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해상도 높은 장면’의 주제는 일상의 식사입니다.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사진을 찍는 것은 흔한 일이 됐습니다. 내가 간직하려고 찍는 사진, 친구에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 트레이너에게 보고하기 위한 사진 등, 사람들은 여러 목적으로 음식 사진을 찍습니다. 이번 호에서 두 작가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음식 사진과 메시지를 열 차례 주고받았습니다. 일상에서 찍은 음식 사진만으로 우리는 서로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2024. 5. 7. 20:42

메이: 안녕하세요, 메이(May)입니다. 언제부턴가 저에게 오월은 기분 좋은 달이 되었어요. 오월에 떠났던 여행들이 유독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였을까요. 오월이 다가오면 다시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고, 그러지 못하더라도 오월이 되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라고 주문을 걸어보기도 합니다. 일 년 중 한 달 정도는 이런 시간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게으른 하루를 보내다 음식 채팅을 핑계로 밖에 나와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평소 저는 식사를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채팅을 계기로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챙겨 먹으며 맛있는 걸 먹었을 때의 소소한 행복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먹는 내내 메시지 보낼 생각에 들떠 있다가 근처 카페로 이동하여 몇 글자 적습니다. 앞으로 우린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까요. 처음이라는 설렘을 담아, 시작해봅니다.

네모난 나무 트레이 위에 동그랗고 흰 접시가 놓여 있고, 그 안에 노란빛의 카레 우동이 담겨 있다.


2024. 5. 8. 05:37

모보: 메이님 안녕하세요. 오월의 시작을 함께하게 되어 기쁘네요. 저에게도 오월은 늘 빛이 많은 달, 초록이 무성해지는 달 같아요. 사실 저는 음식 사진을 잘 주고받는 편이 아닌데 보내주신 사진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서로 메뉴를 공유하는지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메뉴 선택에는 아무래도 그날의 마음이 많이 들어가게 되니까요. 앞으로 서로가 보낸 하루의 단면을 나누게 되겠네요. 기대되고 설렙니다. 저는 모보라고 불러 주세요. 무언가의 약자인데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 마무리하면서 이야기 드릴게요.

넉넉한 크기의 양은그릇에 아직 비벼지지 않은 비빔밥이 담겨 있다. 재료는 계란 지단과 삼색나물, 꼬막장, 흰 밥이고, 밥을 막 퍼온 듯한 나무 숟가락도 밥 근처에 놓여 있다.

정갈한 카레 우동을 드셨군요. 조금 늦은 저녁 시간과 잘 어울리는데요. 저도 카레를 너무 좋아해서 자주 끓여두곤 해요. 특히 마지막에 조금 남은 카레로 우동이나 드라이 카레를 만들면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어제 일하는 곳에서 다 같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어요. 각자 재료를 조금씩 가져와서 양푼에 마구 비볐답니다. 저는 마트에서 파는 삼색나물과 꼬막장을 가져갔어요. 이렇게나 소셜한 식사라니…… 원래 이런 일은 잘 없는데 무척 재미있었어요. 메이님은 다 같이 와글와글하는 식사와 혼자 고즈넉하게 하는 식사 중에 어떤 편이 더 좋으신가요? 질문하고 보니 둘 다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2024. 5. 8. 16:55

메이: 함께 일하는 분들과 비빔밥이라니! 너무 정겹게 느껴집니다. 독립한 이후로 혼자 밥 먹는 일이 대부분이라 가끔 가족들과 함께 모여 식사를 하게 되면 느낄 수 있는 왁자지껄함을 좋아합니다. 푸짐하고 다양한 음식들 앞에서 서로 이거 먹어봐 저거 먹어봐 챙기기 바쁜 와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며 실컷 웃다 보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되잖아요.
  오늘 점심은 음식으로나마 따뜻함을 느껴보고자 콩나물국밥을 골랐습니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식혀가며 천천히 먹었습니다. 혼자 먹을 때는 붐비는 시간을 피해 조금 한산할 때 식당을 찾는 편이에요. 조용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식사를 합니다.
  이렇게 사진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함께 (먹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지니 신기합니다. 먹으러 가는 길에도, 먹는 동안에도, 계속 메시지 보낼 생각으로 꽉 차 있어요. 조금은 쓸쓸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식사 시간이 작은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

뚝배기에 담긴 콩나물국밥이 사진 중앙에 있고, 그 위쪽에는 그와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생달걀, 잘게 썬 고추, 양념장, 깍두기가 작은 그릇들에 담겨 있다.


2024. 5. 9. 09:53

모보: 그러게 말이에요. 끼니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단단한 기쁨을 주는군요. 심지어 같이 식탁에 앉지 않아도요. 요 며칠 비가 와서 꽤 쌀쌀했는데 따듯한 국밥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저는 오늘 아침 메뉴로 포케를 만들었어요. 말이 포케지 사실은 어제의 비빔밥과 그리 다르진 않네요. 제가 이런 한 그릇에 다양하게 담겨 있는 메뉴를 좋아하나 봐요. 화분에 심은 겨자와 상추, 깻잎, 쑥갓이 많이 자라서 솎아다가 같이 넣었어요. 평소라면 계란 노른자만 넣었겠지만 메이님 보여드릴 생각에 수란도 해서 올렸답니다. 지금 식사를 하며 메세지를 쓰고 있는데 더 여유롭게 먹게 되어 좋네요. 혼자 끼니를 챙길 땐 왠지 얼른 해치우고 다시 할 일로 돌아가고 싶어지곤 했거든요. 고맙습니다. 편안하고 환한 하루 보내시고 맛있는 끼니 하셔요. 기다릴게요.

투명한 큰 그릇에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포케가 담겨 있다. 겨자와 상추, 깻잎, 쑥갓, 아보카도, 수란이 들어가 있고 그 위에 빨간 양념이 뿌려져 있다. 그릇의 왼쪽 상단에는 머스타드 소스병을 재활용한 작은 화분이 놓여 있다.


2024. 5. 10. 02:24

메이: 제가 먹은 것도 아닌데 모보님의 음식을 보고 기분 좋아지는 건 왜일까요. 솜씨가 없어서 저는 주로 사먹는 음식 사진만 보내게 되겠지만 마음만은 모보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특히 직접 기르신 채소들로 가득 채운 아침은 정말! 건강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모보님을 따라 포케를 먹을까 하다가 엉뚱하게 김밥과 소금빵을 포장해와서 먹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음식을 접시에 담아보았더니 조금은 그럴듯해졌어요. 감사합니다. 모보님이 안 계셨다면 더 대충 끼니를 해결했을 거예요.
  종종 밥을 먹을 자격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노동을 하지 않았는데 밥을 먹어도 될까, 나의 노동이 이윤을 창출하지 못했는데 밥을 먹어도 될까, 현재 정기적인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 터라 더욱 이런 생각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그럼에도 또 밥을 먹으며 어떻게든 하루를 채워나가려고 노력해야겠지요. 저도 기다리겠습니다, 모보님! (모보님, 모보님, 이름에서 전해져오는 편안함이 있어요!)

김밥 한 줄이 다섯 알씩 나뉘어 그릇의 위쪽 부분에 놓여 있다. 김밥 위에는 깨가 뿌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동그란 소금빵이 놓여 있다.


2024. 5. 10. 12:34

모보: 빵과 김밥이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네요. 일부러 접시에 담으신 것도 귀여워요. 김밥은 보통 은박에 싸인 그대로 펼쳐놓고 아무렇게나 집어먹게 되는데, 옮겨 담은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지네요.
  저는 지난번 메이님이 보내주신 국밥을 보고 따듯한 국물이 끌려서, 집에 있던 키트로 쌀국수를 끓였어요. 요즘은 육수부터 면까지 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나오더라고요. 게다가 비장의 무기, 저는 고수도 키운답니다. 고명으로 얹으니 현지의 향이 확 피어나서 좋았어요.
  밥과 자격이 같이 들어가는 문장이라니 너무 슬프네요. 노동과 관련 없이 누구에게나 맛있는 끼니의 자격이 주어지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실상은 식재료를 사러 갈 때마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마다 가격을 먼저 확인할 수밖에 없네요. ‘먹방’이 유행하는 이유도 그런 결핍과 욕망 사이에 있겠지요.
  오늘이 딱 초여름의 시작인 날씨네요. 화단에 작약이 피는 계절이에요. 먼저 핀 꽃송이를 옆에 두고 사진을 찍어보았어요. 아직도 피어야 할 작약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 소식 전해 주세요, 메이님.

고수가 넉넉하게 들어간 쌀국수. 국물 안에 쌀국수 면과 고수를 비롯한 각종 부재료가 잠겨 있다. 쌀국수를 담은 검은색 그릇의 오른쪽에는 분홍색 꽃이 담긴 화병이 있고, 사진에는 꽃의 일부만 담겼다.


2024. 5. 11. 11:40

메이: 오늘 아침은 아보카도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골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들어있어서, 잠시 엄청 행복했어요! 발을 동동거리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화단 혹은 작은 텃밭에서 각종 채소와 고수까지 키우시는 모보님의 모습이 조금씩 그려집니다. 나중에 알게 될 실제 모습이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더라도, 반전이 있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꽃과 함께 어우러진 음식 사진을 보니 모보님의 식탁으로 초대되는 기분이에요. 작약의 꽃말이 수줍음이라고 하네요. 아직은 수줍은 저와 모보님의 사이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조금씩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맛있는 식사하세요!

반으로 깔끔하게 잘린 아보카도 치아바타 샌드위치 사진. 샌드위치의 단면에서 아보카도와 햄, 치즈, 채소, 토마토 등 샌드위치의 재료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좌우로 배치된 샌드위치 중 작가는 왼쪽 샌드위치를 손에 가볍게 쥐고 있다.


2024. 5. 11. 20:57

모보: 아보카도! 너무 매력 있는 맛이에요. 저도 참 좋아하는데 아보카도와의 눈치게임에서 자주 패배하곤 해요. 그만큼 맛있는 아보카도에 당첨되면 황송한 마음도 들지요. 맛있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오늘은 하루 종일 벼르고 있던 저녁 메뉴가 있었어요.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리는 걸 보면서, 이런 날엔 아무래도 전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좋아하는 가게에서 배달 온 모둠전과 계란말이를 예쁘게 담아보았습니다. 새송이, 두부, 분홍소세지, 동태전, 애호박전, 산적꼬지까지 다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곁들일 와인으로는 시원한 화이트를 골랐습니다. 의외로 기름진 전과 잘 어울려요. 비 오는 창가를 보며 따끈한 전에 와인 한잔하니 새삼 행복이 밀려오네요.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지나는 중인 지금이지만 이런 잠시의 기쁨들을 붙들고 음미하며 조금씩 많은 것들을 해 나가야겠지요. 메이님의 창가에도 다정한 빗소리가 함께하기를요.

사진의 오른쪽 구석에는 와인병과 화이트 와인이 담긴 와인잔이 있고, 정중앙에는 계란말이와 다양한 전을 담은 그릇이 있다. 새송이, 두부, 준홍소세지, 동태전, 애호박전, 산적꼬지 등 다양한 모둠전이 있고 그릇 가운데에는 양파를 넣은 간장 양념장이 있다.


2024. 5. 13. 13:52

메이: 제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는 나무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창문 바로 앞에 커다란 초록 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오늘처럼 날씨가 맑은 날에는 하루 종일 초록초록한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엊그제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나무들과 함께 비 맞는 기분을 느껴보기도 합니다. (모둠전과 화이트 와인, 너무 멋진 한 상이었어요! 날씨와도 잘 어울리고요!) 햇빛이 강하면 강한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보려고 해요. 이곳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요!
  오늘 메뉴는 초록초록한 샐러드로 정해보았어요. 특별할 것 없는 샐러드이지만 한 접시 가득 먹고 나니 엄청 배부르네요.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트에서 배달 온 재료(?)들을 접시에 하나씩 담아보면서 모보님을 떠올렸습니다. 모보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시나요?

양배추와 각종 채소, 방울토마토, 삶은 달걀로 구성된 샐러드.


2024. 5. 14. 20:52

모보: 메이님도 멋진 창문이 있으시군요! 나무와 함께하는 사계절은 무척 특별한 것 같아요. 머문다는 말은 어쩐지 떠나는 시간을 앞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더 지금의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하지요. 메이님이 머물고 계신 곳은 어디일까 상상해 봤습니다. 마트에서 시키는 배달은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음식 배달보다 나은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원재료를 받아볼 수 있어서겠지요? 플라스틱도 덜 나오고요.
  오늘은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부모님이랑 저녁 시간을 보냈어요. 작은 테라스가 있어서 숯불을 피울 수 있는데 요즘 같은 날씨에 딱 좋더라고요. 메이님의 샐러드에 비해 너무 육식이라 조금 민망하네요! 그래도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이었어요. 내일은 또 비가 온다는데 벌써부터 메뉴가 고민됩니다. 멋진 저녁 보내고 계시기를요!

붉은 숯불 위에 격자무늬의 숯불구이 판이 놓여 있고, 그 위에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 양파, 그리고 고기가 놓여있다.


2024. 5. 15. 03:04

메이: 샐러드는 애피타이저였다 치고 메인 요리를 소개해주신 걸로요! 그럼 제가 이번엔 디저트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오늘 이상하게 달달한 게 먹고 싶더라고요. 저는 종종 밥이 아닌 걸로 식사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요. 금방 배불렀다가 또 금방 배고파지는 편이라 조금씩 자주 먹곤 합니다.
  근처 빵집에 가서 에끌레어와 까눌레를 주문했어요. 오래전에 본 일본 드라마에서 에끌레어에 중독되어 이것만 먹는 인물이 나왔거든요. 어떤 맛이길래 그럴까 하며 처음 에끌레어를 맛본 후 계속 찾게 되는 디저트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매장에 에끌레어가 딱 하나 남아 있었어요. 오늘도 역시 맛있었습니다!
  모보님은 날씨와 상황에 맞는 음식 선택을 잘하시는 듯해요. 저는 제 멋대로 취향에 따라 먹기도 하고 그냥 끌리는 대로 대충 먹기도 해서 매번 모보님이 고르실 음식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그럼 또 소식 전해주세요!

꽃무늬 장식이 있는 접시 위에 노르스름한 색의 디저트 에끌레어와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까눌레가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손잡이가 달린 투명한 유리컵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겨 있다.


2024. 5. 15. 21:49

모보: 에끌레어와 까눌레는 이름 때문인지 먼 나라를 상상하게 해요. 커피랑 같이 드셨군요. 정말 잘 어울렸겠어요. 저도 까눌레에는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예전에 한 베이커리에서 까눌레를 처음 맛보고 놀라서 당장 까눌레 틀을 주문했었어요. 하하. 꽂혔을 땐 꽤 많이 굽곤 했는데 요즘은 베이킹을 할 여력이 없네요. 언젠가 메이님을 실제로 뵙게 되면 제가 구운 까눌레도 맛보여 드리고 싶어요. 저는 얼그레이 찻잎을 조금 넣어서 굽는 까눌레를 좋아하는데 메이님 취향도 궁금해요!
  오늘도 비가 내리는 바람에…… 또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다가, 오랜만에 감바스를 골랐어요. 집에 있던 바게트도 살짝 구워서 올렸지요. 오늘은 중요한 일을 하나 끝내서 꽤나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밤새 비가 내릴 것 같네요. 평안한 밤 되시기를요.

꽃잎 모양의 그릇에 살짝 구워진 바게트 세 조각과 잘 익은 새우와 마늘 등으로 이루어진 감바스가 담겨 있다. 감바스가 담긴 그릇 위에는 백조 모양의 분홍색 장식품과 유리잔들이 놓여 있다.


2024. 5. 17. 09:57

메이: 잘 하려고 하니 오히려 자꾸 더 어긋나는 게 이런 걸까요. 어제 일정이 있어서 외출한 김에 점심 저녁 모두 나름 신경 써서 음식점을 골랐는데 모두 실패했어요. 사진으로 맛까지 전달되진 않겠지만 만족하지 못한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먹은 그릭 요거트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음식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꽤 많은 저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는 메뉴입니다. 블루베리와 함께 시리얼도 조금 뿌렸습니다. 무겁지 않은 식사가 필요할 때, 먹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을 때, 이렇게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좋더라고요.
  중요한 일을 끝내고 먹는 음식은 더욱 꿀맛이지요. 사진 보자마자 ‘맛있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큼지막한 새우가 듬뿍 담겨 있어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까눌레도 직접 만드시다니 모보님은 정말 금손이시네요! 얼그레이 까눌레를 맛보게 될 그날을 상상하며 기다리겠습니다.

흰색의 작은 그릇에 블루베리와 그릭 요거트, 그리고 시리얼이 담겨 있다.


2024. 5. 19. 11:34

모보: 까눌레는 전날 반죽을 해두어야 해서, 함께 나누어 먹을 사람을 오래 생각하게 되는 장점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음식점에 가서 실패하는 경우가 꽤 있네요. 기대했던 마음이 클수록 더 그렇지요. 끼니라는 말과 식사라는 말이 그래서 다른 것 같아요. 끼니는 좀 더 일상의 일부로서 에너지를 얻는 느낌이고, 식사에는 좀 더 공들인 마음이 들어간달까요? 저도 식사보다는 끼니를 더 많이 먹게 되는데(대충 허기를 달랜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오늘은 간단하면서도 근사한 간식을 만들어보았어요.
  요즘 화단에서는 허브가 폭발하는 수준으로 자라는 중이라 한 바구니 정도 솎아다가 허브 치즈를 만들었습니다. 파슬리, 딜, 처빌, 펜넬잎을 잘게 썰어서 크림치즈와 카이막을 넣어 섞었어요. 다진 마늘 조금과 후추도 넣었지요. 크래커에 올려 먹으면 허브 향이 잘 퍼져서 좋아요. 커피릍 좀 내려서 함께 곁들일까 합니다. 환한 주말이네요. 메이님도 좋은 시간 보내셔요!

금색 손잡이가 달린 초록색 그릇에 허브 치즈와 허브 잎, 크래커 네 개가 담겨 있다. 그릇 위쪽에는 작은 입간판 모형이 두 개 놓여 있다. 왼쪽에는 파도 위에 한자 빙(氷)이라고 쓰인 입간판이, 오른쪽에는 ‘웰컴 카페’(WELCOME CAFE)라고 쓰인 입간판이 있다.


2024. 5. 19. 15:26

메이: 오늘은 여러 번 방문했던 식당에 다녀왔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것이기도 했고 최근 실패 경험이 있기에 안전한 선택을 했어요. 다행히 평소대로 맛있게 잘 먹고 나왔습니다. 특히 다양한 쌈 채소와 된장찌개 덕분에 오랜만에 푸짐한 식사를 했어요. 어플을 이용해 미리 웨이팅을 걸어둔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밥을 먹는 방식에는 참 여러 가지가 있네요. 최근에 저는 배달 음식을 최대한 안 시키려고 노력 중이에요.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도 그렇고, 밤만 되면 버릇처럼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을 굳이 2인분 이상씩 시키게 되더라고요.
  함께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전날 반죽을 준비해보는 일, 화단 가득 쌈 채소와 식용 허브들을 키워보는 일, 그 멋진 일들을 하고 계신 모보님이 오늘따라 더욱 궁금해집니다. 왠지 커피 맛도 엄청날 것 같아요!

사진의 오른쪽 하단에는 제육볶음, 오른쪽 상단에는 무말랭이와 수육이 놓여 있다. 왼쪽에는 손바닥에 펼쳐진 쌈 채소 위에 콩나물, 무말랭이, 쌈장 등이 담겨 있다.


2024. 5. 23. 20:39

메이: 모보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연락이 없으셔서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해서 연락드려요. 바쁘셔서 그런 거라면 다행이고요.
  저는 요새 자꾸 집에 있으면 가라앉게 되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제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초밥이라 동네에 있는 초밥집을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또 실패를 했어요. 오늘은 조금 색다르게 마라를 골랐어요!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음식 고르는 일에 무슨 성공, 실패까지 운운하며 이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모르겠지만, 일이 잘 안 풀리고 가라앉으려고 할 때 맛있는 음식을 만나니 더없이 행복하고 세상에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름이 다가오는 중입니다. 내일은 차가운 음식을 먹어볼까 해요. 모보님의 식탁에도 기쁨이 있기를요!

빨간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체크무늬 식탁보 위에 동그란 선 장식이 있는 접시가 있고, 그 위에 각종 해산물과 면, 땅콩가루 등의 식재료를 볶은 마라샹궈가 담겨 있다.


2024. 5. 24. 09:38

모보: 메이님 오랜만이에요, 저는 최근 조금 큰 일이 생겨서 수습과 감당에 마음을 많이 쓰는 한 주를 보냈네요. 서류와 사람과 저의 실수가 뒤섞인 일이라 너무 많은 놀람과 자책으로 정신이 없었어요. 끼니를 챙길 여력이 부족해서 메이님께 소식도 못 전했네요. 걱정해 주셨다니 속상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런 와중에 이 주 전부터 예약을 걸어둔 초당 옥수수도 배송이 잘못 와서 역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오는구나 싶었어요. 얼룩덜룩하고 못생긴 주스용 부사 사과가 오배송되었는데, 이상하게 이 일이 지금까지 일어난 여러 일들의 마침표이자 요약본처럼 느껴졌어요. 메이님께 보내드리려고 사진을 찍은 뒤 사과를 깎지도 않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헛웃음이 날 정도로 달고 맛있었습니다. 반품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쩌면 우리도 이 지구에 오배송된 못난이 사과들일지도 모르니까요. 어이가 없게도 달고 아름다운 채로, 스스로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로 말이에요. 여기에 있어 주시고 이야기할 곳이 되어주셔서 고마워요.

사진의 위쪽에는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 색을 지닌 꽃 네 송이가 담겨 있고 사진의 아래쪽에는 사과 세 개가 놓여 있다. 사과에는 크고 작은 자국과 상처가 있다.


2024. 5. 25. 00:15

메이: 예상치 못한 큰 일이 찾아왔을 때, 후회와 자책으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 때문인지, 못난이 사과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정해놓은 나름의 규칙이 없었다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요. 부디 잘 해결되었기를 바랍니다.
  어느새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는 날이에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번 계획했던 대로 된 것은 없고, 전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흘러갔어요.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 안에서 또 다른 혹은 더 나은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다행히 오늘은 미리 생각해둔 음식을 약속대로 잘 먹고 들어왔습니다. 차가운 우동 위에 올라가 있는 오징어튀김이 굉장히 별미였어요. 마지막으로 후토마키를 입안 가득 넣고 씹으며 꽉 찬 식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최근 밥 먹는 일은 저에게 있어 굉장히 외로운 일이었는데 모보님 덕분에 조금은 덜 외로울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모보님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옅은 초록빛의 깊은 그릇 안에 네모난 우동 면과 오징어튀김이 담겨 있다. 우동의 오른쪽에는 후토마키가 담긴 그릇이, 우동의 위쪽에는 단무지 그릇이 있다.





각자의 식탁을 가지고 만나는 일
윤미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때의 일은 잘 해결되었는지, 모보님에게 궁금한 것이 참 많다. 처음 음식 채팅을 제안받았을 때도, 대화를 이어갈 때도, 잘 모르는 누군가와 음식 사진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이렇게나마 못다 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월 채팅 당시 나는 연희문학창작촌에 머물고 있었다. 이후로도 그곳에서 무얼 먹을까 고민할 때마다 모보님을 떠올리곤 했다. 이걸 그때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음식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싶다,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무얼 먹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보낼 사람도 없었지만 괜히 음식 사진을 몇 장 더 찍기도 했다.
  모보님과 음식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먹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맛집 검색을 더욱 열심히 했고, 며칠씩 벼르던 음식을 맛보았을 때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이번 연희에서의 생활은 빵 투어를 목표로 하자면서 열심히 베이커리 맛집을 찾아다녔다.
  몇 해 전, 글만 써서 먹고살겠다며 주말에 하던 경제활동을 호기롭게 그만둔 이후로 나는 말이 좋아 전업 작가이지 반백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운이 좋아 공모전이라도 되면 몇 개월 정도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마저도 일회적이기 때문에 금방 다시 불안이 찾아온다. 매 순간 글이 마구 흘러나오는 것도 아닌데, 글을 쓰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빵집에 갈 때 미리 어느 정도의 가격을 파악한 후 들어간다. 들어가서 너무 높은 가격 때문에 우물쭈물하고 서 있지 않기 위해서이다. 식당에 가서 음식 가격을 보고 머뭇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과일과 채소들을 만지작거리다 돌아온 적이 꽤 있다. 이것은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선배 작가의 말을 믿고 싶지만, 한 줄도 쓰지 못한 날에는 모든 게 내 탓이지 싶어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보님과의 대화는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해당 주제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전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밥을 챙겨 먹는 일이 나를 사랑해주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스스로를 아껴주고 싶어졌다.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모보님의 식탁과 음식 이야기 덕분이다. 언젠가 나도 나를 위한 혹은 주변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실 수 있는 식탁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제 연희를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무언가 써내기 위해 애쓰던 시간을 뒤로 하고 요즘은 8월에 있을 공연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 주로 혼자 밥을 먹었던 그때와는 달리, 연습을 마친 후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많아졌다. 서로 앞다투어 맛집을 찾고, 푸짐하고 다양한 음식들 앞에서 서로 ‘이거 먹어봐 저거 먹어봐’ 하며 챙기기 바쁜 나날이다. 모보님에게 음식 사진을 보내던 때가 아주 오래전 일인 것만 같다.
  얼마 전 브로콜리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다. 풍성한 초록색이 정말 예뻤다. 직접 밭에서 기른 거라고 했다. 기쁨도 잠시, 어떻게 손질해야 하지? 근심이 생겼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다. 우선 식초를 넣은 물에 담가 씻어보기로 했다. 애벌레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행히 애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먹기 좋게 잘라야 했다. 조심스럽게 칼질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 자르고 나니 양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끓는 물에 데칠 때는 소금을 조금 넣기도 했다. 건져낸 브로콜리를 식힌 후 소분해서 반찬통에 넣어두었다. 며칠 동안 출출할 때마다 꺼내먹을 간식이 생겼다.
  오늘은 마감을 앞두고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았다.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다. 다 끝내고 먹을까 하다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밖에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조금만 먹어야지 하다가 결국 한 통 다 먹고 끝나버린,
  먹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 만드는 일을 조금씩 시작해보려고 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과 함께 각자의 식탁을 가지고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




오월과 함께한 오월에: 우리를 이루는 맛들
이혜미


같이 밥 먹자, 라는 말을 이렇게 바꿔 말해 본다.
당신과 비슷한 구성 성분을 가지고 싶어요.

다르게 말해볼 수도 있다.
맛없는 음식의 리스크를 같이 지는 사람이 필요해요.
홀로 업장에 들어가 2인분의 식사를 주문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이렇게도 말해 볼까?
잠시 같은 표정을 지녀보고 싶어.
같은 도수를 가진 액체로 위장을 더럽히고 싶어.
입술과 혀에 닿는 온도를 공유하며 근사한 촉감을 나눠 가지고 싶어.

어떻게 말하든, 밥을 함께 먹자는 것은 육체를 가진 생물의 가장 원형적 행위를 공유하자는 제안이고, 나의 욕구를 드러내며 방심해도 좋을 만큼의 신뢰를 상대방에게 열어두었다는 전언이자, 관능과 허기 사이에서 기꺼이 흔들려보자는 유혹이다. 그렇다면 그날의 끼니를 사진으로 나누는 일은?
  엄격한 채식주의자나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무엇을 먹는지의 문제는 생각보다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음식을 먹는 행위’가 생존을 위한 행위를 넘어서서 그 자체로 하나의 미학적 활동이 된다는 말처럼(『타유방의 요리서』, 76쪽), 어떻게 끼니를 해결했는가는 단순히 음식의 종류를 뜻하는 것을 넘어 어떤 신념, 그날의 마음 사정, 인간관계, 스케줄, 체중에 대한 불안이나 섭식 강박, 특정 재료에 대한 호불호와 같은 다양한 맥락과 얽혀 있다.
  ‘음식 채팅’에서 내가 설정한 별명 ‘모보’는 ‘모알보알’의 약자였다. 거북이 알이라는 뜻의 작은 섬.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자주 가는, 사랑하는 섬의 이름을 달고 ‘메이’님께 그날의 메뉴 사진을 전송했다.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서신을 띄우듯. 사진을 보낼 때마다 왠지 존재를 들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를. 정확히는 보여주고 싶은 들킴이랄까? 활짝 펼쳐둔 일기장 같은 마음으로. 모르는 이에게 보내는 매일의 자기소개 같았다.
  한때 음식 앞에서 나는 죄인이자 폭군이었다. 무엇을 삼켜 칼로리의 외계를 내 안으로 들이는 일은 너무나도 무섭고 지나치게 매혹적이었기에. 거식과 폭식을 오가던 섭식장애의 터널을 지나 이제야 두려움과 죄책감과 배덕감을 털고 음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따듯한 한 그릇의 요리를 바라보며 환해지는 얼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요리가 좋아져서 대회에도 나가고 요리에 관한 책도 냈지만, 먹은 것을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일은 낯설고 또 두려운 일이었다. 하루하루 메이님이 보내온 사진들을 기쁘게 받아보며, 그날의 끼니를 접시 위에 올렸을 손길과 마음을 상상하면서, 맛있는 점심을 드셨군요, 혼자 되뇌어보면서. 소금빵과 샐러드, 때로는 국밥이나 쌈밥으로 이루어진 메이님의 끼니에 작은 지분을 가지게 되어 뿌듯했다. 채팅 기간에 나는 자주 메이님이 보내온 답장을 휴대폰 화면에 띄워두고 가만히 더듬어보곤 했다. 먹어도 비난받지 않고 욕망을 드러내도 비웃음당하지 않는 경험은 귀하고 소중했다. 사진을 보내기 위해 접시의 테두리를 닦고 메시지의 내용을 생각하며 천천히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오랜 거식의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오늘 뭐 먹었어? 라는 말을 이렇게 이해한다.

당신을 이루는 시간과 온도를 알고 싶어요.
당신의 욕망을 짐작하고 싶어요.
당신이 슬픔 속에서도 부디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윤미희, 이혜미

꾸준히 희곡을 쓰면서 잘 모르겠는 것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보고 있다. 『보존과학자』(걷는사람, 2023), 『윤미희 희곡집: 이팡곰 물생미』(연극과인간, 2022) 등을 쓰고 발표했다. (윤미희)

만드는 사람. 시도 짓고 밥도 짓고 작은 화단에서 농사도 짓는다. 시집으로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빛의 자격을 얻어』 『흉터 쿠키』, 산문집으로 『식탁 위의 고백들』이 있다. (이혜미)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졌어요. 어쩌면 처음부터 쓰고 있지 않았던 가면, 이제 그마저도 없으니 더욱 솔직해지려고 합니다. 모르는 것들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윤미희)

당신을 삼켜 세상 모든 빛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이혜미)

2024/10/02
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