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개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동쪽 바다로 가는 막차였습니다. 새까만 창밖으로 덜컹덜컹 덜커덕 소리가 따라왔습니다. 개는 숨을 고르며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기차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개는 가방을 끌어안고 창밖으로 스쳐지나는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혼자니?”
   남색 모자를 눌러쓴 승무원 아저씨였습니다.
   “네, 혼자입니다.”
   개는 허리를 펴고 낮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의젓하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혼자 기차를 타기엔 어려 보이는데?”
   아저씨가 남색 모자를 들어 올리며 개를 살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못 탈 나이도 아닙니다.”
   개가 가슴을 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잠깐 눈썹을 찌푸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구나. 표 좀 보여 주겠니?”
   개는 표를 내밀었습니다. 아저씨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표를 살폈습니다. 그러고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개에게 다시 표를 건넸습니다.
   “여행길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단다. 부디 행운을 빈다.”
   개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저씨는 개를 보며 다시 한 번 웃고는 다른 칸으로 이동했습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아. 처음부터 행운을 빌어 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개는 정말로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랐습니다. 그 일이란 바로, 가족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의 가족은 개를 낳아 준 부모나 함께 자란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루 세끼 개와 밥을 먹고 개와 산책을 하고 개와 이야기 나누던 하나밖에 없는 가족, 선장 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커다란 배를 몰았습니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턱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는 선원들을 이끌고 먼바다까지 나갔습니다. 뭍으로 돌아올 때는 배 한가득 물고기를 싣고 왔습니다.
   개가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도 배에는 물고기가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때 개는 지금보다 더 어렸습니다. 개는 싱싱한 냄새에 이끌려 배 주변을 어슬렁대다 고등어 하나를 슬쩍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혼자 먹으면 심심하지.”
   할아버지 말에 개는 움찔했습니다.
   “그렇다고 겁까지 먹긴. 오늘은 나한테 특별한 날이거든. 함께해 주지 않겠니?”
   그날은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배를 탄 날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할아버지는 배를 몰 힘도 물고기를 잡을 힘도 선원들에게 큰소리칠 힘도 넘쳤지만, 사람들은 그 모든 게 위험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선원들과 간단한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개와 함께 집으로 왔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가족이 없다는 거구나?”
   개는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가족이 되어 주는 건 어떨까? 나도 가족이 없으니 말이다.”
   할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개는 대답 대신 할아버지의 손등을 핥아 주었습니다.
   “우리 파티할까?”
   할아버지가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좋아요.”
   개가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할아버지와 개는 노란 조명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식탁 위에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포도주와 개가 좋아하는 소시지가 있었습니다. 파티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둘은 함께했습니다. 잠을 잘 때는 한 이불을 덮었고, 밥을 먹을 때는 마주 보았고, 외출을 할 때는 나란히 발맞춰 걸었습니다. 봄에는 꽃구경을 갔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했고, 가을에는 단풍 길을 거닐었고,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며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할아버지와 개는 눈빛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입만 벙긋해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작은 몸짓만 봐도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창밖 단풍나무도 색색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내 구두가 없어졌어. 대체 누가 훔쳐 간 거야.”
   할아버지가 온 집 안을 뒤지며 허둥댔습니다. 개도 콧구멍을 벌렁대며 구두를 찾았습니다. 신발장에도 없고 옷장에도 없고 침대 밑에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겨우 기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오, 세상에!”
   냉장고 안에 구두가 있었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할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 뒤로도 할아버지는 늘 다니던 시장 길을 찾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또 아침을 먹었고,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버럭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사라진 날, 개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눈을 떴을 때 비로소 혼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을 켜지 않아 눅눅하고 어둑어둑했습니다. 욕실에도 창고에도 베란다에도 할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개는 날이 샐 때까지 현관문만 바라보았습니다.

   다음 날도 개는 여전히 혼자였습니다. 식탁 위 사료도 먹지 않고 바깥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설마 할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떠난 걸까?’
   개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할아버지는 그럴 리가 없어.’
   문득 지난날 할아버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따뜻하고 멋진 사람이었어. 동쪽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선장이었지. 나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단다.”
   할아버지가 개에게 말했습니다. 개는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엎드렸습니다.
   “언제까지나 아버지가 내 곁에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바다가 아버지의 배를 삼키고 말았지. 아버지를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했어. 결국 나는 혼자 남았고, 고향과 반대쪽인 이곳까지 오게 됐단다.”
   할아버지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동쪽 바다, 고향…… 이런 낱말들이 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났습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야겠어!’
   그길로 개는 가방을 챙겼습니다. 사료 봉지와 물통, 작은 타월, 수첩, 돼지저금통에서 꺼낸 동전들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사진을 가방 깊숙이 넣었습니다.
   개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을 때는 벌써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개는 기차역으로 달렸습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아파할 틈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기차역은 불이 꺼지지 않았고, 동전을 털어 자동발매기에서 표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개는 동쪽 바다로 가는 막차에 올랐습니다.

   개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습니다. 바깥 어둠처럼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동안 못 잔 잠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사람들이 내리고 탈 때마다 잠에서 깼지만, 개는 일부러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기차 안이 다시 어수선했습니다.
   “승객 여러분, 잠시 뒤 마지막 역에 도착합니다. 잊은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고 내려 주십시오.”
   방송 소리가 울렸습니다. 개는 눈을 뜨고 기차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짐을 챙기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로 갔습니다. 개도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곧 기차는 끼익 끽 소리를 내며 멈추었습니다. 사람들이 차례로 내렸고, 개도 그 틈에 껴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늘도 땅도 어스름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지?’
   개는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래, 바닷가로 가 보자.’
   개는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선착장에는 밤바다에 나갔다 온 배들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갓 잡은 물고기가 그물째 박스째 실려 나왔고 사람들은 값을 흥정하느라 시끌벅적했습니다. 개는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부둣가에도 배 안에도 할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개는 선착장 한구석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긴 하루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챙겨 온 사료도 떨어져 갔습니다.
   “못 보던 개 같은데?”
   삐쩍 마른 아주머니였습니다. 개는 먼저 말을 걸어 준 아주머니가 어쩐지 고마웠습니다.
   “이 동네에 살지는 않습니다.”
   개가 대답했습니다.
   “근데 어쩐 일로?”
   아주머니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물었습니다.
   “가족을 찾습니다. 혹시 저희 할아버지 본 적 있으세요?”
   개는 급히 가방을 뒤져 사진을 꺼냈습니다.
   “음,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아주머니가 말끝을 흐리며 사진과 개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잘 안 나니까 우리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아주머니가 말했고, 개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주머니를 따라 개가 간 곳은 허름한 식당이었습니다.
   “내가 네 할아버지를 기억할 때까지 나를 좀 도우렴. 당연히 잠도 재워 주고 밥도 줄 거야. 어쩌면 네 할아버지가 우리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올지도 모르겠구나.”
   기차에서 만난 승무원 아저씨 말대로 행운이 온 듯했습니다.
   “네, 좋습니다.”
   개는 아주머니가 어서 할아버지를 떠올려 주길 기대했습니다. 아주머니 대신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치웠습니다. 밤에는 차가운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식당을 지켰습니다.
   아침에 식당으로 출근한 아주머니가 찌그러진 냄비를 내주었습니다.
   “네 밥이다.”
   냄비에는 전날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시뻘건 국물에는 조개껍데기며 이쑤시개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개는 화가 나기는커녕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몹시 그리웠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날도 아주머니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개가 아주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나가 봐야겠어요.”
   개는 가방을 둘러멨습니다.
   “마음대로 하려무나. 나도 참을성 없는 개는 필요 없다.”
   아주머니가 쌩하니 돌아섰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개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큰길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습니다. 개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몸에 힘을 주었습니다. 공사장을 지나고 우체국을 지나고 이발소를 지나고 약국을 지날 때였습니다. 개는 순간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저 앞에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처럼 모자를 썼고 할아버지처럼 걸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갈색 바지에 풀색 스웨터를 즐겨 입었는데, 바로 그 옷을 입은 할아버지였습니다. 개는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목청껏 할아버지를 부르짖으며 달렸습니다.
   개가 할아버지 바지 자락을 덥석 물었습니다.
   “아이쿠야!”
   할아버지가 소리치며 뒤돌아섰습니다. 개는 다시 한 번 제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당장 안 꺼져!”
   매섭게 소리치는 할아버지는 개가 찾던 할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처음 본 사람이었습니다. 개는 꼬리를 내리고 재빨리 골목으로 도망쳤습니다. 몸을 웅크렸습니다. 그리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날이 저물 동안 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갈 곳 잃은 아이처럼 그저 담벼락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개야, 아저씨가 뼈다귀 하나 줄까?”
   두 볼이 토실토실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개는 한 발짝 비켜섰습니다.
   “괜찮아,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개가 보기에도 나빠 보이지 않았습니다. 웃는 얼굴이었고 나긋나긋한 말투였습니다. 모르는 개에게 뼈다귀까지 준다니 마음도 넉넉했습니다.
   “무슨 일로 이런 곳에 혼자 있니?”
   아저씨가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가족을 찾고 있어요. 할아버지요.”
   개가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아, 그랬구나. 내가 도움을 좀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아저씨 말에 개가 눈물을 훔쳤습니다.
   “어떻게요?”
   “나한테는 큰 차가 있거든. 차를 타고 가면 쉽게 찾을 것 같은데.”
   아저씨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개는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습니다.
   “네, 도와주세요.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개는 아저씨를 따라 차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차 문 대신 짐칸 문을 열었습니다. 큼큼하고 구릿한 냄새가 났습니다. 개가 머뭇대자 순간 아저씨가 개를 꽉 끌어안았습니다.
   “어어, 왜 그러세요? 멍!”
   개가 놀라 짖었지만 아저씨는 손에 더 힘을 주었습니다.
   “가만히 있어!”
   마음 좋던 아저씨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개는 발버둥을 쳤습니다. 하지만 힘도 못 쓰고 짐칸 속 철창에 갇혔습니다.
   “이거 풀어 주세요. 멍, 멍, 멍멍!”
   개가 소리 높여 짖어도 아저씨는 못 들은 척하고 철창 위에 시커먼 천을 휙 덮었습니다. 개가 짖는 소리도 묻혀 버렸습니다. 아저씨는 재빨리 차를 몰았습니다.
   개는 철창 안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이 먼 곳까지 온 게 후회스러웠습니다. 자기를 혼자 두고 떠난 할아버지마저 미웠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팔구팔구, 차 세워요. 팔구팔구.”
   사이렌 소리와 확성기 소리가 차 가까이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개는 무슨 일인지 몰라 숨죽이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얼마 뒤 차가 멈추었고 소란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시커먼 천이 걷혔습니다.
   “아, 또 개를 잡아가다니.”
   “놓치면 큰일 날 뻔했어.”
   경찰 아저씨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두 얼굴을 가진 아저씨의 정체는 개를 훔쳐다 파는 ‘개 도둑’이었습니다. 곧바로 또 다른 경찰차가 왔고 개 도둑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였습니다. 아까 개가 할아버지로 착각했던 사람이 경찰에 ‘위험한 개가 돌아다닌다’며 신고를 했고, 경찰 아저씨들은 개를 붙잡으려고 출동을 했는데, 마침 개 도둑의 차 번호 ‘8989’를 목격했고, 그래서 개보다 더 위험한 개 도둑을 먼저 잡기 위해 따라붙었던 것입니다.
   “위험한 행동을 할 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집이 어디니?”
   경찰 아저씨들이 개를 바라보았습니다.
   “집은 멀고요, 가족을 찾습니다.”
   지친 개가 우물우물 말했습니다.
   “가족을 찾는다고?”
   “그럼 경찰서에 가서 이야기해 보자꾸나.”
   경찰 아저씨들이 말했고, 개는 경찰차에 올랐습니다.

   “가족 누구를 찾는 거니?”
   경찰 아저씨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물었습니다. 개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사진을 꺼냈습니다.
   “할아버지요.”
   무심코 사진을 건네받은 경찰 아저씨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 이 할아버지는……”
   “저희 할아버지를 아세요? 보셨어요?”
   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알다마다. 내가 모셔다드렸는데.”
   “어디로요?”
   개는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할아버지 혼자 길을 헤매고 있었거든. 많이 아프신 것 같았어. 이름도 사는 곳도 가족도,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그래서 병원으로 모셔다드렸지.”
   “빨리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요. 저 좀 데려다주세요.”
   개가 부탁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할아버지가 널 알아보실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경찰 아저씨는 개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개는 문득 걱정이 되었습니다.
   ‘정말 할아버지가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지?’
   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노인 병원’ 간판 앞에 차가 멈춰 섰습니다. 개는 곧장 병원 안으로 달려갔습니다. 또다시 가슴이 벌렁거렸습니다. 경찰 아저씨를 따라 개는 한 걸음 한 걸음 크게 내디뎠습니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있는 병실 문 앞에 섰습니다. 경찰 아저씨가 문을 열자 개가 조심스럽게 들어갔습니다. 환자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몸이 더 말랐고 흰머리가 더 늘었고 주름이 더 깊어졌지만, 개의 할아버지가 틀림없었습니다.
   “할아버지!”
   개가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해했습니다. 그러다 소리치며 두 팔을 벌렸습니다.
   “오냐, 내 강아지!”
   자기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할아버지가 개만큼은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할아버지가 인사도 못 하고……”
   할아버지와 개는 와락 껴안았습니다.
   ‘기억을 잃는 병’에 걸린 할아버지는 가끔 기억이 싹둑 잘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집을 나온 날도 그랬습니다. 빗소리를 듣다 아버지를 떠올렸고, 아버지가 자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해 무작정 집을 나와 기차를 탔습니다. 먼 길을 달려 고향 동쪽 바다에 왔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개는 늘 그랬듯 할아버지의 손등을 핥아 주었습니다. 할아버지 얼굴에 제 얼굴을 마구 비볐습니다. 이제 정말 할아버지와 함께 집에 돌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할아버지가 딴사람 같은 표정으로 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누구네 개지?”
   “할아버지 가족이잖아요.”
   경찰 아저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몰라. 모르는 개야.”
   할아버지는 조금 전 기억을 거짓말처럼 싹 지워 버렸습니다. 개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할아버지, 저예요. 장난치는 거죠?”
   개가 아무리 말해도 할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리고 개를 바닥으로 툭 밀어냈습니다.
   “개는 병실에 들어오면 안 돼.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잖아.”
   그러더니 등을 돌리고 누워 버렸습니다.
   경찰 아저씨가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에 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주 많이 아프신 것 같구나. 앞으로 함께 살 수는 없을 거야. 네가 원한다면 보호소에 머물러도 괜찮단다.”
   경찰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개는 끙끙 눈물을 삼켰습니다.
   “고맙습니다. 필요하면 도움을 구할게요.”
   “그래, 먼저 경찰서로 가 있을 테니 언제든 오려무나.”
   바쁜 경찰 아저씨는 돌아갔고, 개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개는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터벅터벅 걸어서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다행히 바람이 불었습니다. 개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개는 중얼거리듯 할아버지를 불렀습니다. 그러다 할아버지에게 인사도 못 하고 나온 것이 떠올랐습니다. 가방을 뒤져 수첩 한 장을 뜯었습니다. 다시 가방을 뒤적였지만 연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거, 쓸래?”
   긴 머리를 양쪽으로 땋은 아이가 개에게 색연필 한 자루를 내밀었습니다. 개는 색연필을 건네받았고, 아이는 건너편 의자로 돌아갔습니다.
   개는 눈물을 닦고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썼습니다.

   할아버지는 따뜻하고 멋진 사람이에요.
   저도 할아버지를 닮고 싶어요.
   할아버지와 함께라서 행복했어요.
   사랑해요, 나의 할아버지.

   개는 편지를 들고 다시 병실로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개는 할아버지 베개 아래에 편지를 끼워 넣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아이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는 시무룩했습니다. 이번에는 개가 다가갔습니다.
   “이거, 고마웠어.”
   개가 빌려 쓴 색연필을 건넸습니다. 아이는 색연필을 받아 제 가방에 넣었습니다. 아까는 몰랐는데 아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울고 있었어?”
   개가 가만히 물었습니다.
   “너도 울었잖아.”
   아이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개는 아이 곁에 앉았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대. 나랑 할머니 곁으로 올 수 없대.”
   아이가 울먹였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내 곁으로 올 수 없대.”
   개도 울먹였습니다.
   아이도 개도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휘 불어왔습니다.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다른 가족은 없어?”
   개는 머뭇거리다 대답했습니다.
   “응.”
   아이가 개를 물끄러미 보았습니다.
   “그럼, 우리 집에 갈래?”
   아이는 눈물 맺힌 눈으로 살며시 웃어 보였습니다. 개는 대답 대신 아이의 손등을 핥아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김유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작고 힘없는 존재들도 당당히 목소리 낼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오늘도 편견 없는 마음으로 편견을 깨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에세이집 『아직도 같이 삽니다』, 동화책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 『라면 먹는 개』 등을 냈습니다.

2018/10/30
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