번 왔었다. 엄마가 수호를 데리고 병원에 갈 때 이 집에서 민서와 놀았다.
  할머니는 수아를 작은 방으로 들이고 이불을 덮어준다. 머리맡에는 간식을 놓아준다. 방문이 닫히고 할머니가 엄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아 막 잠들었어요. 깨면 데려갈게요.”
  수아는 감았던 눈을 뜬다. 천장을 바라보다가, 창가를 바라보다가 엄지 손을 입에 문 채 잠이 든다. 12월의 초저녁 해가 금세 기울고 방은 어두워진다. 짙은 어둠이 내린 뒤에 수아의 얼굴이 씰룩거린다. 입꼬리가 내려가며 울음이 터진다.
  “꿈꿨니, 아가?”
  민서 할머니가 잠에서 깬 수아를 토닥인다. 할머니는 수아의 손을 꼭 잡고 집에 데려다준다.

집에는 엄마와 수호뿐이다. 이모네 식구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돌아갔고 아빠는 출근했다.
  엄마가 수아를 안방으로 부른다. 크게 혼날 거라는 수호의 말과 달리 엄마는 “다친 데 없어? 아픈 데 없어?” 하며 수아를 끌어안았다가 얼굴을 쓰다듬을 뿐이다.
  “많이 혼났어?”
  안방에서 나온 후에도 수호는 수아를 따라다닌다.
  “아니.”
  “울었어?”
  “아니.”
  “운 것 같은데.”
  수호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혼나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다.
  “근데 아까는 왜 하다가 말았어?”
  수호의 물음에 수아는 눈만 깜빡인다.
  “너 아까 떨렸지? 그래서 까먹은 거지?”
  순간 수아는 눈물이 날 것 같다. 진짜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획 돌아서는데 수호가 가로막더니 한 손을 머리 위로 뻗으며 엉덩이를 씰룩인다.
  “이거 다음에 이거잖아. 이렇게 했어야지.”
  그 모습에 수아는 웃음이 터진다.
  “아니거든. 그렇게 하는 거 아니거든!”
  둘은 까르르 웃는다. 수아가 율동을 보여주면 수호가 따라 하는데 엉터리라서 둘은 또 배꼽을 잡고 웃는다. 스텝을 밟을 때마다 수호가 신은 축구화가 거실 바닥에 부딪혀 소리가 난다.
  “수호야, 수아야.”
  자지러지게 웃는 둘을 엄마가 부른다. 잘 시간이라며 수아에게는 씻으라고, 수호에게는 축구화를 벗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수호 방 침대 머리맡에는 수호 키만 한 축구 선수 브로마이드가 붙어있다.
  “하루만요. 엄마, 하루만!”
  방으로 들어간 수호는 축구화를 신고 자겠다고 조르다가 밖에 나가서 축구를 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
  엄마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건 수아도 알고 있다. 수호는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고 조금만 뛰어도 금방 지친다. 수호가 산소통 없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구십 초. 산소통을 달고 휠체어를 타야 밖에 나갈 수 있다.
  수호는 돌이 지나자마자 폐질환을 앓기 시작했고 다음해에 태어난 수아는 육 개월 만에 이모네 집으로 보내졌다. 이모와 이모부를 이모 엄마, 이모 아빠라고 부르며 지내던 수아는 네 살이 되던 해부터 엄마, 아빠, 수호와 다시 함께 살았다.
  “수아야.”
  엄마가 수아를 부른다. 엄마는 문지방에 서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수아의 손을 잡아 내린다. 수호 침대로 가서 이불의 먼지를 떼어내고 주름을 편 후에는 수호에게 잔소리한다.
  “겨울에 누가 축구를 해. 날이 따뜻해져야 하는 거지. 얼른 누워.”
  입을 툭 내민 채로 수호는 침대에 눕는다. 거짓말처럼 수호는 금방 잠이 들고 엄마는 수호의 축구화를 벗긴다.

*

해변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막 도착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다. 전망이 좋은 자리는 망원경이나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벌써 차지했다. 수영을 하던 사람들도 물에서 나와 물기를 닦는다. 누군가는 손뼉을 치며 대한민국! 하고 외친다. 손바닥만 한 태극기 깃발을 흔드는 사람도 여럿 있다.
  은정과 윤호, 소미와 수아는 주황색 파라솔 옆에 자리를 잡는다.
  “날씨도 좋아야 하고 다른 조건이 다 맞아야 성공할 수 있는 거래.”
  “왜 내가 떨리지.”
  “원래 지난주였는데 날씨 때문에 오늘로 연기된 거잖아.”
  “우리 정말 운이 좋은 거네.”
  셋은 뜻밖의 행운을 만난 것처럼 설렌 표정인데 수아는 조금씩 초조해진다.
  “화장실에 다녀올게.”
  수아가 옆에 선 은정에게 말한다.
  “지금? 곧 발사할 텐데.”
  “응.”
  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선다. 돌아선 후에는 걸음을 재촉한다. 어느새 줄지어 선 사람들을 헤치며, 부딪힌 사람에게 고개를 꾸벅하지도 않고 숲 쪽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에 도착해서는 세면대에서 찬물로 세수를 한다.

그날 밤 몰래 수아는 잠든 수호 방으로 갔다. 수호의 보물 1호인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잠옷 속에 숨긴 채였다. 창을 넘어 들어온 달빛이 수호의 잠든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수아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지만 아무것도 떨어뜨리지 않고 원래 있던 자리, 축구 선수 브로마이드 옆에 유니폼을 걸어두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살금살금 방을 나서려다가 수호와 눈이 마주쳤다.
  “뭐해?”
  잠에서 깬 수호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수아가 아무 말 않자 수호는 침대 아래 놓인 축구화를 집어들었다. 양발에 축구화를 신더니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얼어붙은 듯 서 있는 수아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말하지 마.”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거 알아?”
  수아가 방을 나서기 전에 수호는 또 말을 걸었다.
  “우주에서는 산소통을 메고 점프도 할 수 있대. 초능력자처럼.”
  이모부에게 들었다면서 우주 이야기를 하는 수호는 잠이 달아난 듯 눈을 반짝였다.
  “우주에서는 누구나 산소통을 메고 다녀야 하는데 하나도 안 무겁대.”
  잠시 생기 넘치던 수호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했다.
  “중력이 없어서 그런 거야. 그래서 산소도 없고 무겁지도 않은 거야. 중력이 뭐냐면……”
  수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눈이 스르륵 감겼다.
  수아는 숨죽인 채 수호를 바라본다. 수아의 심장은 계속 두근거려 화장실 건물 뒷벽에 기댄 채 숨을 고른다.
  어른들은 그해 겨울이 수호의 마지막 생일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폐의 기능이 25퍼센트 미만이라 더이상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의사의 소견대로 겨울이 지나고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수호는 가족 곁을 떠났다. 수아네는 네 식구에서 세 식구가 되었다.
  2011년, 수호의 폐 조직이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엄마와 아빠는 한국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 당시에 수아는 잘 몰랐지만, 수호처럼 아픈 사람들이 수천 명이라는 것,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싸움이 너무 늦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

“십! 구! 팔! 칠!”
  누리호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나로우주센터를 향해 선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맞춰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사! 삼! 이! 일!”
  큰 굉음과 함께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며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노랑과 주홍빛의 불꽃을 내며 발사체가 수직으로 솟구친다. 4시 정각에 이륙한 누리호는 4시 2분에 1단을 분리하고 2단도 성공적으로 분리하며 고도 200킬로미터를 통과한다. 발사체가 시야를 벗어난 후에 해변은 잠시 축제 분위기다. 아직 성공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함께 온 사람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눈다. 개들도 꼬리를 흔들며 모래사장을 뛰어다닌다.

떠들썩한 해변과 달리 숲은 조용하다. 은정과 소미, 윤호는 해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소나무숲에 들어와 있다.
  “이쪽 맞아?”
  “맞아. 이쪽이었어.”
  누리호 발사 후에 수아를 찾으러 화장실에 간 은정은 숲으로 향하는 수아를 봤다.
  “그런데 없잖아.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이게 뭔 일이야.”
  은정이 소미와 윤호를 불러 소나무숲을 찾아봤지만, 수아는 보이지 않는다. 수아의 휴대폰은 차 안에 있어 연락해볼 수도 없다. 충전을 해두고 챙겨오지 않은 것이다.
  “수아, 여기 오기 싫었던 거 아닐까. 우리가 오자고 해서 억지로 온 건가?”
  은정은 수아가 숲을 걷는 동안에도 또 해변에서도 말이 없었다며 평소와 조금 달랐다고 한다.
  “싫으면 싫다고 얘기를 하든지. 이건 아니지. 여행 막판에 이게 뭐냐.”
  시간이 흐르면서 소미는 수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되면서 짜증도 난다.
  “설마. 수아가? 그런 일로 말도 없이 사라진다고?”
  윤호는 수아가 그럴 리 없다고 한다.
  “수아 요즘 힘든 일이 있었나?”
  “힘든 일 없는 사람이 어딨냐?”
  윤호와 소미가 이런 말을 주고받은 뒤에는 대화가 끊긴다. 침묵이 흐르는 사이 어젯밤을 떠올린다. 술을 마신 데다가 밤이 깊어진 만큼 다들 조금씩 속내를, 평상시라면 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수아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 자기 이야기보다는 주로 친구들의 사정을 묻고 염려하는 말이었다. 수아는 속을 터놓는 편이 아니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새가 퍼덕이며 날아간다.
  “넌 뭐 들은 얘기 없어?”
  투덜거리던 소미가 은정에게 묻는다. 한 학기 동안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으니, 수아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지 않느냐는 뜻이다.
  은정은 수아가 좋아하는 식당 메뉴와 카페, 싫어하는 교수와 제일 낮은 학점을 받은 과목을 알고 있다. 가고 싶은 여행지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과 OTT 시리즈를 알고 더위를 잘 타지만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며 어떤 자세로 누워야 깊이 잠드는지도 안다. 하지만 정작 알아야 하는 건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입안에서 쓴맛이 나는 것 같다. 은정은 소미와 윤호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수아야,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숲으로 향하던 뒷모습만 자꾸 생각난다.

수아는 대부분 잘 지냈지만 잘 지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이유로 울거나 화를 내거나 토라지거나 자리를 피하는 일들이 간혹 생겼다.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이 다 가짜처럼 느껴지고 오래전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라 숨어버리고 싶어지는 순간. 엄마와 아빠에게 이런 일을 털어놓으면 무조건 감정을 억눌러서는 안 되고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권유로 수아는 상담을 받아 적절한 대응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시간이 궁금해져서 수아는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물어본다. 시간은 꽤 흘러 있었고 해변에는 수아 혼자 있다. 친구들이 주차장에서 수아를 기다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휴대폰 연락도 되지 않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친구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은정과 소미와 윤호는 수아가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친해진 친구들이었다. 여행 내내 즐거웠고 해변에 와서는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수아는 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친구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은정과 소미와 윤호의 얼굴에 생기가 넘칠수록, 기대로 부푼 마음이 눈빛에 가득찰수록 수아는 자신이 없었다. 수아야, 무슨 일이야? 어디 안 좋아?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게 될 게 뻔했다. 수아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고 도망치거나 숨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화장실에 갔다가 되도록 빨리 돌아오려고 했는데 사람이 몰린 곳을 피해 돌아오며 생각보다 늦어졌다. 차라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지 않았으면, 차라리 여행에 따라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나올 것 같아서 수아는 샌들을 벗고 모래를 턴다. 한 알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털어내면 어그러진 일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처럼 구석구석 꼼꼼히 모래를 털어낸다. 뒤축 이음매가 끊어지며 수아의 손에서 샌들 한 짝이 빠져나가 모랫바닥에 던져진다. 수아는 백사장 위에 놓인 샌들과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한참 동안 그렇게 있다가 모래사장을 딛고 선 한쪽 발바닥이 너무 뜨거워 샌들을 주워 신는다. 갑자기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 소리에 놀라 수아는 몸을 움츠린다. 해변에 남아 실시간 뉴스를 확인하던 사람들이 영상 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과학기술 정보통신부가 위성을 성공적으로 분리해 궤도에 안착시켰다며 발사 성공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누군가의 휴대폰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자력으로 1톤 이상의 실용 위성을 우주로 보내는 발사 능력을 갖춘 것은 세계에서 일곱번째이며 이천오백여 명의 사람이 해수욕장에 모여 누리호 발사를 목격했다는 소식을 리포터가 전한다.
  수아는 샌들을 고쳐 신고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수호를 떠올린다. 그리고 모래사장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수아의 그림자를 한 무리의 그림자가 뒤덮는다.
  “수아야.”
  은정과 소미와 윤호가 수아의 곁에 서 있다.
  “여기 있었네.”
  수아는 친구들의 얼굴을 본다. 미안함과 창피함 또 서운함과 반가움이 뒤죽박죽된 마음으로 수아는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한다.
  “한참 찾았네.”
  “미안.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수아는 짧게 미안, 이라고만 한다.
  “거봐, 해변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윤호가 은정의 팔을 툭 친다.
  “미안.”
  은정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헛웃음이 난다. 왜 그런 착각을 했는지, 수아가 숲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라 머리를 긁적인다.
  “엇갈린 거야.”
  소미가 숲에 다녀왔다고 말한다.
  “숲?”
  수아가 묻는다.
  “은정이 때문에 다 무슨 고생이냐.”
  소미가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말하고는 호탕하게 웃는다.
  은정과 윤호와 수아도 얼떨결에 소미를 따라 웃는데 모두 할말이 많아 보인다.
  “우리 가야 해. 얘기는 차 안에서 하자.”
  윤호가 시간을 확인하며 말한다.
  “그러자. 갈 길이 멀어.”
  원래 출발하기로 한 시간을 이미 지났고 서울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다친 데는 없고?”
  “괜찮은 거지?”
  “샌들 끊어졌네. 걸을 수 있겠어?”
  “뒤쪽이라 괜찮아. ”
  “샌들에서 슬리퍼가 된 거네.”
  이런 말을 나누며 넷은 모래사장을 걸어 소나무숲으로 향한다.
  은정은 수아보다 조금 뒤처져 걸으며 수아의 뒷모습을 본다. 은정은 여전히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숲으로 들어가던 여자의 셔츠에는 물방울무늬가 있고 수아의 셔츠에는 없다. 완전히 다른 옷인데 왜 그 여자를 수아라고 생각했을까. 평소와 다른 수아의 얼굴 때문이었을까. 화장실에 다녀올게, 하던 수아의 알 수 없는 표정 때문이었을까. 은정은 수아에게 궁금한 게 많고 수아의 얘기를 듣고 싶지만 재촉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뒷모습을 바라만 본다. 바라보다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수아야, 하고 불러본다.
  내리쬐던 햇살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해변도 한산해진다. 사람들은 해변을 떠나며 뒷정리를 했지만, 남긴 것들도 있다. 연두색 모자, 음료수 캔, 휴지 조각, 물총, 바람 빠진 비치볼, 모래에 반쯤 묻힌 작은 태극기 깃발, 카메라 렌즈 뚜껑 등.
  수아는 뒤축이 끊긴 샌들을 신고 모래사장을 걷는다. 한쪽 발에 힘을 주며 좌우 균형을 맞춰보려고 애쓰며 걷다가 멈추어 선다. 지금, 이 순간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 숲으로 들어서기 전에 바다를 돌아본다. 못 견딜 것 같은 순간이 이렇게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음 순간이 파도처럼 또 다가오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해변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어느새 샌들 안으로 들어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모래 알갱이의 까끌까끌함을 느끼면서 수아는 숲으로 걸어들어간다.

*누리호(한국형 발사체)에 관한 내용은 시사상식사전을 참조함.


이승은

『오늘 밤에 어울리는』과 『도망치는 연인』을 썼다. 작가와 독자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한 프로젝트 ‘작가의 소리를 찾아서’를 비디오 아티스트 이면(YIMYUN)과 함께 기획하고 제작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설을 쓸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열 가지에서 다섯 가지로, 다섯 가지에서 두 가지로 줄어드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점점 작아진다고 느끼는데 꼭 그렇지 않다고, 반대로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2024/09/04
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