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아.
  네게는 여러 가족이 있지.
  너를 낳았거나 네가 낳은 이들. 혹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너와 맺어진 이들…… 그러나 분명히 알길 바라, 너의 가장 오래된 가족은 우리야.
  우리는 네가 늙어갈수록 이 사실을 주장하고 싶어 전전긍긍해. 왜냐하면 우리야말로 네 가장 가까이에 있노라고 느끼기 때문이야. 또 우리야말로 너와 함께 태어나 너와 같이 스러질 것이기 때문이야. 우리는 네가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너를 숨 쉬게 했고, 먹고 배설하며 잠들게 했어. 자라나고 늙어가도록 만들었어. 그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지. 너는 우리가 밉기도 했을 거야. 그러나 우린 한번도 널 미워하지 않았어. 오로지 너를 살리려 야단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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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온다.
  월이의 딸이 전화를 받는다. 월이는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다. 채널을 몇 차례 돌리다가 멈춘다. 월이가 찾던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있다. 화면 너머에 숨은 손이 은색 실로폰을 두드린다. 곧이어 늙은 남자가 기운찬 목소리로 외친다.
  전국―.
  뒤따라 노래자랑, 하며 소리치는 이들은 대개 늙고 들떠 있다.
  남자는 월이보다 한 살 더 많고,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월이의 손녀보다 열세 살 더 많다. 지금 손녀는 건너편 방에 앉은 월이의 딸에게 무언가 부탁하고 있다. 부탁을 들은 월이의 딸이 말한다.
  그거 정말 이상한 부탁이네.
  텔레비전에서 첫 무대가 시작된다. 한 여자가 박수 소리와 함께 무대 위로 올라온다.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관중석에 앉은 그의 가족이 현수막을 흔든다. 여자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다. 무대 위 여자와 현수막 뒤 얼굴들은 서로 닮았다. 아마 여자를 낳았거나, 여자가 낳은 이들일 것이다.
  월이는 그 모든 광경을 보고 듣는다. 우리 역시 그것을 보고 듣는다. 월이가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는 무조건 함께 받아들인다. 우리가 월이에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월이가 우리에게 묶여 있듯이.
  쌍방을 묶는 이 매듭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이 매듭이 아주 질기고 촘촘하다는 사실만 안다. 매듭의 길이는 월이가 지나온 시간의 길이와 같다. 매듭의 내구성은 날이 갈수록 견고해져서, 우리는 월이가 겪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아주 깊이 알게 되었다. 누가 그를 낳았으며, 그가 누구를 낳았는지, 그가 가장 자주 취하는 자세가 어떤 것이며 특히 불편하게 여기는 부위는 어디인지…… 물론 월이가 아닌 자들에게 이 모든 일을 자세히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에게만 유의미하다. 우리가 그것들을 직접 함께 통과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되었기에.
  그러나 월이의 첫 가족에 관해서는 꼭 말하고 싶다. 우리는 월이의 가장 오래된 동행이지만, 그럼에도 월이의 첫 가족이라는 이름은 그들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야말로 월이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월이를 만들었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생겨났다. 월이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우리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두근거리거나 꼬르륵대고 울렁이거나 씩씩거리며 월이와 함께 자라났다. 우리는 심장이나 뇌 간장 비장 소장 대장 피부 뼈 폐와 콩팥 따위로 나뉘어 불리기도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하나의 가족일 뿐이다. 월이를 낳고 기른 자들도 어머니와 아버지 혹은 할머니나 할아버지 등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멀리서는 한 덩어리로 일컬어지는 것처럼.
  월이는 꽤 이른 나이에 첫 가족을 떠났다. 월이가 주도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의 일이다. 어떤 상처도 빠르게 나아서 살갗이 매끈했고, 혈액 역시 막힘없이 돌아서 손발 모두 발그스름했다. 월이는 지프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가 혼례를 올렸다. 월이의 남편 된 자는 월이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았다. 그는 우리보다 훨씬 커다란 기관들로 돌아가는 공장의 주인이었다.
  월이가 공장의 어린 사모님 역할에 적응하는 사이, 그의 고향에 이방인들이 찾아왔다. 깡마른 남자들이었다. 먼지로 부예진 녹색 군복 차림이었으며, 길쭉한 총과 가방을 걸머지고 다녔다. 월이가 미로 같은 시내 골목을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뒷산에서 나물을 캘 무렵, 그들은 월이의 고향을 사방으로 누비며 사람들을 하나둘 불러냈다. 부름에 응하지 않는 이들은 붙잡아서 바깥으로 끌어냈다. 월이가 장을 봐온 쌀과 캐온 나물로 공장 일꾼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동안, 군인들은 불러낸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이름들은 한참을 불러도 끝나지 않았다. 그 속에 월이의 사람들도 있었다. 부름에 응하는 이는 없었지만, 남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후 월이는 그 시간, 자신이 머문 적 없는 시간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날 본인이 머물던 시간과 머문 적 없던 시간, 혹은 머물지 못한 시간, 그 시간들 사이에 벌어진 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월이 자신이 쌀의 무게를 재고 냉이를 캐는 사이 사라진 몸들의 시간을 그리기도 했다. 기이한 일이구나. 그 몸들은 한때 월이와 아주 가까이 있었는데. 어떤 몸속에는 말 그대로 월이의 몸이 들어 있기도 했다. 이제 그 몸들의 시간은 모두 멈췄다. 그런데도 자기 몸의 시간만은 계속하여 흘러간다는 사실을 월이는 의아하게 여겼다. 그것이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 우리는 월이에게 가장 매정하게 굴었다. 우리는 월이가 멈춰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외려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재촉했다. 그를 우리에게 단단히 묶고서는 거듭 무언가를 요구했다. 우리를 먹이고 재우고 소화하며 배출해다오. 우리가 너와 함께 자라고 변화하며 마침내 낡아서 사라지게 해줘. 월이가 우리의 말을 못 들은 체하면 그를 마구 찔렀다. 숨을 쉬어라. 멈추지 마. 네가 계속 움직여야 우리도 숨 너머로 갈 수 있어. 월이는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몇 초 후 그가 다시 숨을 내쉬면, 우리는 슬금슬금 그 너머의 미래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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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에서 첫 무대가 끝난다. 노래를 마친 여자가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한다. 노래하던 여자와 닮은 이들이 현수막을 무릎 위에 내려놓는다. 월이의 딸이 방에 들어온다.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다. 월이의 딸이 희미하게 웃는다. 방금 월이의 손녀가 묘한 부탁을 해왔노라고 한다.
  엄마의 심장 소리가 듣고 싶대.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거야.
  월이가 텔레비전을 끈다. 벽에 기대어 앉는다. 딸이 다가와 월이와 무릎을 맞대고 앉는다. 휴대폰을 뒤집어 월이의 가슴팍에 갖다 댄다. 손목에 붙이기도 한다. 종이를 둥글게 말아 관의 양쪽 끝을 월이의 가슴팍과 전화기에 붙여도 본다.
  월이의 딸이 묻는다. 잘 들려?
  월이의 손녀가 답한다. 아니.
  딸이 머리를 긁적인다. 휴대폰을 스피커 모드로 바꾼 뒤 바닥에 놓는다.
  기다려봐.
  딸이 월이의 가슴에 제 귀를 붙인다. 곧 그가 입을 벌린다. 후, 내쉰다. 그 소리를 반복한다. 월이의 심장 박동에 맞춰 호흡하는 것이다. 그가 집중하는 구역은 왼쪽 젖꼭지와 가슴 중앙 사이, 네 개의 방이 있는 곳이다.
  네 개의 방은 매 순간 오그라들다 느슨해지기를 거듭한다. 전기 신호가 방들 사이를 오가며 폐와 온몸으로 혈액을 보낸다. 이 같은 수축과 이완은 보통 1분에 일흔 번가량 반복되지만, 지금 우리의 속도는 그보다 조금 느리다. 월이의 심장은 예전보다 딱딱해졌고 종종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데 애를 먹는다. 백 년 가까이 멈추지 않고 뛰어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심장은 언제나 우리 중 가장 부지런한 자였다.
  월이의 딸은 전화기에 대고 계속 숨 쉰다. 심장 박동의 주기에 맞춰 씩씩거리나 쌔근거린다. 혀를 굴려 입천장을 차기도 한다. 월이는 제 가슴에 바싹 붙인 옆얼굴을 본다. 월이를 따라 우리도 그 얼굴을 본다. 저 옆모습은 익히 알고 있다. 한때 우리 속에 있던 얼굴이기 때문이다. 좀더 분명하게 말하면, 우리 속에서 자라났던 얼굴이기 때문이다.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수리부터 달싹이는 입술이나 그에 맞춰 위아래로 움직이는 가슴팍까지……
  그가 우리 안에서 갓 만들어지던 시간을 기억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월이의 두번째 가족 중 많은 이는 우리 안에서 생겨났다. 그들이 만들어지는 내내 우리는 제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나거나 서로에게 바투 붙은 채 지냈다. 월이의 몸은 한정되어 있으니 새로운 이가 자라날 공간을 확보하려면 우리가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 부피를 줄이거나, 앞뒤 혹은 양옆에 있는 이들을 밀어내다가 마침내 바싹 붙어버렸다. 위장과 방광은 납작하게 눌리고 척주는 뒤로 물러섰다. 심장은 여전히 가장 바빴다. 우리 안에 새로 생겨난 이들은 평소 월이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피와 산소를 요구했다. 필요하다는데 어쩌겠어. 심장은 그렇게 말하며 평소보다 더욱 빠르게 뛰었다. 그들이 만들어지는 내내 월이는 한층 가쁘게 호흡해야 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까지 숨 너머로 데려가야 하니 한결 부지런히 숨 쉴 수밖에 없었다.
  월이의 피와 산소를 함께 나눠 먹던 이는 이제 그때와는 전연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앉아 있다. 그럼에도 월이와 닮은 부분들이 눈에 띈다. 둥그스름한 이마라거나 가운데가 옴폭 파인 윗입술 등이 그렇다. 그 부분들은 그가 우리 안에 있던 시절 우리로부터 가져간 정보들이다. 우리의 정보를 품고 멀리 달아난 몸이 지금 우리의 소리를 모사하고 있다.
  한편 바닥에 엎어진 전화기에서도 얕은 숨소리는 들려온다. 손녀의 숨이다. 월이의 것보다 한결 매끈한 숨소리다. 딸의 것보다는 좀더 느리다. 손녀는 월이를 낳은 자도 월이가 낳은 이도 아니나, 모르는 새 불쑥 나타나 우리와 연결된 채 세상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 우리 안에서 자라지도 않았으면서 우리와 묘하게 닮은 얼굴을 하고서, 월이의 심장 소리를 나눠달라 부탁한다. 월이는 그 부탁을 충실히 따른다. 오전의 빛이 비스듬히 가로지른 방 안에서 세 개의 숨소리가 교차로 울린다. 심장은 멈추지 않고 뛴다. 다만 어디로도 이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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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크게 나누면 모두 일흔여덟 개이며 우리를 아주 세부적으로 나누면 10조 개도 넘는다. 일흔여덟 개든 10조 개든, 월이는 우리 모두를 지니고 걷는다. 혹은 우리 모두로서 걷는다. 월이는 우리이고 우리는 월이기에, 걸음걸음 속에서 우리는 서로 갈라지지 않은 채 밤낮을 통과한다.
  월이는 지금도 그 도시에 산다. 공장의 어린 사모님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그 도시에. 종종 딸이나 아들의 집에 머물지만, 월이가 집이라고 부르는 장소는 언제나 그곳뿐이다. 월이에게 집은 비단 도심 외곽에 놓인 오래된 아파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렌지빛이 감도는 공용 현관, 그 앞으로 가지처럼 펼쳐진 고요한 골목들, 너머 외곽과 맞닿은 논밭들까지 집이라는 이름 아래 포함된다.
  월이는 매일매일 집에서 걷는다. 공용 현관을 지나고 골목들을 통과한다. 논두렁이 그리는 선을 따라 한 발 한 발 옮긴다. 뒷산을 오를 때부터는 다리가 한결 느려진다. 아침이면 골목의 닭이 울고 저녁이면 논의 개구리들이 운다. 홀로 걸을 때도, 딸이나 아들이 함께할 때도, 며느리와 손녀가 같이할 때도 있다. 홀로 걸을 때 월이는 종종 입속으로 되뇐다.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말자.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이다. 우리가 늙은 월이를 알듯 월이 또한 낡은 우리를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 쇠퇴와 통증을 주고받는다. 귀에 들어오는 소리의 개수가 점차 적어지고 팔다리가 느려지며 눈 안쪽이 희뿌예질 때마다 그 사실을 되새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매일같이 생겨나고 찢어지며 흔들리고 빠져나가다 새로 자라나길 거듭한다. 월이의 머리카락과 손톱은 느리게 자라 흰빛으로 물든다. 찢긴 살갗 아래로 느리게나마 항체들이 모여든다. 속도가 느려질지언정 멈추지는 않는다. 월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매일 걷는다. 자신의 동네에서도, 아들과 딸의 동네에서도 아침저녁으로 걸어 세상을 가로지른다. 때로는 소리 내어 이렇게도 말한다.
  오래 건강하게, 오래 건강하게.
  그것은 우리가 아닌 이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월이는 이전에도 종종 비슷한 말을 했다. 아직 우리가 모두 활달하고 튼튼하여 매일 뼈를 쌓고 맑은 피를 몸 위아래로 쉼 없이 돌릴 무렵, 월이는 나락을 찌거나 이파리를 뜯고 술을 담그며 그 말을 거듭했다. 오래 건강히, 오래 건강하게…… 나물을 캐는 자리보다 더 높은 둔덕에서 뜨는 해를 지켜보면서도 그 말을 되새겼다.
  월이는 이 모든 말들을 홀로 있을 때 되뇌인다. 딸이나 아들 며느리 손주가 함께할 때 월이는 잘 말하지 않으며, 대신 함께 걷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꽃이 폈다거나 날이 좀 쌀쌀해지지 않았냐고 물으면 으응, 하고 답한다. 간간이 고개 돌려 동행자의 몸을 본다. 월이가 보기에 우리도 함께 본다. 동행자의 몸속에도 우리와 비슷한 이들이 있다. 누군가 만들어진 순간 함께 태어나 서로 겹겹이 기대 살며 박동하고 소화하며 분열하고 복구하는 자들이다.
  월이는 손을 뻗는다. 그와 동행하는 몸의 손톱이나 머리칼을 어루만진다. 때로 손끝에 빠진 머리카락이 걸려 나오기도 한다. 그것을 한 번 쥐었다가 바닥에 떨어트린다. 그 몸짓을 알아차리지 못한 손녀가 월이 옆에 바짝 붙는다. 월이의 손을 쥐고 그가 열여섯인가 열여덟 살에 부르던 노래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월이는 손녀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곧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제 멀어진 것들에 관한 노래이며, 우리 중 누구에게 건네는 말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귀 기울여 듣는다. 그것은 월이의 노래이기에.


* 이 글에서 묘사하는 신체에 관한 정보는 모두 『인체 원리』(DK 『인체 원리』 편집 위원회 지음, 김효정·박경한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7)에서 참고하였다.

** 1950년 9월 25일 경상남도 함양군 일대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을 이유로 대한민국 국군에게 7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유족회가 운영하는 ‘산청함양추모공원’ 웹사이트에서 이와 관련된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 바로가기


함윤이, 정혜린

소설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글을 쓴다. 집과 가족에 관한 다원예술 프로젝트 ‘서울집’을 기획 및 집필했다. 2023년 제14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함윤이)

연극협력체 런더앤싸이트닝에서 공연을 만든다. 종종 흘러가는 소리들을 채집하고 이리저리 배치하여 새로운 소리를 만든다. 이것은 가끔 장면이 되기도 한다. (정혜린)

월이는 혜린을 통해 알게 됐다. 직접 만나러 가서 목소리와 이야기를 들었다. 월이의 가족들에게 전골과 커피, 과일을 얻어먹었다. 월이에게 궁금한 점이 생기면 혜린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 글을 쓰며 몸에 관한 이런저런 문헌을 보았다. 그 내용에 겁을 먹을 때면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이 완전히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년이라고 한다.
(함윤이)

한때 가까이 있었으나 이제는 멀리 있는 사람과 여전히 함께 있는 상상을 하면서 소리를 만들었다. 월이의 가장 먼 기억은 미약하게 깜빡이고, 그 주위를 둘러싼 소리는 지금의 월이와 가장 가깝다. 그리고 월이는 듣지 못한 그의 심장소리, 그러니까 심장의 입장은 누군가 대신 들어줘야 한다. 우리가 같이 걸으며 듣고 나누었던 이야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 그것으로 추측해본 월이가 매일 들을 소리, 월이가 내는 소리. 그것은 월이의 소리일까?
월이는 얇고 투명해서 몸속의 소리와 몸 밖의 소리가 같을 것만 같다. 월이의 생활에 귀를 대고 있다 보니 나는 어느새 월이와 가까이 있는 것만 같다. 그 심장소리를 숨과 숨을 통과해 여기에 옮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시간이 많이 쌓여 이제는 천천한 몸 옆에 빠르게 시간이 쌓여가는 몸이 놓여 있다. (정혜린)

2024/05/15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