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상이 유달리 푸짐한 건 지난달부터 요리를 배우러 다니는 아빠 덕분이었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김치찜에 쌀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꽉 찬 배통을 퉁퉁 두드리며 트림까지 시원하게 했다. 그때였다.
   “루아야,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엄마는 대전 출장에서 사 온 튀김 소보로를 후식으로 내놓았다. 분명 배가 부르다고 생각했는데 입안에 침이 고였다. 소보로빵은 야속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잘 넘어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것이 후식으로 딱이었다.
   엄마가 우유를 내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야?”
   나는 우유를 받아든 채로 소보로빵을 크게 한입 물고 난 다음 말했다.
   “이어오으애아아.”
   이 정도는 괜찮다는 뜻이었다. 나는 우유를 막 들이켜려다 잠깐 멈칫했다. 가끔 우유를 마시면 속이 부글거리고는 했는데, 그렇다고 자주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웬만하면 아침에는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말이다. 우유만 쏙 빼놓고 소보로빵을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보로빵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냥 빵도 아니고 저 멀리 대전에서 기차 타고 넘어온 튀김 소보로였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부드러운 우유가 목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갔다. 덕분에 튀김소보로는 한층 더 부드럽고 고소해졌다. 나는 빵 두 개를 더 해치우고 난 다음에야 식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막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뱃속에서 꾸루룩거리는 소리가 났다. 평소보다 많이 먹어 그런지 속이 더부룩해 자꾸만 트림도 나왔다. 학교 가는 내내 몇 번이고 트림을 삼켜야 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어떤 애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루아야, 오늘 아침에 재희, 학교에서 똥 쌌대.”
   나는 꼭 대단히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대답했다.
   “뭐? 학교에서 똥을?”
   멀리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재희가 보였다. 그래도 재희의 새빨개진 귀는 잘도 보였다. 재희 근처에는 바글거릴 정도로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도 얼른 아이들이 있는 자리로 갔다. 마침 어떤 아이가 재희에게 뭘 묻고 있었다.
   “너, 3층 화장실에서 똥 눈 거 맞지?”
   재희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대답했다.
   “아니라고.”
   그러자 다른 애가 재희를 툭 치며 말했다.
   “애들이 봤다는데 뭐. 왜 거짓말이야.”
   그 말에 아이들 모두 와하하, 하고 소리 내 웃었다. 그 바람에 나도 같이 웃었다. 재희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똥이라니! 우리 학교에서 똥을 싸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한 달, 아니 한 학기는 똥쟁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아야 한다. 오줌을 누러 간다거나, 하다못해 손을 닦으러 가는 것도 어려워진다. 화장실에 들어가려고만 하면 똥 싸러 가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웃으면서 재희에게 물었다.
   “너, 진짜로 학교에서 똥 쌌어?”
   내 말에 재희는 웃는 둥 마는 둥,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울어버렸다. 저학년도 아닌데 웬 눈물 바람. 놀릴 맛이 뚝 떨어져 버린 나와 아이들은 백기를 들었다.
   아이들은 재희를 대충 다독여주고는 각자 자리로 흩어졌다. 나도 자리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다 마침 공지오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얼떨결에 헛기침을 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공지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조그만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들은 화장실 안 가나.”
   순간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혼잣말처럼 했지만, 분명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다른 애들은 공지오의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나는 유유히 사물함 쪽으로 걸어가는 공지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공지오는 늘 멋진 역할은 혼자 다 도맡으려고 했다. 그래서 밉고, 그래서 눈에 더 잘 띄었다.
   마침 교실 앞문이 열렸다.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려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자꾸만 아랫배에 손이 갔다. 슥슥 문질러도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아침에 튀김 소보로와 함께 시원하게 들이켰던 우유 생각이 번뜩 났다. 그래도 설마, 나는 교과서를 펼치며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그런 나를 짝꿍이 이상하게 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려고 애썼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평소처럼 밥을 많이 먹지 못했다. 벨트가 아랫배를 꾹 누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평소였더라면 서너 조각쯤은 더 먹었을 돈가스도 남겼다. 짝꿍이 고마워하며 내가 남긴 돈가스를 먹어주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너 어디 아파? 얼굴색이 안 좋은데.”
   “아프긴 누가 아프다 그래.”
   나는 식판 치운 책상에 엎드려 누웠다. 짝꿍 몰래 벨트를 느슨하게 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뱃속에서는 무언가들이 나가게 해달라고 자꾸만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하려고 어금니를 더욱 꽉 깨물었다.
   그때 체육부장이 소리쳤다.
   “축구 할 사람, 새 공 왔거든.”
   그 말에 누가 김빠졌다는 듯 말했다.
   “뭐야, 난 또. 새 거라고 뭐 특별히 다르겠냐.”
   “아빠네 축구교실에서 가져온 거야.”
   그 소리에 밥 먹던 남자애들 몇, 여자애들 몇이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순식간이었다. 새 축구공이라니. 체육부장네 아빠가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체육부장이 가져온 축구공은 그저 그런 축구공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저번에는 유명한 선수의 사인을 받아 가지고 온 적도 있었다. 그러니 체육부장이 가져온 공이라면 못 해도 한 번, 아니 몇 번은 튕겨줘야 한다. 시원하게 슛을 날리지는 못하더라도 그래, 드리블이라도 한 번은 해줘야 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뱃속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바닥이 살짝 울리는가 싶더니 뭔가 발치를 툭 쳤다. 바닥을 보니 축구공이 있었다. 노란 띠를 두른 축구공. 체육부장이 말한 바로 그 새 축구공이었다.
   “김루아, 공 좀 주워줘!”
   나는 공을 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얼마나 특별한지 알려면 직접 발로 차봐야 했다. 마지막 돈가스 조각에 케첩소스를 듬뿍 묻히던 짝꿍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너 어디 가?”
   “축구 하러.”
   나는 이때다 싶어 벨트를 단숨에 풀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끝까지 바지를 추켜올린 다음 큰 보폭으로 날 듯 운동장으로 향했다. 체육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축구공이 들어있던 파우치를 내려놓고 내 뒤를 따랐다. 교실에서 튀어나오는 와중에 나를 슬쩍 넘겨보는 공지오가 보였지만, 그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는 새 축구공 생각뿐이었다. 복통은 아예 끝난 것처럼 싹 잊고 말이다.
   새 축구공으로 하는 축구 경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끝내줬다. 낡고 오래된 축구공은 친숙하고 익숙한 맛이 좋지만 뻥 찰 때 시원한 맛이 덜했다. 하지만 새 축구공은 낯설고 어색하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흘러넘쳤다. 나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축구공은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신나게 축구공을 골대 쪽으로 몰았다. 그 순간 다시 복통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단순한 복통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똥구멍이 열렸다가 닫히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머리 위로 수없이 많은 장면이 사진첩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오늘 아침에 재희를 똥쟁이라고 놀렸던 일뿐만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심심하면 화장실에 가서 오래 앉아있는 애들이 있나 없나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화장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신발 모양을 보고 누가 똥쟁이인지 가려내기까지 했었다. 오래 닫혀 있는 화장실 문까지 쿵쿵 두드리면서 똥 누는 거 다 안다고 소리 지른 적도 있는데. 그간 내가 저지른 잘못이 많아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누군가 내게 고함쳤다.
   “패스해, 패스하라고!”
   “그렇게 몰 거면 옆으로 넘기라고!”
   여기저기 퍼지는 소리가 한데 뭉쳐서 들렸다. 그 바람에 어느 것도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식은땀이 났고 머리털이 온통 쭈뼛 섰다. 뜻하지 않게 발 스텝도 이리저리 꼬였다. 나는 결국 운동장 한복판에서 픽, 하고 대자로 쓰러지고 말았다.
   빙글빙글 도는 세상 속에서 작은 머리통 몇 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죄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내 이마를 만져보고, 팔을 주물러보고, 아예 업으려고 난리를 피웠다. 나는 또다시 복통을 느꼈다. 바닥에 누운 채로 최선을 다해 똥구멍을 조였다. 절대 실수해서는 안 됐다. 내 나이 열셋, 학교에서 육 년 동안 쌓아올린 명성을 똥쟁이라는 오명으로 똥칠할 수는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화장실에 가야 했다.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정말로 큰일이 날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적어도 이십 분. 걷다가 길에서 뒤로 넘어질 판이었다.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새하얀 색, 새하얀 색…… 온통 새하얀 세상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한 곳이 떠올랐다. 보건실 옆 화장실이었다. 보건실 옆 화장실은 주로 보건실을 쓰는 학생들과 보건실 선생님만 사용했다. 그래, 내가 가야 할 곳은 거기였다.
   “보, 보건실……”
   그제야 알겠다는 듯, 한 아이가 소리쳤다.
   “누가 루아 좀 부축해주라!”
   “아니, 아니 괜찮아!”
   나는 아이들을 제치고 화장실, 아니 보건실, 아니…… 보건실 옆 화장실로 향했다.

   무슨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빨리 걸을 수 있는지도 태어나 처음 알았다. 나는 보건실을 지나쳐 보건실 옆 화장실로 막 들어서려고 했다.
   누군가 뒤에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야.”
   나는 놀라 뒤돌아봤다. 공지오였다. 네가, 네가 여기 왜? 나는 말은 못 하고 어버버, 입만 움직였다. 공지오는 잡은 내 팔을 놓지 않고 말했다.
   “많이 아픈가 보네. 보건실은 여기야. 그쪽이 아니라.”
   나는 활짝 열린 보건실 옆 화장실을 보았다. 쾌적하고 아무도 없어 조용한 보건실 옆 화장실. 빈 변기가 총 세 개. 그중에 아무 데나 당장 가 앉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나를 놔주지 않는 공지오에게 뭐라 말할 힘도 없었다.
   “너,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나는 똥 참는 데 온 힘을 다 써서 그런 거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공지오는 나를 부축해서, 아니 질질 끌어서 보건실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보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선생님이 마침 식사를 하러 가신 것 같았다. 아, 그런 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나는 얼른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나는 공지오를 톡톡 치고,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만 가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마음씨 착한 공지오는,
   “괜찮아. 같이 기다려줄게.”
   괜찮지 않은 건 나였다. 공지오는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텅 빈 보건실과 화장실 앞 복도에 우리는 나란히 서 있었다. 더이상 두 발로 서 있을 힘도 남지 않은 나는 휘청거리며 가까스로 복도 벽을 붙잡았다. 그러자 공지오가 깜짝 놀랐다.
   “너 안 되겠다. 여기 있어 봐, 교직원 식당에서 선생님 모셔올게!”
   공지오가 금세 멀어졌다. 나는 복도 벽에 딱 붙은 채로 멀어지는 공지오를 보다가, 보다가, 보다가 아주 안 보이게 된 순간…… 나는 화장실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보건실 화장실에서 보낸 일 분이라는 시간은,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금세 옮겨 주었다. 나는 시원하게 물을 내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화장실 거울을 통해 본 얼굴은 비록 식은땀 범벅이었지만 눈빛도 말똥말똥했고 생기도 있어보였다.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온 것이었다. 다시는 아침에 우유를 마시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오자마자 보건실 선생님과 공지오가 보였다. 여태껏 나를 찾고 있었는지 공지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참 찾았잖아. 선생님, 아까 아프다는 애가 얘예요.”
   선생님은 나를 잠깐 진지한 얼굴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화장실 한 번, 나 한 번 보더니 금세 웃는 얼굴로 말했다.
   “딱 보니 이제 다 나았네. 그치?”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목 뒤부터 열이 찬찬히 오르는 게 느껴졌다. 공지오는 마음이 급했는지 선생님 소매를 잡아당기기까지 했다.
   “아니에요. 아까 얼굴색도 안 좋았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앉아있지도 못하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지오는 선생님이 했던 것처럼 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폈다. 곧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중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공지오가 말했다.
   “아, 알겠어요. 선생님. 이제 보니 진짜 다 나은 것 같네요.”
   선생님은 웃으며 보건실로 향했다. 나는 복도에 공지오와 단둘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망했다. 그토록 피했는데. 똥쟁이가 되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학교 화장실에서 대변을 본 건 초등학교를 다니던 육 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내 인생에 오점를 남기고 만 거다. 그것도 딱 걸리다니. 다른 애도 아니고 공지오한테 말이다. 공지오는 나를 싫어하고, 싫어하는 내가 똥쟁이라면 더 싫을 거고, 나는 그런 공지오가 밉고, 밉고, 또 밉고…… 그때 공지오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다행이냐고 묻는 대신 물끄러미 공지오를 바라보았다.
   “아픈 게 아니라서.”
   공지오는 한번 씩 웃고는 쿵쿵쿵, 바닥을 울리며 저만치 멀어졌다. 문득 마음껏 차지 못한 새 축구공이 생각났다. 그런데 공지오는 왜 밖에 나와 있었던 거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에 알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꼈다. 쏴아아아, 변기 물을 내릴 때 들었던 물소리처럼 무엇인가가 시원하게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강인송

달님과 농담과 여행의 힘으로 동화를 씁니다. 웬만하면 저를 마주한 모든 어린이들이 매일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02/25
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