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과 오른쪽에서 아이들이 동시에 뛰쳐나와 서로에게 뭉친 흰을 던지는 어느 오후 아직은 빛이 공평하게 아이들의 이마를 반짝이게 하는 오후 누군가 앉은 모양으로 흰이 사라진 벤치가 있는 운동장 끝과 끝에서 뛰어나온 아이들이 흰을 서로에게 던지고 웃고 다시 멀리 도망가는 그런 오후 왼쪽의 아이들과 오른쪽의 아이들이 가까워졌다가 다시 화면 바깥으로 사라지는 동안 이쪽과 저쪽으로 시소가 갸우뚱거리는 아름다운 겨울이 나오는 영화를 우리는 보고 있었다 난방이 되지 않아 두꺼운 이불로 각자의 몸을 감싸고 채 감싸지지 않은 발끝에 닿는 냉기를 모르는 체하면 빛과 함께 뛰어나오는 아이들 뛰어나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흰을 들고 나와 서로에게 던지고 웃고 머리에 흰을 묻힌 아이들이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영화 보면서 저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내가 묻고 너는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이렇게 웃고 있는데 쟤네는 평생을 흰을 뭉치고 던진 기억으로 살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이 흰을 저렇게 부수고 있는데 아이들의 손에서 흰이 으깨지고 있는데 너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너 역시도 어린 날 상자를 주워 동네 형 누나들과 내리막길을 몇 번이고 내려갔다가 올라온 기억이 있다고 온몸이 젖어도 하나도 춥지가 않았다 이상하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너의 눈은 아이들이 어디선가 가져온 흰을 끊임없이 서로에게 던지는 영화에 가 있고 그렇지만 잘 생각해봐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서 이불 하나를 나눠 덮으며 춥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대사가 반박자씩 밀리는 영화를 볼 거라고 그때의 너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잖아 대꾸하지 않고 흰을 본다 아이들의 발 밑으로 흰이 쌓이고 쌓이는 것을 본다 아이들이 흰을 데리고 오는 화면 바깥이 얼마나 지저분한 흙으로 엉켜 있을지 그런 것은 나오지 않는 흰의 영화 이 장면은 롱테이크로 찍었다고 한다 아이 중 한 명이 울어버려서 촬영이 중단되고 인근 운동장을 수색해 깨끗한 눈밭에서 다시 찍었다고 한다 운 아이가 어떤 아이일까 유심히 바라보려 할 때마다 사라지는 아이들 어느 나라에서 흰은 부정한 것을 쫓는 재료라던데 흰으로 무덤을 쌓아올리는 저 아이들은 의심 없이 깨끗하게 자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은 너의 말대로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고 희미한 온기에 돌아보면 너는 흰을 안고 곤히 잠들어 있다 여전히 양쪽에서 아이들이 뛰쳐나오는데 지치지도 않고 흰을 던지는데 나는 너의 흰을 조금 뺏어 삐져나온 나의 발 위에 올린다 아이들이 깨트리기 위해 흰을 그러모으는 동안

구윤재

2024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5/01/08
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