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누나를 만들고 사라졌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우리 엄마가 말이다. 누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식탁에 그 흔한 쪽지 한 장 남겨놓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어딜 가겠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엄마의 신발까지 현관에 그대로다. 다른 날이면 몰라도, 이건 영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지금 엄마가 사라지다니. 솔직히 재난 상황이다. 당장 오늘 엄마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나 동생 갖는 게 평생의 꿈이었어.”
   누나는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서 저런 말이나 했다. 나는 그만 머리를 쥐어뜯었다.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려면, 우선 우리 엄마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우리 엄마는 관자놀이에 흰머리가 빼곡하게 나 있었다. 키도 크고, 옷도 잘 입었다. 다른 엄마들보다 잘 생겼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엄마를 많이 닮은 내가 어딜 가서 못생겼단 소리 들은 적 없으니까. 심지어 우리 엄마는 돈도 무지막지하게 벌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들어왔을 정도니까 말이다. 어른들은 그런 엄마더러 슈퍼맘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 엄마가 작은 일들을 자꾸 깜박해버리기 시작한 거다. 여기서 ‘작은 일’이라 하면, 엄마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말했다. 예를 들면, 가스 불 잠그기,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기, 양말 짝 맞춰 신기, 머리 빗기 같은 것들. 뭐, 이 정도쯤이야 내가 대신 신경 써 주면 그만인 일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엄마가 잊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끝내주는 김치볶음밥 레시피’에서 고추참치를 까먹는가 하면, 빨래를 섬유유연제만 넣고 돌려버리기도 했다. 일기장 검사도 내내 까먹었다가 일요일에 몰아 하는 날들이 많았다. 뒤치다꺼리하는 일에 지쳐서 “엄마 정신 좀 차려.” 하면 엄마는 박수를 짝! 치면서 소리쳤다.
   “아 맞다!”
   그게 심해지면서 마침내 엄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맨날 식탁에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있기나 한다. 가끔은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마치 처음 본 사람인 것처럼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그러면서 꼭 그 말을 덧붙였다.
   “누구 집 아들이지? 참 잘생겼다.”
   덕분에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끝내주는 김치볶음밥을 하는 것도,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적당히 섞어서 빨래를 돌리는 것도, 양말 짝을 맞추고 엄마의 머리를 빗는 것도 다 내 몫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일기장 검사와 가정통신문에 사인을 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건 엄마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선생님이 엄마한테 내준 숙제 같은 거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매번 귀찮아하면서도, 저녁마다 일기장과 통신문을 늘어놓고 꼼꼼하게 사인을 했다. 나는 엄마가 손으로 가리고 일기장에 작게 편지를 적어주는 걸 좋아했다. 선생님한테 내기 전에 몰래 그걸 펼쳐서 읽어보기도 했다.
   ‘리치가 받아쓰기에서 만점을 받았군요. 저는 가끔 ’안 돼‘를 ’않되‘로 쓰기도 한답니다.’
   그런 걸 읽다 보면 우리 엄마는 정말 슈퍼 맘 같았다.
   엄마는 이제 내 일기를 읽지 않는다. 나도 덩달아 일기 쓰는 일을 관두게 되었다. 누가 봐주지 않는 일기야 써봤자 재미도 없어서였다. 선생님이 몇 번 내 일기의 행방을 궁금해하긴 했는데, 내가 하도 안 내니까 더 묻지 않았다. 아마 선생님도 포기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가정통신문에 사인은 꼬박꼬박해 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선생님이 곤란해지니까. 가끔 선생님은 가정통신문을 깜박하고 들고 오지 않은 애들을 따로 불러다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우유 급식 먹을 거니?’ 혹은, ‘방과 후 수학 교실 신청할 거니?’ 같은 것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애들의 부모님 이름을 휘갈긴 글씨로 적어서 파일 안에 집어넣었다. 선생님 앞에 서서 이것저것 추궁당하는 건 상상만 해도 어색하고 민망했다.
   엄마가 사인을 하지 않으니 내가 하는 수밖에. 사인을 흉내 내려고 스케치북에 연습을 제법 했었다. 지금은 아주 잘 따라 할 수 있다. 파란색 사인펜을 쥐고 손가락에 힘을 푸는 거다. 웨이브를 하듯이 팔을 흐느적거리면서 엄마의 이름을 쓴다. 강현아. ‘아’의 마지막 획을 길게 늘이고 별 두 개를 그리면 제법 엄마가 한 사인이랑 비슷한 모양이 나왔다. 이젠 노하우가 생겨서 눈 감고도 사인을 따라 쓸 수 있다. 선생님도 여태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문제는 한 달 전에 ‘학부모 참관 수업’ 통신문을 받아온 데서부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엄마는 참관 수업에 온 적 없었다. 참관 수업은 평일에다가 낮이고, 엄마는 주말 밤에만 한가했으니까. 엄마는 매번 ‘불참’ 칸에 사인을 하면서 나한테 미안해했다.
   “엄마가 좀 덜 바빠지면 리치 공부하는 거 보러 갈게.”
   “공부쯤이야 엄마가 안 봐도 늘 잘해.”
   “그럼, 당연하지. 나도 잘 알지.”
   그 말은 반쯤 사실이었다. 엄마가 안 봐도 난 늘 백 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왔다. 학원에서 다 배우기도 했고, 이정도야 쉬웠다. 중학생 문제집을 가져다줘도 순식간에 풀 자신 있었다. 나는 원래 뭐든 잘했다. 엄마가 뭐든 잘했던 것처럼. 그렇지만 수업은 솔직히 자신 없었다.
   수업 시간이 되면 나는 교과서 한구석에 낙서를 끄적였다. 새끼손톱만 한 쥐가 나오는 만화다. 그 쥐는 교과서를 돌아다니며 마침표들을 마구 먹어치웠다. 따옴표와 물음표도 즐겨 먹긴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게 마침표다. 손톱만큼 작은 쥐라서 그랬다.
   그래서, 손톱으로 책에 있는 모든 마침표를 살살 긁고 있으면 옆자리에 앉은 채아가 흥미롭게 내 만화를 읽어주었다. 채아는 내 만화의 유일한 독자였다. 다른 애들은 대부분 수업 시간에 수업을 듣거나 자기 할 일을 하지, 내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쉬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바빠서 남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걸 안다. 채아는 나한테 조금 특별한 친구여서 그럴 뿐이다.
   채아는 할머니랑 삼촌이랑 셋이서 살고 있었다. 엄마랑 아빠는 채아가 1학년이었을 때 해외 지사에 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일주일 동안 한국에 와서 같이 지낸다는데, 솔직히 채아는 엄마랑 아빠의 얼굴을 보면 자꾸 숨고 싶어진다고 했다. 1학년 땐 삼촌더러 아빠라고 부르고 싶어서 고민이었단다. 내가 봐도 채아는 삼촌과 도플갱어처럼 닮았다. 채아네 삼촌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학부모 참관 수업에 와서 모르는 애들이 없었다. 저런 삼촌이라면 나도 수업을 열심히 듣는 시늉을 해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학부모 참관 수업 가정통신문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엄마가 좀 덜 바빠진 때가 지금이 아닐까? 요즘 엄마는 내내 식탁에만 앉아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통신문 ‘참여’ 칸에 크게 사인을 그렸다. 그 참관 수업이 당장 오늘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지. 이곳에 누나를 만들어 놓고.
   생각해보면 엄마한테 누나가 갖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철없고 어렸을 때 말이다. 우리 동네엔 ‘남동생 클럽’이라는 게 있었다. 누나가 있는 남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이었다. ‘남동생 클럽’에 가입한 애들은 가슴에 빨간색 방패 모양 배지를 늘 달고 다녔다. 떼거리로 다니면서 팽이 시합을 겨루고 늘 이겼다. 나는 매일 부서진 팽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분해서 배지가 갖고 싶다는 핑계로 엄마한테 누나를 만들어달라고 졸랐다. 그 무렵 뭐든 할 수 있었던 엄마는 웃으면서 그랬다.
   “누나를 어떻게 만드니, 리치 너를 먼저 낳았는데. 엄만 못 해. 배지 정도는 사줄 수 있지.”
   그러니까, 엄마가 나한테 처음으로 못한다고 했던 게 ‘누나 만들기’ 였던 거다. 이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못 하는 엄마가 대체 어떻게 누나를 만든 걸까?
   의외로 누나는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진짜 내 누나처럼 생겼다. 눈 밑에 갈색 점이 있는 게 우리 집안 내력인데, 누나도 눈 밑에 갈색 점이 있었다. 어깨 위로 올라오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니까 하얀 새치가 듬성듬성 보였다. 누나는 낡은 체육복을 입고 있었는데, 무릎이 다 늘어나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런데도 키가 정말 커 보였다. 몇 센티냐고 물어봤더니 누나가 목을 긁으면서 대답했다.
   “나? 170cm.”
   하여간 우리 집안 핏줄이었다. 나는 누나랑 마주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이를테면 경찰서에 전화를 하는 거 말이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경찰관한테 이렇게 말할 거다. 엄마가 누나를 만들고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집에 처음 보는 누나만 있다니까요. 생판 남은 아니고요, 우리 누나가 맞긴 한데요. 어제 태어난 누나한테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니까요. 밖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나는 핸드폰을 켜고 한숨을 푹 쉬었다.
   “누나, 엄마는 어디 갔어?”
   “나도 몰라. 산책이라도 간 거 아냐?”
   누나는 마냥 태평한 얼굴이었다.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왠지 누나의 표정을 보니까 마음이 조금 고요해졌다. 엄마가 정말 잠깐 집 앞 산책을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엄마는 이따 돌아올지도 모른다. 나도 하루쯤은 밖에서 내내 놀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이런 걸 이해해 주는 것도 아들이 할 일이겠지? 나는 결심했다. 핸드폰을 덮고 누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누나는 흥미롭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더러 엄마 대신 참관 수업에 나가달라는 거지?” 누나가 말했다.
   “……할 수 있겠어?”
   미심쩍은 표정으로 누나를 흘겨보자 누나의 한쪽 입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아주 멋진 미소였다.
   “난 뭐든 할 수 있어.”

   참관 수업에 가기에 앞서 누나의 머리를 엄마처럼 꾸며놓아야 했다. 그래야 누나가 학부모처럼 보일 테니까. 누나는 숱이 많고 빳빳한 단발머리지만, 엄마는 얇고 붕붕 뜨는 반곱슬머리였다. 기장도 누나보다 한참 짧았다. 나는 서재에서 사진첩을 꺼내 엄마의 머리 모양이 가장 잘 보이는 사진을 찾아냈다. 내 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엔 아기인 내가 가위를 들고 있고 엄마는 그걸 뺏으려고 애를 써 댔다. 아무래도 연필과 맞바꾸려는 것 같았다. 누나는 사진 속 엄마의 모습과 거울을 번갈아 보았다.
   “머리 자를 건 아니지?”
   나는 대답 대신 부엌 가위를 가져왔다. 누나가 질겁하며 펄쩍 뛰었다.
   “안 돼! 기를 거야.”
   “엄마처럼 보여야 할 거 아냐!”
   “싫어. 가위 갖다 놓고 고데기 가져와.”
   아무리 설득해도 누나는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화장대에서 고데기를 꺼내 내밀었다. 누나는 능숙하게 쇠판을 달궈 후후 불었다.
   엄마는 곱슬거리는 자기 머리를 싫어했다. 콤플렉스라나 뭐라나. 아침마다 거울 앞에 앉아서 고데기로 머리를 쫙쫙 펴는 게 일이었다. 나중엔 내가 엄마의 머리를 펴 줬었다. 뜨거우니까 데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연기가 나는 머리카락을 후후 불면서 펴 줬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찰랑찰랑해지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졌다.
   누나가 손목을 돌릴 때마다 ‘뚜둑뚜둑’ 소리가 났다.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손짓이었다. 누나의 머리카락에서 삽시간에 파도 같은 물결무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누나는 내 머리도 말아주겠다고 했다. 내가 의자 위에 걸터앉자, 누나가 엉덩이를 바짝 붙여 앉았다. 누나가 입술을 조금 내밀고 아주 신중한 손길로 내 머리를 헤집었다. 누나의 손이 오갈 때마다 머리카락이 콧잔등을 살살 간지럽혔다. 거울을 보니 어느새 머리가 빠글빠글해진 내가 있었다. 어색해서 동그랗게 말린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누나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훨씬 낫지?”
   “뭐.”
   어물쩍 대답하자 누나가 큰 소리로 웃었다.

   참관 수업에 입을 옷을 정할 차례였다. 엄마의 옷장은 오랫동안 열지 않아서 쿰쿰한 먼지 냄새가 났다. 하지만 냄새를 잘 맡아보면 어딘가 향기로운 구석이 있었다. 햇빛이 쨍한 날, 선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바다에서 한창 놀다 보면 나는 그런 냄새. 그건 엄마 냄새였다. 누나가 옷걸이에서 옷을 꺼내 침대 위에 늘어놓았다.
   베이지색 블라우스, 갈색 정장 바지, 남색 코트…… 누나가 던져놓은 옷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옷더미를 헤쳐 와이셔츠 하나를 꺼냈다. 자잘한 파란 꽃이 자수로 새겨진 셔츠였다. 엄마는 월요일만 되면 꼭 그 옷을 입고 나갔다. 단정하고 깨끗해서 누나한테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셔츠를 내밀자 누나는 그걸 보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셔츠는 답답해.”
   단정해 보이고 좋은데. 작은 소리로 혼잣말했지만 무시당했다. 누나는 한참 옷장을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옷 한 벌을 꺼내 들었다.
   “난 이거 입고 갈래.”
   그건 엄마가 아주 가끔 집에서만 입었던 추리닝이었다. 흰 삼선 무늬가 있는 검은 추리닝. 바지와 저지가 세트라서 싸게 산 옷이었다. 누나는 곧장 그걸 입어보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누나한테 딱 맞았다.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아주 잘 어울렸다.
   “그래도 학부모 참관 수업인데 추리닝은 좀 그렇지 않을까?”
   나는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가정통신문에 어떤 옷 입고 오라고 적혀 있었어?”
   누나가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럼 됐네.”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었다. 가정통신문엔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하니 참여해달란 말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채아네 삼촌은 늘 정장을 입고 왔다. 형광색 넥타이를 목 끝까지 조이고 교실 뒤에 앉아서 채아에게 손을 살래살래 흔들곤 했다. 하긴, 그건 채아네 삼촌이고, 우리 누나는 우리 누나다. 무엇보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오 분만 늦어도 지각이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기면서 잔뜩 널브러진 옷더미를 가리켰다.
   “이거 다 누나가 정리해. 참관 수업은 3교시부터니까 늦으면 안 돼!”
   누나에게 신신당부하고 서둘러 집을 뛰쳐나왔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엔 학교가 잔뜩 들떠 있었다. 선생님은 다른 날보다 훨씬 신경을 써서 옷을 입고 왔다. 반 애들이 아무리 짓궂은 장난을 쳐도 크게 혼을 내지 않았다. 그냥 내내 긴장한 얼굴로 ‘얘들아, 오늘은 질문이랑 대답 정말 열심히 해야 해.’ 단단히 당부할 뿐이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는 날엔 학부모 면담이 있어서 수업도 일찍 끝났다. 점심을 먹고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몇몇 애들은 학원을 빼먹고 PC방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책을 꺼내면서 뒷문을 흘끔거렸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차가워졌다. 어제 태어난 누나를 믿을 수 있을까? 머리를 볶고 추리닝을 입겠다는 누나를 말이다. 학교나 잘 찾아오면 다행일 텐데.
   “리치야, 오늘 너 누구 와?”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 보이는 채아가 시무룩한 소리로 속삭였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우리 삼촌은 안 오신대.”
   “왜?”
   “취업했거든. 일하느라 못 온대.”
   채아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삼촌이 영영 백수였으면 좋겠어.”
   채아의 마음을 이해한다. 매번 오던 사람이 갑자기 오지 않으면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나도 다 겪어봐서 아는 거였다. 나는 채아의 교과서에 새끼손톱만 한 쥐를 한 마리 그려주었다. 그리고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여 속삭였다.
   “얘가 네 교과서에 있는 점들이 먹고 싶대.”
   채아는 손끝으로 쥐 그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한참 고민하는가 싶더니 손톱으로 조금씩 교과서를 긁기 시작했다. 이 일에 몰두하면 시간이 금방 간다. 그날이 학부모 참관 수업 날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건 내 오랜 경험으로 인한 팁이었다. 수업 종이 치자 선생님이 칠판에 바른 글씨로 수학익힘책 문제 몇 개를 베껴 쓰기 시작했다. 열린 교실 뒷문으로 어슬렁거리며 학부모들이 들어왔다. 얇은 목폴라를 입은 승호네 할머니, 머리를 바짝 뒤로 넘긴 건이 아빠, 블라우스 리본을 하늘거리며 걷는 주하네 엄마와 구두에 윤을 낸 준희 이모도 있었다.
   그사이에 누나가 있었다. 위아래로 검은색 추리닝을 입은 우리 누나가. 누나는 키가 커서 단숨에 눈에 띄었다. 누구야? 반 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가운데에 있는 학부모용 의자에 걸터앉았다.
   “자, 어제 우리가 방정식을 배웠죠. 오늘은 이걸 복습합시다. 네모 곱하기 12는 36입니다. 네모는 무엇일까요? 혹시 발표할 학생 있나요?”
   반 애들은 눈을 껌벅이면서 서로를 쳐다봤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선생님이 두 번 질문하기 전에 누군가는 손을 들어서 정답을 말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건 눈치싸움이었다.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관객인 눈치싸움. 원래 이런 건 채아가 잘했다. 지금은 배고픈 쥐에게 마침표를 긁어주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바로 그때, 누나가 교실 뒤에서 손을 치켜들었다.
   “정답은 3입니다. 3 곱하기 12는 36이니까요.”
   반 애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누나는 일어나서 칠판에 적힌 문제들도 풀어나갔다. 1번에 3, 2번에 12, 3번에 37. 풀이도 안 적고 순식간에 답을 적었다. 나는 익힘책 뒷장을 펼쳐서 답을 훔쳐보았다. 싹 다 정답이었다. 선생님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칠판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어…… 좋아요. 모두 만점자를 향해 박수를 칩시다.”
   박수가 우레처럼 쏟아졌다. 누나는 으쓱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잠깐 누나와 시선이 오간 것도 같았다. 선생님은 완전히 수업을 망친 표정으로 교과서를 뒤적거렸다.

   다음 시간은 체육이었다.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체조를 하고 줄넘기를 꺼냈다. 갈고 닦은 짝 줄넘기를 학부모 앞에 선보일 시간이었다. 원래 내 짝은 채아였다. 하지만 채아는 운동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애들과 짝 줄넘기를 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 애들은 어딘가 통하는 구석이 없어서 열 번도 못 넘고 발이 꼬여 버리기 일쑤였다.
   줄넘기 줄을 발에 걸치고 스탠드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어른들을 쳐다봤다. 참관 수업이라고 따라 나오긴 했지만 운동장에 걸맞은 옷차림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짝다리를 짚고 있었다. 준희 이모는 아예 구두 한 짝을 벗어 뒤집었다. 안에서 모래가 우수수 쏟아졌다. 때마침 운동장에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어른들이 잽싸게 얼굴을 가렸다. 그렇지만 작은 모래와 낙엽들이 한순간에 어른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사이에서 먼지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태평한 표정으로 바람을 맞는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팔을 뻗어 크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손을 모아 쩌렁쩌렁 소리쳤다.
   “야, 강리치! 그거 나랑 해.”
   누나가 운동화를 직직 끌며 내게 뛰어왔다. 별안간 누나의 냄새가 훅 끼쳤다. 햇빛 쨍한 날 선크림을 바르고 바다에서 한창 놀다 보면 나는 그 냄새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줄넘기를 나눠 들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해온 일처럼 죽이 잘 맞았다. 누나는 구불거리는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우리는 동시에 발을 굴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씩 줄에 다리가 걸린 애들이 나타났다. 그 애들은 흙바닥에 줄넘기를 내던지고 쪼그려 앉았다. 우린 서로가 한 몸인 것처럼, 줄넘기와도 하나인 것처럼 줄을 넘었다. 횟수가 갓 백 번을 넘어가자 누군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물고 누나와 내가 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먼지투성이가 된 어른들도 다리를 고쳐 짚으며 누나와 날 바라봤다. 반 애들이 전부 운동장에 주저앉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뛰었다. 등짝이 땀으로 젖어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누나를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누나의 한쪽 입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정말 멋진 미소였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끝나자마자 반 애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리치야, 누구야? 너네 엄마야?”
   “무슨 엄마가 추리닝을 입고 학교에 와. 이모겠지.”
   “우리 이모는 맨날 구두 신고 오는데?”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애들 사이로 누나가 나타났다. 누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른들을 따라서 교무실로 갔다가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어른들과 상담하는 건 질색이야.”
   누나가 당장에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만 몰래 도망가버리자.”
   속삭이면서 뻗은 누나의 손을 꽉 붙잡았다. 손바닥이 축축하고 따뜻했다. 나는 여전히 눈을 빛내고 쳐다보는 애들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냥 내 누나야.”
   채아가 달려와서 교과서를 내밀었다. 마침표를 죄다 긁어놓은 교과서였다. 마지막 페이지에 배가 불룩해진 쥐가 트림을 하며 누워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걸 가리키며 채아가 귓속말했다. 귓바퀴에 입술이 언뜻언뜻 닿았다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채아가 삐뚤빼뚤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누나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았다. 내 만화를 본 적 없는 사람은 들어도 모를 얘기였다. 나는 대답 대신 누나의 품에 실내화 가방을 안겨 주었다.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누나에게 물어보았다.
   “누나, 집에 가면 엄마가 와 있을까?”
   누나가 실내화 가방을 크게 휘두르면서 대답했다.
   “글쎄, 가 봐야 알지 않을까?”
   나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누나가 발걸음을 맞춰주었다.
   어쩌면 엄마는 아직 집에 안 왔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집에 오는 방법도 잠깐 잊어버린 거다. 하지만 난 얼마든지 기다릴 자신이 있었다. 엄마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올 거니까. 어느 날 갑자기 뭐든 할 수 있는 우리 누나를 만들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셋이 살겠지. 아마 누나는 엄마의 사인도 기가 막히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나도 할 일이 많이 줄어들 거다. 왠지 오늘은 일기가 쓰고 싶었다. 날씨는 맑았다고 치고, 제목을 이렇게 지을 생각이었다.
   ‘학누나 참관 수업’
   어디선가 회오리바람이 불어왔다. 누나와 내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동시에 위로 솟구쳤다. 꼭 닮은 모습이었다.

장은서

어린이보단 친구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창작의 고통보다 창작의 재미가 좋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뛰고 넘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어른들은 알아서 뛰시든가 말든가). 요즘은 코로나19 이후를 살아가는 친구들과 동화에 대해 생각합니다.

2020/07/28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