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세 번 오는 버스가 신작로에 먼지를 일으키는 시간 낮잠에서 깨어 사라진 아버지를 부르며 울던 시간 양은 도시락이 난로 위에서 뜨거워지던 시간 약국들을 전전하며 수면제를 모으러 다니던 시간 아버지는 한 명인데 어머니는 한 명인지 두 명인지 불분명한 시간 그런 시간들을 타고 나는 여기 도착했습니다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 앞에서 당황하지 않기 위해 쉰세 번의 여름과 생일이 필요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 오는 버스를, 사라진 아버지를, 뜨거워진 양은 도시락을, 수면제를 모으러 다니던 약국 골목을, 숨죽여 울던 어머니들의 밤들을, 꾹꾹 눌러 쓴 사인본처럼 펼쳐 읽는 여름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들도 이제는 다 사라진 첫, 여름입니다

안현미

태백에서 태어났다. 200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 『깊은 일』 『미래의 하양』이 있다. 신동엽문학상과 아름다운작가상을 수상했다.

내가 믿는 시는 시와 집 사이에 창문을 만들고 삶과 죽음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이라고 말해버렸다. 반쪽짜리 진실밖에 안 되는 희박한 주장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여름 꽃나무처럼 환한 당신이 그걸 믿는 척해주길 바란다. 불분명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빛나는 것은 눈물과 사랑뿐이므로.

2024/10/02
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