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주택과 초록길도서관과 어머니 죽음 사이로

  고양이와 오월이 지나갔다

  그사이 장례식장에 와서 조문을 하고 돌아간 친구들 중 몇은 사인본을 보내왔다

  사인본을 펼치면서 생각한다

  착한 고양이가 된다는 건 외로운 일이고 외로운 고양이가 된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그사이 장례를 치르면서 가장 서럽게 울던 첫째 언니는 부활성당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드리고

  김호중 태백지부 팬클럽 회장인 둘째 언니의 딸 조카 수진이는 할매 핸드폰에 있더라며 통화녹음 파일을 보내온다

  그 녹음 파일 속에서 엄마는 묻는다

  “어디 니이껴, 저녁은 자셨니이껴.”

  장미주택과 초록길도서관과 어머니 죽음 사이로

  숨, 숨이 쉬어지지 않는 여름과 사인본이 도착했다

안현미

태백에서 태어났다. 200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 『깊은 일』 『미래의 하양』이 있다. 신동엽문학상과 아름다운작가상을 수상했다.

내가 믿는 시는 시와 집 사이에 창문을 만들고 삶과 죽음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이라고 말해버렸다. 반쪽짜리 진실밖에 안 되는 희박한 주장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여름 꽃나무처럼 환한 당신이 그걸 믿는 척해주길 바란다. 불분명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빛나는 것은 눈물과 사랑뿐이므로.

2024/10/02
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