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놀아, 방문이 닫힙니다 계단을 내려갑니다 왼쪽 주머니엔 어제 쓰고 남은 동전이 오른쪽 주머니엔 오늘 받은 빳빳한 지폐가 있습니다 덜컥 상점에 진열된 모자를 살 수도 우연히 만난 친구들에게 군것질거리를 사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친구가 물어요 너네 집 부자야?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땅히 가야 할 곳이 없어 망설여질 때는 눈앞에 보이는 차도와 창가의 화분, 틈새로 들이치는 빛을 내가 가야 할 장소라고 믿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렵다면 해가 질 때까지만이라도요
  벤치에 앉아 고개를 듭니다 줄지어 선 나무에게 돈을 준다면 기뻐할까요? 지지배배 소리 내며 날아가는 새에게 동전을 준다면 둥지로 가져갈까요? 불룩한 주머니 속 동전을 만져봅니다 찰랑찰랑 차가워요 나는 나무가 아니고 새가 아니고…… 손에 쥔 것들이 기뻐야 하는데 젖은 흙에 떨어진 잎과 한때는 날개였던 흰 깃털을 주워봅니다

정다연

2015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와 산문집 『마지막 산책이라니』가 있다.

2024/09/18
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