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티슈
   새끼 고양이는 작은 티슈 갑에 담겨 왔다. 그처럼 어릴 줄은 몰랐다. 새끼 고양이는 털빛이 누렜는데 입은 크고 눈은 크지 않았다. 대체로 귀엽게 생긴 편이 아니었다. 그중 예쁘지 않은 건 눈이었다. 대부분 고양이들은 호동그랗고 연둣빛이거나 옅은 푸른 빛이 도는 눈을 갖는데, 기름한 잿빛 눈이었다.
   “이름을 티슈라 하자꾸나.”
   할머니는 말했다. 작은 티슈 갑에 담겨온 고양이라서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 티슈는 어둔리에서 왔다. 어둔리는 할머니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시골 마을이다. 지금 어둔리에는 먼 친척 조카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티슈는 그곳에 살고 있는 조카가 데려다주고 갔다.
   “미느야, 이리 와 보렴. 네 친구, 새끼 고양이다.”
   할머니가 작은 방을 향해 말했다. 미느가 천천히 걸어왔다. 가슴과 배는 희었지만,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의 몸집이 큰 고양이였다.
   “세상에는 너와 같거나 비슷한 친구들이 아주 많이 있단다. 너와 같은 고양이들이지. 얘를 보면 알겠지?”
   미느는 방 문턱 앞에 꼼짝하지 않고 선 채 티슈를 바라보았다.
   “친구가 생겼으니 이제 심심하지 않을 거야. 할미가 너와 같은 고양이는 아니라는 걸 알겠지? 하하하!”
   할머니는 소리 내어 웃으며 둘에게 번갈아 눈을 주었다. 미느는 티슈를 달가워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할머니 혼자 반겨 맞은 것으로 생각할뿐이었다. 티슈는 철이 없는 데다가 하는 짓마다 맹랑했다. 아직 어린 새끼여서 더했다. 처음 며칠 동안 티슈는 가여웠다. 이따금 미느의 꼬리를 어미 고양이의 젖인 양 쪽쪽 소리 내어 빨았다. 그럴 때면 미느는 귀찮아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티슈야, 미느를 귀찮게 하지 마라.”
   할머니는 티슈를 미느에게서 떼어놓으며 말했다. 머지않아 할머니는 티슈를 잘못 데려왔구나, 했다. 힘이 좀 들어도 또 번거롭긴 해도 어둔리엘 내려가, 귀엽고 예쁘게 생긴 고양이를 데려올 걸 했다.
   “축축 늘어지기는…… 누런 콩가루 묻힌 인절미도 아니고.”
   티슈는 어쩌다 들어올리려면 씹던 껌 늘어지듯이 길게 주욱 늘어졌다.
   “어미 고양이가 입으로 물어 옮겨놓는 걸로 아는 게야?”
   할머니는 혼잣말하며 하하하, 웃었다. 한 달이 지날 때까지도 미느는 티슈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냥 무심했다. 언제부턴가 둥그레지던 몸집이 점점 더 둥그레지다못해 뚱뚱해지기 시작했다.
   “미느, 운동 좀 해야겠구나. 어려서처럼 후다다닥 뛰어다니렴. 함께 뛸 친구도 생겼으니.”
   미느는 전보다 더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어디 아픈 게야, 미느?”
   할머니가 걱정스레 미느 등을 쓸었다. 미느는 눈이 크고 동그랗고 입이 작았다. 다리 넷은 하얗고 꼬리는 탐스러운데다 털이 복슬복슬했다. 할머니는 자주 아무 종이에나 미느를 그렸다. 앞다리 둘을 곧게 세우고 앉아있는 미느, 둥그렇게 웅크린 듯 앉은 미느, 눈을 크게 뜨고 할머니를 올려다보는 미느. 할머니는 미느가 마치 복스럽게 생긴 열일고여덟 살쯤의 아가씨 같다며 자주 혼잣말을 했다.
   “아이고, 이런!”
   어느 날 아침, 할머니가 놀라며 큰소리로 외쳤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미느와 티슈의 화장실부터 청소해 주곤 하는데, 미느 화장실이 전과 다르게 더럽혀져 있었다.
   “티슈! 왜 네 화장실을 두고 미느 화장실을 함께 쓰는 거지?”
   할머니는 방 빗자루로 베란다 바닥을 탁탁 때리며 티슈를 혼냈다. 그런 얼마 뒤부터 미느는 점차 사료와 물을 입에 안 댔다. 작은 입을 꼭 다물고 사료와 물그릇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이따금 기운 없는 소리로 야아옹, 울었다. 어쩌면 더 전부터 몸이 덜 좋았는지 모른다.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미느가 뚱뚱해지면서 운동 부족으로 간이 나빠졌다고 했다. 신장에도 문제가 생겨 쉽게 나을 것 같지 않겠다고 말했다.
   “키우는 중에 다른 고양이 한 마리를 더 데려오셨다면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수도 있고요.”
   동물병원 입원과 퇴원을 다섯 번쯤 되풀이한 끝에 수의사는 진단을 내렸다.
   ‘미느를 위해 데려온 건데……’
   할머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미느는 마침내는 아무 데나 끈적이는 오줌을 누었다. 수의사는 안락사 이야기를 꺼냈으나 할머니는 미느가 바라지 않을 일일 것으로 생각했다. 할머니도 같은 생각이었다. 미느는 티슈가 오고 일 년이 채 못 되어 죽고 말았다.
   ‘……티슈를 데려온 게 잘못일까. 그렇다면 내 잘못이야. 티슈에게는 더없이 미안한 일이고.’
    할머니는 한 살 남짓인 티슈에게 마음을 붙이려 애썼지만 잘 안 되었다.
   ‘이다음 티슈도…… 바깥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죽고 말겠지.’
   할머니는 더 늦기 전에 티슈를 어둔리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살았던 곳이니까 형제 고양이들이나 친구 고양이들이 살고 있을 테지.’
   할머니는 티슈를 위해서도 어둔리에서 보내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어미는 안 보이구요. 형제 고양이들도 흩어져 있어 어디서들 살고 있는지 몰라요. 가끔 고양이들이 야옹대며 감나무 아래를 왔다갔다하긴 해요.”
   어둔리 조카는 설명했다. 이제 티슈는 작은 티슈 갑에는 다리 한쪽도 들여놓을 수 없게 자랐다.
   “티슈야, 어둔리로 돌아가고 싶니? 친구들도 만나고 좋을 거야.”
   미느도 새끼 때 왔다. 새끼일 적 미느는 털이 짙고 꼬리가 가늘어 마치 쥐 같았다. 어미를 잃고 자전거 가게 문 앞에서 울고 있는 걸 데려왔었다. 자라는 동안, 미느는 바깥세상이 궁금한지 자주 베란다 창가에서 맴돌았다. 10층 높이로 날아다니는 새들에게서 눈을 못 떼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2. 둘
   미느가 그랬던 것처럼 티슈는 잘 때면 할머니 머리맡에서 잤다. 처음에는 발치에서 잤다. 그러다 등허리, 어깨 가까이서 자다가 머리맡으로 와서 자게 되었다. 잠결에 할머니는 티슈 앞발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등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미느한테 그랬던 것처럼이었다.
   “티슈, 혹시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니?”
   어느 날, 할머니는 ’티슈‘ 이름을 붙여준 게 미안했다. 무무, 테라, 고느…… 중에서 고르려다 그만두었다. 티슈는 다 큰 고양이가 되어서도 몸을 들어올리면 길게 늘어뜨렸다.
   “하하, 제가 여전히 어린 고양이인 줄 아누만.”
   할머니는 힘겹게 들어올린 티슈를 내려놓으며 소리 내어 웃었다. 미느는 차츰 잊혀 갔다. 할머니한테서도 티슈한테서도.
   “티슈, 네가 벌써 아홉 살 아니냐?”
   티슈는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가까이서 맴돌았다. 둘은 언제나 서로 보이는 자리에서 잠을 자거나, 창밖을 내다보고 새소리를 들었다.
   “밖이 궁금하지?”
   할머니가 티슈에게 물었다. 밖이 궁금하기는 티슈보다는 덜하지만 할머니도 같은 지경이었다. 어릴 적 어둔리는 더구나 그리웠다.
   “에구, 허리야, 무릎이야.”
   할머니는 우체국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허리를 크게 다쳤다. 병원 치료를 받고도 혼자 힘으로는 걸음을 옮길 수 없어서 바퀴가 달린 보조보행기를 밀었다.
   “티슈야, 이리 와 보렴. 노을이 붉게 지고 있구나.”
   둘이 함께 보는 동안 노을은 지고 어둠이 내려왔다.
   “이렇게 어둠이 내리는 걸 땅거미가 진다고 하지. 하늘을 덮을 만큼 큰 ‘어둠’이라는 거미가 여덟 개나 되는 긴 다리로 땅을 온통 뒤덮어서란다.”
   말하는 할머니 얼굴이 쓸쓸했다. 티슈는 눈물을 글썽이며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네 이름을 티슈라 짓길 잘한 것 같구나. 눈물을 닦아주마. 하하하!”
   할머니는 티슈 한 장을 뜯어내 티슈 눈가를 닦아주며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티슈는 먹은 물과 사료를 토하는 일이 잦아졌다. 미느가 그랬던 것처럼이었다.
   “티슈, 미느처럼 너도 똑같이 아픈 거야?”
   할머니는 아픈 왼쪽 다리를 끌며 티슈를 간신히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신장이 좋지 않아 물을 많이 먹여야 해요. 약도 먹여야 하는데, 잘 먹이실 수 있을지……”
   아픈 미느를 보았던 수의사는 티슈에게 물을 많이 마시게 해, 소변을 자주 보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한 달에 한 번쯤 주문 사료를 받으러 와야 할 거라고 했다. 증상을 봐가며 검진을 받아야 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할미 걱정은 안 해도 돼. 아직은 괜찮다니까. 괜찮아, 괜찮아. 너도 곧 좋아질 거야.”
   수의사는 미느만큼 나쁘지는 않다며 안심시켰다. 동물병원에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할머니는 고양이 이동장 덮개를 열었다. 그런 다음 손으로 티슈 귓바퀴며 턱 밑을 간지럽혔다.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혼자 다녀오기도 하고 둘이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봄이었다. 아파트 화단에는 아른아른 꽃들이 피어났다. 바깥 고양이들이 아파트 동 사잇길을 재빠르게 달려, 키 작은 쥐똥나무를 나는 듯 건너뛰었다. 할머니가 나비야, 부를라치면 정말 나비인 양 꽃 더미 위를 화라락 날았다.
   봄이 한창이던 날, 할머니는 안과에 다녀왔다. 녹내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진단이 내려졌다. 심하면 눈이 영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두꺼운 렌즈 안경을 쓰고 있기는 했다.
   “……녹내장이 급성으로 왔다고 하네. 오래전부터 증상이 있었던 걸, 방치해 놓아 급성으로 온 거라 하네.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 하고……”
   할머니는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이제 그림 못 그리지. 나뭇잎들도 잘 안 보이게 될 테고…… 어둔리에 많던 엉겅퀴꽃도 안 보일 테고, 어둔리 별들도…… 우리 티슈도 또렷이 안 보일 테고…… 벌써 어두운 걸.”
   할머니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 뒤부터 할머니는 자리에 누워있을 때가 잦았다. 전처럼 크지 않은 종이에 크레용으로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이내 침대에 옆으로 눕곤 했다. 모든 일이 다 시들했다.
   “아니, 티슈, 침대에 올라오지 말고 거기 앉아있어.”
   티슈가 침대 위로 오려고 하면 할머니는 한사코 말렸다. 할머니가 누워있는 침대 아래 방바닥 아니면 할머니가 앉던 의자에 앉아있길 바랐다. 할머니는 밥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 아니고는 날이면 날마다 누워 있었다. 옆으로, 옆으로 누워, 방바닥이나 의자에 앉아있는 티슈에게 잠자코 눈을 주었다. 어두워진 눈으로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느라 할머니는 점점 반쪽 달 같아졌다. 그러느라 티슈는 할머니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할머니를 마주 바라보는 때가 많았다.
   “티슈를 맡길 만한 데를 알아보는 중인데, 마땅한 데가 없어. 열 번을 더 생각해도 티슈를 돌볼 수 없을 것 같아. 눈까지 나빠지니…… 티슈가 나를 돌보게 생겼어. 휴!”
   할머니는 어둔리에 사는 조카와 자주 통화를 했다. 날은 빨리 지나갔다. 할머니는 옆으로 누워 티슈와 눈맞춤을 하다 스르르 잠이 들기 일쑤였다. 어느 때는 잠이 든 할머니를 티슈가 더 오래 지켜보았다.
   ‘정말이지 나를 어디엔가 보내려나보다.’
   생각이 들 때마다 티슈는 저도 모르게 몸을 가볍게 떨었다. 할머니는 의자 등받이 사이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티슈를 마주 보았다.
   ‘……언젠가는 티슈의 동그란 이마, 순한 눈빛, 신날 때면 뒤로 젖혀지는 두 귓바퀴를 볼 수 없게 되겠지.’
   할머니는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마침내 어둔리 조카가 티슈를 데리러 왔다.
   “아무래도 티슈를 어둔리로 데려가는 게 제일 낫지 싶어. 마음껏 들판을 쏘다닐 수도 있을 테고.”
   할머니는 티슈가 미느처럼 집 안에만 묻혀 있다가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티슈는 이동장 가방에 들어가지 않으려 죽자고 발버둥치며 마다하다가 어둔리로 갔다. 어둔리에 있는 조카의 비닐하우스로. 할머니도 간 적이 있는 어둔리 조카의 비닐하우스는 너른데다가 가까이 들꽃이 무더기무더기 피어있었다. 마을 어귀의 깊지 않은 개울물에는 피라미나 버들치가 비늘을 반짝이며 헤엄쳐 놀았다.
   “춥지 않을 때라서 티슈가 뛰어놀기 좋을 거야. 차갑지 않은 빗방울도 맞고 꽃도 보고…… 어릴 때 떠나와 못 본 걸 다 보게 될 거야. 친구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티슈는 전철로 스물두 정거장이 되는 길을 트럭에 실려 갔다. 이동장에 갇혀 실려 가면서 울었다.

   3. 할머니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티슈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 거실에서 가볍게 내닫는 소리가 들렸다. 티슈가 집 안에 들어온 파리를 쫓는 소리로 들렸다.
   “걱정 마세요. 고양이는 잘 있어요. 사료도 넣어주었고요. 물그릇도 들여놓아 주었어요.”
   비닐하우스 안에 숨어있을 데는 많다고 했다. 낯설어선지 티슈는 숨어 나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우스 한옆, 발판으로 놓인 나무판자 밑으로 숨거나, 헌 책장 뒤에 숨어있는 때가 많다고 했다.
   티슈가 어둔리로 떠난 지 사흘이 지났다. 그쯤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잊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티슈는 벌써 잊었을지 몰라.’
   풀잎에 햇볕이 내리쬐는 걸 보겠지 생각하자 웃음이 났다. 풀잎에 맺힌 이슬알을 앞발로 움켜쥐려 할지 모르지 생각하자 또 웃음이 났다.
   ‘……가서 몰래 보고 와야겠어. 이번 꼭 한 번만.’
   할머니는 집에서 입는 옷차림인 채 보행기를 밀고 집을 나섰다. 전철 스물두 번째 역에서 내려 택시를 바꿔 탔다. 티슈가 어둔리로 간 지 엿새째 되는 날, 어렵사리 집을 나섰다.
   ‘볼 수 있을까? 할미를 알아보긴 할까?’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생각했다. 하우스가 보이는 곳에서 내려 보행기를 밀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우스 앞문은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할머니는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돌려 하우스 문을 열었다. 하우스 안은 환했지만 비가 잠깐 내렸던 듯 바닥이 조금 축축했다. 전에는 얼갈이 열무니 배추를 심어 가꿨는데 빈 흙밭이었다.
   ‘티슈는 어디 있는 거지?’
   하우스 안은 밝고도 고요했다. 할머니는 조심스레 보행기 바퀴를 굴리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티슈야, 티슈야, 어디 있니?”
   할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티슈를 찾았다. 하우스 바깥쪽에 알알 빗방울이 총총 맺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나무판자 따위가 깔려 있고 먼지투성이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쪽이었다.
   “티슈야, 거기 있으면 나와.”
   할머니는 다시 티슈를 불렀다. 아무래도 마루처럼 놓인 판자 어름에 숨어있는 듯싶었다.
   “나야, 할미.”
   할머니는 고개를 숙여 나무판자 어름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컴컴한 판자 아래 깊숙이 숨고 만 것 같았다.
   “티슈야, 나와 봐. 할미라니까.”
   얼핏 꼬리 끝이 눈에 들어왔다.
   ‘참, 고양이들은 밖으로 나오게 되면 주인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했지.’
   그래서 밖에서 잃어버리면 찾기 쉽지 않다고 들었던 게 생각났다.
   ‘설마 할미 목소리를 잊었을까. 제 이름을 잊었을까.’
   티슈는 판자 어름에 숨어 나올지 말지 망설이는 듯싶었다.
   “하는 수 없어.”
   궁리 끝에 할머니는 한옆에 먼지투성이 기다란 골판지를 털어 축축한 밭 흙바닥에 펼쳐 깔았다. 그런 다음 위에 길게 누웠다. 집에서처럼 옆으로 길게 몸을 눕혔다. 판자 어름에서도 잘 보일 자리에. 그 방법밖에는 없지 싶었다.
   “이것 봐. 티슈야, 할미가 맞지? 할미가 온 거래도……”
   거기까지 말했을 때 티슈가 나무판자 밑에서 버스럭 소리를 냈다.
   “티슈!”
   티슈는 누워있는 할머니 쪽이 아닌 하우스의 찢겨나간 비닐 벽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티슈!”
   집 안에서 보았던 어느 때보다도 티슈는 밝고 또렷하게 보였다. 좀 커진 듯한 눈망울도 분홍빛이 도는 동그란 코도. 할머니는 눕혔던 몸을 일으키고 티슈를 마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동안, 티슈 두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 이제까지 보아온 어느 때보다도 맑은 눈빛이었다. 티슈 가슴께에 쑥부쟁이 노란 꽃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렸다. 찢긴 비닐 사이로 이웃 밭 푸성귀가 푸르렀다.
   “하하하, 건강해 보여서 좋구나!”
   노란 바탕에 갈색 줄무늬는 어느 때보다도 선명했다. 때마침 해가 반짝 나서 더 환하고 빛났다.
   “티슈, 잘 있었어?”
   티슈가 할머니를 알아봐 정말이지 기특했다. 할머니가 부르자 티슈는 쌓인 잡동사니를 건너뛰어 가까이 왔다. 가까이에는 며칠 전에 티슈를 가둬 데려간 이동장 가방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그새 큰 거야? 어깨에도 힘이 붙은 것 같네.”
   할머니는 티슈를 눈여겨 바라보았다. 티슈는 잠깐 가만히 서서 할머니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더니 이동장 안으로 훌쩍 뛰어들어갔다. 그처럼 발버둥 치며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이동장에.
   ‘……’
   ‘……’
   오월 한낮 볕이 환했다. 티슈는 이동장에서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제 발로 훌쩍 뛰어나와 가볍게 몇 걸음 옮겼다. 들풀 머리의 비 냄새가 코에 스쳤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비닐 벽에 기대 자라는 강아지풀이 떼 지어 흔들렸다. 흰여뀌가 작고 흰 밥알을 내보이고 있었다.
   “할미가 어둔리에 올 때까지 잘 지내야 해.”
   티슈를 어둔리로 보내야 옳을지 백 번이 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백 번이 넘게 잘한 일이었다. 어둔리 밤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 떠오를 테다.

이상교

먼저 동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동화와 그림책 글을 겸하게 되었다. 그간의 글쓰기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에 속했다면 이제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싶다. 운문과 산문은 쓰는 일에 있어 서로 반한다. 한 가지는 축약이어야 한다면 다른 하나는 다소 친절해야 맞다. 서로 반하는 두 가지를 성취해 나아가기는 고통인 한편 짚고 넘어볼만한 덕목 아닌지 한다. 둘을 함께 아우를 일이다.

2021/09/28
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