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토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생존배낭부터 꾸렸다.
   “팔뚝 보호대랑 물병……”
   엄마 아빠 배낭까지 미리 챙겨둘 생각이었다.
   오늘은 유니토네 가족이 오랜만에 저녁 나들이를 하는 날이다. 유니토의 열두 번째 생일을 맞아 도시의 안전지대로 놀러 가기로 한 것이다. 해가 지면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들이 들끓기 때문에 시민안전청에서는 해 지는 시각부터 다음날 해 뜨는 시각까지 시민들의 외출을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념일을 맞은 가족이나 위독한 환자의 경우는 특별히 외출 허가를 내주었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사람 머릿수대로 생존배낭을 챙긴 다음, 목적지까지 반드시 안전차량으로 이동할 것.
   유니토가 배낭을 줄줄이 늘어놓고 짐을 싸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마도 엄마는 안전지대에 있는 식당을 예약해 두었을 것이다. 열 살 생일 때는 중국식 오리 요리를 먹었고, 열한 살 생일에는 프랑스요리 전문점에서 라따뚜이를 먹었다. 이번에는 어디서 뭘 먹을지 모르지만 보나마나 근사한 저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유니토는 저녁메뉴보다 안전지대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더 가슴이 뛰었다. 안전지대는 도시 중심부에 있는 동네로, 높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좀비들은 얼씬도 못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안전지대에는 새벽까지 시장이 열리고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밤늦도록 시장통을 쏘다니며 생일선물을 고를 생각에 유니토는 벌써부터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엄마는 아침에 약속한 대로 5시에 퇴근했다. 멋진 안전차량까지 빌려서 말이다. 안전차량은 좀비방어 시스템이 갖춰진 대형 지프차였다.
   “엄마, 고마워요!”
   유니토는 엄마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도 안전차량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앞 유리창은 방탄유리로 돼 있었고, 나머지 창문들에는 격자무늬 방범창이 덧대져 있었다. 바퀴 역시 보통 차들보다 크고 두꺼웠다. 유니토는 생존배낭 세 개를 안전차량에 던져 넣었다. 당장이라도 출발하고 싶었지만 아빠를 기다려야 했다.
   미네라톤 광산에서 일하는 아빠는 6시를 넘겨서야 돌아왔다. 오늘도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말이다.
   “얼른 씻고 옷 갈아입어요. 이러다 해 지겠어요.”
   엄마가 서둘러 아빠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마침내 온 가족이 안전차량에 올라탔을 때, 해는 서쪽 산마루에 불그스름한 정수리만 내놓고 있었다. 거리엔 벌써 인적이 끊겼고 오가는 차도 거의 없었다.
   사거리 약국 앞을 지나는데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찻길로 툭 튀어나왔다. 엄마는 급히 핸들을 꺾어 차를 세웠다.
   “어휴, 놀래라! 저놈의 고양이!”
   그때였다. 도톰한 카디건을 입은 할머니 한 분이 고양이를 쫓아 찻길로 나왔다.
   “카일라 할머니예요!”
   유니토는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빠가 팔을 뻗어 유니토를 눌러 앉혔다.
   “가만있어!”
   아빠는 심각한 얼굴로 차창 밖을 보았다. 여기저기서 좀비들이 비트적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카일라 할머니는 몸을 낮추고서 계속 고양이를 쫓아가고 있었다. 동네 공원 쪽에서 걸어 나오던 좀비가 할머니를 보고야 말았다.
   “할머니가 위험해요. 차에 태워 주세요, 네?”
   하지만 엄마는 차에 시동을 걸며 냉랭하게 대꾸했다.
   “시민 안전법 모르니? 외출 금지 시간에 누굴 돕겠다고 나섰다간 함께 처벌 받아.”
   유니토는 차 뒤로 달려가서 카일라 할머니를 보았다. 좀비들이 할머니를 물어뜯고 있었다. 어느새 차는 극장건물 모퉁이를 돌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고 할머니의 모습도 사라졌다.
   카일라 할머니는 유니토랑 말이 통하던 친구였다. 다른 어른들은 유니토만 보면 죄다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들어가렴.’ 하지만 카일라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때그때 달랐다. 튤립 알뿌리를 나눠주겠다거나, 고양이가 털갈이를 시작해서 골치라거나, 간밤에 신발 끈이 풀린 좀비를 봤다거나. 유니토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는 유니토를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좀비로 변해버렸으니까. 유니토는 배낭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1년에 하루뿐인 생일을 울면서 보낼 셈이냐? 자, 생일 용돈이다. 듣자 하니 안전지대 만물상 골목에 새로운 물건이 많이 들어왔다더구나.”
   아빠는 유니토에게 100미네라톤을 주었다. 유니토의 세 달치 용돈보다 많은 돈이었다.
   차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내달렸고 유니토도 차츰 기분이 나아졌다.
   30분쯤 뒤 안전차량은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소 근처에도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안전차량은 사람이 내리지 않고도 자동주유가 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저쪽 자판기 앞에 있는 사람은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이었다. 유니토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고르고 있었다. 좀비들이 자판기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유니토는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였다. 곧 좀비들의 저녁식사가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유니토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여자아이가 좀비들에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댕강댕강! 순식간에 좀비들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처음 보는 광경에 유니토는 저도 모르게 창문을 열어젖혔다. 방범창 너머로 유니토와 칼잡이의 눈이 마주쳤다.
   “쳇, 어딜 가도 구경꾼들밖에 없다니까!”
   칼잡이는 칼집에 칼을 도로 꽂고는 휙 돌아섰다. 칼잡이가 멘 배낭에는 한쪽 귀가 잘려나간 강아지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강아지는 유니토가 반가운지 혀를 날름거리며 버둥거렸지만 이내 주인과 함께 어둔 찻길로 사라졌다.
   그 사이 주유가 끝나자 안전차량은 다시 안전지대로 향했다. 주유소 앞 골목을 빠져나가 고속도로로 들어서는데 저 앞에 칼잡이가 보였다.
   “아까 걔예요. 안전지대 쪽으로 가나 봐요.”
   하지만 엄마 아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안전차량은 순식간에 칼잡이를 앞질렀다.
   20분쯤 더 달려간 끝에 유니토네 가족은 드디어 안전지대에 도착했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만물상 거리를 마주하자 유니토도 오늘이 생일이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엄마는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만물상에서 황금색 점퍼를 샀다. 값이 무려 120미네라톤에 달했지만 오늘은 엄마에게도 특별한 선물이 필요한 날이었다. 유니토네 가족은 1년에 딱 하루, 유니토의 생일에만 안전지대 나들이를 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도 생일날 갖고 싶었던 걸 생각해 두었다가 유니토의 생일에 함께 사곤 했다.
   “좀비 놈들 이빨에도 뚫리지 않는 특수 재질이래.”
   엄마는 새 점퍼가 어지간히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빠는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박힌 곡괭이를 만지작거렸다. 광부인 아빠는 늘 곡괭이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아빠가 고른 곡괭이는 유니토네 형편으로는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이런 곡괭이 한 자루만 있으면 미네라톤을 더 많이 캘 수 있을 텐데 아쉽구나. 안전지대에 집을 지으려면 미네라톤을 한참 더 캐야 하는데 말이다.”
   아빠가 아쉬움 그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전지대에 집을 짓는다는 건 유니토네 마을 사람 모두의 꿈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지금까지 모은 미네라톤으로는 안전지대의 벽돌과 철근을 조금밖에 살 수가 없었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자재들은 안전지대에서도 가장 비싼 물품이었다. 아빠는 곡괭이 대신 작은 드릴을 고른 다음 물건 값을 냈다.
   “유니토, 너도 골라야지.”
   아빠가 드릴을 배낭에 넣으며 말했다. 유니토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뛰는 속도를 높여주는 파워부츠도 맘에 들었고, 좀비들을 피해 3분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플라잉보드도 멋졌다. 파워부츠는 80미네라톤이었고 플라잉보드는 120미네라톤이었다. 그 동안 모아둔 용돈에 오늘 아빠한테 받은 생일용돈까지 합치면 살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유니토는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만물상 두 곳을 더 가 보았지만 유니토는 선물을 사지 못했고, 결국 식당 예약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러 갔다. 엄마가 예약해 둔 식당은 바비큐 전문점이었다. 식당 가운데 화덕이 있고, 그 위에 통돼지가 돌아가며 구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기는 유니토가 기대한 맛이 아니었다. 환한 불빛, 좀비 대신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목, 유니토가 1년 내내 고대하던 것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뭔가가 허전했다.
   유니토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식당을 나왔다. 세 사람은 다시 유니토의 선물을 사러 갔다. 만물상 세 곳을 더 들른 뒤 아빠가 야단했다.
   “대체 뭘 찾는데 이래?”
   “안전지대 만물상에 없는 물건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단 것만 알아둬라.”
   엄마도 거들고 나섰다.
   시장 골목 끄트머리 마지막 만물상에도 유니토 맘에 드는 게 없었다. 그 너머에는 안전지대의 주택가였다. 유니토는 동네를 보다 말고 돌아섰다. 만물상들을 다시 훑어나갈 생각이었다. 안전지대 집 한 채 값만큼 비싸다는 투명망토, 좀비가 다가오면 저절로 노래하는 로봇 카나리아, 집 둘레에 바르는 좀비용 초강력 끈끈이 타일…… 엄마 말대로 시장통은 미네라톤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뭔가가 없었다. 유니토의 맘에 꼭 드는 선물 말이다.
   엄마 아빠는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조금씩 걸음이 빨라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충 아무거나 집어서 돌아갈 판이었다. 유니토가 맘에도 없는 로봇 카나리아를 만지작거릴 때였다. 웬 할아버지 한 분이 강아지를 끌고 만물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유니토는 아까 주유소에서 보았던 강아지를 떠올렸다. 물론 강아지의 주인인 칼잡이도 함께 말이다. 그제야 유니토는 만물상 골목이 허전해 보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기서 파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좀비를 피하고, 좀비한테서 달아나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좀비와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무기가 없었다. 이를테면 아까 칼잡이가 휘두르던 긴 칼 같은 것 말이다.
   “칼이 갖고 싶어요.”
   “칼은 뭐하게?”
   엄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좀비랑 싸울 때 필요하잖아요.”
   “좀비랑 뭐 하러 싸워?”
   이번에는 아빠가 물었다.
   “좀비들이 달려드니까요.”
   유니토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만물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장님, 칼 하나 주세요. 제 팔만큼 긴 걸로요.”
   “칼은 뭐하게?”
    만물상 사장도 엄마와 똑같은 소리를 했다. 좀비와 싸울 때 쓸 거라고 대답하려다 말고 유니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 말했다간 좀비랑 뭐 하러 싸우느냐고 되물을 게 뻔했다. 유니토는 꾀를 내었다.
   “통돼지 바비큐 자르는 데 쓰려고요. 커다랗고 뜨거운 고깃덩어리는 긴 칼로 잘라야 하거든요.”
   그러자 만물상 사장은 선반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한참 뒤 사장은 칼집까지 갖춰진 긴 칼을 꺼내주었다.
   “110 미네라톤이다.”
   유니토는 잽싸게 값을 치르고 칼을 받아들었다. 드디어 생일 선물을 고른 것이다.
   안전지대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는 코를 골며 잠들었고 엄마는 조용히 차를 몰았다. 유니토는 가슴이 뛰었다. 제 손에 칼이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았다. 아까 보았던 주유소에서 멀지 않은 마을을 지날 때였다. 마을 광장에 좀비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좀비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건 공격할 대상이 있다는 뜻이었다. 유니토는 카일라 할머니가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그 순간 좀비들 틈에서 뭔가가 번쩍 하더니 좀비의 머리통 하나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칼이었다!
   “엄마! 잠깐만요! 저기 그 애가 있어요. 칼잡이요!”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야. 괜히 끼어들었다간 너까지 좀비가 될 거야. 살아남는다 해도 시민안전청의 처벌을 받아야 해.”
   엄마는 차를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유니토는 칼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세계에 관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기억해 낸 것이다. 여기는 뭐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엄마에게 허락을 구하면 엄마가 반대를 할 수 있지만, 유니토 스스로 마음을 굳히면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유니토에게서 칼을 빼앗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책임은 따랐다. 혹시라도 시민안전청에서 금지하는 일을 했다간 벌금으로 미네라톤을 내거나 며칠 동안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내릴 거예요!”
   유니토가 소리치자 엄마가 급히 차를 세웠다. 그 바람에 아빠도 잠에서 깼다.
   “우린 널 도와주지 않을 거다, 유니토. 그랬다간 우리까지 처벌을 받을 테니까.”
   엄마가 말하자 아빠도 맞장구쳤다.
   “그럼. 네 엄마랑 난 절대 시민안전법을 어기지 않아.”
   “알아요.”
   유니토는 엄마 아빠의 뺨에 입을 맞춘 뒤, 차에서 내렸다. 안전차량은 찻길에 유니토를 남겨두고 길고 먼 어둠 속으로 떠나갔다.
   유니토는 칼을 움켜쥐고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같이 싸우면 이길 것도 같았다.
   “크하하하하학!”
   좀비 하나가 유니토에게 달려들었다. 유니토는 칼잡이가 주유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좀비의 목을 노렸다. 칼날에 잘려나간 좀비의 목이 저만치 바닥에 뒹굴었다. 그 기척에 좀비들 여럿이 유니토를 돌아보았다. 칼잡이가 좀비 하나를 걷어차고는 유니토 쪽으로 뛰어왔다. 배낭 속의 강아지가 유니토를 보고는 풀썩거렸다.
   “저기 천사 조각상 보이지? 그 뒷길로 가야 돼.”
   칼잡이가 외쳤다.
   “왜?”
   “살고 싶으면 따라오기나 해.”
   칼잡이가 좀비들의 목을 치며 길을 냈다. 유니토도 부지런히 칼을 휘두르며 칼잡이를 쫓아갔다. 하지만 아기 좀비 하나가 유니토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아악!”
   유니토의 비명이 밤공기를 갈랐다. 칼잡이는 급히 아기 좀비를 떼어낸 뒤 유니토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 물렸어. 이제 곧 좀비로 변할 거야! 감염됐다고!”
   “바다까지만 가면 돼.”
   “바다? 여긴 바다가 없어.”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칼잡이는 칠흑같이 어두운 길로 유니토를 데려갔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저만치 바다가 있었다. 유니토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분명 바다였다. 달빛이 내려앉은 바다였다!
   “여긴 ‘치유의 바다’야. 이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좀비한테 물린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 그리고 네 원래 모습과 기억도 되찾을 수 있어.”
   “원래 모습이라니?”
   칼잡이는 대답 대신 유니토를 파도 위로 떠밀었다.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던 유니토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을 때 칼잡이가 돌연 울음을 터뜨렸다.
   “역시 너였어! 드디어 찾았다!”
   유니토는 칼잡이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그 아이는…… 친구 혜미였다. 그리고 방금 혜미의 배낭에서 뛰쳐나와 콩콩 날뛰는 강아지는 탱이였다. 혜미랑 둘이서 돌보던 유기견 탱이.
   “탱이야, 혜미야……”
   “윤희토!”
   혜미가 달려와서 유니토를 와락 껴안았다. 윤희토는 유니토의 진짜 이름이었고, 유니토는 희토가 만든 닉네임이었다.
   “바보야, 너 갇혔었어……”
   혜미는 그동안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윤희토는 가상현실게임 <좀비 마을>에 접속했다가 게임기의 오류로 게임 세상에 갇혔던 것이다. 그 뒤로 희토는 인간이던 시절의 기억을 잃고 게임 세상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회사원 엄마와 광부 아빠의 아들로 말이다. 희토를 찾기 위해 경찰, 희토네 엄마 등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접속했지만 다들 실패하고 말았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수만 명의 게임 캐릭터들 중에 누가 희토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희토가 게임에 접속할 당시의 닉네임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기계 오류로 닉네임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또 희토가 자신의 캐릭터로 광부를 택했는지, 동네 노인을 택했는지, 만물상 장사꾼을 택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게임기가 언제 다시 오류를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게임 세상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희토가 게임에 갇힌 지 일주일째 되던 날 혜미가 나섰다. 탱이까지 데리고 말이다.
   혜미 역시 희토를 찾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희토가 자기와 탱이를 찾아낼 거라 믿었다.
   1년 전 혜미는 아파트 뒷길에서 유기견을 발견했다. 한쪽 귀가 잘려나간 강아지가 장미 덤불 사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학대당하고 버려진 게 틀림없었다. 그날부터 혜미는 사람들 몰래 강아지를 돌보았다. 며칠 만에 기운을 차린 강아지는 혜미만 보면 탱탱볼처럼 통통 뛰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못됐기로 소문난 고등학생 X가 탱이를 발견하고 말았다. X는 탱이의 머리에 탄산음료를 쏟아붓고, 좋다고 통통 튀는 탱이를 마구 걷어찼다. 뒤늦게 도착한 혜미가 막아섰지만 X는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달려온 게 윤희토였다. 윤희토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X를 울타리 쪽으로 떠밀어버리고는 탱이를 껴안았다. 그날 이후로 혜미와 희토는 친구가 되었고, 둘이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집에서 탱이를 키웠다.
   혜미는 그런 희토를 믿었던 것이다. 아무리 가상현실에 갇혔어도 윤희토라면 누군가를 도우러 달려올 테니까. 게임 캐릭터들은 게임 규칙대로만 움직이지만 희토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해도 윤희토라면 단순한 게임 캐릭터와는 다른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래서 혜미는 칼잡이가 되었다.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싸움을 벌이며 희토를 기다렸다. 좀비에게 물리면 치유의 바다로 가서 상처를 치료한 뒤 다시 돌아가길 반복했던 것이다.
   혜미의 긴 설명을 듣고 나자 희토는 비로소 좀비 마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좀비들과 싸우지 않는 건 게임의 규칙 때문이었다. <좀비 마을>은 애초에 좀비와 싸우는 게임이 아니었다. 미네라톤을 모아서 차츰차츰 안전지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게임이었다.
   “저기 바위 보이지? 거기까지만 걸어가면 게임 밖으로 나갈 수 있어.”
   혜미는 탱이를 배낭에 집어넣은 다음, 희토를 잡아끌었다.
   “게임 설계자들이 너처럼 게임 세상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내려고 새 출구를 만들었어.”
   그러자 희토가 걸음을 멈추었다.
   “나 말고도 갇힌 사람이 또 있어?”
   “응. 그날 너랑 같은 게임장에서 접속했던 사람들은 다 갇혔어.”
   희토는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자기처럼 게임에 갇힌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게임의 규칙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 늘 남다른 인사를 건네던 사람…… 카일라 할머니!
   “그 중 하나를 알아. 당장 데려와야겠어. 물론 좀비 상태라서 순순히 따라오지는 않겠지만.”
   희토는 해변으로 달려 나가 칼을 주워들었다. 혜미는 픽 웃음이 났다. 너무나 윤희토다운 선택이어서 말릴 수가 없었다. 혜미도 칼을 들었다.
   “가자!”
   둘은 좀비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배낭 속의 탱이가 왕왕 짖었다.

최영희

어딜 가나 아픔이 발에 채는 시대입니다. 타인을 향한 연민과 관심도 빛나는 개성이라 믿습니다. 남다른 헤어스타일이나 차림새가 아니어도,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훌쩍 다가가는 용기만으로도 반짝거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담아 유니토를 세상에 내보냅니다.

2019/03/26
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