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시작의 이름
이퐁
이토록 무거운 마음으로 맞이했던 새해가 또 있을까요. 지구는 늘 하루에 한 번 돌고 해는 날마다 뜨지만 ‘새해’라고 소리내어 부르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따스한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림책 『시작의
이름』은 끝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 말해요. 달걀의 끝은 병아리의 시작, 산책의 끝은 놀이터의 시작, 해변의 끝은 바다의 시작, 길의 끝은 집의 시작, 여행의 끝은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라고요.
시작은 이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는 누군가 이름을 붙여준 것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윤재의 시에는 겨울을 닮은, ‘흰’이라 이름 붙인 어떤 것이, 한정원의 시에는 오래도록 누군가를 생각하는 구두가 있네요. 윤단의 소설에는 남과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해주를 위해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는 아빠가 있고, 서고운의 소설에는 희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삼촌과 희지가 기억하지 못해도 이름을 불러주는 정숙씨가 있습니다.
시작은 이름을 붙이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를 맞이하거나 혹은 스스로 그 존재가 되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방지민의 동시에서 참외가 자신의 이름이 미리 온 제목처럼 ‘참 외롭다’는 걸 알아채는 것처럼요. 이소풍의 동화에서 지유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교감 선생님 대신 채나리 선생님을 찾아 오리와 모험을 시작하고, 잠자의 동화에서 로봇 JX-612는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준 지은을 위해 전자 알약을 삼킵니다. 이번 호 리뷰 두 편은 모두 어린이·청소년문학을 다뤘습니다. 장미례는 모험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녀들에 주목하고, 이하나는 눈에 띄지 않는 ‘기타 등등’의 이름들을 “제대로, 일부러라도 더” 불러주는 요즘 작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작은 이동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익숙한 장소를 떠나 경계를 넘는 이동은 단순한 움직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웹진 《비유》는 그동안 함께했던 권정현, 김신식을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김신재, 성연주를 새로운 동료로 맞이했습니다. ‘이동’을 테마로 정성스럽게 꾸려진 이번 호 <연계/확장> <사회/커뮤니케이션>과 첫발을 내딛는 ‘문학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주세요.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 준불 베튤은 겹겹이 쌓인 경계에 서식하며 예민한 촉수로 감각해낸 것들을 한국어로 토해내듯 들려주고, 이에 화답하듯 송민정은 2014년의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 혹은 어딘가의 풍경과 작가 ‘랃’과의 몽환적인 조우에 관해 읊조립니다. ‘비평 교환’의 콘노 유키는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의 사이는 해협이 아니라 목적지에서 보내는 ‘시간’”이라 말하고, 안은별은 ‘도쿄 철도’의 ‘승객’과 ‘고객’ 사이를 진동하며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도시의 모빌리티가 배제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되묻습니다. 서울, 순천, 부여, 속초로 이동하며 문화의 싹을 틔워온 무소속연구소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판도: 기획을 기획하다’, 문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온 조형래의 진솔한 글이 담긴 ‘문학하는 사람들’도 찬찬히 곱씹어보시길 권합니다.
『시작의 이름』 마지막 장은 ‘이 책이 끝나면 네 이야기가 시작된단다’로 끝납니다. 여러분의 새해가, 새로운 시작이, 시작의 이름들이 모이면 올해가 끝날 때쯤 흥미진진한 한 권의 책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그 여정에 웹진 《비유》가 곁을 지키며 함께 걷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작은 이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는 누군가 이름을 붙여준 것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윤재의 시에는 겨울을 닮은, ‘흰’이라 이름 붙인 어떤 것이, 한정원의 시에는 오래도록 누군가를 생각하는 구두가 있네요. 윤단의 소설에는 남과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해주를 위해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는 아빠가 있고, 서고운의 소설에는 희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삼촌과 희지가 기억하지 못해도 이름을 불러주는 정숙씨가 있습니다.
시작은 이름을 붙이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를 맞이하거나 혹은 스스로 그 존재가 되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방지민의 동시에서 참외가 자신의 이름이 미리 온 제목처럼 ‘참 외롭다’는 걸 알아채는 것처럼요. 이소풍의 동화에서 지유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교감 선생님 대신 채나리 선생님을 찾아 오리와 모험을 시작하고, 잠자의 동화에서 로봇 JX-612는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준 지은을 위해 전자 알약을 삼킵니다. 이번 호 리뷰 두 편은 모두 어린이·청소년문학을 다뤘습니다. 장미례는 모험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녀들에 주목하고, 이하나는 눈에 띄지 않는 ‘기타 등등’의 이름들을 “제대로, 일부러라도 더” 불러주는 요즘 작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작은 이동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익숙한 장소를 떠나 경계를 넘는 이동은 단순한 움직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웹진 《비유》는 그동안 함께했던 권정현, 김신식을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김신재, 성연주를 새로운 동료로 맞이했습니다. ‘이동’을 테마로 정성스럽게 꾸려진 이번 호 <연계/확장> <사회/커뮤니케이션>과 첫발을 내딛는 ‘문학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주세요.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 준불 베튤은 겹겹이 쌓인 경계에 서식하며 예민한 촉수로 감각해낸 것들을 한국어로 토해내듯 들려주고, 이에 화답하듯 송민정은 2014년의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 혹은 어딘가의 풍경과 작가 ‘랃’과의 몽환적인 조우에 관해 읊조립니다. ‘비평 교환’의 콘노 유키는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의 사이는 해협이 아니라 목적지에서 보내는 ‘시간’”이라 말하고, 안은별은 ‘도쿄 철도’의 ‘승객’과 ‘고객’ 사이를 진동하며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도시의 모빌리티가 배제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되묻습니다. 서울, 순천, 부여, 속초로 이동하며 문화의 싹을 틔워온 무소속연구소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판도: 기획을 기획하다’, 문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온 조형래의 진솔한 글이 담긴 ‘문학하는 사람들’도 찬찬히 곱씹어보시길 권합니다.
『시작의 이름』 마지막 장은 ‘이 책이 끝나면 네 이야기가 시작된단다’로 끝납니다. 여러분의 새해가, 새로운 시작이, 시작의 이름들이 모이면 올해가 끝날 때쯤 흥미진진한 한 권의 책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그 여정에 웹진 《비유》가 곁을 지키며 함께 걷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