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틈 없는 토요일 근무 내내 희지는 겨울 여행을 고민하느라 활력이 돌았다. 그래서 그런지 신발도 많이 팔았다. 가벼우면서 탄성이 좋은 러닝화도 팔고 새로 나온 스웨이드 재질의 스니커즈도 팔고 털이 복슬복슬한 방한화도 팔았다. 매니저가 희지씨 이제 감 잡았나보네, 하는 소리가 이제야 감을 잡는 거냐는 핀잔인 것을 알았지만 감사합니다, 하고 웃어 보이는 여유도 보였다. 신발을 팔면서 희지는 주말에 가기 좋은 대한민국 여행 지도에서 본 여행지 몇 곳을 떠올렸다. 고객들이 꾸깃꾸깃 때가 탄 헌 신을 벗고 새 신을 신어보는 사이 희지는 숲이 좋을까 바다가 좋을까, 동쪽이 좋을까 서쪽이 좋을까 헤아렸다. 해가 저물고 쇼윈도 밖으로 크리스마스 조명이 반짝일 때 희지는 바다로 마음을 굳혔다. 유리창에 마침 푸른빛이 아른거렸기 때문에. 창에 비친 희지의 얼굴은 유독 건조해 보였다.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더라.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 친구와 뉴욕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십구만원짜리 비행기. 갈 때는 스물여섯 시간이 걸렸고 돌아올 때는 환승 시간이 사십 분밖에 되지 않아 공항에 갇힐 뻔했다. 그 시절 희지는 많이 걸었고 적게 먹었고 춥게 잤다. 그래도 술은 매일 꼭 사마셨다. 맥주와 와인과 위스키, 그리고 또 맥주. 취기로 허기를 이기고 오기로 피로를 이겼다. 휴학과 아르바이트를 반복하며 모은 돈을 일주일 동안 몽땅 쓰고 오니 참 꿈만 같고 그랬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정말 시절이었다. 한 시절, 지금과 다른 시절. 그뒤로 희지는 여행이라는 걸 잊고 살았다. 어느새 여행이란 게 돈 쓰고 시간 써서 빈털터리 되는 그런 걸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바다. 겨울 바다.
  희지는 어쩐지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어 중얼거렸다.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응모한 이벤트였다. 행운보다는 불운이 익숙한 사람으로서, 당첨 안내 문자를 받은 희지는 이것 참 희한하기도 하고 벅찬 마음이 들었다. 업체에서는 희지에게 주말에 다녀오기 좋은 대한민국 여행 지도와 함께 일회용 필름카메라, 정체 모를 쿠폰 번호를 우체국 택배로 보내주었다. 당첨자는 이 주일 안에 겨울 여행을 가서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다시 상자에 담아 업체로 보내야 했다. 그러면 필름을 현상해서 작은 앨범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쪽지의 맨 아래 작은 글씨로 택배비는 착불입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희지는 그런 작은 친절에도 흔쾌히 감동할 만큼 선한 사람이었으며 하루하루가 고된 사람이었다.
  희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겨울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조개껍데기도 줍고, 어쩌면 새로운 인연을 만날지도…… 또다른 시절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가서 필름 스물네 장을 꽉꽉 채워오기로 희지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근무표를 확인하자 이 주일 안에 휴무가 딱 하루 있었다. 다가오는 월요일. 나는 월요일에 쉬는 사람. 희지의 휴무는 대개 월요일이었다.

-언니는 절대 굶어죽지 않아 완전 외유내강 스타일이잖아

  밤 열시, 퇴근 버스에 올라 핸드폰을 확인하자 또 정체불명의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작년 언젠가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렇게 오곤 했다. 모르는 번호. 모르는 말들. 누구세요? 물어본 적도 있었지만 너 왜 그래, 미안해서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 언니 강해, 하고 또 알 수 없는 답문이 왔을 뿐이었다. 내가…… 미안할 일이 있나. 미안할 일 같은 건 만들고 살지 않았다. 희지는 습관적으로 스크롤을 올려 그간 온 메시지들을 훑었다.
  -잘 지내지 밥 챙겨먹고 다녀라 우리는 여기서도 밥 잘해먹는다
  -뉴스 봤니 진짜 지친다
  -아니야 잘할 거야 걱정마라

  참. 누군데 이렇게 애절할까. 희지는 메시지 창을 닫고 강릉행 케이티엑스를 검색해서 월요일 아침 아홉시쯤 출발하는 열차와 저녁 여덟시 반에 돌아오는 열차를 예매했다. 재밌겠다. 오랜만에 드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라거를 한 캔 마셔야지. 그런 계획을 세우며 희지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살짝 감았다. 찰칵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사진이 찍히지 않은 것입니다. 이벤트 업체가 보내준 영상에서 본 필름카메라 사용법을 떠올렸다. 찰칵. 희지는 벌써부터 무슨 사진을 담아올지 감은 눈꺼풀 위로 선연하게 그려보았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어쩌면 차가운 바닷바람과 저벅대는 모래 밟는 소리까지도. 필름 입자 하나하나에 박아올 것이다.

-어디?

  핸드폰 진동에 희지는 눈을 번쩍 떴다. 엄마. 엄마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이었다.
  엄마는 환갑을 앞두고 운전면허를 땄다. 무릎 염증이 심해진 뒤로 엄마는 방문판매 일을 그만두고 각종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바리스타, 조주기능사,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까지 줄줄이 취득했다. 마지막으로 공부한 한국어교원자격증은 학사 학위가 나오는 거라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시험과 실습 과정을 무난하게 통과하고 곧바로 결혼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센터에 한국어강사로 취업하기까지 했다. 센터가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좀 애매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이제 정말 운전면허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나이에 무슨 면허야. 그 돈이면 엄마 그냥 평생 택시 타고 다녀도 돼. 희지는 엄마를 나무라듯 타일렀지만 엄마의 의지는 굳건했다. 사람이 기동성이 있어야지. 그렇게 말했다. 엄마도 가고 싶은 데 많아. 엄마는 곧 필기시험을 한 번에 붙더니 기능도 주행도 단번에 붙어 매끈한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엄마는 핸드폰 케이스에서 주민등록증을 빼내고 대신 운전면허증을 끼웠다. 엄마 또래의 동네 아줌마한테 얼추 운전 연수도 받고서 그 아줌마한테 노란색 모닝도 싸게 샀다.
  그때부터 엄마는 토요일마다 희지를 만나러 왔다. 퇴근 시간에 맞춰 와 희지를 태웠고, 컴컴한 컨테이너가 늘어선 도로를 빙글빙글 돌다가 희지네 집으로 가곤 했다. 그때마다 희지는 타임머신을 잘못 타서 너무 아득한 미래로 와버린 사람의 기분이 들곤 했다. 엄마는 서울에서는 이렇게 세게 달릴 일이 없는데, 파주 참 깔끔한 곳이라면서 무척 좋아했다. 주말 밤에는 차도 많이 없었고 희지의 동네도 원룸텔이나 신축 빌라만 주욱 늘어서 있는 한적한 동네라 주차하기도 편했다. 역시 사람이 기동성이 있어야 된다니까. 엄마는 그 말을 자주 했다. 비록 운전을 하는 중에는 잔뜩 긴장해서 엄마는 황혼이혼도 아니고 황혼면허네, 하는 농담에도 핸들에 가슴팍을 바싹 붙인 채 좀,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늦게 끝나?

  어쩌나 고민하는 사이 또 문자가 날아왔다. 벌써 두 달이 넘은 일과를 잊다니. 희지는 엄마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약속을 까먹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미안, 오늘 마감이 길어져서, 하고 답문을 보냈다. 솔직히 귀찮기도 귀찮고 번거로운 약속이라고 생각해온 것은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품고 있는 애매하게 미안한 마음, 또는 빚지는 마음 때문에 그런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는 것이 항상 어색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고. 희지는 그걸 엄마가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죄책감을 가질 일은 언제나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희지는 좌석에서 일어나 셔틀 기사에게 기사님 죄송한데요, 하고 대강 사정을 말한 뒤 엉뚱한 아파트 단지 앞에 내려 택시를 호출했다.

엄마는 자고 가겠다고 했다. 그래. 희지는 별수없었다. 초보운전인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약속을 잊은 희지의 탓이었다. 엄마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희지는 다용도실에 한가득 쌓아둔 맥주를 꺼냈다. 엄마는 한 캔을 깨작깨작 마시더니 양치도 하지 않고 침대 한편에 누웠다. 희지는 금세 두 캔을 비운 뒤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한 캔을 더 들이켰다. 그제야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발을 닦을 수 있었다. 엄마 옆에 누우니 발그레해진 뺨이 느껴졌다. 은은히 올라오는 술냄새에 희지는 숨을 참고 모로 돌아누웠다.
  “내일도 출근하지?”
  “응.”
  “요즘 무슨 일 없지?”
  “응.”
  잠시간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백날천날 응, 응, 거리기만 하고 살갑게 굴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희지는 무슨 할 말이 없을까 머리를 굴리다가 엄마 나 모레 여행 간다, 하고 말했다.
  “무슨 여행?”
  “그냥 당일치기로, 강릉.”
  “강릉 좋지.”
  “엄마 강릉 가봤어?”
  “아니.”
  희지는 눈을 감았다. 엄마가 월요일에 출근을 한다는 것이 참 다행으로 느껴졌다. 고독한 시간이 절실했다. 내일 하루도 고되겠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일어나서 돈을 벌 생각에 희지는 모처럼 포근하게 잠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딸.”
  엄마가 희지를 불렀다. 희지는 부러 졸린 목소리로 으응? 하고 답했다.
  “우리 같이 살까?”
  “왜?”
  “엄마가 사람을 쳤어.”

눈을 뜨자 엄마는 없었다. 대신 핸드폰에는 진심이야, 잘 생각해줘, 하고 문자가 와 있었다. 희지는 주먹을 쥐고 머리를 힘껏 쳐보았다. 머리보다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다. 그렇게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했다.
  엄마는 보행자를 쳤다. 그것도 횡단보도에서 쳤다. 가중에 가중처벌이다. 합의를 보지 못하면 형사처벌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보운전인 엄마가 좁은 골목길에서 잔뜩 겁을 먹고 시속 10킬로미터로 서행중이었다는 것이다. 보행자가 갑자기 튀어나온 탓도 있지만 어쨌든 일단 정지해야 하는 곳에서 멈추지 않은 운전자의 과실이 명백했다. 유소년 축구 강사인 피해자는 발목을 삐끗하며 넘어져 경미한 부상을 입었고 한 학기 일을 날려버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합의금으로 삼천을 불렀는데 엄마가 병실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사죄를 한 덕인지 이천으로 내려갔다.
  형사처벌이 되면 기껏 따놓은 자격증들이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며 엄마는 반드시 합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너도 전과자 엄마를 두고 싶진 않잖아. 애원인지 협박인지 엄마는 누운 채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벌금을 빚져서 내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겠니? 지금 살고 있는 집 보증금을 빼고 희지와 같이 살면 이자로 나갈 돈에 생활비를 얹어 희지에게 주겠다고도 했다. 엄마 이제 취직도 했잖아. 돈 금방 모아. 희지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생각해볼게. 생각……

간신히 출근해서 재고를 정리하면서도 희지는 생각을 이어갔다. 딱히 해결책을 찾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냥 처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강릉행 기차를 취소해야 하나 생각하니 갈데없는 억하심정도 들었다. 이천이라…… 이천만원이 얼마만큼 큰돈인가 희지는 헤아렸다. 청년희망적금의 24개월 만기가 곧이었다. 그걸 털어봤자 천이백만원이 조금 넘고 이래저래 박아둔 돈을 그러모으면…… 계산이 맞는다면 대략 천칠백사십 얼마일 거다. 그중에는 언젠가 크루즈 여행을 하려고 모아둔 삼백만원도 있었다.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그마저도 모으는 데 이 년 넘게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천만원은 정말 큰돈이었다. 뭘 하려고 하면 애매한데, 한순간에 날리기엔 너무 큰돈. 희지는 다시 한번 주먹을 쥐고 머리통을 쿵쿵 쳤다. 손가락이 얼얼하면서 정신이 좀 들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봤어? 우리가 이겼어. 언니가 말했잖아. 우리가 옳아.

  하필 이럴 때 쓸데없이 핸드폰이 울리니 짜증이 울컥 났다. 왜 진작 차단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차단 버튼을 찾는 사이 또 알림이 울렸다. 문자 한 통이 더 떴다.
  -희지씨도 이제 잘 살아.

  희지씨? 나를 알아?
  누구지. 희지는 박스 더미 옆에 쪼그려 앉아 그간 온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인했다. 붉은 조끼를 입은 여자. 두 손가락을 벌려 확대. 확대. 얼굴을 보니 정숙씨였다. 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어서 정숙씨인 줄 전혀 몰랐었다. 같이 일한 시간도 반년이 될까 말까 했다. 삼 년 전 퇴사를 하고 나서는 볼 일도 없었다.
  아웃렛으로 오기 전 희지는 빵집에서 빵을 팔았다. 전국에 삼천 개가 넘는 지점 중 하나로, 거대한 식품회사의 빵집이었다. 원래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로 하던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본사에서 정규직으로 계약을 하게 되어 여러 지점을 돌아다녔다. 빵을 포장하고 진열하고 시식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개 2인 1조로 배정되어 업무를 보았는데 그러면서 친해지는 사람들도 생겼다. 희지 또래의 젊은 사람들도 있었고 정숙씨 같은 중년 여성도 있었다. 본사에서 수도권 지역 사원 단합대회를 열었을 때는 희지 같은 영업 사원이나 공장 사원, 지점 매니저 등등 수천 명이 모여 경품 행사도 하고 구호도 외치며 애사심을 다졌다. 희지는 아 이렇게 평생직장을 갖는구나, 하고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그게 봄이었는데.
  여름에 접어들 때 누군가 죽었다. 공장에서 일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27세의 사원이었다. 딸기잼 기계에 몸이 말려들어갔다고 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하필이면 딸기잼이라 피와 잼이 구분되지 않아 더 처참했다고 했다.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 나온 빵도 희지는 열심히 팔았다.
  각종 기자회견과 집회가 이어지더니 곧 농성이 시작되었다. 네티즌들은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빵집 쇼윈도에는 피 묻은 빵 안 먹습니다, 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기도 했다. 정숙씨도 노조 조끼를 입고 나타났다. 희지에게도 이제 자기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며 함께하자고 했다. 희지도 화가 많이 났다. 공장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희지는 끝내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모든 난리를 떠났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끝까지 싸워볼 수 있는 자격이랄까. 독한 마음이나 빛나는 기량 같은 것. 그런 건 희지에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이겼구나.
  그래서 이겼나.
  희지는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액정 가까이 고개를 숙이자 박스 더미가 기우뚱했다. 희지는 박스를 반듯이 쌓아두고서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털썩 앉았다. 재판 결과 공장 사원의 죽음에 대한 본사의 책임이 인정되었다고 했다. 본사는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조합원들은 법원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펑펑 우는 얼굴로 끝까지 싸우고 끝까지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희지는 답문을 보낼까 말까 하다가 말았다. 매니저가 창고 문을 벌컥 열고 희지씨 여기서 뭐해, 하고 나무랐다. 희지는 스팸 전화가 자꾸 와서요, 하고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매니저는 바쁜 티를 한껏 내며 매장으로 돌아섰다. 희지는 다시 정숙씨의 프로필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붉은 조끼에 이런저런 배지가 가득 달려 있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친 엄마. 이천만원이 없어서 같이 살자고 한 엄마. 엄마가 생각을 해보라고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생각이 날 게 없었다. 희지는 엄마와의 메시지 창을 띄우고 가만 서 있다가,
  -방법을 찾아볼게.

  하고 별 의미 없는 문장을 전송했다.

희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엄마는 벼룩시장에서 구인 공고를 보고 톨게이트 수납 업무를 시작했다. 동네 아줌마랑 같이 시작한 일이라 아줌마네 차를 얻어 타고 삼교대로 출퇴근을 했다. 희지는 엄마가 없는 날이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탈출 놀이와 경찰과 도둑 놀이를 실컷 하고 애들을 데려와 개그콘서트를 맘껏 보았다. 친구들이 학원에 가고 없을 때면 책을 읽었다. 집에 있는 책이 얼마 없어서 희지는 『자주 틀리는 맞춤법 백 가지』를 여러 번 읽었고 덕분에 받아쓰기는 항상 만점을 받았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도 두어 번 읽었고 『토지』는 1권만 맨날 읽었다. 책도 읽기 싫은 날이면 삼촌이 오기를 기다렸다. 삼촌은 아빠의 막냇동생으로 대학에 붙자마자 해남에서 올라와 희지네 집에서 살았다. 아빠는 희지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로 해외 파견을 나가 있었으므로 희지에게는 삼촌이 아빠보다 가까운 가족이었다. 그래서 희지는 어릴 때부터 삼촌하고 많이 놀았다. 주로 친구 놀이를 했는데, 별 건 아니고 상대방이 탕탕 쏘는 시늉을 하면, 친구! 으윽! 하면서 최대한 실감나게 죽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달려와 구해주는 그런 시답잖은 놀이였다. 희지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조금 더 의젓하게 공기놀이를 하거나 실뜨기를 했고 날이 좋을 땐 근린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그렇게 희지가 열 살이 되어 엄마, 나 이제 십대야, 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할 때도 엄마는 열심히 일을 했다. 아줌마들이 하는 일치고 이렇게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일이 없다면서 엄마는 건실한 직업여성이 되어 희지를 돌볼 수 있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봄날 분위기가 차츰 서늘해졌다. 영업소가 파업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영업소에서 수납 부스까지 가는 지하 차도가 침수되어 쓸 수 없게 되었는데, 수리를 하지 않고 방치해두는 바람에 아줌마들은 고속도로를 살금살금 건너 부스까지 가야 했고 그러다가 한 아줌마가 하이패스 차량에 치여 큰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라 영업소 위탁 업체 사장은 아줌마들을 야, 너, 하면서 하대하고 사무장은 해고 통지도 없이 근무표에서 그냥 이름을 빼기도 하고 휴게실은 냉난방이 안 돼서 아줌마들이 직접 선풍기며 난로를 바리바리 싸들고 오고…… 무엇보다 아줌마들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아줌마들 보는 앞에서 사장이 화단에 노상방뇨를 일삼았다는 것, 그리고 휴게실에서 김치찌개나 된장국을 끓여 냉장고에 넣어두면 사무장이 커다란 반찬통을 가져와 숭덩숭덩 담아간다는 것이었다.
  아줌마들은 결국 농성에 들어갔다. 영업소 앞에 천막을 세우고 비닐을 두르고 전기매트를 깔고 매일 아침 노래를 부르고 매일 저녁 회의를 했다. 엄마 역시 정숙씨처럼 조끼를 입고 다니면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점점 귀해졌다. 붉은 조끼가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온 국민이 비더레즈 티셔츠를 입고 다닐 때라 큰 이질감은 없었다. 희지의 기억으로 그때 엄마는 정말 활력이 넘쳤다. 딸, 이게 아줌마들의 자존심이라는 거야. 그런 말도 자주 했고 삼촌이 형수님, 괜찮겠어요, 라고 물으면 엄마는 힘들지 않아요,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라고도 했다. 삼촌도 그즈음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던 인터넷 신문의 경제부 기자로 입사를 해서 희지는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친구를 따라 지하철역 앞 광장에서 월드컵 거리 응원을 하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식구들 모두가 나름대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홍명보가 승부차기의 마지막 골을 장식한 날, 삼촌이 사라졌다. 얼마 뒤에 엄마가 희지를 불러 앉혔다. 이사를 가야 한다. 왜? 빚을 졌어. 무슨 빚? 삼촌 빚. 4강전을 보러 광화문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희지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축구를 못 보게 되었다고 했다. 왜? 우리 집 빚이 생겼대.
  그때 삼촌은 집 보증금을 빼서 주식을 샀다. 희지야, 이제 인터넷 시대가 올 거야. 삼촌은 그 말을 자주 했다. 이제 무슨 아파트가 아니라 무슨 닷컴인지가 중요해질 거야. 희지는 삼촌을 믿었다. 삼촌은 인터넷 경제신문 인턴이니까. 삼촌도 삼촌을 믿었다. 그 믿음의 대가가 오천만원이라니. 아빠는 처음에만 길길이 날뛰더니 그뒤로는 연락도 잘되지 않았다. 엄마는 곧 법원을 드나들더니 이혼 소식을 알려왔다. 오천만원 중에 칠백만원. 삼촌이 갚은 건 그게 전부였다.
  그뒤로 희지는 삼촌을 딱 두 번 봤다. 몇 달 만에 나타난 삼촌이 형수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고 오열을 했을 때 한 번, 삼촌 결혼식 때 한 번. 삼촌을 마지막으로 본 날 밤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의 남자가 울면서 희지의 이름을 불렀다. 희지야…… 미안하다. 삼촌이 미안해…… 수능을 앞두고 이모가 보내준 찹쌀떡 세트를 먹고 있던 참이었다. 찹쌀떡이 퍽퍽해서 목이 메었다. 희지는 떡을 꿀꺽 삼키고 가슴을 몇 번 친 뒤에 삼촌, 하고 불렀다. 으응? 괜찮아, 삼촌. 정말? 응, 갚을 거잖아. 그렇잖아, 삼촌. 전화는 조용히 끊어졌다. 희지는 전화번호를 저장해두었다.

희지는 메신저에서 삼촌을 검색했다. 상태 메시지에는 ‘핸드드립 잘 내리는 커피 아저씨~♡’라고 적혀 있었고, 아홉 살 즈음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함께 한옥 앞에서 브이를 하고 있는 프로필 사진이 보였다. 아이는 커다란 눈코입이 달린 식빵 캐릭터가 그려진 붉은 티셔츠를 입고 활짝 웃고 있었다. 아이와 식빵과 삼촌 모두 묘하게 닮았다. 희지는 두 손가락으로 프로필 사진을 쭉쭉 확대했다. 한옥 담벼락에 카페 사계, 라고 적힌 목재 간판이 보였다. 포털 앱을 열어 카페 사계를 검색했다. 전국 팔도에 온갖 카페들이 주르륵 떴다. 한옥 카페 사계, 로 검색어를 좁혔다. 강릉 핫플 분위기 좋은 커피 맛집 한옥 카페 사계. 핸드폰의 작은 액정이 불현듯 아주 환하고 선명해졌다. 강릉, 커피, 핫플, 한옥 카페, 사계.
  강릉.
  이 모든 건 아무래도 계시가 분명했다.


*

강릉행 열차에서 희지는 해야 할 말을 헤아렸다. 몇 년 만에 보는 삼촌에게 이십 년이 넘은 빚을 갚으라고 하면서 해야 할 이야기를 추리고 또 추렸다. 엄마는 오천만원을 잃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 이후로 투쟁을 그만뒀다. 영업소 위탁 업체 사장이 회유책으로 제안한 휴게소 일자리를 수락했다. 엄마 말고도 몇몇 아줌마들이 그런 식으로 회유책에 넘어갔고 농성은 본사까지 가지 못한 채 흐지부지 종료되었다. 엄마는 스스로를 배신자라고 여겼다. 빛나던 얼굴의 생기는 사라지고 아줌마의 자부심도 희미해졌다. 마트에서 육 개월 수습 기간을 채우고 정규직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엄마는 거절했다. 그게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작 그 정도의 양심만 남아서 아프다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즈음 희지는 중학생이 되었고, 첫 수학여행을 가는 날 아침 화장실을 차지하고 나오지 않는 엄마 때문에 문을 쾅쾅 두드리며 화를 냈다. 나 버스 놓친다고! 문고리를 몇 번 덜컹이자 문이 열렸다. 타일 바닥이 피로 흥건했다. 자궁근종이라고 했다. 악성 종양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그런데 자궁을 들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의사는 담담하게 소견을 말했고 엄마는 고민 없이 수술 일정을 잡았다. 지긋지긋한 생리 이제 안 하겠네. 퇴원한 날 엄마는 옷장 서랍에 있던 엄마의 생리대를 몽땅 희지에게 주었다. 엄마는 생리를 안 하는 대신 갑작스러운 호르몬 변화로 살이 엄청 쪘다. 각종 효소를 사먹고 자연식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대신 그러면서 알게 된 다른 아줌마들 덕에 각종 방문판매에 뛰어들어 돈을 벌었다.
  할말이 너무 많았다. 희지는 두 사람의 역사를 오천만원으로부터 정리하다가 생각했다. 그때 엄마가 끝까지 투쟁이라는 걸 해봤다면, 그래서 다 같이 이기거나 다 같이 졌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좀더 좋은 방식으로. 희지는 메모장을 켜 타닥타닥 적어 내려갔다. 삼촌, 그 돈 갚아줘. 매달 조금씩이라도. 이자는 안 받을게. 우리 엄마 그거 때문에 자존심도 팔고 자궁 수술도 하고 우리 되게 힘들었어.

월요일 오전 열한시의 강릉역은 한산했다. 희지는 역사에 배치된 강릉 관광지도 하나를 꺼내들었다. 지도가 꽂힌 거치대에는 관광 안내 책자도 종류별로 놓여 있었다. 역사의 정취를 느끼는 특별 여행, 생태문화 탐방 여행, 숲과 바다와 함께하는 예술 여행…… 책자를 훑는데 거치대 위에 붙은 전단지 하나가 희지의 눈에 들어왔다. 도주 수용자 박용구 수배 전단. 현상금 천만원. 여러분의 신고와 제보가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됩니다. 십여 년 만에 나타난 연쇄살인범의 재판 중 탈출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떠들썩했다. 신창원도 아니고. 지금 시대에 탈주범이라니. 희지는 카메라를 꺼냈다. 수배 전단과 함께 지도와 책자가 꽂힌 거치대를 함께 찍었다. 설명대로 정말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일단 원래 세웠던 여행 계획대로 희지는 강릉역 근처 장칼국수 집을 찾아가서 장칼국수 하나와 함께 유명 유튜버가 추천한 동동주 한 잔을 주문했다. 국수는 생각보다 매웠다. 희지는 국수는 반쯤 남기고 동동주 잔은 깨끗이 비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찰칵. 필름 감기는 소리가 경쾌했다. 오랜만에 담배 생각이 났다. 옆 건물 편의점으로 들어가 에쎄 체인지 일 미리 주세요, 하고서 라이터 색을 골랐다. 연두색과 보라색 중에 고민하다가 보라색으로 결정했고, 오천오백원을 결제했다. 라이터가 언제 천원이 됐냐. 건물 앞 주차장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주차장 관리원이 훠이훠이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주차장 바깥 골목길에 쭈그려 앉은 희지는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았다. 오랜만이었다. 구수하게 타들어가는 냄새에 아주 잠깐 옅은 미소가 스쳐갔다. 연기를 후우, 하고 뱉었다. 최대한 가늘고 길게 오래 뱉었다. 열흘 남짓의 사건들이 남의 이야기처럼 재생되었다. 축하합니다. 엄마가 사람을 쳤어. 당첨되었습니다. 같이 살까? 사진이 찍히면 찰칵 소리가 납니다. 희지씨 이제 감 좀 잡았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야기의 끝엔 갚아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이 놓여 있었다. 희지는 담배를 한 모금 더 피웠다. 갑작스러운 니코틴 때문인지 금세 어지러워졌다. 희지는 타다 남은 담배를 주차장 쪽으로 던졌다.
  다음 코스는 강문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오션뷰 카페였는데, 생각보다 다소 공장 같은 모습에 희지는 약간 실망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사람은 별로 없었고 미리 찾아둔 인스타그램 명당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동동주 때문인지 낮술이 당겨 커피 대신 강릉의 소규모 브루어리에서 만들었다는 수제 라거를 주문했다. 청량한 맛이 드넓은 동해의 색과 어울렸다. 라거는 금방 동이 났다. 희지는 수제 에일을 한 잔 더 주문하고 또 단숨에 비웠다. 알큰하게 마음이 들떴다.
  이제 가야 했다.

한옥 카페 사계는 해변에서도 시내에서도 떨어진 외딴곳에 있었다.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버스는 무사히 탔지만 낮술 때문인지 그새 조는 바람에 희지는 내려야 할 정류장을 하나 지나쳐서 내렸다. 황량한 도로 건너편에 1실 1주차라고 큼직하게 적힌 모텔이 보였다. 그 옆으로는 영업을 중단한 지 오래된 듯한 LPG 충전소가 삭아가고 있었다. 희지는 지도 앱을 켰다. 카페 사계까지는 삼십 분을 조금 넘게 걸어야 했다.
  희지는 삼촌에게 할말을 읊조리며 찬찬히 걸어갔다. 삼촌. 잘 지냈어요? 나는 잘 있지. 그냥 일하지. 삼촌, 미안한데 그때 그 돈 갚아주면 안 될까? 엄마랑 나랑 그때 많이 고생했어. 엄마는 수술도 했어. 하고 싶은 일도 다 그만뒀어. 삼촌도 미안하잖아. 그렇잖아. 삼촌 나한테 정말 잘해줬잖아요. 말을 하다보니 문득 삼촌이 보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엄마만큼이나 삼촌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삼촌도 만나고, 언젠가 돈을 다 갚겠다는 약속까지 받으면 정말로 좋을 것이다. 기쁠 것이다. 마음이 다시 알큰하게 달아올랐다. 다소 갑작스럽지만 삼촌도 재회를 반길 것이다. 희지야! 하고 와락 달려올 것이다. 어쩌면 희지의 두 손을 붙잡고 엉엉 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십 분쯤 걸었을까.
  오줌이 마려웠다.
  아래가 간질간질할 정도로 급한 요의가 솟구쳤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간 이후로 소변을 본 적이 없었다. 오션뷰 카페를 나오기 전에 화장실을 갔어야 했는데. 희지는 아랫배를 받쳐 잡고 빨리, 더 빨리 걸었다. 동동주와 라거와 에일이 한데 모여 방광을 팽창시켰다. 술기운은 요의를 극대화했다. 감동적인 재회의 그림은 어느새 분노로 일그러졌다. 어떻게 이런 깡촌에다가 한옥 카페를 차려놓고 돈을 벌 생각을 해. 삼촌, 안녕, 화장실은 어디야? 희지는 오줌 생각을 안 하려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캡슐을 깨물고 불을 붙였다. 효과는 미미했지만 어쨌든 노력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질 때쯤, 마침내 카페 사계 간판이 붙은 담벼락이 보였다. 희지는 사타구니를 최대한 초인 채로 뒤뚱거리며 달려갔다. 나무 대문을 벌컥 밀었다. 밀리지 않았다. 한 걸음 물러났다.

월요 휴무. 오늘은 쉬어 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카페 사계-

희지는 월요 휴무가 적힌 안내판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돌담으로 돌진했다.
  허리춤까지 오는 돌담을 단숨에 밟고 올라간 희지가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디귿 자 한옥은 생기 없이 커피 향만 뿜고 있었다. 희지는 가게 문을 잡고 흔들어보았다. 굳게 잠겨 있었다. 유리문 너머 화장실이 보였다. 희지는 바지 단추를 끄르며 마당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지를 내리고 어깨너비보다 넓게 섰다. 그리고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이내 오줌이 콸콸 쏟아졌다. 잔디가 듬성듬성 난 흙바닥이 둥그렇게 패이면서 소변 방울이 튀었다. 웅덩이에서 흘러넘친 물줄기가 땅의 요철을 따라 흘렀다. 희지의 신발 밑창 아래로도 오줌이 고이는 게 보였다.
  희지는 냅킨으로 밑을 닦고 대충 내던져버렸다.
  어쨌거나 시원했다.

삼촌은 엄마를 형수, 형수님, 하고 불렀고 엄마는 삼촌을 항상 도련님, 하고 불렀다. 도련님은 이름만으로도 귀해 보였다. 엄마는 삼촌이 두고 간 과제를 들고 아이고 이놈의 도련님 정신없는 것 좀 봐, 하고 학교까지 달려가기도 했고, 삼촌의 졸업식에 가서 도련님, 여기 보세요, 하면서 학사모를 쓴 삼촌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입사 첫날 회식에서 주는 술을 다 받아먹고 뻗어버린 삼촌을 도련님, 집에 갑시다, 하면서 업어왔고 정규직 전환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막내 인턴을 위로해준다고 종일 갈비찜을 해서 도련님 이거라도 드셔, 하면서 듬뿍 덜어주기도 했다. 어쩌면, 삼촌이 엄마에게 갚아야 할 것은 오천만원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분명 더 있다. 삼촌이 빚진 것은 날린 보증금만이 아니다. 삼촌이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던 이유. 마지막 양심 같은 것. 그런데……
  그 어떤 재회도 없이 오줌만 누고 가는가.
  희지는 질척한 웅덩이와 텅 빈 카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건 아무래도 생각하던 바가 아니었다.
  희지는 핸드폰을 꺼내 다시 삼촌을 검색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곧 컬러링이 흘러나왔다. 빨간 꽃 노란 꽃…… 희지는 순간 따끔, 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사계. 거북이의 사계가 나왔을 때 엄마는 한창 일을 하고 있었다. 삼촌과 가장 많이 놀던 시절이었다. 희지는 터틀맨의 랩 구간을 특히 잘 따라 했다. 그러면 삼촌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주곤 했고.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 구름…… 거북이의 노래가 리메이크곡이라는 것은 한참 더 자라서 알게 되었다. 봄에서 겨울, 다시 봄. 계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희지는 빵을 팔고 신발을 팔면서 알았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그런데 이 노래를 컬러링으로 해놓았단 말인가. 카페 이름이 그렇다고. 그렇게 정신이 팔린 사이, 노래가 뚝 끊어졌고.
  “누구세요?”
  머리가 하얘졌다. 누구세요, 는 희지의 시나리오에 없던 말이었다. 희지는 잠시 멍해졌으나 차분하게 삼촌, 나야, 희지야, 하고 말을 꺼냈다.
  “희지?”
  “응, 희지.”
  “아이고, 희지! 얼마 만이야, 우리 조카! 잘 지냈어? 이제 몇 살이지?”
  삼촌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과거도 없어 보였다. 아무것도 예상대로 연습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삼촌, 있잖아, 그때………”
  “응?”
  “삼촌, 그때 우리가………”
  “어, 희지야.”
  “우리 엄마 자궁이 얼만지 알아?”
  “뭐?”

희지는 담배 세 대를 연달아 피웠다. 꽁초는 모두 웅덩이에 던져버렸다. 사진을 찍었다. 찰칵. 그리고 도로 돌담을 넘어 나왔다. 그제야 카페 주위의 풍경이 보였다. ‘무’와 ‘모’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인텔’이 된 무인 모텔, 그 앞으로 펼쳐진 누런 논바닥, 한구석에 내팽개쳐진 세발자전거 같은 것들. 희지는 천천히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하나하나 발걸음을 뗄 때마다 왠지 양말에서 오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번잡해졌다. 오늘의 한바탕 난리가 누구의 역사이고 누구의 미래인지 점점 헷갈리는 와중에 메시지가 왔다. 송금 봉투를 받으세요. 삼촌이었다.
  -생각해보니 삼촌이 조카한테 용돈 한번 준 적이 없네.

  얼마일까. 삼촌의 메시지 저 아래에는 정숙씨의 메시지가 보였다. 우리가 옳아.

정숙씨는 희지를 자기야, 내지는 희지씨, 하고 불렀고 희지는 정숙씨를 어머님, 하고 불렀다. 정숙씨는 희지의 마지막 퇴근길을 찾아왔다. 농성장 지킴이를 째고 나왔다고 했다. 희지가 회사를 그만둘 때 사실 모두가 알았다. 희지는 단순히 퇴사를 하는 게 아니라 거대하고 질척한 늪에 휘말리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라고. 정숙씨도 이를 알았다. 자기, 잘했어. 희지씨는 아직 너무 젊으니까. 희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어라 할말이 없어 잠시 가만 서 있다가, 어머님, 하고 정숙씨를 불렀다. 정숙씨는 응, 하고 답했고 희지는 저는 봤어요, 어릴 때, 하고 우물거렸다. 뭘? 엄마가 이런 거 했었어요. 이런 거? 그런데 관뒀어요. 그러셨어? 네, 그래서…… 희지는 도로 입을 다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마음이 너무 하찮아서 고개를 떨구었다. 정숙씨는 그런 희지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속삭였다. 나중에. 나중에 갚아.
  희지는 왜인지 삼촌 생각은 뒤로 하고 정숙씨를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아까는 분명 지옥처럼 먼 길이었는데. 지금은 꽤 산뜻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앞에 정류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쯤, 데구르르. 뒤에서 작은 돌이 하나 굴러왔다. 희지는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눈이 마주쳤다. 아이였다. 희지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홉 살. 그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 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식빵 캐릭터 티셔츠를 입고 있는.
  희지는 아이를 향해 돌아섰다.
  “너, 나 따라온 거야?”
  아이는 말이 없었다.
  “너, 나 알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너, 친구 놀이 알아?”
  아이의 눈이 순간 동그랗게 커졌다.
  “나 쏴봐.”
  “……”
  “얼른.”
  아이는 빠앙, 하고 전혀 총소리 같지 않은 소리를 웅얼대며 희지를 향해 손가락 총을 쐈다. 희지는 으윽, 윽, 친구…… 친구…… 하며 무릎을 꿇고, 땅을 짚고, 이내 철퍼덕 쓰러졌다. 이렇게 쓰러지면 삼촌이 허우적대는 시늉을 하며 친구! 구해줄게! 하며 어린 희지를 일으켜주곤 했는데. 지금은…… 모로 누운 희지의 얼굴 앞으로 아이가 달려나갔다. 총총. 분명 겨울인데 땅바닥은 꽤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강릉의 힘인가. 희지는 아예 대자로 누워버렸다. 하늘은 흐렸지만 눈이 부셨다. 희지는 살짝 눈을 찌푸린 채 핸드폰을 꺼내 삼촌의 송금 메시지를 삭제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 찰칵.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 찰칵. 눈이 시린 하늘. 찰칵. 오줌에 젖은 발. 찰칵. 겨울 여행. 그런 것들. 문득 희지는 엄마와 다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고, 찰칵. 그제야 정숙씨에게 보낼 답문이 떠올랐다.

서고운

2022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숨은 그림 찾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일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정숙씨와 엄마가 일하고 싸우는 모습은, 2019년 톨게이트 지붕 농성을 펼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을 읽고 참고했다.
갚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자주 아프다.

2025/02/05
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