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점심나절.
   하늘의 해는 뜨겁게 내리쬐며 우리들의 까까머리를 달구고 있었다.
   상구는 구멍 난 양철 바케쓰를 흔들며 걷다 말고 우뚝 섰다.
   “건호야. 저거 진짜 서른여섯 그루 맞나?”
   막상 숲 앞에 이르자 상구는 우물쭈물했다.
   “그럼 어른들이 우리한테 틀린 말 하겠냐?”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능선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모두 서른여섯 그루라는 버드나무들이 조그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섭네. 너도 그 소리 들었잖아? 누가 삽으로 땅을 파는 소리.”
   그 숲에서 둘이 혼비백산하여 한달음에 마을까지 뛰어 내려온 적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지간해서 그 숲 근처에 가지 않았다.
   천방지축으로 안 가는 곳 없는 아이들도 숲 주위는 얼씬하지 않았다.
   “됐어. 삽 같은 소리 그만 좀 해!”
   딱 잘라 상구의 입을 막았다. 나도 숲은 두려웠지만, 한편으론 늘 궁금했다. 언제고 한번 들어가 보겠다는 꿍꿍이가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내보이진 않았다. 물론 상구에게도.
   상구는 오촌 아재다.
   ‘나이는 같아도 상구가 아재야. 이눔아!’
   집안 어른들이 호통칠 때마다 나는 상구에게 아재요 라며 입을 떼고 머쓱해져서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곤 했다. 나는 항렬이 낮아서 어지간한 마을 형들도 모두 아재였다.
   둘만 남게 되면 상구는 안 그래도 작은 눈을 가늘게 뜨며 굵은 목소리를 흉내 냈다.
   “응? 조카. 왜 그러는가?”
   나와 상구는 낄낄거리며 어깨에 팔을 둘러 친구임을 확인했다.
   어른들의 귀신 목격담은 한층 구체적이고 으스스했다.
   “나뭇짐 지게를 메고 내려오는 디 말이여, 어스름 저녁에 버드나무 둥치에서 빛줄기가 뻗어 나오더라니깐.”
   “거기서 두런두런하는 말소리 들었는가.”
   다들 숲에서 겪은 일들을 말할 때는 숨을 죽이고 주위를 살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의 말에 살을 붙였다.
   “내가 한 번은 하도 궁금해서 숲에 들어간 적이 있었잖아.”
   읍내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성철 아재가 자랑스레 탄피를 손에서 굴리며 말했다.
   소총 탄피보다 서너 배는 큰 기관총 탄피였는데 어디서 주웠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너희들은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는 말만 했다. 거기가 어디냐는 물음엔 대답 없이 한쪽 입술만 비죽이 올리며 웃었다.
   “진짜 참말로 희한하더라니까. 어떻게 나무들이 그렇게 얽히고설켜 자라는지 말이야. 어떤 놈이 어떤 놈 둥치에서 나왔는지 알아볼 수가 없드라닝깐. 그것도 그건데.”
   우리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성철 아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바람도 없는데 뼈를 비벼대는 소리가 거기서 나는 거야. 푸르스름한 빛이 무슨 연기처럼 흔들거리면서 말이야.”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나는 소리쳤지만, 왠지 등줄기가 서늘해져 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던 아버지 말을 더 믿고 싶었다. 그런 아버지도 숲 가까이 가는 일은 한사코 피했다.
   “오늘은 샛골 쪽을 뒤져볼까?”
   상구의 눈이 반짝 빛났다.
   활짝 웃는 상구의 입언저리는 아까 한입 가득 털어 넣은 오디 즙으로 까무잡잡했다.
   “거기 말고. 요강 바위로 가자.”
   “거기는 버드나무숲이랑 가까운데.”
   상구가 인상을 썼다.
   “사람들이 안 가는 데니까 가재가 엄청 많을 거 아냐. 오늘은 그리로 가자.”
   나는 꿍꿍이를 숨기고 가재로 상구를 꼬드겼다. 성철 아재가 한 뼘이나 되는 기관총 탄피를 파낸 곳은 버드나무 숲이 틀림없었다. 인민군들과 국군들이 버려두고 달아난 탄피들은 마을 곳곳에 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소총 탄피였다.
   요강 바위는 말이 바위지 정강이 아래 졸졸 흐르는 조그만 웅덩이를 막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돌덩이였다. 우리는 당기고 밀며 요강 바위 주변의 돌들을 하나씩 들춰갔다. 흙탕이 가라앉으면 가재들이 엉금엉금 기었고 잽싼 우리의 손은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군인들이 마을에는 왜 왔을까?”
   가재를 양철 바케쓰에 담으며 상구가 말했다.
   “뭐 볼 일 있나 보지. 앗! 저놈 도망간다!”
   내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상구가 잽싸게 손을 넣었다.
   우리가 산을 오르기 전 지프차를 뒤따라 트럭 두 대가 마을에 들어섰다.
   고만고만한 초가 일곱 집이 낮게 엎드려 있는 마을은 순식간에 불안감에 휩싸였다. 마을은 인민군이 점령했다가 국군이 들어오길 몇 차례나 반복했다. 성철 아재네 아버지는 인민군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다. 모두 얽힐만한 친족들인 마을 사람 누구 하나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들을 국군에 보낸 집이 두 집 있었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트럭들이 덜컹거리며 올랐고 그럴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었다. 트럭에서 국군들이 쏟아져 내렸고 지프차에서 내린 한 군인이 손갓을 만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담장 아래 그늘에서 소꿉놀이하던 동생 미애가 삽짝문 밖을 내다보았다. 정숙이도 돌멩이 위에 풀 이파리를 찧다 말고 미애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집 안에서 놀아. 나오지 마, 알았지?”
   나는 미애에게 손짓해서 삽짝 안으로 들여보냈다.
   “호미는 왜 가져 가 오빠?”
   미애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상구네로 달음질쳤다. 군인들을 보면 엄마는 틀림없이 나도 집안에 잡아 둘 것이었다. 내 머릿속은 일요일에 하려고 별러 두었던 일들로 분주했다.
   삼삼오오 흩어져 유월의 햇살을 피해 그늘에 널브러져 있는 군인들에게서 시큼한 땀내가 났다. 가슴에 매달린 까만 수류탄이 소불알처럼 늘어져 있었고 껴안듯 붙잡고 있는 엠원소총이 햇빛에 번들거렸다. 철모를 깔고 앉은 군인의 퀭한 눈이 지나가는 우리를 멍하니 따라왔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상구와 나는 땅을 보고 빠르게 걸어 마을을 빠져 나왔다.

   자작나무 껍질에 화르륵 일어난 불은 금방 작은 나뭇가지들로 옮겨붙었다. 타닥타닥 타오르던 불길이 잦아들기 시작할 때 상구는 엄선해 놓은 가재의 옆구리를 엄지와 집게로 집어 들었다. 어른 엄지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큼직한 놈들 네 마리였다. 가재는 집게발을 한껏 젖히고 버둥거렸다.
   “이놈아. 아무리 힘써봐야 소용없어.”
   상구가 가재의 집게발에 나뭇가지를 가져다 댔다.
   가재의 앞다리가 나뭇가지를 꽉 집었다. 상구가 손가락을 놓아도 가재는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였다.
   “이게 내 손가락인 줄 아나? 되게 멍청하다. 그치?”
   상구는 재잘거리며 나뭇가지에 매달린 가재가 떨어질세라 모닥불로 옮겼다.
   불길이 휘감자 가재는 나뭇가지를 놓았다. 가재는 불구덩이에 떨어지며 열 개의 팔다리를 격렬히 휘젓다 멈추었다. 짙은 고동색 껍질은 금세 붉은색이 되었다. 우리는 단물이 줄줄 흐르는 가재를 벗겨 먹고 껍질까지 핥으며 아쉬워했지만, 나머지는 오늘 저녁 된장찌개의 맛을 돋우는 데 쓰일 것들이었다.
   입안의 가재를 목구멍으로 다 넘기기도 전에 나는 갑자기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왜? 머리 아프냐?”
   “응.”
   이마에서 뒤통수로 뜨거운 바람이 훅 지나가며 격렬한 통증이 몰려왔다. 이마를 꾹 눌렀다가 떼자 이마에 피멍이 든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윽! 배가!”
   상구도 때마침 배를 움켜잡았다.
   마을 사람들 모두 그랬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격렬한 통증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는 관자놀이에 누구는 목에 허벅지에 또 누구는 오줌보에. 사람들은 그것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대수롭지 않은 증상으로 여겼지만 누가 어디를 아파하는지 서로 또렷이 알고 있었다. 통증은 또 곧 거짓말처럼 사라졌기 때문에 금세 잊혔다.

   “잠깐만 들어가자.”
   “싫어. 미쳤냐? 저길 들어가게.”
   상구는 예상대로 세게 저항했다.
   “어른들이 지어낸 말들이라니까.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는가?”
   나는 아버지의 말투를 흉내 냈다.
   “어른들이 왜 거짓말을 할라구.”
   “탄피를 못 줍게 할려고 그런 거지. 불발탄에 불붙였다가 손모가지 날아간 애들도 있다니까.”
   “그래도 무서운데……”
   상구는 버드나무 숲 입구에 서서 발을 떼지 못했다.
   “들어가서 빨리 탄피만 캐고 나오면 돼. 처음 파낸 거 너 줄게.”
   내가 성큼 숲 안으로 들어서자 상구도 조심스러운 걸음을 떼 내 뒤를 따랐다.
   한낮인데도 숲 안은 어둑한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버드나무 엉킨 뿌리를 이끼들이 감싸고 있었고 그 밑으로 지네들이 기어 다녔다. 지네들은 이 그림자에서 나와 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며 우울한 귀신들의 소리를 퍼뜨렸다.
   온몸의 솜털들이 일제히 일어섰지만 나는 수확물을 떠올리며 용기를 냈다.
   “어? 건호야 봤어?”
   상구가 나의 손을 잡아챘다. 내가 뭐? 하는 눈길로 상구를 보았다.
   “저기…… 플래시 빛…… 같은 게 뿌리 쪽에서……”
   상구의 목소리가 와들와들 떨렸다.
   무서운 것을 무섭게 생각하면 더 무서워지는 법이라고 아버지가 말했었다.
   나는 상구의 손을 잡아끌었다.
   “괜한 소리 하지 말고 따라와.”
   나는 탄피가 묻혀 있을 만한 흙무더기를 향해 뛰어갔다. 풀이 안 난 흙무더기라면 최근에 파묻은 곳이 틀림없다.
   “멋진 놈 하나만 발견하고 얼른 나가자!”
   나는 분주히 호미질했다. 마침내 무언가 덜커덕 호미 끝에 걸렸다.
   한 뼘도 넘어 보이는 커다란 탄알이었다.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화약이 들어있는 탄알은 묵직했다. 이게 에무지 오공 기관총 알이 틀림없었다. 성철 아재 목에 걸린 탄피 따위는 댈 게 아니었다.
   “와! 상구야 이거 봐.”
   대답이 없어 돌아보니 상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보! 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이런 수확물은 거저 얻는 게 아니지 않은가.
   ‘좋아! 하나만 더?’
   다시 흙더미에 호미를 댔다.
   순간 엉켜있는 뿌리들 사이로 번쩍이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엉? 진짜 불빛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불빛이 나를 비추지 않도록 납작 엎드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불빛은 다시 돌아와 나를 쏘았다.
   그 불빛은 분명히 나의 존재를 알아본 것이었다.
   뛰어나가야 하는데 무릎이 풀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버드나무 뿌리 밑, 땅속 깊은 곳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름이 뭐니?”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갔다. 내 입이 힘겹게 달싹였다.
   “김…… 건…… 호…… 요.”
   나는 이마에서 뒤통수로 뜨거운 바람이 휙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아득해졌다.

   나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땀을 빼고 있었다.
   둥그런 탄환에 이름을 새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못은 쉽게 미끄러졌고 못을 쥔 손가락은 맥없이 힘이 풀리곤 했다.
   엄마가 부엌에서 방으로 뚫린 쪽문을 열며 소리쳤다.
   “건호야. 좀 받아라.”
   나는 얼른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개다리소반을 받았다.
   그릇 높이 수북하게 담긴 보리밥 그릇들 가운데에서는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어제와 달리 빨간 가재가 여러 마리 들어있는 찌개는 먹음직스러웠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된장찌개를 밥 위에 끼얹으며 말했다.
   “엄마. 참기름 딱 한 방울만 주라.”
   “없어.”
   짧은 대답과 함께 엄마는 열무김치를 걸친 봉긋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없긴 왜 없어? 찬장 안에 있잖아. 한 방울만 주라.”
   볼이 미어지게 밥을 씹을 뿐 엄마는 대꾸도 하지 않았고 대신 아버지가 나섰다.
   “밥 먹을 때는 밥을 열심히 먹으라 했지. 입 다물고 얼른 밥이나 먹어.”
   미애가 히히 웃었다.
   “입 다물면 못 먹는데?”
   아버지의 입이 벙긋했다.
   “아이고 요 조그만 것이 어찌 이리 야물딱질까. 여보, 그러지 말고 한 방울씩 줘. 다 떨어지면 그까짓 것 또 사면 되지.”
   엄마가 아버지를 가볍게 흘기며 일어서 참기름병을 들고 왔다.
   밥그릇에 몇 방울 떨어지자 고소한 냄새가 확 퍼져왔다.
   아버지 밥그릇으로 참기름병이 향하자 아버지는 엄마 손을 밀어냈다.
   “아니. 나는 됐어.”
   “그나저나 뭐 하려고 마을 사람들을 다 모이라고 한 대요?”
   저녁밥을 먹고 마을 앞으로 모이라는 전갈을 받은 것은 엄마가 밥상을 막 차릴 때였다. 낮에 본 군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땀 냄새에 섞인 쇠 냄새가 함께 따라왔다.
   “나라가 얼마나 중한지 왜 충성해야 하는지 뭐 그런 얘기 하겠지.”
   “그런데 왜 갓난쟁이까지 한 사람 빠지지 말라 그럴까요.”
   “가보면 알겠지.”
   “낮에 한 사람씩 만나서 얘기한 것이 뭐가 맘에 안 들었을까?”
   “맘에 들고 말고 할 게 뭐 있겠어. 산골에서 화전을 일궈 먹고 산다고 큰 죄 되는 것도 아니고.”
   “지난번처럼 작전지역이니 뭐니 하며 쫓아내면 큰일은 큰일인데……”
   엄마 말끝에 한숨이 따라왔다.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왜 또? 아프요? 좀 더 천천히 꼭꼭 씹어 들어봐요.”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버지에게 물을 건넸다.
   아버지는 물을 마시고도 숨을 꾹 참으며 가만히 아픔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하지가 가까워지며 길었던 해도 꼴깍 산을 넘어 어둠이 내려앉았다.
   “훤한 대낮 놔두고 이 밤에 뭐 하는 짓이여.”
   “그니깐. 온종일 일하고 피곤한 사람들 붙들고 말이여.”
   사람들은 풀기 없는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어둠 속에서 플래시 불빛이 허공을 휘저었고 저벅저벅 군화 소리가 가까워졌다.
   모인 사람들 앞에 군인 하나가 와서 서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한 사람 빠짐없이 모인 거 맞죠?”
   사람들은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군인이 턱짓하자 다른 군인이 플래시를 비추며 한 명 한 명 세었다.
   월산 숙모네 갓난쟁이가 칭얼거리자 월산 숙모가 어르는 소리가 침묵을 깼다.
   “맞나?”
   “예! 맞습니다.”
   군인은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소리쳤다.
   “그럼 교육을 위해 자리를 이동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뭔 교육인지 몰라도 이 밤에 어디를 가요. 그냥 여기서 하면 안 되나요?”
   군인의 목소리가 온화해졌다.
   “거기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저희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
   “니미 못 믿겠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여.”
   누군가 나지막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마을 사람들도 군인들도 입을 꾹 다물고 플래시 불빛을 따라 걸음만 옮겼다. 칠성 아재는 종이처럼 가벼운 강하 할매를 업었고 미애와 정숙이는 아버지들 품에 안긴 채였다.
   어느새 일행은 동네의 끝 집을 지났다.
   군인들은 서른여섯 숲으로 길을 잡았다.
   “우째 교육을 이상한 데서 한대?”
   불안감이 마을 사람들 머리 위를 덮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서른여섯 숲 자리에는 그저 낮은 관목이 듬성듬성 있을 뿐 커다란 둥치에 가지들이 뒤엉킨 버드나무 따윈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혼란스러웠다.
   그러는 사이 군인들이 멀찍이서 사람들을 둘러쌌다.
   군인 하나가 바닥에 놓인 열 자루의 삽을 가리켰다.
   “남자들은 나와서 땅을 판다. 실시!”
   정적이 흘렀다.
   먼 산의 소쩍새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귀에 와 닿았다.
   무슨 뜻인지 알아채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 울음을 터트렸고 몇몇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엄마와 숙모들이 왜 우는지.
   아버지들이 왜 주먹을 불끈 쥐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명을 끌어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뭣들 하고 있나!”
   철컥, 노리쇠 젖히는 소리가 났다.
   남자들이 비척비척 하나둘 앞으로 걸어 나가 삽을 집어 들었다.
   여덟 명의 남자들이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근육과 뼈가 움직일 때마다 부딪치며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살려주시오. 제발.”
   여자들이 군인의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는 동안 남자들은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삽질을 했다. 상구가 남는 삽 두 자루를 가리키며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상구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나는 덜덜 떨며 상구가 끄는 대로 따라가 삽을 손에 들었다. 어른들 옆에 서서 삽을 땅에 푹 박았다. 묵직한 삽과 흙의 느낌이 전해져 왔다. 미애와 정숙이의 울음소리가 먼 산의 소쩍새 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총성이 한참 동안 밤의 대기를 찢었다.
   “맞나 다시 세어 봐!”
   “서른여섯 맞습니다!”
   “얼른 묻고 철수해.”
   얼굴 위로 덮이는 흙덩어리들은 축축했다. 숨이 막혀왔다.

   “빨리들 와 봐!”
   여학생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고학과 발굴팀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갔다.
   무릎보다 더 깊이 판 흙더미 속에서 반쯤 드러난 것은 사람의 두개골이었다.
   흙을 헤치자 또 다른 유골이 나왔다.
   “뭐가 이렇게 많아?”
   손에 조그만 괭이를 든 여학생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상태로 봐서 수십 년은 지난 것 같군. 한국전쟁 당시일까. 음……”
   유골을 살피던 지도교수가 중얼거렸다.
   모두 삽과 괭이를 던지고 손과 붓으로 조심스레 주변 흙을 덜어내고 털어냈다.
   간간이 한숨 소리만 들릴 뿐, 학생들은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유골들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데는 몇 시간이나 걸렸다.
   모두 서른여섯 구였다.
   “이건…… 서른여섯 구가 하나로 엉켜있는 것 같군……”
   교수의 꽉 다문 이빨 사이로 나지막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느 정강이뼈가 어느 넓적다리에서 나온 건지 어느 팔뼈가 어느 가슴에서 나온 것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유골들이 엉킨 모습은 뿌리와 줄기들이 마구 엉킨 버드나무 숲 같았다.
   두개골이나 넓적다리뼈마다 작은 구멍들이 선명했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조그만 두개골 앞에서 교수가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작은 애들이……”
   열 살 남짓해 보이는 그 작은 두개골은 목에 커다란 기관총 탄알을 매달고 있었다.
   교수는 손가락으로 탄알의 흙을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엉성하게 못으로 긁은 자국이 있었다.
   “김…… 건…… 호……?”
   교수가 탄알을 내려놓고 작은 두개골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후드득 떨어진 눈물이 흙바닥을 검게 물들였다.

   그날 점심나절.
   하늘의 해는 뜨겁게 내리쬐며 우리들의 까까머리를 달구고 있었다.
   여기는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산과 골짜기는 맛있는 것들을 잔뜩 품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버찌와 오디가 철 맞춰 매달렸고 다래와 머루가 덩굴을 타고 다녔다.
   놀다 지쳐 집에 들어가면 엄마의 잔소리와 구수한 된장찌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걱정 하나 없는 우리는 양철 바케쓰를 신나게 흔들며 요강 바위를 향해 달렸다.
   상구가 구멍 난 양철 바케쓰를 흔들며 걷다 말고 우뚝 섰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되풀이하는 상구의 버릇이었다.
   “건호야. 이상하다. 저기에 숲이 있지 않았었냐?”
   “숲은 무슨 숲. 얘는 꼭 여기를 지날 때마다 헛소리네.”
   상구가 멀뚱멀뚱 눈을 굴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있었는데.”
   “헛소리 말고 얼른 가재나 잡으러 가자. 그것들 목 다 빠지겠다.”
   서른여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자라는 계곡도 없고 못으로 긁은 이름이 새겨진 탄환도 없었던, 그날, 그곳엔, 산등성이를 넘고 계곡을 건너는 우리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유승희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2015년 장편동화 『참깨밭 너구리』를 출간하면서 동화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주로 현실적이지 않은 존재들을 등장시켜 현실을 비추어보려는 시도에 매력을 느낀다.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학살당한 민간인들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마치 엉켜 있는 나무숲 같았던 사진의 그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나에게 그들은 기억의 단편이 아니라 현재의 존재였다. 이 글은 사진의 작은 두개골들을 위한 동화이다.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