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to X
1화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
A.1)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남몰래 간직한 자부심은 그를 살아가게 한다.
남들 투니버스 볼 때 혼자 동화책을 읽던 어린이 A. 가족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시를 지어 문화상품권 5만원과 함께 글짓기 대회 우수상을 수상한다. 청소년 A. 국어 선생님의 애제자이며 여전히 많이 읽고 많이 쓴다. 학교 안팎의 백일장에서 종종 수상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A에게는 돈 못 번다는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차근차근 쌓아온 수상 경력과 우수한 내신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한 A. 읽고 쓰는 공동체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교수2 : 여자처럼 쓰지 마라. 여자처럼 쓴 시는 등단 못한다.
선배 : 시 잘 읽었고요. 단어 사이를 널뛰는 치명적인 간극은 언어의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며 구현 가능한 치열하고 구체적인 근접전을 회피함으로써 주지하는 노스탤지어로의 절묘한 수렴이……
생애 첫 합평. 학회 회원들은 A의 시를 단숨에 훑어봤다. A는 자신이 어떤 미세한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갑자기 자신의 시가 유치해 보인다. 좀 창피하기도 하다. 합평에 다녀온 A는 시를 이리저리 고쳐본다. 교수님은 시집도 여러 권 냈는데. 문학상 심사위원도 한다던데. 선배님은 신춘문예 본심까지 올라갔다던데. 그래. 자존심 세우지 말자. 피드백을 수용하면서 성장하는 거지.
하지만 고친 시가 도무지 내 시 같지 않다. A는 그들의 말이 누구를 위한 말이었는지 헷갈린다. 어쨌거나 A의 시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학회는 누군가의 글을 읽어주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A는 다른 곳에서 갈증을 해소해보기로 한다.
강의 2 : 주 1회, 총 8회, 40만원 (특이사항 : 비교적 가까움, 수강료가 비쌈)
강의 3 : 주 1회, 총 8회, 30만원 (특이사항 : 왕복 4시간 거리)
40만원은 A의 한 달 치 생활비에 가깝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시인이 저렴한 수강료를 내걸었지만 그에게선 무엇도 배우고 싶지 않다. 웬만한 강의는 다 서울에서 열린다는 것도 한탄스럽다. 무엇보다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강의를 들을 시간이 안 남는데…… A는 자신의 열정을 의심해본다. 시가 쓰고 싶긴 하니? 그럼 밥을 굶고 잠을 줄여서라도 강의를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A는 ‘강의 3’을 선택했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수강생은 스무 명이 넘었다. A가 입을 열 만한 타이밍은 잘 없지만, 누군가가 내 글을 공들여 읽어준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A는 오늘 들었던 칭찬을 곱씹으며 두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알바와 학교생활, 외부 강의 수강을 병행하는 A는 시를 제출하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숫기 없는 성격 탓에 질문도 많이 못했다. A는 본전을 못 뽑았다는 생각에 괴롭다. 학교 등록금도 내고 강의 수강료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억울해진다. 어느덧 마지막 강의. 좋고, 재밌고,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다. 다음에 열리는 강의도 듣고 싶은데 여유가 될지 모르겠다. A는 지하철 안에서 자꾸 아랫입술만 물어뜯는다.
바야흐로 뉴미디어 시대. A는 글을 읽어줄 사람을 오프라인에서만 찾을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글을 찾는 사람은 온라인에도 꽤 많아 보였다. A는 개인 블로그에 시를 연재하기로 했다. 검색을 통해서 혹은 추천을 타고 우연히 내 블로그에 온 사람이 내 시를 읽어준다면? 돈도 안 들고 찾아오기도 쉬운 인터넷 세상이 새삼 멋지게 느껴졌다.
블로그 오늘 조회수 : 0회
첫 댓글 : 글이 넘 재밌네요. 소통하고 지내요~^^(밝은안과닥터박 님)
A의 시를 읽기 위해 A의 블로그를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문학 관련 블로거들은 유명 작가의 수상작을 소개하느라 바빠 보였고, 예쁜 사진도 유용한 정보도 없는 A의 블로그는 검색도 되지 않았다. 모니터 안에 있는 자신의 시는 낯선 사람이 써놓은 것 같았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A는 광고 댓글만 달리는 블로그를 닫아버렸다.
아무래도 책의 형태로 묶어내야 조금이나마 읽힐 듯하다. 성공한 독립출판 사례를 조사하며 A는 오랜만에 의욕이 솟았다. 이때까지 썼던 작품을 모아 다시 손보고, 인디자인 클래스를 등록하고, 밤을 새서 편집과 디자인을 마치고, 인쇄소에 샘플을 맡기고, 완성된 책을 손수 포장하고, 입고할 서점 리스트를 만들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과정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다.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일 알바를 뛰던 A는 무엇으로부터 독립한 것인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입고 요청 메일을 돌렸지만 답장이 잘 오지 않았다. A는 직접 책을 들고 서점에 방문하기로 했다. 빈손으로 부탁하기가 머쓱해 커피도 사가고, 서점에서 파는 출판물도 몇 권 샀다. 특이한 직업, 특이한 이력, 특이한 정체성을 가진 작가의 책에 먼저 눈길이 갔다. A는 자신의 책을 누가 읽어줄까 싶었다. 몇 군데서 입고를 받아주었지만 적자를 메꾸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방구석에 탑처럼 쌓여 있는 책 옆에서 A는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꾸준히 글을 써왔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지만 너덜너덜한 마음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A는 생각한다. 읽어줄 사람을 찾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 모든 걸 떠안게 된 걸까?
*
오늘도 읽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을 A를 생각한다. A와 조금쯤 닮아 있을 당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막막하고 먹먹하다. 읽는 사람에게는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에게는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로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우리의 접속은 자꾸 뒤로 미뤄진다.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이제껏 만나지 못했을까? 질문이 이어진다. 독자를 만나기 위해 너무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은 아닐까? 등단이나 수상경력 같은 라벨링 없이 읽을 수는 없을까? 작가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독자라면 어떨까? 독자가 누군가에게 답장을 보내듯이 글을 읽는 건 어떨까? 작가와 독자가 중간 단계 없이 그냥 만나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질문 끝에 우리는 대책 없이 작가 A와 독자 X를 이어보기로 했다.
‘from A to X’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① from A : 작가 A는 자신의 작품을 가장 전하고 싶은, 꼭 내 작품을 읽어줬으면 하는 가상의 독자 X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이를테면 ‘보라색을 좋아하는, 경상도 출신, 60년대생, 여성’과 같은. X에게 묻고 싶은 말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② to X : 우리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X(에 가장 가까운 사람)를 찾아낸 뒤 A의 작품을 전달한다. ③ A, X, and : 작품을 읽은 X의 답장을 다시 A에게 전달한다.
죽이 될지 밥이 될지 제 3의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 서로 본 적 없지만 왠지 어울릴 것 같은 친구 둘을 소개해줄 때처럼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든다. 이 지면에 쓰일 A와 X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도 우리와 연결되기를, 그리하여 무한히 많은 A와 X가 소리 없이 만나기를, 읽고 쓴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공동체가 시작되기를 바라본다. 우리를 밟으면 서로를 만나리!
남들 투니버스 볼 때 혼자 동화책을 읽던 어린이 A. 가족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시를 지어 문화상품권 5만원과 함께 글짓기 대회 우수상을 수상한다. 청소년 A. 국어 선생님의 애제자이며 여전히 많이 읽고 많이 쓴다. 학교 안팎의 백일장에서 종종 수상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A에게는 돈 못 번다는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차근차근 쌓아온 수상 경력과 우수한 내신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한 A. 읽고 쓰는 공동체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A, 시 창작 학회에 가입하다
교수2 : 여자처럼 쓰지 마라. 여자처럼 쓴 시는 등단 못한다.
선배 : 시 잘 읽었고요. 단어 사이를 널뛰는 치명적인 간극은 언어의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며 구현 가능한 치열하고 구체적인 근접전을 회피함으로써 주지하는 노스탤지어로의 절묘한 수렴이……
생애 첫 합평. 학회 회원들은 A의 시를 단숨에 훑어봤다. A는 자신이 어떤 미세한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갑자기 자신의 시가 유치해 보인다. 좀 창피하기도 하다. 합평에 다녀온 A는 시를 이리저리 고쳐본다. 교수님은 시집도 여러 권 냈는데. 문학상 심사위원도 한다던데. 선배님은 신춘문예 본심까지 올라갔다던데. 그래. 자존심 세우지 말자. 피드백을 수용하면서 성장하는 거지.
하지만 고친 시가 도무지 내 시 같지 않다. A는 그들의 말이 누구를 위한 말이었는지 헷갈린다. 어쨌거나 A의 시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학회는 누군가의 글을 읽어주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A는 다른 곳에서 갈증을 해소해보기로 한다.
A, 외부 창작 강의를 수강하다
강의 2 : 주 1회, 총 8회, 40만원 (특이사항 : 비교적 가까움, 수강료가 비쌈)
강의 3 : 주 1회, 총 8회, 30만원 (특이사항 : 왕복 4시간 거리)
40만원은 A의 한 달 치 생활비에 가깝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시인이 저렴한 수강료를 내걸었지만 그에게선 무엇도 배우고 싶지 않다. 웬만한 강의는 다 서울에서 열린다는 것도 한탄스럽다. 무엇보다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강의를 들을 시간이 안 남는데…… A는 자신의 열정을 의심해본다. 시가 쓰고 싶긴 하니? 그럼 밥을 굶고 잠을 줄여서라도 강의를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A는 ‘강의 3’을 선택했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수강생은 스무 명이 넘었다. A가 입을 열 만한 타이밍은 잘 없지만, 누군가가 내 글을 공들여 읽어준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A는 오늘 들었던 칭찬을 곱씹으며 두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알바와 학교생활, 외부 강의 수강을 병행하는 A는 시를 제출하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숫기 없는 성격 탓에 질문도 많이 못했다. A는 본전을 못 뽑았다는 생각에 괴롭다. 학교 등록금도 내고 강의 수강료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억울해진다. 어느덧 마지막 강의. 좋고, 재밌고,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다. 다음에 열리는 강의도 듣고 싶은데 여유가 될지 모르겠다. A는 지하철 안에서 자꾸 아랫입술만 물어뜯는다.
A, 블로그에 시를 연재하다
바야흐로 뉴미디어 시대. A는 글을 읽어줄 사람을 오프라인에서만 찾을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글을 찾는 사람은 온라인에도 꽤 많아 보였다. A는 개인 블로그에 시를 연재하기로 했다. 검색을 통해서 혹은 추천을 타고 우연히 내 블로그에 온 사람이 내 시를 읽어준다면? 돈도 안 들고 찾아오기도 쉬운 인터넷 세상이 새삼 멋지게 느껴졌다.
블로그 오늘 조회수 : 0회
첫 댓글 : 글이 넘 재밌네요. 소통하고 지내요~^^(밝은안과닥터박 님)
A의 시를 읽기 위해 A의 블로그를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문학 관련 블로거들은 유명 작가의 수상작을 소개하느라 바빠 보였고, 예쁜 사진도 유용한 정보도 없는 A의 블로그는 검색도 되지 않았다. 모니터 안에 있는 자신의 시는 낯선 사람이 써놓은 것 같았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A는 광고 댓글만 달리는 블로그를 닫아버렸다.
A, 독립출판을 결심하다
아무래도 책의 형태로 묶어내야 조금이나마 읽힐 듯하다. 성공한 독립출판 사례를 조사하며 A는 오랜만에 의욕이 솟았다. 이때까지 썼던 작품을 모아 다시 손보고, 인디자인 클래스를 등록하고, 밤을 새서 편집과 디자인을 마치고, 인쇄소에 샘플을 맡기고, 완성된 책을 손수 포장하고, 입고할 서점 리스트를 만들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과정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다.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일 알바를 뛰던 A는 무엇으로부터 독립한 것인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입고 요청 메일을 돌렸지만 답장이 잘 오지 않았다. A는 직접 책을 들고 서점에 방문하기로 했다. 빈손으로 부탁하기가 머쓱해 커피도 사가고, 서점에서 파는 출판물도 몇 권 샀다. 특이한 직업, 특이한 이력, 특이한 정체성을 가진 작가의 책에 먼저 눈길이 갔다. A는 자신의 책을 누가 읽어줄까 싶었다. 몇 군데서 입고를 받아주었지만 적자를 메꾸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방구석에 탑처럼 쌓여 있는 책 옆에서 A는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꾸준히 글을 써왔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지만 너덜너덜한 마음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A는 생각한다. 읽어줄 사람을 찾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이 모든 걸 떠안게 된 걸까?
오늘도 읽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을 A를 생각한다. A와 조금쯤 닮아 있을 당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막막하고 먹먹하다. 읽는 사람에게는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에게는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로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우리의 접속은 자꾸 뒤로 미뤄진다.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이제껏 만나지 못했을까? 질문이 이어진다. 독자를 만나기 위해 너무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은 아닐까? 등단이나 수상경력 같은 라벨링 없이 읽을 수는 없을까? 작가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독자라면 어떨까? 독자가 누군가에게 답장을 보내듯이 글을 읽는 건 어떨까? 작가와 독자가 중간 단계 없이 그냥 만나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질문 끝에 우리는 대책 없이 작가 A와 독자 X를 이어보기로 했다.
‘from A to X’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① from A : 작가 A는 자신의 작품을 가장 전하고 싶은, 꼭 내 작품을 읽어줬으면 하는 가상의 독자 X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이를테면 ‘보라색을 좋아하는, 경상도 출신, 60년대생, 여성’과 같은. X에게 묻고 싶은 말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② to X : 우리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X(에 가장 가까운 사람)를 찾아낸 뒤 A의 작품을 전달한다. ③ A, X, and : 작품을 읽은 X의 답장을 다시 A에게 전달한다.
죽이 될지 밥이 될지 제 3의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 서로 본 적 없지만 왠지 어울릴 것 같은 친구 둘을 소개해줄 때처럼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든다. 이 지면에 쓰일 A와 X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도 우리와 연결되기를, 그리하여 무한히 많은 A와 X가 소리 없이 만나기를, 읽고 쓴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공동체가 시작되기를 바라본다. 우리를 밟으면 서로를 만나리!
*애니메이션 <카드캡터 체리> OST 가사 중 일부를 인용함.
근사
나래. 나은. 지원. 같은 학교에서 같은 허기를 느낀 세 사람이 작당 모의합니다. 냉소와 조롱과 뒷담화보다 근사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쓰고 읽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문학 ‘하는’ 우리를 위해 움직입니다.
2019/09/24
22호
- 1
- A는 실존인물과 관계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