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밤



   탱크가 길을 뭉개고 미사일이 다트핀처럼 학교에 꽂히는 와중에도, ‘진짜 밤’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지도 매번 실패한 지도, 오래되었다. 지도에도 없는 ‘진짜 밤’에 너무 늦게 도착했으나, 이제 나는 이렇게 창밖에서 죽을 것 같다. 쏟아지는 눈발처럼 내 위로 하얀 재가 봉분을 만들어줄 것이라 다행이다. || 무작위로 떨어지는 불똥 같은 ‘진짜 밤’에, 여섯 살 아이가 흰 재가 펑펑 내리는 창밖을 본다. 깃털 같은 재가 밤을 가득 채운다. 밤은 부풀고 베개처럼 빵빵해진다. 딱 죽기 좋은 진짜 밤이다. ‘진짜 밤’은 베개 그 자체일까…… 폭신폭신하기가 총 맞은 듯 잠들 수밖에 없는. 잠 속에 어른대는 그 어떤 악몽이든 뇌수에서 흘러내리는 순간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진짜 밤이다. 밤을 베면 물속에 잠기듯 빨려든다. 나쁜 꿈이란 꿈은 쪽쪽 빨아먹는 밤이다. 한평생 처음으로 악몽이 빨려나가자, 비로소 나는 기절하듯 잠든다. 아이는 잠들지 않고 창밖을 본다. || 누군가, 한 점 꿈 없는 잠에서 잠시만 마지막으로 나를 건져 놓았는지, 새벽에 화들짝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니 뒤통수가 흠뻑 젖은 채 짓눌려 있다. 터진 머리통 짓눌린 머리카락 언저리는 꿈이 빨려나간 구멍이다. 빨대 구멍이다. 아이는 잠들지 않았는지 못했는지 벌써 깼는지 여태 창밖을 본다. || 창밖에는 생을 다 소진하여, 가장 작아지고 어려진 내가 쓰러져 있다. 잠을 파고드는 백린탄들, 어깨에 걸린 총은 내 몸보다 점점 커지고 있다. 창문 안은 벽난로처럼, 가짜 밤들이 말라비틀어진 장작처럼 불타고 있다. 불에 그을린 아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창밖에 어린 나를 본다. 아이에게 안겨 있는, 죽은 할머니의 ‘내 강아지’도 슬픈 눈으로 나를 본다. || 평생을 너무 빨리 소진해버린 아이야, ‘진짜 밤’은 창밖에만 있어. 아이야 내 강아지야 어서 창밖으로 탈출해. 내 몸 일부가 남겨진 이곳이 아니라 내 몸 대부분이 넘어간 ‘진짜 창’밖으로, || 그곳에 어린 나처럼.





   진짜 시간



   주말 강가에는 텐트가 많다
   한 텐트의 밖 한 아이가 몇 시간째 지치지도 않고 강에 힘껏 돌을 던지고 있다 울면서 던지고 있다
   한 번도 예외 없이 강은 아이가 던진 돌을 한 번에 삼키지 않았다 힘껏 던질수록 최소한 한 번은 튕겨 냈다
   물이 지나가는데 갑자기 돌을 끼워줄 수 없다는 듯 물은
   침을 뱉듯 돌을 뱉어내며 갔다

   ……물이……시간이……
   …………가고……………
   ……있다……있다………

   돌은 물과 함께 가지 못하고
   아이의 힘이 닿지 않는 한 지점에서 결석처럼 가라앉는다

   야외 개수대 수도꼭지를 틀었다가 잠그듯
   가는 시간을 잡아놓을 수 없다
   죽음처럼 찰나, 억지로 틀어막을 방법이 아예 없지 않지만,
   물은 지체 없이 다른 물길을 이용할 수 있다

   ……가던 물도, 잠시 멈추는 순간이 있다
   시간 입장에는 충분히 길고
   우리 입장에는 너무나 짧은
   묵념과도 같은 순간, 물이 잠시 멈춘다
   누군가 숨을 놓친 순간, 놓여난 숨이,
   시간이 멈춰준 찰나를 놓치지 않고 물과 물 사이를 비집고 자리잡는다
   다시 물이 간다……

   해거름 고기가 구워지고 있는데 한 아이는 강에 돌을 던지고 있다 몇 시간째 지치지도 않고 고기도 안 먹고
   아이는 물에 빠진 강아지처럼 두렵고, 아이는 울고, 하염없이 ‘울음’을 강에 던지고 있다

   아이의 부모가 막내둥이처럼 키우던 강아지가, 예기치 않게 강에 빠진 걸 보고도
   아이의 부모는 숨죽이며 못 본 체했다

   강은 강아지를 1/3쯤 물고 한동안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강아지가 힘이 빠져 더이상 저항할 수 없게 되자
   강은 강아지의 나머지 2/3를 꿀꺽 삼켰다, 돌처럼 뱉어내지 않고
   강의 일부로 맥박과 피와 숨을 삼켰다
   강은 시간처럼 급히 비로소 흘렀다

   그리고 몇 시간째 아이는 강 쪽으로 돌아서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소리친다
   진짜 시간 없다며 밤이 오기 전에 남은 고기를 다 먹어치우겠다고 한다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시간의 일부처럼 허기가 아이의 머리를 물고 천천히 흔들고 있다

   가끔 생각난 듯 소리칠 때를 빼고는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대부분의 시간 못 본 체하며 남은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

김중일

잠든 여섯 살 아이의 손을 잡아본다. 구름에서 누군가 날 위해 던져준 한 자락 자일 같은 그 손을.

2022/04/26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