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랑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보며 한참 깔깔대고 있었다. 둘은 일요일 저녁마다 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광팬이었다. 식탁에 둔 아저씨의 전화가 아까부터 진동했지만 아무도 몰랐다. 5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전화기에 부재중 전화만 13통, 그중에 4통은 연우 엄마한테서였다. 아저씨가 얼른 전화를 걸었다.
   “응, 지금 가요.”
   낮게 잠긴 목소리. 심각한 일이 틀림없다. 잠깐 멍하던 아저씨가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대. 이렇게 갑자기, 아무튼 지금 가봐야 하는데……”
   말을 맺지 못하는 아저씨를 보며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아저씨가 다시 멍하다. 그때 전화기가 또 울렸다. 엄마인 것 같았다. 그제야 제 방으로 들어온 연우도 전화기를 들여다봤다. 책상 위에 둔 연우 전화기에도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표시가 있었다. 엄마였다.

   시흥 할아버님이 돌아가실지도 모른대. 엄마도 병원으로 바로 갈 거야. 이따 이모가 집으로 온다니까 기다려.
   
   아저씨도 놀랐겠지만 연우도 충격이었다. 할머니 생신이라고 다 같이 모여 점심을 먹기로 했다가 할아버지가 좀 편찮으셔서 한두 주 미룬다고 들은 게 엊그제다. 연우는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분명히 감기라고 했는데……”
   감기로도 죽을 수 있단다. 이모가 혀를 차며 일러주었다.
   “노인들은 그럴 수 있다. 감기가 원래 불치병이거든. 보통은 좀 앓다 일어나는데,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은 합병증이 생겨 악화될 때도 많지.”
   저녁을 먹고 연우가 양치를 하는데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 소린가 했더니 이모가 전화하는 소리였다.
   “뭐하러 연우까지 거길 가?”
   귀를 쫑긋 세운 채 연우는 살살 입을 헹궜다.
   “알았어. 그럼 내일 아침에 일찍 와.”
   이모의 이마에 주름이 모여 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연우가 물을 마시러 부엌 쪽으로 가는 내내 이모의 눈이 연우를 따라붙었다. 그예 못 참고 이모가 볼멘소리를 했다.
   “돌아가셨단다. 쯧쯧쯧! 좀더 사시지 뭐 그리 바쁘게 가셨대? 그런데 너도 장례식에 왔으면 좋겠단다, 너희 새아빠가! 뭐하러 너까지? 안 그래도 총각이 애 딸린 새터민 여자랑 결혼했다고, 아니 참, 이건 아니고, 그러니까, 뭐냐, 그, 결혼한 지 반년도 안 돼 돌아가신 것도 좀 그렇구만. 너도 안 가고 싶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지만, 연우는 당황해서 급하게 말을 돌리는 이모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다. 연우도 비슷한 걱정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저씨 말에 의하면 이런 걱정은 안팎으로 쓸데없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참견이자, 참견하는 순간 대놓고 무시해도 괜찮다는 신호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아저씨가 그랬다. 그게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보다 연우는 뛰어나간 아저씨의 뒷모습이 떠올라 걱정이 됐다.
   ‘아저씨 엄청 울었을까?’
   웃음만큼 눈물도 많은 아저씨였다. 저번에는 무슨 드라마를 보다가도 울었다. 슬픈 장면이긴 했다. 그래도 엄마랑 연우는 눈물까진 안 나왔다.
   자려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왔다. 연우는 장례식장에 가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결혼식 때 보았던 아저씨네 친척들을 다시 볼 것이다. 자기네들끼리는 이미 친한 사촌들도 올 거다. 지난 추석, 연우랑 동갑이라는 여자애는 대놓고 물었었다.
   “넌 왜 우리 삼촌한테 아빠라고 안 하고 아저씨라고 해?”
   당황한 연우를 구한 건 아저씨였다.
   “이지유! 너 왜 우리 아들한테 시비야?”
   아저씨네 형님도 딸 편을 들었다.
   “어라! 그럼 너는 지금 우리 딸한테 시비 거는 거냐?”
   하.하.하.하, 허.허.허.허.
   어른들이 어색한 웃음을 쏟아내며 마무리했지만, 연우는 그날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엄마와 아저씨도 그랬나 보다.
   “지유는 물어볼 수 있지. 그게 자연스럽지 않나?”
   의외로 엄마는 지유 편이었다.
   “그럼 나한테 물어보면 되지. 왜 연우한테 물어?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아저씨는 역시나 연우 편! 아빠라고 안 해도 된다고, 네 마음이 그러고 싶을 때 그러자며, 천천히 하자던 아저씨는(그래놓고 자기는 잘도 아들이라고 불렀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연우 편이 아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연우를 쏙 빼놓고 연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엄마와 아저씨 때문에, 연우는 차 안에서 계속 자는 척을 해야 했다.
   연우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결심했다.
   ‘10분 안에 잠들지 않으면 게임을 좀더 하고 자겠어.’
   어떤 게임이 좋을지 막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바깥에서 또 떠드는 소리가 났다. 도어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나서부터였다. 나가 보고 싶은데 연우 몸은 이상하게 침대에 더 납작하게 붙었다. 이모 말은 잘 안 들리는데 엄마 목소리는 연우 귓속으로 쏙 들어왔다.
   “일단 샤워부터 좀 하고!”
   아침에 일찍 온다더니 밤에 왔나 보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던 연우는 결국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어쩜! 맞춘 것 같이 예쁘겠다. 그런데 꼭 너까지 이걸 입어야 되나?”
   이모가 연우 몸에 상복을 대보며 말했다. 검은색 양복에 검은 넥타이까지 완벽하게 깜장이었다.
   “연우 안 잤어?”
   머리에 수건을 말고 나온 엄마가 물었다.
   “아저씨는?”
   “병원에서 자. 잘 데 있거든. 나는 너랑 내일 간다고 왔어.”
   연우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막 입을 떼려는 이모를 향해 엄마가 선수 쳤다.
   “나도 연우가 싫다고 하면 안 데려간다고 했어.”
   이모가 연우를 보는데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며 엄마도 연우 눈을 보았다. 당황스럽지만 연우 차례였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연우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대답했다.
   “한번 가 보지 뭐.”

   운전하면서 엄마는 연우한테 계속 말을 걸었다. 대부분 쓸데없는 얘기였다. 학교에는 벌써 이야기를 다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둥(연우는 전혀 걱정 안 했는데), 단원평가 날인데 시험을 못 보게 해서 미안하다는 둥(연우 친구들이 알면 외려 부러워할걸!), 가을도 없이 겨울이 오는 것 같다는 둥, 이런 날은 팥소가 들어가는 소보루가 더 맛있다는 둥, 딱히 답할 만한 이야기들도 아니었다.
   “함께 와줘서 고마워.”
   병원에 차를 주차하고도 머뭇거리던 엄마 목소리가 나직했다. 어색해서 연우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보였다. 바람이 찬데 밖에서 계속 기다린 것 같았다.
   “왔어, 아들?”
   눈이 떼꾼한 아저씨가 살짝 웃는데, 벌써 수염이 덥수룩했다.
   지하에 있는 장례식장은 아직 어두웠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점처럼, 고만고만한 마루방들이 숫자를 달고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아저씨를 부르자 엄마가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들어가더니 까만 한복을 갈아입고 나왔다.
   “입관 예배 전에 형님들이랑 할 이야기가 있대. 잠깐만 기다려.”
   엄마는 연우 어깨를 짚어주고 아저씨가 사라진 쪽으로 달려갔다. 마침 떡 상자를 들고 나타난 아줌마들이 방에 불을 켜고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뒤이어 까만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나타나 마루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신발장 옆 책상 위에 큰 공책을 펼치고 가운데 붓펜을 놓던 까만 양복의 아저씨가 연우를 힐끔 보았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우 입도 아까부터 붙은 그대로였다.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뭣했다. 누구라도 왔으면 좋겠다 싶던 연우는 한편으로는 누가 와서 어색함을 더할까 걱정도 되었다. 괜히 온다고 했나? 엄마가 말한 잠깐은 얼만큼일까? 혼자 속말을 하는 연우한테 까만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종이컵을 내밀었다. 따끈한 둥굴레차. 구수하긴 해도 연우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다.
   “너 승수 아들이구나. 이제야 생각났네. 결혼식 때 봤는데 잘 모르겠지? 나는 승수 당숙이야.”
   당숙이라면 친척인 것 같아서, 연우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래, 조문부터 해라. 아직 안 했지?”
   당숙이라는 아저씨한테 밀려 분향실에 선 연우는 어쩌면 좋을지를 몰랐다.
   “거기선 뭐, 조문하는 방식이 달리 있나?”
   연우는 우뚝 멈췄다.
   ‘거기? 거기라니, 혹시, 엄마네? 그걸 왜 나한테……’
   얼굴이 발개진 연우가 그냥 서 있자, 아저씨는 향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으라고 건네주었다. 국화꽃도 집어서 향로 옆에 놓으라고 일러주었다. 시키는 대로 한 연우에게 아저씨가 눈을 감고 기도하라고 했다. 눈은 감았지만 기도는 나오지 않아서, 연우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앗, 뭐라고 기도할지 모르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생각해올걸.’
   가슴이 쿵쿵 뛰었다. 눈은 언제쯤 떠야 하는 걸까, 가슴에서 나는 쿵쿵 소리가 점점 커져서 참말 곤란했다. 연우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시간이 너무 길었다.
   눈을 꼭 감은 연우를 마침내 아저씨가 토닥였다.
   “그래, 할아버지 편안히 가실 거야.”
   눈을 뜨자 연우 눈으로 영정 사진이 들어왔다. 연우는 겨우 속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서너 번쯤 보았던 시흥 할아버지는 아저씨와 전혀 닮지 않았는데, 희한하게 영정 사진 속의 할아버지한테서 아저씨가 보였다. 까만 리본 속의 할아버지가 살짝 웃고 있는데 아저씨도 미소를 지으면 저렇게 수줍은 얼굴이 되곤 했다. 안경을 쓴 것도 똑같았다. 시흥 할아버지도 젊었을 때는 안경을 썼나 보다. 연우가 볼 때는 늘 맨눈이었는데……
   ‘아니다, 그날은 안경을 썼다.’
   그날이 떠올라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연우가 엄마랑 처음으로 아저씨네 집에 인사를 갔던 날이었다. 할머니는 말씀도 많고 웃음도 많은데, 할아버지는 별로 말이 없었다. 거의 한마디도 안 하지 싶었다. 더 놀라운 건 그날따라 새침한 아저씨였다. 늘 밝고 재미있던 아저씨가 할아버지랑 비슷하게 말이 없었다. 연우는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아무래도 이 할아버지가 나랑 엄마를 좋아하지 않나 봐.’
   그때부터는 연우도 할아버지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할아비가 연우한테 용돈을 좀 주고 싶은데……”
   어색하게 밥을 먹고 더 어색하게 과일을 먹는 중에, 어색한 폭탄이 떨어진 것만 같아 연우는 뚝 멈춰 있었다. 먼저 방에 들어간 할아버지를 따라들어가라고 엄마가 연우를 떠밀지 않았으면, 연우는 들고 있던 포크도 내려놓지 못했을 거다. 함께 일어서는 아저씨를 도로 잡아 앉힌 건 할머니였다.
   연우가 주춤주춤 방으로 들어서자 할아버지가 일렀다.
   “문 닫고 들어오너라.”
   방문을 닫으며 연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쩐지 할아버지한테 지지 않고 당당하고 싶어서, 연우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열한 살이랬나?”
   “아니요. 열두 살입니다.”
   “그래, 공부는 잘하고?”
   “열심히 합니다.”
   “그래, 승수가 네 마음에는 드나?”
   연우는 잠깐 멍했다. 무슨 역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승수라는 이름이 확 낯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때는 연우도 김승수씨가 싫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키가 작달막한 것도, 얼굴이 둥그런 것도, 안경을 쓴 것도, 눈썹이 진한 것도, 잘 웃는 것도, 다 싫었다. 그냥 싫었다. 보기 전엔 더 싫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사실은 그래서 한동안은 더 싫었다. 연우가 아무리 심통을 부려도 아저씨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저씨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고, 엄마는 아저씨를 좋아했다. 그건 다른 것이었다. 엄마가 연우를 좋아하는 것과 아저씨를 좋아하는 건, 정말 다른 것이었다. 그걸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연우는 점점 아저씨를 받아들였다.
   “네. 아저씨는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참 고개를 끄덕이던 할아버지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책 사 봐라.”
   “고맙습니다.”
   연우가 일어서서 나오는데, 한숨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할아버지가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며 혼잣말을 했다.
   “그래, 저도 아비 되면 아비 마음을 알겄지.”
   연우는 헷갈렸다. 저 말이 아저씨를 탓하는 말인지 응원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한테 하는 말은 틀림없었다.
   ‘결혼하면 아저씨가 내 아빠가 될 테니까, 그럼, 아저씨가 자기 아빠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말이잖아. 도대체 그 마음이 뭐라는 거야?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한동안 궁금했지만 연우는 아무한테도 묻지 못했다. 아저씨한테는 아저씨대로 엄마한테는 엄마대로 속상한 말이 될까 걱정이 앞섰다. 이모한테 물을까도 생각했지만 당장 엄마한테 뭐라고 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연우는 다시 그 ‘마음’이 생각났다.
   아비 마음.
   ‘아저씨는 아비 마음을 알게 되었을까?’

   그날 밤, 연우는 조문 온 이모를 따라 이모 집으로 갔다.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던 이모가 작년에 이사하고는 세 번째 와본 거다.
   냐옹-
   엄청 커진 고양이 냠이는 잿빛 털이 더 탐스러워졌다. 냠이를 보고 나서야 연우는 진짜 오랜만에 이모 집에 왔구나 싶었다.
   “냠이 없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니?”
   그예 냠이를 안고 등에 코를 묻은 이모가 반달눈으로 웃었다.
   “연우랑 냠이랑 둘 다 내 앞에 있으니, 오늘 이모 기분이 최고로 좋다!”
   장례식에 다녀온 사람이 너무 기분이 좋으면 안 된다면서도 이모는 계속 웃었다. 이모의 붉은 얼굴을 보고 연우는 아까 장례식장에서 술을 마시던 이모가 떠올랐다.
   “웃는 것도 똑 닮은 것 좀 봐. 지 아빠만큼만 크면 엄청……, 아니, 참, 우리 귤이라도 좀 까먹고 잘까?”
   고개를 젓던 연우는 문득 궁금했다.
   “배 안 고파요. 이모! 우리 아빠 키 컸어요?”
   잠깐 망설이던 이모는 입술을 내밀고 생각에 잠겼다.
   “이모! 우리 아빠 나 닮았어요?”
   “인석아! 네가 아빠를 닮았겠지, 아빠가 널 닮았겠냐?”
   연우가 슬쩍 웃는 동안, 이모는 긴 한숨을 쉬었다.
   “너희 아빠랑 너, 똑같이 생겼어. 아주 판에 박았지. 나한테 사진이 있지 싶다. 잠깐만!”
   아빠라고 했다. 사진 속의 남자. 연우는 찬찬히 오래 들여다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삼촌이나, 어쩌면 형 같기도 하다. 너무 어리다. 자꾸 사진에 눈을 가까이 대는 연우를 보며 이모가 말했다.
   “내가 너희 엄마보다 여기 일찍 왔잖니. 여기 와서 자꾸 전화했지. 니네 엄마가 나한테 사진을 찍어서 보냈어. 내가 시켰지. 사진은 절대 못 가지고 오니까 그냥 전화로 보내라고. 오마니 아바지 옛날 사진도 다 그렇게 받았댔지.”
   이모가 눈을 감았다 떴다.
   “니네 엄마 말이 남자친구가 하도 쓸만하대서, 결혼부터 시켰댔지. 내가 말이야. 혼자 오지 말고 남편이랑 오라고. 여자 혼자 여기까지 오기는 진짜, 너무, 너무 힘들어서……”
   이모는 고개를 흔들다 냠이를 들어올려 껴안았다. 여기로 오기 전 중국에서 살았던 몇 년이 이모에게는 지옥보다 더했다고, 언젠가 엄마랑 말하던 기억이 나서 연우는 가만 기다렸다.
   “니네 아빠가 똑똑했어. 그때만 해도 첫길이었는데 판단을 잘한 거지. 나하고는 다르게 중국에서 바로 라오스를 넘었댔지.”
   그곳을 탈출해 중국과 라오스를 넘어 태국에 닿을 때까지, 연우 아빠와 엄마는 길이 아닌 길을 꼬박 걸어야 했다. 산을 넘으면 강이, 강을 헤치면 숲이, 숲을 지나면 절벽이, 절벽을 넘기면 바다가 입을 벌리고 있더란다. 험하고 깜깜한 그 길을 걷고 걸어 마침내 사람이 다니는 길을 짚었을 때는, 외려 그 발이 설어 이상하더란다. 그래도 방콕에 있던 한인교회에 머무르는 동안, 아마 그동안이 연우 아빠와 엄마가 제일 좋았던 때였을 거라고, 이모는 말했다. 비행기를 타고 이제 여기로 날아오기만 하면 되는데, 연우 아빠의 고열이 시작되었다. 덧난 정강이는 메콩강을 건널 때 다쳤던 부위였다.
   “그 험한 데를 다 지나서 이제 여기 올 일만 남았는데, 이제 자유만 남았는데, 패혈증인지 뭔지, 아 참말, 그 지랄 같은, 이게 말이 되냔 말이지. 너희 아빠 눈이, 그 눈이, 너를 두고 감아졌겠나? 그 눈이…… 아이고!”
   눈물을 닦던 이모가 말을 이었다.
   “내가 그때 너희 엄마한테 모진 말을 많이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독한 마음으로 당장 여기로 오라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너희 엄마는 내가 아니라 너 때문에 온 거였어.”
   연우의 태명은 당콩이었다. 거기 말로 강낭콩이라고, 강낭콩밥을 좋아하던 아빠를 생각하고 지었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사실 밥보다 빵이 더 좋았댔다. 여기에 와서 제빵기술을 배워 빵 가게를 낸 엄마는 강낭콩 빵을 특히 잘 구웠다. 갑자기 기억 속 냄새가 소환되더니, 연우 콧속을 간질였다. 연우는 괜히 킁킁대며 나지도 않는 강낭콩 빵 냄새를 맡았다.
   코가 찡- 울렸다.
   
   “정말 혼자 있을 수 있다고?”
   “당연하지. 내가 애야?”
   “애지. 그럼 네가 어른이야?”
   “아, 뭐래! 나 혼자 잘 있을 수 있다고. 엄마랑 아저씨도 새벽엔 올라온다면서.”
   장례 마지막 날, 연우는 혼자 집으로 왔다. 엄마는 생각보다 잔소리가 덜 했지만 쉽게 전화를 끊지 못했다. 게임에 빠져볼까 했던 연우는 엄마와 통화를 한 후 맥이 풀렸다. 혼자만 학교에 안 간 금요일인데 어쩐지 시시하다. 게임도 신나지 않고, 유튜브도 그냥 그렇고, 텔레비전도 지루하다. 아픈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닌데, 기분이 그렇다. 마음이 좀 이상하다. 이런 건 처음인데, 뭔가, 아주 많이, 불편하다.
   ‘이건 뭐지?’
   묘하게 불편한 느낌은 묵직했다. 연우는 혼잣말로 물었다.
   ‘나 왜 이러지?’
   혼잣말을 여러 번 하던 연우가 갑자기 일어나 가방에서 사진을 꺼냈다. 이모에게서 얻은 사진이었다. 다시 코가 찡하더니, 툭 터진 콩꼬투리에서 콩이 떨어지듯, 불편한 마음이 토도독 쏟아졌다.
   
   ‘아빠!’
   그제야 아빠 소리가 나왔다. 카메라 정면을 보고 환하게 웃는 아빠가 너무 불편해서 연우는 속이 상했다. 너무 짧았다. 아빠는 너무 짧게 살았고, 낯선 땅에서 죽었다. 그것도 겨우겨우 고생해서 와놓고 죽었다. 키가 크고, 웃음이 시원하고, 머리가 영리하고, 기운차고 씩씩했던 아빠. 여기에 와서 엄마와 연우와 함께 살고 싶었던 아빠. 그러나 올 수 없었던 아빠. 그런 아빠를 지금까지 연우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헐!’
   느닷없이 떨어진 눈물에 연우는 깜짝 놀랐다. 미처 슬프기도 전에 눈에서 제 마음대로 눈물이 났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는데, 문득 아저씨 얼굴이 떠올랐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아빠와 아저씨가 연우 머릿속을 막 헤집고 다녔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만 생각하고 싶어서 연우는 얼른 점퍼를 찾아 입었다.
   ‘안 되겠다, 나갔다 오자!’
   연우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갔다. 찬 바람이 생각이란 걸 몰아내는 것 같았다. 연우는 점점 더 빨리 달렸다. 귀가 빨개졌고 하얀 입김이 나왔다. 숨을 몰아쉴수록 마음이 나아졌다.
   집에 오다 연우는 까치분식에 들러서 떡볶이랑 어묵을 먹었다. 이른 저녁이라 치기로 했다.
   ‘여기 떡볶이는 아저씨가 진짜 좋아하는데……’
   
   “아빠!”
   생각보다 목소리가 많이 떨리지는 않았다. 연우가 헛기침을 하는 바람에 책상 위에 세워둔 아빠 사진이 슬쩍 넘어졌다. 연우가 사진을 다시 세우는데 소국 향기가 은은히 퍼졌다. 아까 들어오면서 사 온 하얀 송이들이 사진 앞에 누워 있다.
   “아빠! 나 연우야. 당콩이었던 연우. 아빠! 많이 속상했지? 내가 아빠 기억할게.”
   할말이 많은데 이상하게 입이 다물어졌다. 남은 말을 연우는 속으로 했다.
   ‘아빠가 있는 데가 따뜻하고 평안한 곳이면 좋겠어. 계속 못 그랬으니까. 아빠! 내가 아빠 기억할게. 편안히 있어.’
   아빠의 평안을 비는데 연우의 마음이 평안해졌다. 사람들이 장례식을 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그러고 보니, 연우에게는 두 번째 장례식이다.
   ‘시흥 할아버지랑 아빠, 어쩌면 ‘거기서’ 둘이 만날지도 모르겠네. 서로 싫어할까? 아니면, 만나도 서로 모를 수도 있지. 그런데 하나는 통할 것 같다. 둘은 아빠였으니까 둘만 알고 통하는 ‘아비 마음’이 있잖아.’
   연우는 울고 있을 아저씨가 떠올라 코가 시큰해졌다. 아저씨가 집에 오면 까치분식의 아주 매운 떡볶이를 먹어야겠다고 연우는 생각했다. 눈물 콧물 쏙 빠지게 맵지만 따듯하고 말랑하고 쫀득한 떡볶이.
   연우는 벌써 배가 든든했다.

유영소

그림책, 동화, 청소년소설을 두루 쓰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타자화를 경계한다. 미래를 준비하며 살거나 어른의 내면이 투영된 어린이, 청소년이 아니기를 바란다. 온전히 지금을 살며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그들과 마음을 나누며 지내고 싶다

2021/06/29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