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고양이를 사랑한 사람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퍼진 추모의 물결 덕에 그의 삶은 감동적인 사연이 되어 고양이 애호가들을 넘어 보다 많은 이들에게까지 도달했다. 버려지거나 다친 고양이를 구조하여 돌보고 어미 잃은 새끼들을 거두는 삶을 살아오던 그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후 보호자로서 보인 집념은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건너 건너 지인까지 총동원하여 자신이 돌보던 고양이들을 한 마리도 빼먹지 않고 분양하거나 임시 보호를 맡아줄 이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 사이에서 지내온 육십대 초반의 남성이 단 한 마리에게도 배웅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쓸쓸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는 약간의 각색으로, 치료를 포기하고 자택에서 지내다 사망한 그의 곁에는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기꺼이 방문한 고양이 애호가 몇 명과 이동장에 실린 채 따라온, 그들의 반려묘 혹은 임시 보호중이거나 남몰래 파양된 고양이 예닐곱 마리도 함께하고 있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애호가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숨을 거두었다. 한발 늦게 돌아온 그들이 문을 열었을 때, 고양이들은 그가 생전 돌보았건 돌보지 않았건 멀찌감치 떨어진 채 털을 곤두세운 모습이었고 운동성을 소진한 그의 몸에서는 고약하며 외로운 변냄새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연을 용납하지 않는 법이다. 집과 마당 주변에서, 또 동네 길목과 뒷산 등에서 고양이들을 돌보았던 그의 행적을 비난하는 무리가 나타났다. 이들은 새의 목숨과 고양이의 목숨을 저울질하면서 그의 삶을 책임감으로 치장해서는 안 된다며 난동을 부렸는데 정작 조류 애호가들은 무관심할 뿐이었다. 동맹을 구하지 못한 그들은 곧 앵무새 유튜버와 야생조류 전문가 인스타그램 등을 찾아가 공격을 퍼부었으나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이 시대에 심술궂은 이들의 진부한 테러는 거의 모든 사안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이었다.
열기가 제풀에 꺾이며 그가 인터넷의 자양분으로 조용히 흡수되려던 즈음, 뒤늦게 그를 파헤쳐 꺼낸 집단은 애견인들이었다. 그들은 유보적인 태도로 그의 현재를 대하고 있었으나 과거를 언급할 때만큼은 매우 단정적인 어조로 그가 개를 키웠었다는 사실과 어떤 부주의로 그 개를 죽음에 이르도록 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상습적이었는지를 밝혀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다양하게 남아 있었다.
유튜브에 ‘창동 요크셔테리어 교통사고’를 검색하면 이십여 년 전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뉴스 영상과 흐릿한 화질의 CCTV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목줄을 하지 않은 채 산책하던 그의 개가 일순 횡단보도로 뛰어들어 트럭에 치이는 과정이 거기에 담겨 있다. 요크셔테리어는 즉사했다.
그는 새로 코카스파니엘을 분양받았다. 그 개는 닭다리를 먹다 뼛조각이 목에 걸려 병원으로 향하던 중에 숨을 거두었다.
이후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한 그는 <TV 동물농장>에 출연했다. 굵직한 몸을 가진 반려견 훈련사가 애견의 문제 행동을 해결하는 코너에서였다. 그의 방 탁상에는 요크셔테리어와 코카스파니엘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세워져 있었는데 수치심도 없이 각각의 개와 작별했던 경험을 떠드는 남성의 모습은 그 당시에도 시청자 게시판에 부정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 심지어 시베리안 허스키의 비싼 족보를 내심 자랑하는 그의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기고 편집을 거쳐 송출되었다. 그 시기에 ‘비싸게 산 순종’이 비난받을 이유는, 키울 줄 모르는 주제에 부적절한 사치를 저질렀다는 점에 있었다.
그는 허스키가 산책을 거부하는 아주 특이한 개라고 했고 목줄까지 풀어줘도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터벅 걷다가 주저앉는다고 덧붙였다. 굵직한 몸의 훈련사는 허스키란 추운 지방에 적응하기 위해 이중모를 갖고 태어난 종인데 한국에서의 산책은 28도가 넘는 날씨에 잠바를 입고 지내는 꼴이니 힘든 게 당연하다며 부드럽게 그를 나무랐다. 집에서만 살던 허스키는 과체중이었고 관절에도 문제를 보였다. 훈련사는 허스키를 능숙히 다루며 그에게 앞으로의 규칙을 설명했다. 배운 대로 훈련 동작을 따라 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당 회차의 코너는 끝났다. 정선희와 신동엽이 박수를 치면서……
이 영상은 누군가에 의해 저화질로 인코딩되어 유튜브에 올라온 상태였는데, 검색에 쉽게 걸리지도 않는 오래된 게시물임에도 드문드문 날 선 댓글이 새로 덧붙여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제 죽어 사라졌을 그 허스키의 명복을 빌어주기도 했다.
폭로 이후로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과연 그는 배운 대로 훈련을 시도하긴 했을까? 허스키는 얼마나 살고 또 어떤 마지막에 다다랐을까? 어째서 책임지지도 못하는 주제에 개를 계속 키웠을까?
고양이 애호가들은 발굴된 과거에 침묵을 고수했다. 그들은 그의 집을 방문하거나 여러 활동을 함께했을 뿐 다큐멘터리를 찍은 게 아니었다. 과거의 일들을 나눈 적도 기록한 적도 없었다. 그들은 애견인들이 끌고 온 먼지투성이 과거를 모르지 않았다. 소문이 금방 도는 바닥이었으니 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만난 그는 알려진 바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만큼 고양이에게 삶을 바친 사람은 몇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멈추지 않는 입장 요구와 비난에 백기를 흔들듯 추모의 글을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전환했다.
유튜브 채널 ‘반가워 풍풍이네’는 ‘풍풍이’라는 고양이가 하네스를 착용한 채 ‘풍대(풍풍대디)’와 산책하는 모습으로 유명했는데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채널이었다. 영상 조회수의 최고 기록은 15만이었다. 무사히 성공 공식을 밟는 듯 보였던 이 채널은, 곧 기획을 통해 우후죽순 등장한 동물 유튜브 채널 중 하나가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반가워 풍풍이네’의 첫 영상은 도랑에 빠져 탈진한 어린 고양이 풍풍을 건져내어 ‘간택’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집으로 데려오는 과정이었고, 그건 여러 동물 채널에서 발견되는 틀에 박힌 전형이었다. 사람들은 집요했다. 풍대는 풍풍이의 사진을 이용해 만든 그립톡이나 핸드폰 케이스, 방석 따위의 판매를 개시하기도 전에 자작극을 인정했다. 풍대는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했고 역시나 섬네일은 검은색이었다. 풍풍이와의 만남에서 과도하고 이기적인 연출이 있었음을 시인하면서도 지금 풍풍이를 향한 마음만은 진심임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것이 채널의 마지막이었다면 못 말리는 일에 그쳤겠지만, 사 개월 뒤 느닷없이 채널 커뮤니티에 게시글이 올라왔다. 풍풍이가 산책 중 하네스에서 빠져나간 뒤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었다. 글에는 풍대가 만든 전단지가 첨부돼 있었다. 전단지 속 풍풍이는 윤기가 흐르는 털에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그는 사례금까지 제시하며 제보를 부탁드린다며 호소했고 고양이 탐정과도 연락을 시도하는 중임을 밝혔지만 이후 어떤 소식도 올라오지 않았다.
풍대와 그의 만남은 그로부터 일 년쯤 지난 후였다. 풍대는 풍풍이를 찾는 걸 포기한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일 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혹은 급한 마음에 많은 걸 쏟아붓다 소진돼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즈음 풍대는 고양이 보호소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풍풍이를 찾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내 자발적인 봉사가 되었다. 풍대는 봉사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가 때때로 나이 많은 봉사자 혹은 관계자 앞에서만 맨얼굴을 드러내며 숨을 돌렸다. 종종 얼굴을 내비치니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날이 늘었다. 낯선 이들과 모여 고양이를 돌보고 시설을 정비하거나 지원 물품을 옮기던 어느 날,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고양이 애호가 사이에서 유명한 듯했고 과연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호더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고양이들은 적당히 관리가 된 모습이었는데 봉사자들에겐 꽤 살가웠던 반면, 그와는 멀찌감치 떨어진 채 행동했다. 다소 기묘한 관계라 생각하면서 계속 흘끔거렸던 풍대는 그가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풀썩 주저앉는 걸 보았다. 주변에 머물러 있던 고양이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곁에 남은 이는 오직 풍대뿐이었다. 뒤로 넘어가는 뒤통수를 손으로 받치며 다급히 소리치려는 풍대를 그가 겨우 제지하는 바람에 다른 이들은 그날의 일을 몰랐다. 그는 바로 기운을 차리지 못했고 숨까지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주변에 아무것도 알리지 않기를 간청했다. 풍대는 옆에 앉아 그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고양이도 좋지만, 선생님 건강도 챙기셔야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돌본다던, 노년에 가까운 남성의 얼굴에 자포자기의 어둠이 자욱했다.
풍대가 따로 그의 집을 찾아간 것은 며칠 뒤였다. 약속대로 그날의 일을 함구했으나 정말로 모른 체 하기엔 마음이 걸렸다. 그를 병원에 데려가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떠오를 게 분명했다. 그건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저주가 될 것이었다. 정작 마주한 그는 손을 저으며 돌아가라고 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입씨름을 시작했고 점차 감정적으로 달아올랐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그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자, 풍대는 당장 구급차를 부르겠다며 으름장을 놓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이들의 실랑이는 몸을 일으키지 못한 그가 분통을 터뜨리며 자신의 폐가 어떤 식으로 상했고 암세포는 또 어디까지 전이됐는지 털어낸 뒤에야 침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그들은 많은 고양이에 둘러싸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양이 몇 마리가 풍대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치댔다. 그는 하루빨리 이것들의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다. 생의 끝자락에서까지 고양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모습에 풍대가 감탄 섞인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로 고양이를 사랑하시는군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개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지요. 거기에 비하자면 이것들은 정말로 내게 아무 기쁨조차 주지 못합니다.”
그는 온몸에 퍼진 병을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어떤 당혹조차 없이, 부드럽게 풀어진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애견인들의 폭로 이후 ‘반가워 풍풍이네’에 올라온 영상에는 병을 숨기려던 그가 남은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다 결국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여 봉사자와 보호소 관계자, 혹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이름값에 밀려 인지도를 얻지 못한 고양이 전문가 등이 찾아와 함께하는 과정이 십 분 동안 진행된다. 남은 사 분가량에는 고양이들의 처분 절차를 마친 다음 날부터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은 그가 등장한다. 그의 병세가 알려진 이후로 애호가들은 출퇴근하듯 돌아가면서 그를 보살폈는데 풍대는 자원하여 다른 이들보다 많은 나날 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른 채로.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영상에는 설명 한 자 적혀 있지 않고 자막도 그의 말에만 달려 있었다. 거기에는 시한부의 남성이 남은 시간의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진즉부터 ‘반가워 풍풍이네’를 알던 이들은 풍대가 그의 목숨을 팔아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보았다. 생사조차 알 수 없어진 풍풍이가 계속 언급되었고 어쩌면 그 고양이는 그런 식으로 영원히 남을 것만 같았다.
하필 그래야만 했을까? 그건 풍대 스스로도 몰랐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열몇 시간 분량의 영상이 쌓인 뒤였다. 간단히 지우고 싶지 않았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돌았었던 그의 소문은 한참 전에 쉬쉬하다 끝난 일이었기에 이때의 풍대에게 닿은 적 없었다. 대신 가래 끓는 목소리로 전하는 그의 두루뭉술한 회고를 직접 들을 순 있었다. 그럼 풍대는 풍풍이를 떠올리곤 했다. 쏙, 하고 하네스에서 빠져나간 고양이가 저편으로 달려가는데 뒤따르거나 소리를 질렀다가 상황이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꼿꼿이 서서 아무렇지 않은 척 이름을 불렀던 그날의 마음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남아 있었다. 물론 자신이 재기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유튜브일 수도 있었고 소규모의 단편영화일 수도 있었는데 후자로 성공을 도모하기에는 담긴 영상이나 음향이 너무 조악하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아쉬웠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라도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을 뿐이었다. 이를테면 어느 날에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순간이 그랬다.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어. 며칠 설사가 계속 나와서 병원에 갔더니 그렇게 된 거야. 믿을 수가 있겠어요? 하라는 검사를 겨우 마쳤더니 의사가 하는 소리가…… 이렇게 끝나는 인생이었구나……
그래도 있잖아요? 너무 날이 좋을 때, 바람도 시원하고 볕도 구름도 좋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을 때에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 내가 지금 벌을 받는 거구나. 그러니까 걔들, 걔들이 나한테 벌을 내린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풍대의 영상을 끝으로 추가적인 입장이나 반박 따위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했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다들 수도 없이 터지는 온갖 사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결과였다. 물론 어떤 이들은 ‘창동 요크셔테리어 교통사고’나 그와 시베리안 허스키의 모습이 담긴 <TV 동물농장> 영상에서, 혹은 ‘반가워 풍풍이네’ 또는 용케도 글을 내리지 않은 몇몇 고양이 애호가의 블로그 따위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 흔적을 남기곤 떠났다.
그의 이름으로 된 영상은 일 년쯤 지나 친인척의 요청으로 내려갔다. ‘반가워 풍풍이네’는 이후 방치되어 폐허가 된 채널로 남았다.
그러고도 몇 개월쯤 지나 풍대와 함께 봉사를 진행하던 애호가가 그에게 조심스레 연락하여 안부를 물었다. 의외로 풍대의 대답은 명쾌했는데, 시간이 지났음에도 봉사를 나가지 않은 까닭은 보호소에서 입양한 개가 고양이 냄새를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약간의 각색으로, 치료를 포기하고 자택에서 지내다 사망한 그의 곁에는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기꺼이 방문한 고양이 애호가 몇 명과 이동장에 실린 채 따라온, 그들의 반려묘 혹은 임시 보호중이거나 남몰래 파양된 고양이 예닐곱 마리도 함께하고 있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애호가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숨을 거두었다. 한발 늦게 돌아온 그들이 문을 열었을 때, 고양이들은 그가 생전 돌보았건 돌보지 않았건 멀찌감치 떨어진 채 털을 곤두세운 모습이었고 운동성을 소진한 그의 몸에서는 고약하며 외로운 변냄새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연을 용납하지 않는 법이다. 집과 마당 주변에서, 또 동네 길목과 뒷산 등에서 고양이들을 돌보았던 그의 행적을 비난하는 무리가 나타났다. 이들은 새의 목숨과 고양이의 목숨을 저울질하면서 그의 삶을 책임감으로 치장해서는 안 된다며 난동을 부렸는데 정작 조류 애호가들은 무관심할 뿐이었다. 동맹을 구하지 못한 그들은 곧 앵무새 유튜버와 야생조류 전문가 인스타그램 등을 찾아가 공격을 퍼부었으나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이 시대에 심술궂은 이들의 진부한 테러는 거의 모든 사안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이었다.
열기가 제풀에 꺾이며 그가 인터넷의 자양분으로 조용히 흡수되려던 즈음, 뒤늦게 그를 파헤쳐 꺼낸 집단은 애견인들이었다. 그들은 유보적인 태도로 그의 현재를 대하고 있었으나 과거를 언급할 때만큼은 매우 단정적인 어조로 그가 개를 키웠었다는 사실과 어떤 부주의로 그 개를 죽음에 이르도록 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상습적이었는지를 밝혀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다양하게 남아 있었다.
유튜브에 ‘창동 요크셔테리어 교통사고’를 검색하면 이십여 년 전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뉴스 영상과 흐릿한 화질의 CCTV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목줄을 하지 않은 채 산책하던 그의 개가 일순 횡단보도로 뛰어들어 트럭에 치이는 과정이 거기에 담겨 있다. 요크셔테리어는 즉사했다.
그는 새로 코카스파니엘을 분양받았다. 그 개는 닭다리를 먹다 뼛조각이 목에 걸려 병원으로 향하던 중에 숨을 거두었다.
이후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한 그는 <TV 동물농장>에 출연했다. 굵직한 몸을 가진 반려견 훈련사가 애견의 문제 행동을 해결하는 코너에서였다. 그의 방 탁상에는 요크셔테리어와 코카스파니엘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세워져 있었는데 수치심도 없이 각각의 개와 작별했던 경험을 떠드는 남성의 모습은 그 당시에도 시청자 게시판에 부정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 심지어 시베리안 허스키의 비싼 족보를 내심 자랑하는 그의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기고 편집을 거쳐 송출되었다. 그 시기에 ‘비싸게 산 순종’이 비난받을 이유는, 키울 줄 모르는 주제에 부적절한 사치를 저질렀다는 점에 있었다.
그는 허스키가 산책을 거부하는 아주 특이한 개라고 했고 목줄까지 풀어줘도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터벅 걷다가 주저앉는다고 덧붙였다. 굵직한 몸의 훈련사는 허스키란 추운 지방에 적응하기 위해 이중모를 갖고 태어난 종인데 한국에서의 산책은 28도가 넘는 날씨에 잠바를 입고 지내는 꼴이니 힘든 게 당연하다며 부드럽게 그를 나무랐다. 집에서만 살던 허스키는 과체중이었고 관절에도 문제를 보였다. 훈련사는 허스키를 능숙히 다루며 그에게 앞으로의 규칙을 설명했다. 배운 대로 훈련 동작을 따라 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당 회차의 코너는 끝났다. 정선희와 신동엽이 박수를 치면서……
이 영상은 누군가에 의해 저화질로 인코딩되어 유튜브에 올라온 상태였는데, 검색에 쉽게 걸리지도 않는 오래된 게시물임에도 드문드문 날 선 댓글이 새로 덧붙여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제 죽어 사라졌을 그 허스키의 명복을 빌어주기도 했다.
폭로 이후로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과연 그는 배운 대로 훈련을 시도하긴 했을까? 허스키는 얼마나 살고 또 어떤 마지막에 다다랐을까? 어째서 책임지지도 못하는 주제에 개를 계속 키웠을까?
고양이 애호가들은 발굴된 과거에 침묵을 고수했다. 그들은 그의 집을 방문하거나 여러 활동을 함께했을 뿐 다큐멘터리를 찍은 게 아니었다. 과거의 일들을 나눈 적도 기록한 적도 없었다. 그들은 애견인들이 끌고 온 먼지투성이 과거를 모르지 않았다. 소문이 금방 도는 바닥이었으니 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만난 그는 알려진 바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만큼 고양이에게 삶을 바친 사람은 몇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멈추지 않는 입장 요구와 비난에 백기를 흔들듯 추모의 글을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전환했다.
유튜브 채널 ‘반가워 풍풍이네’는 ‘풍풍이’라는 고양이가 하네스를 착용한 채 ‘풍대(풍풍대디)’와 산책하는 모습으로 유명했는데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채널이었다. 영상 조회수의 최고 기록은 15만이었다. 무사히 성공 공식을 밟는 듯 보였던 이 채널은, 곧 기획을 통해 우후죽순 등장한 동물 유튜브 채널 중 하나가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반가워 풍풍이네’의 첫 영상은 도랑에 빠져 탈진한 어린 고양이 풍풍을 건져내어 ‘간택’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집으로 데려오는 과정이었고, 그건 여러 동물 채널에서 발견되는 틀에 박힌 전형이었다. 사람들은 집요했다. 풍대는 풍풍이의 사진을 이용해 만든 그립톡이나 핸드폰 케이스, 방석 따위의 판매를 개시하기도 전에 자작극을 인정했다. 풍대는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했고 역시나 섬네일은 검은색이었다. 풍풍이와의 만남에서 과도하고 이기적인 연출이 있었음을 시인하면서도 지금 풍풍이를 향한 마음만은 진심임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것이 채널의 마지막이었다면 못 말리는 일에 그쳤겠지만, 사 개월 뒤 느닷없이 채널 커뮤니티에 게시글이 올라왔다. 풍풍이가 산책 중 하네스에서 빠져나간 뒤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었다. 글에는 풍대가 만든 전단지가 첨부돼 있었다. 전단지 속 풍풍이는 윤기가 흐르는 털에 둘러싸인 모습이었다. 그는 사례금까지 제시하며 제보를 부탁드린다며 호소했고 고양이 탐정과도 연락을 시도하는 중임을 밝혔지만 이후 어떤 소식도 올라오지 않았다.
풍대와 그의 만남은 그로부터 일 년쯤 지난 후였다. 풍대는 풍풍이를 찾는 걸 포기한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일 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혹은 급한 마음에 많은 걸 쏟아붓다 소진돼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즈음 풍대는 고양이 보호소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풍풍이를 찾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내 자발적인 봉사가 되었다. 풍대는 봉사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가 때때로 나이 많은 봉사자 혹은 관계자 앞에서만 맨얼굴을 드러내며 숨을 돌렸다. 종종 얼굴을 내비치니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날이 늘었다. 낯선 이들과 모여 고양이를 돌보고 시설을 정비하거나 지원 물품을 옮기던 어느 날,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고양이 애호가 사이에서 유명한 듯했고 과연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호더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고양이들은 적당히 관리가 된 모습이었는데 봉사자들에겐 꽤 살가웠던 반면, 그와는 멀찌감치 떨어진 채 행동했다. 다소 기묘한 관계라 생각하면서 계속 흘끔거렸던 풍대는 그가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풀썩 주저앉는 걸 보았다. 주변에 머물러 있던 고양이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곁에 남은 이는 오직 풍대뿐이었다. 뒤로 넘어가는 뒤통수를 손으로 받치며 다급히 소리치려는 풍대를 그가 겨우 제지하는 바람에 다른 이들은 그날의 일을 몰랐다. 그는 바로 기운을 차리지 못했고 숨까지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주변에 아무것도 알리지 않기를 간청했다. 풍대는 옆에 앉아 그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고양이도 좋지만, 선생님 건강도 챙기셔야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돌본다던, 노년에 가까운 남성의 얼굴에 자포자기의 어둠이 자욱했다.
풍대가 따로 그의 집을 찾아간 것은 며칠 뒤였다. 약속대로 그날의 일을 함구했으나 정말로 모른 체 하기엔 마음이 걸렸다. 그를 병원에 데려가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떠오를 게 분명했다. 그건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저주가 될 것이었다. 정작 마주한 그는 손을 저으며 돌아가라고 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입씨름을 시작했고 점차 감정적으로 달아올랐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그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자, 풍대는 당장 구급차를 부르겠다며 으름장을 놓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이들의 실랑이는 몸을 일으키지 못한 그가 분통을 터뜨리며 자신의 폐가 어떤 식으로 상했고 암세포는 또 어디까지 전이됐는지 털어낸 뒤에야 침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그들은 많은 고양이에 둘러싸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양이 몇 마리가 풍대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치댔다. 그는 하루빨리 이것들의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다. 생의 끝자락에서까지 고양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모습에 풍대가 감탄 섞인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로 고양이를 사랑하시는군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개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지요. 거기에 비하자면 이것들은 정말로 내게 아무 기쁨조차 주지 못합니다.”
그는 온몸에 퍼진 병을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어떤 당혹조차 없이, 부드럽게 풀어진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애견인들의 폭로 이후 ‘반가워 풍풍이네’에 올라온 영상에는 병을 숨기려던 그가 남은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다 결국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여 봉사자와 보호소 관계자, 혹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이름값에 밀려 인지도를 얻지 못한 고양이 전문가 등이 찾아와 함께하는 과정이 십 분 동안 진행된다. 남은 사 분가량에는 고양이들의 처분 절차를 마친 다음 날부터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은 그가 등장한다. 그의 병세가 알려진 이후로 애호가들은 출퇴근하듯 돌아가면서 그를 보살폈는데 풍대는 자원하여 다른 이들보다 많은 나날 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른 채로.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영상에는 설명 한 자 적혀 있지 않고 자막도 그의 말에만 달려 있었다. 거기에는 시한부의 남성이 남은 시간의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진즉부터 ‘반가워 풍풍이네’를 알던 이들은 풍대가 그의 목숨을 팔아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보았다. 생사조차 알 수 없어진 풍풍이가 계속 언급되었고 어쩌면 그 고양이는 그런 식으로 영원히 남을 것만 같았다.
하필 그래야만 했을까? 그건 풍대 스스로도 몰랐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열몇 시간 분량의 영상이 쌓인 뒤였다. 간단히 지우고 싶지 않았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돌았었던 그의 소문은 한참 전에 쉬쉬하다 끝난 일이었기에 이때의 풍대에게 닿은 적 없었다. 대신 가래 끓는 목소리로 전하는 그의 두루뭉술한 회고를 직접 들을 순 있었다. 그럼 풍대는 풍풍이를 떠올리곤 했다. 쏙, 하고 하네스에서 빠져나간 고양이가 저편으로 달려가는데 뒤따르거나 소리를 질렀다가 상황이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꼿꼿이 서서 아무렇지 않은 척 이름을 불렀던 그날의 마음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남아 있었다. 물론 자신이 재기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유튜브일 수도 있었고 소규모의 단편영화일 수도 있었는데 후자로 성공을 도모하기에는 담긴 영상이나 음향이 너무 조악하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아쉬웠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라도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을 뿐이었다. 이를테면 어느 날에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순간이 그랬다.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어. 며칠 설사가 계속 나와서 병원에 갔더니 그렇게 된 거야. 믿을 수가 있겠어요? 하라는 검사를 겨우 마쳤더니 의사가 하는 소리가…… 이렇게 끝나는 인생이었구나……
그래도 있잖아요? 너무 날이 좋을 때, 바람도 시원하고 볕도 구름도 좋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을 때에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 내가 지금 벌을 받는 거구나. 그러니까 걔들, 걔들이 나한테 벌을 내린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풍대의 영상을 끝으로 추가적인 입장이나 반박 따위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했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다들 수도 없이 터지는 온갖 사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결과였다. 물론 어떤 이들은 ‘창동 요크셔테리어 교통사고’나 그와 시베리안 허스키의 모습이 담긴 <TV 동물농장> 영상에서, 혹은 ‘반가워 풍풍이네’ 또는 용케도 글을 내리지 않은 몇몇 고양이 애호가의 블로그 따위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 흔적을 남기곤 떠났다.
그의 이름으로 된 영상은 일 년쯤 지나 친인척의 요청으로 내려갔다. ‘반가워 풍풍이네’는 이후 방치되어 폐허가 된 채널로 남았다.
그러고도 몇 개월쯤 지나 풍대와 함께 봉사를 진행하던 애호가가 그에게 조심스레 연락하여 안부를 물었다. 의외로 풍대의 대답은 명쾌했는데, 시간이 지났음에도 봉사를 나가지 않은 까닭은 보호소에서 입양한 개가 고양이 냄새를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박동현
제20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에 단편소설 「죄」로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명백한 죄인의 괴로움과 혼자됨을 생각하고 그가 죄인이 아니었던 시간과 흔적도 생각한다. 그 과거를 거짓처럼 쳐다보는 심정이나 다시금 해보겠다는 시도와 충동과 좌절을. 만약 그것도 없다면, 막말로 멀티버스 따위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느낄 슬픔 따위를 자꾸 생각한다. 스스로도 이상하고 때로는 조금 비겁하다 여기면서……
2024/09/18
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