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눈길을 걸었다. 푸욱! 푹! 쌓인 눈은 발목을 삼켜 물고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산책하면 먹이를 찾아 내려온 동물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 말을 믿었지만, 동물 발자국 하나 보지 못했다.
   아침 산책은 할아버지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 꼭 하기로 한 약속이었다. 도시에선 거의 걷지 않았다. 걸을 일이 없었다. 건강을 위한 산책인데 지금 난 죽겠다. 아까부터 살살 아파오던 배가 쿡쿡 쑤셔대었다.
   “할아버지, 나 급해요!”
   한참 앞서가던 할아버지가 뒤돌아봤다. 꽤 오래 눈길을 걸었는데, 지친 표정 하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손으로 배를 달랬다.
   “빈아! 아무 데나 싸도 돼!”
    할아버지가 나무 뒤편을 가리켰다. 앙상한 가지는 아무것도 가려 주지 못할 것 같았다.
   “저기서요?”
   지붕 없는 하늘 아래에서는 처음이었다.
   “뭐 어때? 우리 몸은 모두 다 자연의 일부야. 지구에게 돌려줘.”
   돌려주라고? 지구든 누구든 갖고 싶다면 얼마든지 주고 싶다. 하지만 뒤처리는 어떡하지? 따뜻한 비데는 기대도 안 한다. 쿡쿡! 배를 찌르는 터울이 점점 빨라졌다.
   “눈 있잖아.”
   할아버지가 눈을 한 움큼 들어 올렸다. 상상만으로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걸로 닦고 씻고, 그리고 꼭 덮어! 안 그러면 냄새 맡고 곰 나온다.”
   “곰요?”
   설마? 순간 긴장이 되었다. 곰은 겨울잠을 잘 텐데?
   “여긴 그런 곳이야.”
   거짓말 같은데, 표정은 또 왜 저렇게 진지할까? 배가 또 찌릿! 위험하다. 일단 빨리 자리부터 찾자!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뛰었다. 작은 둔덕 너머 나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엔 눈과 나무뿐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창피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끄응!”
   나온다고? 길고 굵은 나무들이 숲을 빼곡히 이룬 곳이었다. 진짜 곰이 나올 만도 했다. 겨우 한숨을 돌리자 눈앞에 숲이 보였다. 할아버지가 이곳처럼 잘 보존된 자연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했다. 통일되기 전, 오랜 세월을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한 덕분이다. 아픈 역사를 증명하는 곳이면서 또 다른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통일된 후에도 인간의 통제를 통해 숲은 보호받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곳과 가장 가까운 마을에 산다.
   “휴우”
   무사히 큰일을 해냈다. 숲이 아름답다. 매섭던 바람이 그새 시원해졌다. 엉덩이가 차가움에 얼얼했지만, 눈은 꽤 쓸모가 있었다. 바지를 추스르고 빨개진 손을 겨드랑이에 넣어 달래주었다.
   ‘파바밧’
   그때 낯선 소리가 들렸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나무 뒤편에서 움직였다.
   ‘곰?’
   눈 속으로 푹 몸을 낮추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앞을 살폈다.
   ‘헉!’
   덩치가 컸다. ‘크으렁 컹컹’ 낮고 굵은 코 울림소리가 들렸다. 뒷모습이 새끼 하마처럼 보였다. 하마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럼 뭐지? 실룩거리는 동근 엉덩이는 분홍빛 피부였다. 엉덩이 한가운데 덩치에 비교해 짧고 얇은 꼬리가 살랑거렸다. 벌거벗은 곰은 아닐 테니 다행이었다. 그럼 뭐지?
   그때 낯선 동물이 몸을 돌려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둥근 얼굴에 주름 잡힌 납작한 코, 시원하게 뚫린 콧구멍 두 개. 풍선처럼 땡그란 몸은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었다.
   ‘뭐였더라? 되…기? 되린? 돼……기?’
   이상한 이름이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멸종된 생물 중에 본 기억이 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머릿속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PG 안경을 쓰고 올걸! 정보에 대해 아쉬움이 들었다.
   ‘퍼벅 퍽퍼억’
   낯선 동물은 납작한 주둥이로 땅을 파내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나는 눈 위에 바짝 엎드려 뒤로 움직였다. 일단 할아버지에게 알려야 했다. 서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몸을 일으켜 뛰었다.
   “할아버지! 저기, 저기!”
   나는 숨죽인 목소리로 말하며 손짓을 했다.
   “거기 뭐가 있어?”
   할아버지는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낮추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할아버지가 나무숲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따라가 볼까? 생각만 가득하고 다리는 움직일 줄 몰랐다.
   한동안 숲은 조용했다.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돼…… 돼지다! 조심해.”
   할아버지 목소리에 정적이 깨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덩치가 먼지처럼 눈발을 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뚝! 뚜둑 뚝! 앞길을 막는 나뭇가지들이 꺾여 사방으로 날아갔다. 돼지가 달려오는 방향 앞에 내가 서 있었다. 피해야 했지만, 순간 몸이 얼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돼지가 내 앞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앗! 눈 속에 얼굴을 처박았다. 돼지는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돼지?’
   그래 돼지였다. 얼굴에 차가운 눈을 뒤집어쓰고서야 사진과 영상으로 봤던 돼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멸종되기 전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동물. 고기 맛도 최고라고 들었던 바로 그 돼지였다.
   “할아버지, 돼지 맞죠?”
   흥분해서 목소리가 찢어졌다. 다가온 할아버지 얼굴이 빨갰다.
   “빈! 내려가자. 어서.”
   할아버지의 굳은 얼굴은 처음이었다. 늘 여유롭던 할아버지가 급하게 산을 뛰어내려갔다. 따라가기 힘든 속도였다. 80이 넘은 할아버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마을을 향해 뛰었다. 중간중간 온몸으로 눈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몹시도 서두르는 이유는 돼지 때문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멈춰 선 것은 마을 입구가 보이는 산기슭까지 내려왔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나를 잠깐 뒤돌아보고는 다시 마을로 향했다.
   “헉헉헉”
   지친 나는 눈 위에 털썩 주저앉아 산 아래를 내려보았다. 흰 모자처럼 두툼한 눈을 덮어쓴 지붕들이 보였다.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은 집 굴뚝마다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무로 불을 피워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뭐 이런 곳이 있지 싶었다. 여긴 시간이 멈춘 듯 과거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올 때 넘었던 산 하나마다 10년씩 과거로 넘어온 듯했다. 그래서 돼지를 만났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시 마을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PG 안경부터 찾아 썼다. 이제 좀 안심이 되었다.
   ‘땡땡땡’
   종소리에 공터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무리의 어른들. 모두 할아버지와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는 산 생활에 검게 그을린 얼굴들이 건강한 청년들 같아 보였다.
   “돼지를 봤어! 분홍빛 집돼지였다고.”
   할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는 금방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묻혀버렸다. 누군가 자기는 돼지 발자국을 봤다고, 또 누군가는 새끼를 봤다며 경험담을 쏟아 내었다.
   “진짜 돼지 맞아요?”
   모자를 눌러쓴 제일 젊은 노씨 아저씨가 물었다.
   “우리 손주가 처음 발견했고, 나도 가서 확인했네. 분명 진짜 돼지였어.”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뒤쪽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오’ 짧은 감탄 소리가 나왔다. 흥분해서 서로 얼싸안고 손뼉까지 쳤다.
   이내 할아버지와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들은 곧 흩어져 돌아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다시 나타났다. 그들 손에는 그물망, 굵은 밧줄, 양은 뚜껑, 깡통들이 들려있었다. 할아버지가 앞장서고 모두 그 뒤를 따라 다시 산 쪽으로 향했다.
   “뭘 하려는 거예요?”
   산 중턱에 올라섰을 때, 할아버지 코트를 붙잡고 물었다.
   “오래 걸릴 거야. 춥고 위험하니까, 넌 따라오지 마! 집에 가서 아궁이 불이나 확인해라. 할 수 있지?”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나를 막아 세웠다.
   “나도 가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내 말은 못 들은 척, 빠르게 사람들 무리에 합류했다.
   사람들이 돼지를 봤던 숲 쪽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무에 기대어 섰다. 눈 위에 여러 개의 발자국이 길처럼 숲으로 이어졌다. 쫓아갈까? 집으로 돌아가기엔 이 역사적 상황에 너무 멀어지는 느낌이었고, 쫓아가자니 사실 돼지가 무섭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중간쯤인 이곳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겨울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었지만, 가만히 있으려니 추위가 몰려왔다. PG 안경 화면에 영하 10도가 표시되었다. 화면이 바뀌더니 내 체온과 심장 박동 그래프를 띄워 몸 상태를 알려 주었다. 아직 버틸 만했다. 팔짱을 끼고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거렸다.
   멀리 산 너머에서 사람들이 외쳐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간중간 “뛰어!” “저쪽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도 있었다. 조용하던 겨울 산이 잠에서 깨어난 듯 웅성거림을 토해내었다.
   ‘까강 깡깡’ ‘워어 훠이’
   깡통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쫓고 쫓기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쪽으로 오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 소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해가 구름에 가리더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나둘 내리기 시작한 눈이 금방 굵어졌다. 더 버티려 했지만, 안경 화면에 불안정 신호가 떴다. 집으로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으이 추워!”
   집에 오자마자 아궁이 불부터 확인했다. 장작이 다 타서 꺼져가고 있었다. 배운 대로 쇠꼬챙이로 불을 들쑤셨다. 불이 살아나며 뜨거운 기운이 훅! 밀려왔다.
   “이건 좋다!”
   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따뜻하다. 불을 마주하는 것도 처음이다. 뜨거움이 직접 살에 닿아 아파 왔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은 신기한 일과 귀찮은 일투성이였다. 아궁이 한쪽에 알 수 없는 제목의 전문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내겐 종이책도 신기했다. “여기선 책보다 불이 더 중요해!” 불 피울 때 좋다며 책을 북! 찢어 넣던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에게 할아버지가 생명에 관한 연구를 하던 박사라는 얘길 들었다. 직접 만나 보니 삽, 곡괭이, 각종 농기구와 창고에 가득한 고구마, 감자, 여러 가지 곡식들까지. 농부 박사님이 더 잘 어울렸다.
   “아 귀찮아.”
   장작이 더 필요했다. 집 뒤편 장작더미 있는 곳으로 향했다.
   “꾹 꾸구”
   장작을 바구니에 담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집 뒤 텃밭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동물이다! 순간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집과 창고 샛길을 따라 올라갔다. 수확이 끝난 고구마밭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흰 눈밭에 갈색 흙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구석에서 뭔가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헛!”
   돼지였다. 돼지는 덩치가 그리 크지 않은 거로 보아 아직 어린 것 같았다. 먹을 것을 찾느라 바빠 보였다. 얼른 창고로 달려갔다. 감자와 고구마를 들고 밭으로 돌아왔다.
   “야!”
   고구마 하나를 들고 녀석을 불렀다. 땅을 파헤치던 녀석이 고개를 들더니 코를 실룩거렸다. 훅훅! 위협하듯 콧김을 쏟아내는 녀석을 피해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툭! 투둑!’
   녀석과 나 사이 중간에 고구마를 던졌다. 흰 눈 속으로 푹 빠져 고구마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주둥이를 쭉 내밀고 냄새를 맡았다. 들고 있던 감자와 고구마를 다 던져주고 나는 조금 더 물러났다. 녀석은 배가 무척 고픈 모양이었다. 잠깐 망설이더니 천천히 다가와 눈 속에 고구마를 찾아 먹었다.
   ‘와작와작 쩌업 쩝쩝’
   주둥이를 엇갈리며 입안 가득 고구마를 씹어대었다. 침이 뚝뚝 떨어져 좀 더러워 보이긴 했지만, 둥근 얼굴에 작은 눈이 착해 보였다. 무섭다거나 두려움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한발 한발 다가갔다. 먹을 것에 정신이 팔린 돼지는 나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새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녀석은 등을 돌리고 작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홍빛 엉덩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닿았다! ‘푸훗!’ 녀석은 콧김을 쏟아낼 뿐,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사람을 처음 보는지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 까칠한 털이 느껴졌다. 하지만 금방 손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빈아, 물러서.”
   언제 왔는지 할아버지가 뒤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밭을 가로질러 돼지에게 달려들었다. ‘파밧’ 돼지가 놀라서 몸을 휙 돌렸다.
   “안 돼. 할아버지!”
   ‘꽤액’
   할아버지가 돼지를 덮쳐 품에 안았다. 돼지는 할아버지를 끌고 밭을 달렸다. 작은 덩치에 힘은 엄청났다. 녀석은 할아버지를 눈밭에 내동댕이치고 산 쪽으로 뛰었다. 하지만 밭 주위에 쳐놓은 그물에 걸려 바닥을 뒹굴었다.
   ‘꽤애액 켁켁’
   버둥거릴수록 그물이 여러 겹 뒤엉켰다.
   “돼지다!”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금방 마을 사람들이 뛰어왔다. 두 명이 달려들어 돼지와 한참 힘겨루기를 했다. 결국, 돼지는 앞발이 꽁꽁 묶인 채 뒷다리만 허공을 찼다. 계속 거친 숨을 몰아쉬던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날 원망하는 건가? 나는 얼른 눈을 피했다.

   어른들은 점심도 거르고 공터 사무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방바닥에 누웠다. PG 안경 화면에는 돼지에 관한 정보들이 계속 펼쳐졌다. 모두 다 오래전 정보였다. 공식 멸종이 확인된 지 60년이 지났다. 내게 돼지는 공룡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상상의 동물이랄까? 그런데 그런 돼지를 직접 손으로 만졌다. 까칠하면서 물컹했던 촉감과 온기가 아직 손바닥에 남아있었다. 귀여운 외모에 반하고, 생각지도 못한 힘에 놀라기도 했다. 다리를 묶인 채 날 쳐다보던 돼지의 눈이 떠올랐다.
   ‘꾸웨에!’
   멀리서 들려오는 처절한 목소리에 몸을 뒤척이다 일어났다. 돼지는 마을 한가운데 공터에 임시 우리를 만들어 가뒀다.
   “돼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가둬 기르며 연구를 할까? 번식을 통해 자료 사진처럼 엄청난 수의 돼지들이 길러지겠지? 맛은 어떨까? 에구! 마지막 생각은 머리를 흔들어 지워버렸다.
   살살 배도 고파왔다. 할아버지가 돌아와야 밥도 먹을 텐데. 나는 툇마루로 나와 언덕 밑 공터를 바라봤다. 달은 제법 밝아 마당에 은은한 그늘을 만들어내었다. 멀리 달빛을 받은 흐릿한 둥근 덩어리가 보였다. 돼지 같았다. 눈을 깜박이자 흐릿한 영상은 화면 속에서 또렷한 돼지로 확대되어 나타났다.
   돼지가 직접 보고 싶어졌다. 마을 공터로 들어서자 구석에 만든 우리 안에 돼지가 있었다. 앞발을 묶은 줄이 무척 단단해 보였다. 돼지는 옆으로 누워서 ‘꿰엑’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움찔거렸다. 몹시 지쳐 보였다. 나는 수돗가에서 물을 떠 왔다. 나무판을 이어서 만든 우리 문을 열고 들어가 돼지 앞에 물을 놓아주었다. 돼지는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도 안 주고, 무슨 얘길 온종일 하는지 궁금했다. 사무실로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힘들겠지만 그렇게 하는 수밖에.”
   “서둘러 준비하자고.”
   사람들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어쩌려는 생각이지?’
   나는 얼른 돼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돼지는 축 늘어져 있었다. 다시 문을 열고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풋! 갑자기 돼지가 코를 풀며 얼굴을 털었다.
   ‘에구’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피검사를 했는데 매우 건강한 녀석이다. 한 번 만져봐.”
   할아버지가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마당엔 환한 얼굴의 마을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이 녀석 귀한 몸이지요? 멸종되었다가 나타났으니, 대단한 거잖아요?”
   “그렇지. 정말 귀한 분이지.”
   할아버지도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앞으로 얘는 어떻게 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돼지의 몸을 쓰다듬기만 했다. 돼지가 저항 없이 손을 받아들였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끌어 돼지의 가슴에 대어주었다. 쿵쾅쿵쾅 무겁게 심장이 들썩였다.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떼었다.
   마당에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벽돌이 높이 쌓이고 장작이 활활 타올랐다. 커다란 가마솥이 올려졌다. 까만 숯불이 마당 한쪽에 쌓였다. 김치 가득한 김장독이 마당에 놓였다.
   할아버지는 마당 한쪽 수돗가에서 커다란 칼을 갈기 시작했다. 칼은 녹이 슬어서 갈색 물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뭐 하는 거예요? 돼지는 멸종되었던 동물이잖아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귀한 돼지를……,”
   차마 잡아먹을 거냐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묵묵히 칼만 갈았다. ‘스윽 쓱쓱’ 돌 위에 칼 가는 소리가 마음을 긁어대었다. 더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돼지우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돼지는 여전히 줄에 묶여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작은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검은 눈에 길고 하얀 속눈썹이 왠지 슬퍼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일로 바빴다. 구석에 있는 돼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가만있어 봐.”
   돼지의 다리에 줄은 억세게 묶여 있었다. 어른의 힘으로 묶인 줄은 잘 풀리지 않았다. 사무실로 뛰어갔다. 다들 바빠서 나한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사무실 책상에서 문구용 칼을 찾아내었다.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마당을 다시 가로질렀다.
   ‘쓱쓱’
   얇은 문구용 칼로는 단단한 줄을 자르기가 쉽지 않았다. 중간에 칼날이 부러질 정도였다.
   ‘쿠에엑’
   돼지가 몸을 비틀어대었다.
   ‘가만있어. 너 구해줄게.’
   돼지는 내 맘도 모르고 거칠게 저항했다.
   “거기서 뭐 하냐?”
   노씨 아저씨였다. 얼른 칼을 바닥에 감추고 엉덩이로 자연스럽게 눌러앉았다.
   “그…… 그냥요. 돼지가 신기해서요.”
   아저씨가 자세히 우리 안을 살폈다. 날카로운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묶여 있어도 위험하니까. 얼른 나와라. 사진이나 영상 같은 거 남겨도 안 돼.”
   다행히 아저씨가 그냥 돌아갔다. 다시 줄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반쯤 잘려 나갔을 때 또다시 돼지가 발버둥 쳤다.
   “야,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돼지는 더 소란스럽게 요동쳤다. 그 덕분에 질긴 줄이 뚝! 끊어졌다. 돼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때 노씨 아저씨가 우리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럴 줄 알았어! 너 얼른 나와.”
   노씨 아저씨가 소리쳤다. 나는 우리 나무문을 발로 힘껏 밀어제쳤다. 빠지직! 소리와 함께 문이 떨어져 나갔다.
   “도망쳐. 돼지야.”
   돼지가 입구로 뛰쳐나갔다. 노씨 아저씨가 막아섰지만, 다리 사이로 빠져나갔다. 돼지는 마당을 가로질렀다. 직진 돼지는 쌓아놓은 장작더미와 부딪쳤다. 불타던 장작더미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른들이 돼지를 잡으려고 막아섰다. 사람을 피해 달리던 돼지가 이번엔 김장독을 들이받았다. 김치가 사방으로 튀고 빼기 김칫물이 마당을 붉게 적셔나갔다.
   “잡아!”
   누군가 돼지 위로 몸을 덮쳤다. 돼지가 뿌리치고 다시 마당을 달렸다. 어른들이 또 달려들어 몸을 던졌다. 마당에 어른들이 나뒹굴었다. 눈이 녹아내린 마당은 질척질척 흙바닥을 드러냈고, 돼지와 사람들은 흙을 뒤집어쓰고 처절한 싸움을 했다. 결국, 승자는 사람이었다. 흙과 붉은 김치 물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손을 번쩍 들었다.
   돼지는 나무 기둥에 묶였다. 달아나려고 앞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줄이 탱탱하게 당겨졌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은빛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쥐고 돼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달려가 할아버지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할아버지, 생명 박사잖아요. 박사인데 얘를 왜 죽여요? 잡아먹을 거예요? 돼지 그냥 살려줘요. 살려주라고요!”
   할아버지가 칼을 등 뒤로 감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묘한 표정이었다. 살짝 웃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기둥에 묶인 줄을 풀었다. 돼지를 끌고 공터 뒤편 산 쪽으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건물 뒤편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그쪽으로 뛰어갔다.
   “꽤에에엑”
   그런 처절한 울음소리는 처음이었다. 내 몸을 덮쳐온 소리에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빨간 김칫물이 내 바지로 스며들었다. 꿰엑! 겨울 산은 계속 돼지의 소리를 메아리로 울려대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이불을 쓰고 있어도 온몸이 계속 덜덜 떨려왔다. 할아버지는 날 따라와 위로도 해주지 않았다. 공터에선 여전히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킁킁킁’
   얼마나 지났을까? 방안으로 고기 냄새가 밀려 들어왔다. 그냥 흔한 고기 냄새였다. 도시에서 흔히 먹을 수 있던 고기 냄새. 그런데 고소한 냄새는 자꾸 코를 찔러대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코를 막았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덜컹’ 방문이 열렸다.
   “먹어봐. 앞으로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아니 평생 없을 수도 있어.”
   할아버지 목소리였다. 이내 방문은 다시 닫혔다.
   방안엔 고기와 나 둘뿐이었다. 살짝 이불을 들쳤다. 방 한가운데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접시가 놓여있었다. 점심도 먹지 않은 탓인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자꾸 들려왔다. 아무리 배가 울어대도 절대 먹지 않을 테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다시 일어났다. 문을 활짝 열었다.
   갈색으로 알맞게 구워진 돼지고기를 앞에 놓고 한참을 노려봤다. 망설이다가 손을 뻗었다. 접시를 들었다. 마당을 향해 고기를 쏟아버렸다. 망설임이 있었던지 몇 개만 밖으로 떨어지고 나머지는 방바닥에 뒹굴었다. 그중 한 덩이가 벽에 맞고 내 바로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주워 입에 넣었다.
   ‘쩌업 쩝쩝’
   바삭한 껍질과 함께 육즙 가득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안을 채웠다. 제길 맛있다!
   “이 귀한 걸 버린 거야?”
   마당에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몸을 웅크리고 팔뚝에 얼굴을 묻었다. 안 먹은 척 고기를 꿀꺽! 삼켜야 했는데, 넘어가지 않는다. 아니 아까워서 삼킬 수가 없었다. 들키지 않게 조금씩 입안에서 고기를 빨아먹었다.
   할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빈아, 밖에 사람들, 예전에 모두 박사였던 사람들이야. 돼지를 번식하고 더 좋은 고기를 만들어내려고 나와 함께 노력했던 사람들.”
   할아버지가 말했다.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
   “근데, 왜 죽였어요. 다시 연구해서 키우고 번식시켜야지.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게요.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나는 고기를 씹어가며 콧김을 쏟아냈다.
   “맛있지? 그래 맛있어. 하지만 우리가 다시 키울 수는 없어.”
   “왜요? 할아버지는 박사잖아요. 그니까 우리가 아니면 누가 키워요?”
   나도 모르게 바닥의 고기 한 점을 더 주워 입에 넣었다.
   “지구가 키워 줄 거야!”
   “지구요?”
   할아버지가 허공을 바라봤다.
   “인간이 욕심을 부릴수록 돼지가 아팠어. 살아있는 돼지들을 땅에 묻고 또 묻고, 그래도 아팠지. 모두 사라져버릴 만큼 너무 아팠던 거야. 우리 때문에 돼지들이 또 아프면 안 되잖아!”
   나는 고기를 씹었다. 자꾸 눈물이 났다. 고기가 맛있어서인지, 슬퍼서인지 알 수 없었다.
   “지구가 키워서 선물처럼 보내주면 우린 이제 사냥해서 잡아먹을 거야.”
   할아버지 눈이 빨개졌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을 공터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나는 더 먼 과거로 온 모양이다. 사냥의 시대로.

   할아버지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이다. 내일이면 집으로 간다. 시대를 뛰어넘어 도시로 돌아갈 것이다.
   “기록!”
   눈을 깜박이자 PG 안경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에는 고구마밭에서 돼지와의 첫 만남의 순간이 영상으로 펼쳐졌다. 우리 속에 갇힌 돼지의 눈빛, 공터에서 돼지와 뒤엉킨 사람들, ‘쾌에엑’ 처절한 돼지의 마지막까지…… 안경은 그동안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영상으로 고스란히 기록해 주었다. 나는 몇 번을 되돌려 보며 고민을 했다. 화면에 삭제와 취소 버튼이 반짝거리며 내 선택을 기다렸다.
   “돌아갈 준비는 다 한 거야?”
   그때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내게 가까이 다가와 앉더니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PG 안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갑자기 손을 뻗어 안경을 잡으려 했다. 나는 움찔 놀라 뒤로 물러났다.
   “가만있어 봐!”
   할아버지는 재빠른 동작으로 내 안경을 벗겨 내었다.
   ‘후우웁’
   할아버지는 안경알을 입김까지 불어가며 깨끗이 닦아 주었다. 난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내게 선명해진 안경을 똑바로 씌워 줬다.
   “너의 시대는 네가 선택해서 만드는 거야.”
   할아버지는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방을 나섰다.
   삭제와 취소 버튼은 반짝거리며 여전히 나의 선택을 기다렸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김태호

1972년 대천출생, 세종대 회화과 졸업, 2013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네모 돼지』 『제후의 선택』 『신호등 특공대』 『파리 신부』 등을 펴냄.

2019/11/26
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