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구에서 아득하게 머나먼 구아보 은하계의 크나크 행성에 일 로봇 루보가 살았다. 루보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었다. 크나크 행성은 루보 같은 일 로봇이 아주 많았고, 모두 어김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루보는 이제 할 일이 별로 없어졌다.
  할 일이 없어진 루보는 그동안 꿈꾸어왔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우주 탐험을 떠나야겠어!”
  루보는 열심히 일해서 장만한 우주선을 정비하고 깨끗하게 닦았다. 그러고는 자기 몸도 구석구석 깨끗이 닦았다. 우주 백과사전이 저장된 둥그런 머리를 손가락 같은 공구가 달린 두 손으로 부지런히 문질렀다. 또 잘 걷고 구부리고 늘어날 수 있는 두 다리도 기름 수건으로 꼼꼼하게 닦았다. 잠시 후 루보의 온몸에서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기름 목욕을 마치고 기름통과 목욕 수건은 다시 가슴 상자 안에 잘 넣어두었다.
  루보의 가슴에는 일할 때 쓰는 공구를 넣어두는 통이 들어 있다. 통 주위에 달린 램프에서 나오는 광선을 쬐면 공구들은 원래 크기보다 아주아주 작아져서 루보의 가슴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공구가 들어 있는지는 루보도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보관할 수 있다.
  크나크 행성의 우주 공항에서 루보가 탄 우주선은 발사대에 올랐다. 우주선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사대를 출발했고, 잠시 후 크나크 행성의 중력을 뚫고 우주로 나아갔다.
  루보는 우주선 밖을 바라보았다. 루보가 백 년 동안 일한 크나크 행성이 점점 작아졌다.
  “안녕!”
  크나크 행성의 궤도를 벗어난 우주선은 쉬지 않고 날았다. 어느덧 크나크 행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훌륭한 탐험가의 위대함은 결과가 아니라 도전한다는 데 있지.”
  루보가 혼자 내뱉는 말은 대부분 사전에 수록된 것들이다.
  우주선은 구아보의 태양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해 날았다. 구아보 태양은 닿지 않아 어두웠지만 다른 곳에서 오는 별빛은 더욱 빛났다.
  얼마나 날았을까? 우주선 밖으로 커다랗고 검은 구멍이 움직이며 다가왔다.
  “벌써 다른 별에 도착한 건가?”
  우주선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고 경고 메시지가 떴다.
  ‘경고! 우주 폭풍 진입’
  “우주 폭풍이라고?”
  루보는 서둘러 우주 백과사전을 검색했다. 우주 폭풍 속으로 빨려들어가면 우주선이 멈추거나 부서질 수도 있다. 루보는 서둘러 우주 폭풍의 영향권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우주 폭풍이 우주선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몰아쳤다.
  루보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저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어!”
  루보는 우주 폭풍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조종대를 붙잡고 버텼다. 하지만 우주선은 결국 우주 폭풍에 휘말려 맴돌았다. 한참 뒤에 루보는 우주 폭풍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폭풍이 사라지고 루보를 태운 우주선은 평화롭게 우주에 떠 있었다. 그러나 우주 폭풍 때문에 크나크 행성을 중심으로 한 좌표가 사라졌다. 우주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멈췄기 때문에 지금 헤매고 있는 곳이 어느 지점인지 알 수 없었다. 루보는 우주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훌륭한 탐험가에게 길을 잃었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
  우주 폭풍에서 빠져나오고 한참이 지났다. 이번엔 울퉁불퉁한 소행성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소행성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어떤 소행성은 아주아주 컸고 어떤 소행성은 무척 작았다. 루보는 소행성과 충돌하지 않도록 재빨리 움직였다. 멀리서 붉은빛의 강렬한 소행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우주선은 또다시 어디론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소행성 하나가 우주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소행성에 끌려가던 우주선은 이제 빠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우주선에서 불이 나고 있어!”
  우주선은 소행성에 불시착했다. 우주선이 땅에 닿기 전에 루보는 안전 캡슐을 타고 우주선에서 빠져나왔다. 땅에 추락한 우주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지만, 안전 캡슐을 타고 내린 루보는 멀쩡하게 땅에 발을 디뎠다.
  안전 캡슐 밖으로 나와 땅에 발을 디딘 루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흙과 바람뿐이었다. 이 소행성은 사막같이 건조한 땅이었다. 생명의 움직임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숨을 쉬며 사는 생명체, 움직이며 사는 생물체가 전혀 살 것 같지 않은 땅이었다.
  루보는 탐험가처럼 바위에 올라가 건조한 땅에 소리쳤다.
  “루보가 첫발을 디딘 이 행성의 이름은 ‘모야’이다.”
  탐험가가 새로운 땅을 발견했을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 아무것도 살지 않는 소행성은 이제 이름을 가진 소행성 모야가 된 것이다.


2.

루보는 추락한 우주선 옆에 놓인 바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간차를 두고 떠오르는 두 개의 태양만 바라보았다. 해가 뜨는 걸 지켜보던 루보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루보는 바위에서 일어나 태양이 뜨는 방향으로 걸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루보는 한참 동안 다른 생물체를 찾아다니다 반대 방향으로 걸어 다시 우주선 근처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루보는 바위에서 벌떡 일어나 흙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 할 일이 무척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
  루보는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루보는 가슴에 달린 상자의 문을 열어 적당한 공구를 찾았다. 루보는 제일 먼저 삽을 꺼냈다. 루보 가슴에 달린 공구 상자 속에서는 아주 작았던 삽이 밖으로 나와 광선을 쬐면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루보는 삽으로 흙을 퍼서 담았다. 흙을 여러 번 다져서 단단한 벽돌을 만들었다. 다진 벽돌로 크고 튼튼한 화덕부터 만들었다. 그러고는 가슴 상자에서 쇠망치를 꺼냈다. 루보가 손가락 두 개를 맞대고 튕기자 불꽃이 일었다. 화덕에 불을 지핀 루보는 손가락 집게와 쇠망치로 벽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또 루보는 땅속 흙을 고르고 골라 특이한 돌을 찾아냈다. 뜨거운 화덕에 돌을 녹여 강철을 만들었다. 부지런한 루보는 쉬지 않고 단단한 돌을 굽고 녹여 철을 만들었다. 일 로봇으로 살아온 루보는 곧 모야의 강철이 특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곳 모야의 강철은 크나크의 강철보다 훨씬 가볍고 강했다. 벽돌도 크나크의 벽돌보다 유연하면서도 단단했다. 밝고 가벼운 유리가 많은 모양의 흙으로 빚은 벽돌에선 반짝반짝 빛도 났다.
  루보가 여러 가지 빛깔로 반짝이는 벽돌을 들여다보았다.
  “음, 아주 마음에 들어!”
  루보가 만든 것은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아름다운 벽돌이었다. 루보는 이 벽돌과 강철로 길과 공장을 만들었고 가로등을 세웠다. 혼자 있지만 건물도 여러 개 만들어 튼튼하고 빛이 나는 소행성 모야를 세웠다. 루보에게는 쭉 뻗은 도로와 튼튼한 건물을 만들 시간이 충분했다.
  루보가 처음 만든 화덕은 이제 커다란 용광로가 되었다. 루보가 삽으로 흙과 돌의 찌꺼기를 떠서 커다란 화덕에 집어넣었다. 이 연료가 화덕 안으로 들어가자 불길이 타올랐다.
  불길이 번지면서 발전기가 돌아가고 서로 연결된 커다랗고 긴 관을 타고 전기가 퍼져나갔다. 커다랗고 긴 관은 모야의 곳곳에 연결되어 있었다. 잠시 후 거리에 불이 들어와 도시 전체가 환해졌다. 불이 들어온 모야는 여러 빛깔을 내며 반짝였기 때문에 더욱 화려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도시에 불만 환했다.
  “오늘은 등을 다 켤 거야. 모야가 아주 멀리서도 반짝이게 말이야.”
  루보는 누군가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며 화덕에 연료를 잔뜩 집어넣었다.
  일을 마친 루보는 기름 목욕을 했다. 모래와 기름을 수건에 묻힌 뒤 온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닦았다. 꺼끌꺼끌한 기름 수건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하게 닦아내자 온몸에 반질반질한 윤이 났다. 물론 기름통과 수건은 가슴 상자 안에 잘 넣어두었다.

루보가 몸단장을 마쳐갈 무렵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낯선 소리가 났다. 루보는 몸단장을 하다 말고 집 밖으로 나갔다. 저 멀리서 무언가 루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물체는 점점 루보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물체는 작은 자동차처럼 생긴 로봇이었다. 땅에서는 자동차로 하늘에서는 비행기로 형체를 바꿀 수 있는 변신 로봇이었다.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주를 위한 로봇이었다.
  “안녕, 나는 쿠보야.”
  쿠보가 와이퍼를 흔들며 루보에게 인사를 건넸다.
  루보는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
  쿠보가 멍하니 서 있는 루보에게 다가왔다.
  “넌 언제 온 거야? 여기 델라 행성엔?”
  “여기가 델라 행성이라고?”
  “그럼! 여긴 내가 처음 발견한 소행성 델라야.”
  “아냐, 여긴 내가 처음 발견한 모야 행성이야.”
  “나는 한참 전 여기에 왔고, 델라라는 이름도 내가 직접 지었다고.”
  “무슨 소리야, 나는 아무도 없는 여기에 처음 와서 도시를 만들고, 이름도 모야라고 지었어.”
  이 소행성을 어떻게 부를지에 대한 루보와 쿠보의 싸움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쿠보가 와이퍼를 거세게 흔들며 말했다.
  “나는 자동차에서 비행기로도 변신하고 로켓으로도 바꿀 수 있는 변신 로봇이라고.”
  “로켓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내가 보기엔 낡고 고장난 로봇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쿠보가 움직일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다.
  “여기 도착할 때 조금 고장이 나긴 했지만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경주 로봇이야. 어떤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고, 웬만한 비행기보다 높이 날고, 로켓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난 우주 로봇 경주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했어. 결승대회가 열리는 벨라 행성에 도착했다면 아마 내가 우승했을 거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렇게 여기에 불시착해 혼자 남게 됐지만.”
  루보는 쿠보가 예전에 어땠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땅 위를 달리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루보는 쿠보가 이 상태로는 절대 로켓으로 변신해 위로 올라갈 수 없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 시합을 할까?”
  “무슨 시합?”
  “우리가 도착한 이곳의 이름을 모야로 할지 델라로 할지 시합으로 결정하자고. 건물 빨리 짓기 시합 어때?”
  “그건 내가 불리하지. 넌 일 로봇이잖아. 대신 빨리 달리기 시합 어때?”
  “그건 내가 불리하잖아. 넌 경주 로봇이고 로켓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며.”
  결국 루보와 쿠보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서로 뾰로통해져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루보는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이 곳에 내가 먼저 왔어. 이 행성의 이름은 모야라고.’
  쿠보도 생각했다.
  ‘내가 먼저라고. 그러니 이 행성은 델라라고 이름을 지어야 해.’


3.

다음날부터 루보와 쿠보의 소리 없는 경쟁이 시작됐다.
  루보는 열심히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다. 용광로에 불을 지피고 더 열심히 벽돌을 굽고 쇠를 녹여 강철을 만들었다. 쿠보 보란 듯이.
  쿠보는 고장난 엔진에 무리가 갈 것을 알고도 루보가 만든 도시 주변을 열심히 달렸다. 루보 보란 듯이.
  쿠보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루보에게 다가왔다.
  “누가 쓴다고 이런 길과 공장을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그러는 너는 같이 경주할 로봇이 없는데 뭐하려고 혼자 달리지? 그리고 지금 네가 달려온 그 길은 내가 만든 거라고.”
  “난 비행기로 변신할 수 있어.”
  쿠보는 자동차에서 비행기로 변신해 루보가 만든 도시 주변을 날았다. 그러나 엔진에 힘이 약해서 곧바로 내려와야 했다.
  쿠보가 다시 자동차로 돌아왔지만 엔진 소리만 더욱 커졌다.
  “높이 날아봤자 이 델라는 볼만한 게 없어. 하지만 벨라는 아주 굉장하지.”
  “그렇다면 당장 로켓으로 변신해 그렇게도 좋은 벨라로 가지 그래?”
  루보와 쿠보는 매일 이렇게 옥신각신 다투었지만 서로의 근처를 떠나지는 않았다. 모야든 델라든 이곳에 단지 두 로봇만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있는 이 행성 이름을 모야로 할지 델라로 할지는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루보 곁으로 쿠보가 다가왔다.
  “넌 뭐든지 만들 수 있어?”
  “그럼! 난 일 로봇이라고.”
  “나도 새로 만들어줄 수 있어?”
  “넌 가장 중요한 엔진이 약해졌어. 엔진은 부품이 없어서 내가 고쳐줄 수 없어. 하지만 다른 것은 정비해줄 수 있어.”
  루보는 쿠보의 이곳저곳을 고치고 기름 수건을 꺼내 깨끗이 닦아줬다.
  쿠보의 몸체가 한결 가뿐해졌다.
  “새로운 쿠보가 된 것 같아.”
  그러나 제일 중요한 엔진만은 변함없이 낡고 고장이 난 예전 그대로였다.
  “조심해야 해. 엔진의 부품이 없으니까 멈추면 되살릴 수 없을 거야.”
  “루보, 넌 뭐가 되고 싶었어?”
  “난 탐험가. 넌?”
  “난 벨라에 가서 다른 변신 로봇들과 경주해서 이기고 싶었어.”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됐어?”
  쿠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랫동안 루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난 경주만 하느라 친구를 사귀지 못했어.”
  루보는 쿠보를 바라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톡톡 부딪치며 말했다.
  “나도 일만 하느라 친구를 사귀지 못했는데……”
  루보가 손가락에서 눈을 떼고 쿠보를 바라보았다.
  “쿠보, 이곳을 ‘델라모야’라고 부르면 어떨까?”
  쿠보가 루보를 바라보았다.
  “델라모야? 난 모야델라가 더 좋은 것 같아.”
  “아냐, 델라모야가 부르기 더 좋아.”
  “왠지 나에게 루보라는 탐험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정확히 말하면 탐험을 좋아하지만 늘 일만 했던 친구지.”
  루보와 쿠보는 태양이 지는 것을 함께 바라보았다. 델라모야에는 태양이 두 개이기 때문에 둘은 오랫동안 석양이 지는 것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다.


4.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지는 걸 먼저 발견한 건 루보였다.
  루보가 쿠보에게 물었다.
  “쿠보, 저게 뭘까?”
  “뭔지 모르지만,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어.”
  쿠보가 자기 몸 안에 있는 레이더를 확인했다.
  “확실해, 곧 이쪽으로 떨어질 거야. 바로 루보가 만든 도시 위로 말이야.”
  “우주선 같은데, 저게 내가 만든 도시를 무너뜨리겠지?”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게. 나는 비행기가 될 수도 있고 로켓도 될 수 있는 변신 로봇이거든.”
  루보가 쿠보를 말렸다.
  “넌 엔진이 고장났어. 무리하면 완전히 멈출 거야.”
  그러나 루보가 말릴 사이도 없이 쿠보는 앞으로 출발했다.
  루보가 쿠보를 향해 소리쳤다.
  “쿠보, 도시는 또 지으면 돼. 위험해!”
  도시는 망가지면 다시 지으면 되지만, 쿠보의 엔진이 멈추는 것을 루보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도시보다 쿠보가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루보가 더욱 크게 소리쳤다.
  “쿠보, 돌아와.”
  이미 루보에게서 멀어진 쿠보는 혼잣말을 했다.
  “어차피 내 엔진은 곧 멈춰.”
  사실 쿠보는 경주 로봇이었지만 낡아서 재활용하기 위해 로봇을 폐기하는 행성으로 이송중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친구를 위해 쿠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물체는 우주선이 분명했다. 조종사가 있는지 몰라도 우주선의 조종장치에 우주 공명 전파를 쏘면 그 영향으로 속도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쿠보는 달리면서 떨어지고 있는 우주선에 우주 공명 전파를 쏘았다. 쿠보는 떨어지는 우주선의 방향을 루보의 도시에서 자신 쪽으로 유도하려고 했다.
  문제는 쿠보가 입을 손상이었다. 우주선이 쿠보 쪽으로 떨어지거나, 스스로 달리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엔진이 완전히 멈출 수도 있었다. 그러나 쿠보는 루보가 만든 도시를 지켜주고 싶었다. 루보에게 소중하다면 쿠보에게도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쿠보는 추락하는 우주선을 향해 우주 공명 전파를 쏘며 힘껏 달렸다. 다른 그 어느 때의 시합보다 더 열심히 달리고 전파를 쏘았다. 그러나 우주선은 쿠보가 달리는 쪽으로 방향을 약간 바꿨을 뿐 여전히 루보의 도시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쿠보는 로켓으로 변신했다. 로켓이 되어 가까이에서 우주 공명 전파를 쏘면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힘내. 난 할 수 있어.”
  쿠보는 마지막 힘을 모아 로켓으로 변신해 떨어지는 우주선을 향해 전파를 쏘았다. 전파는 정확히 우주선을 맞췄고 방향을 바꾸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쿠보 역시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땅에서 지켜보던 루보가 소리쳤다.
  “안 돼, 쿠보!”
  잠시 후, 우주선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우주선은 루보가 만든 도시를 가까스로 빗나갔다. 그러나 쿠보도 결국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거대한 흙먼지가 일며 쿠보의 모습이 루보의 눈에서 사라졌다.
  루보는 쿠보가 떨어진 곳으로 뛰어갔다. 쿠보는 형체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고 엔진은 멈췄다. 루보가 쿠보의 망가진 몸체를 어루만졌다.
  “난 또 혼자가 됐어.”
  한참을 망가진 쿠보 곁에 멍하니 앉아만 있었던 루보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섰다.
  “어떤 소중한 것은 사라진 뒤에야 깨닫게 돼.”
  루보는 가슴안에 있는 공구 상자에서 공구를 꺼냈다. 그러고는 쿠보의 말짱한 부품을 꺼내 우주선으로 옮겼다. 우주선은 최신형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조종사 없이 움직이는 자동 항법 우주선이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완전하게 파손되지는 않았다. 루보는 쿠보의 멈춘 엔진을 꺼내 우주선 엔진의 부품과 결합해 새로운 엔진을 만들었다.
  “쿠보, 널 다시 멋진 변신 로봇으로 만들어줄게.”
  루보는 쿠보의 낡은 부품을 가져와 우주선에 교체했다. 루보가 델라모야에서 만든 강철을 녹여 새로운 몸체를 덧붙였다. 하지만 되도록 쿠보의 부품을 많이 넣어서 수리했다. 쿠보의 몸이 더 담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쿠보의 블랙박스를 꺼내 새로워진 우주선에 넣었다.
  잠시 후 우주선의 엔진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보는 쿠보 옆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쿠보의 블랙박스가 루보를 기억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안녕, 쿠보!”
  “……”
  “쿠보, 날 기억해?”
  “……”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실망한 루보는 고개를 떨구었다.
  새로워진 경주 로봇이 천천히 루보에게 말했다.
  “루보, 내 탐험가 친구.”
  루보는 고개를 들고 활짝 웃으며 쿠보에게 말했다.
  “쿠보, 이 순간이 지금까지 내가 일했던 시간보다 더 길고 힘든 시간이었어.”
  “난 지금까지 했던 경주 중에 가장 보람찬 경주였어.”
  쿠보는 자신의 새로운 몸을 바라보았다.
  “진짜 새로운 변신을 했군.”
  루보는 쿠보를 우주선 뒤쪽의 화물칸으로 데려갔다. 화물칸에는 화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화물 우주선이었어. 나처럼 우주 폭풍에 휘말려 여기 떨어졌을 거야.”
  쿠보가 루보를 보며 말했다.
  “음, 곧 루보의 도시가 더 멋져지겠는걸!”
  “그건 쿠보가 변신할 일이 더 많아질 거란 뜻이기도 하지!”
  쿠보는 이제 더이상 낡은 엔진 소리를 내지 않았다. 힘찬 엔진 소리가 델라모야에 크게 울렸다.
  지구에서 아득하게 머나먼 소행성 델라모야에 사는 일 로봇 루보와 경주 로봇 쿠보는 이제 할일이 더욱 많아졌다. 루보는 더욱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고, 쿠보는 델라모야의 땅을 달리고 하늘을 날았다. 쿠보에게는 일 로봇을 태우고 다닐 수 있는 새로운 좌석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디든 친구 루보와 함께할 수 있었다.

하신하

방송구성작가로 일하다 『숨은 소리 찾기』를 발표하며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바늘장군 김돌쇠』로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힘센 천만금이』로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을 받았다. 다수의 동화책을 출간하였으며, 『우주의 속삭임』으로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낯선 행성에 도착한 두 로봇이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그 행성이 지구든 화성이든 구아보 항성계의 크나크 행성이든 혹은 이름도 없는 어느 소행성이든 상관없다. 누구든 자기를 알아줄 존재를 간절히 원한다. 그들이 지구의 어린이도 ‘델라모야’에 불시착하게 된 두 로봇이어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있다면 머나먼 우주로 탐험을 떠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2024/10/16
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