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이가 윤주 공책에 껌을 뱉었다. 또박또박 쓴 글씨 위에 껌이 떨어졌다.
   “재수 없어. 잘난 체나 하고.”
   시연이는 공책을 덮고 마구 비빈 다음 펼쳤다. 넓게 퍼진 껌이 공책에 들러붙어 쭉 늘어졌다. 선생님에게 칭찬 받은 글짓기 숙제가 엉망이 됐다.
   친구들이 껌을 질겅거리며 킥킥거렸다. 나도 따라 웃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시연이 뒤로 선생님이 보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시연이가 들고 있는 윤주 공책을 보더니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최시연. 너 이게 무슨 짓이니? 친구 공책에 껌을 붙이다니.”
   시연이가 움찔했다. 시연이 눈이 이쪽저쪽 빠르게 움직이더니 나를 보았다.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다혜가 그런 걸 떼어내려고 했단 말이에요.”
   ‘뭐?’
   껌이 컥 목에 걸렸다.
   “마, 맞아요. 다혜가 그랬어요.”
   친구들이 나를 몰아세웠다.
   아이들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선생님 뒤에 서 있는 윤주도 보였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정말이니?”
   선생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꿀꺽.
   목까지 차올랐던 말이 껌과 함께 넘어갔다.
   “당장 교무실로 따라와. 우리 반에 이런 애가 있다니.”
   선생님이 혀를 끌끌 찼다.
   난 선생님을 따라갔다. 그때 윤주와 눈이 마주쳤다. 윤주는 고개를 기우뚱한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다혜야, 진짜 미안해. 하필 그때 선생님이 나타나서.”
   교실로 들어오는 내게 시연이가 찰싹 달라붙었다.
   “그래도 넌 다들 착하다고 하니까 괜찮을 거야. 그치?”
   시연이가 나를 보며 웃었다. 갑자기 속이 갑갑했다. 위가 막힌 것처럼 더부룩했다. 난 자리로 돌아와서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정말 네가 한 거야?”
   하마터면 물을 뿜을 뻔했다. 윤주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뭐야, 얜? 불쑥불쑥 나타나는 게 특기인가?’
   학교 앞 편의점에서도 그랬다. 껌을 고르고 있는데 윤주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우리 반이지?”
   난 너무 놀라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윤주는 며칠 전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불어라 풍선껌’을 집었다.
   “풍선껌 좋아해?”
   “이것만 좋아해.”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갔다.
   “아니면 아니라고 해.”
   ‘왜 이런 소릴 하는 거지?’
   윤주가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보았다.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이 부담스러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으악, 이게 뭐야?”
   쉬는 시간, 껌을 씹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우리는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책을 보던 민석이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마침 교실로 들어오던 선생님이 민석이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학급 문고에 껌이 붙어 있어요. 하필 재미있는 부분에 껌이 붙어 있다고요.”
   민석이가 선생님에게 책을 건넸다. 선생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우리는 껌 소리에 놀라 입을 오물거렸다.
   “학급 문고에 누가 이런 짓을……”
   선생님이 하던 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숨이 턱 막혔다. 선생님이 무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는지 알만 하구나.”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왜? 내가 한 것도 아닌데……’
   꿀꺽.
   가슴이 답답했다.
   종례를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데 이번에는 수진이가 신발에 껌이 붙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어제 그랬는데. 껌 뗀다고 고생했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수진이는 연습장을 찢어 신발에 붙은 껌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다 종이를 내팽개치고 내게 달려들었다.
   “야, 박다혜. 네가 그랬지. 윤주 공책에도, 학급 문고도, 바닥에도 다 네가 한 거잖아. 우릴 골탕 먹이려고.”
   수진이가 바락바락 악을 썼다.
   난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싸움 구경을 하러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도와달라는 신호로 시연이를 보았다. 시연이는 내 눈을 피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또 그럼 가만 안 둬.”
   수진이가 으름장을 놓았다.
   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비웃듯이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지나갔다. 발길을 돌리는데 윤주와 또 눈이 마주쳤다.
   ‘왜 자꾸 눈이 마주치지?’
   윤주 시선이 신경 쓰였다.
   우리는 껌을 씹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웃겨. 지가 뭔데.”
   “그러니까. 가만 안 두면 어쩔 건데.”
   난 친구들 사이에서 자꾸만 뒤로 처졌다. 껌을 씹는데 속이 좋지 않았다. 뭘 잘못 먹었는지 체한 것 같았다.
   고개를 드니 저만치 걸어가는 친구들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그냥 없어져도 모를 것 같았다. 그런데 시연이가 갑자기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내 팔짱을 꼈다.
   “다혜야, 신경 쓰지 마.”
   “그래. 수진이 걔 막상 아무것도 못하면서 큰소리만 치잖아.”
   다른 아이들이 거들었다.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까?”
   “그래, 좋아.”
   “근데, 진짜 웃기지 않아? 다혜가 했다고 한 번 말했더니 다 다혜가 한 줄 알잖아.”
   “그러니까.”
   친구들이 다시 저만치 걸어가며 키득거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껌을 뱉었다.
   꿀꺽.
   ‘어?’
   어지러웠다. 식은땀도 배어났다.
   “저기, 나 먼저 갈게. 몸이 안 좋아서.”
   “그래.”
   친구들은 손을 흔들어 보일 뿐 나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몸이 붕 뜬 듯 어지럽고 식은땀이 줄줄 났다. 호되게 체한 게 분명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속이 메스꺼워 자꾸 뭔가가 넘어오려고 했다. 하지만 신물만 날 뿐 토하지는 않았다. 아픈 몸을 질질 끌고 내 방으로 가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바로 누우니 배가 당겨 모로 누웠다.
   ‘뭘 잘못 먹은 거지? 특별히 잘못 먹은 건 없는 것 같은데……’
   어느덧 햇살이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나보다. 자고 났더니 속이 한결 나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는데 벽에 걸린 거울이 눈에 띄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다. 이번에는 얼굴이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두덩은 물론 양 볼이 퉁퉁 부어 있었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도 땡땡하게 부어 주먹조차 잘 쥐어지지 않았다.
   ‘왜 이러지?’
   무서웠다. 온몸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풍선처럼…… 호, 혹시……?’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다혜야, 괜찮아?”
   다음날 윤주가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내게 물었다.
   “어디 아픈 거 아냐? 얼굴이 안 좋아 보여.”
   놀랐다. 어제보다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내 얼굴은 여전히 부어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윤주가 처음이었다.
   “어, 어.”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청소 시간, 책걸상을 뒤로 밀자 바닥에 검게 얼룩진 껌 자국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참 동안 바닥을 내려다보던 선생님이 신경질을 냈다.
   “온통 껌, 껌. 바닥에 왜 이렇게 껌 자국이 많은 거야.”
   우리는 청소를 하다가 놀라 선생님 눈치를 살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쭉 둘러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다혜야, 네가 남아서 껌 제거 좀 해야겠다.”
   난 선생님 눈빛에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철자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붙은 껌을 떼어냈다. 바닥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껌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었다. 껌을 떼는 소리가 교실에 메아리쳤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있으니까 괜스레 눈물이 났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소스라치게 놀랐다. 돌아보니 윤주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네가 한 게 아니잖아. 넌 다른 껌을 씹잖아.”
   “뭐?”
   난 놀라 윤주를 보았다.
   “껌 색깔이 달라. 문제가 된 껌은 흰색인데 네가 씹는 껌은 분홍색이잖아. 내 공책을 보고 뭔가 이상했는데 그게 껌 색깔 때문이었어.”
   윤주가 한 발 내게 다가왔다.
   “시연이 패거리가 한 거지? 그럼 사실대로 말해. 가만히 있지 말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릴 적 난 껌도 다른 음식처럼 삼키는 건 줄 알았다. 아무도 내게 껌을 뱉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지금은 껌을 뱉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난 또 껌을 삼켰다. 친구가 필요했으니까, 곁에 아무도 없는 건 싫으니까.
   “신경 쓰지 마.”
   난 윤주를 지나쳐 복도로 뛰쳐나왔다. 치부를 들켜버린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였다. 화장실에서 시연이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실로 가서 안을 건너다보았다. 친구들이 빙 둘러서서 껌을 씹고 있었다.
   “쟤 바보 아냐.”
   “그러니까. 이번에도 가만히 있더라. 자존심도 없나봐.”
   “우리가 하라고 하면 뭐든지 할걸. 우리 말곤 친구도 없잖아.”
   “불쌍해서 놀아주는 거지 뭐.”
   친구들이 키득거렸다.
   껌을 씹느라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입이 사방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그 입이 나를 비웃었다. 속이 울렁였다. 위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이건 아니다. 이런 친구들을 원한 게 아니다.
   “어, 다혜야. 언제 왔어?”
   시연이가 나를 보았다.
   “집에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속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너희들이 한 거잖아.”
   “뭐?”
   친구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희들이 한 거니까 너희들이 치워야지.”
   속에서 꿈틀대던 것이 꾸역꾸역 치밀어올랐다.
   “쟤가 뭐래냐? 뭘 잘못 먹었나.”
   “선생님한테 사실대로 말할 거야. 너희들이 껌을 뱉은 거라고.”
   툭.
   뭔가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껌이었다. 친구들이 뒤로 흠칫 물러났다.
   구역질이 계속 치밀었다. 난 쪼그리고 앉아 토했다.
   웩웩.
   입에서 껌들이 떨어져내렸다. 껌을 한 개만 삼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껌을 여러 개 삼켰는가보다. 가슴이 뻐근하게 아팠다.
   “뭐, 뭐야?”
   친구들이 놀라 달아났다.
   들먹거리던 가슴이 차츰 가라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껌을 토해 내자 더이상 속이 울렁이지 않았다.
   난 멍하니 껌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속에 걸려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다혜야, 괜찮아?”
   윤주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이 녀석은 불쑥불쑥 잘도 나타난다.
   “응.”
   몸을 일으키는데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윤주가 내 곁에 왔다.
   “도와줄게.”
   난 윤주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끙 하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임윤

일상 속 장막 걷기, 일상 속 수수께끼 풀기를 좋아한다. 만화 관련 일을 하다가 동화의 매력에 빠져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이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랜 어린이 벗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