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퀴어적인 것’을 주제로 소설가 박선우와 미술 작가 김재원이 협업했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교환 일기를 주고받듯 창작물을 주고받으며 한 편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김재원이 영상을 보내고, 그에 화답하듯 박선우는 글을 써서 보냅니다. 다시 김재원은 글을 보내고, 박선우도 글을 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영상, 다시 글. 그렇게 세 번의 주고받음으로 완성됐습니다.


*

어릴 적에 엄마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엄마가 나를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네 살인가 다섯 살 때였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유원지를 홀로 헤매고 다녔다. 길쭉한 플라스틱 막대 끝에 달린 노란색 나비의 날갯짓을 보며 정처 없이 걸었다. 장난감이자 걸음마 보조기인 나비는 내가 앞으로 떠미는 만큼,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만큼 몸통에 달린 네 개의 바퀴를 굴리며 힘차게 날개를 퍼덕였다.
  그 날갯짓.
  당시에 나는 나비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나비를 밀고 있으면서 나비가 나를 이끌어준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 둘을 분간하지 못했다. 그러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는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을 때, 나비가 나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충격에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상체를 숙이며 물었다.
  혼자니?
  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붙들었다.
  나랑 같이 가자.
  부드럽게 어르는 듯하다가 나를 확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네 엄마를 찾아줄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버텼다. 어떤 상황에서도 낯선 이를 따라가지 말라는 가르침 때문이었는지, 아주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었는지 완강하게 그 손을 뿌리쳤다. 그 와중에 나비를 놓치고 말았다. 나는 도망치듯 반대 방향으로 뛰었고 한갓진 오솔길로 들어섰다. 수풀이 우거진 길을 따라서 한참 동안 걸었다. 이윽고 날이 저물면서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서늘한 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고 주변에서는 작은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휘청거리며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과 손바닥의 쓰라린 통증보다는 진이 다 빠져서 일어설 기운조차 내지 못했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유원지에서 미아가 된 기억.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다가 끝내 실신한 기억. 그것은 나의 첫 기억이기도 하다. 생애 최초의 시퀀스랄까. 그러므로 나는 거의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엄마가 나를 낳아준 친모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날 ‘진짜 엄마’를 잃어버리고 엉뚱한 아주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으리라 상상한 것이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진짜 엄마를 만들어냈다. 진짜 엄마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재원으로, 남편에게 다정하고 자식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지성미와 기품을 두루 갖춘, 어려운 이웃에게 기꺼이 손 내밀 줄 아는, 가끔은 장난기가 넘치고 웃음이 많은, 행복한 여자였다. 한마디로 나의 엄마와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놓인 존재였다(그런 것도 존재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쯤 지나서야 진짜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오는 일은 없으리라고,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앞에 검은색 리무진이 멈춰 서더니 뒤쪽 차 문이 달칵하고 열리며 잘 차려입은 귀부인이 내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진짜 엄마란 내 멋대로 꾸며낸 망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럴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이 지나자 한집에 사는 엄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짜 엄마가 사라지자 ‘진짜 엄마’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

“제가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어요.”
그때만큼 전속력을 다해 달려본 적이 없다는 너는 멋쩍어하며 지난날의 기억을 꺼내 들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그날, 야간 수업이 끝나고 손가락 마디 사이에 남은 까만 물감을 지우지도 못한 채 집으로 향했다. 당시 다른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터라 어두컴컴한 집을 종종 너와 함께 가 밝히곤 했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늘 함께 향했던 너를 먼저 보내고 그날은 나 혼자 가겠다고 했다.
  그래, 어쩌면 다행이었을지도 몰라.
  통학 버스와 멀어지고 집에 가까워질수록 그날의 피곤함인지 모를 어떤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느덧 내 두 발은 102호 앞에 서 있었고, 주머니 속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열쇠는 정답이 아니라는 듯 오히려 잠겨버렸고,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거라는 오전의 나를 탓하며 반대 방향으로 열쇠를 다시 돌렸다.
  어둠이 드리워져 있어야 할 6평 남짓한 그곳은 아주 밝았고, 시야에 한눈에 잡히는 침대 위, 그리고 옆 의자엔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던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놀란 마음을 드러낼 새도 없이 나의 눈엔 꼭꼭 숨겨두었던 우리가 지난 시간 속삭인 수많은 편지와 사진들이 두 사람 사이에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어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앞서 너를 먼저 보냈던 일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지나 그 짧은 시간 사이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함께 휴대폰 전원을 끄고, 이 깊은 적막함에 발을 담갔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저 우연이었을까, 이미 눈치채고 계셨던 걸까. 정말 치밀하게 우리의 시간을 숨겨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피도 안 마른 열여덟 살 꼬맹이의 한계였을까.

“당장 내일 병원으로 가보자, 걱정하지 말거라.”
  사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그 좁은 공간에서의 기억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럼에도 그때의 꼬맹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한마디. 그건 여러 차례 격양된 대화가 오간 후 모두가 지쳐 있을 때 두 분이 건넨 말이었다. 무엇보다 그때의 멍청했던 나를 절망에 이끌었던 건 정말 이것이 치료가 되어 나의 마음이 사라질까 봐, 앞으로 너를 영영 보지 못할까 봐, 우리가 더이상 같은 통학 버스에 타지 못할까 봐.
  내가 깊은 곳에 잠길까 봐.

당분간 학교를 쉬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생각했고, 최소한의 물품을 챙기는 동안 또 생각했다. 여기서 달아나야겠다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꽤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두 사람에게 이끌려 나가는 척 차 손잡이를 잡는 순간, 그렇게 속절없이 달렸다.
  달리는 순간 길목에서는 부정 출발 신호처럼 나를 부르는 다급한 외침과 비명이 뒤섞여 들렸다. 호흡이 거칠어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가로등 조명을 따라 달렸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있던 기차역은 고요했고 나의 숨소리만 이 길목을 가득 채웠다. 사실 이후의 계획은 없었다. 그저 생각 없이 달리면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달렸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달려 본 것이 얼마 만인가, 머릿속이 깜깜해지는 동시에 살아 있음을 느꼈다.

“쟤 좀 잡아주세요!”
  교복을 입은 학생이 큰 가방을 들며 뛰어가고, 그 뒤를 쫓는 성인의 모습이 제법 나를 소매치기범으로 연상케 했나 보다. 그렇게 나는 길목 중간 지점쯤 그곳을 지나던 사람에게 보기 좋게 붙잡혔다. 나를 짓누르며 힘껏 제압하는 모습에 뒤따라오던 그는 아들이라며 소리쳤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울음을 보았다. 그는 병원에 가면 괜찮아진다며 다시금 나를 다독였다. 이렇게 너와 함께 거닐었었던 이 길목은 순식간에 내가 달아나고, 달려야만 했던 트랙으로 바뀌었다.

……
  그때의 너는 그 좁은 길목의 끝 지점에 다다르면 깊은 물 속에서 벗어나 숨 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날의 길도, 속력도, 호흡도 희미해진 지금이지만 가끔 네가 끝내 다다르지 못했던 결승선을 통과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

최근에 쓴 소설에서 나는 엄마를 등장시켰다. 이전에도 작품에 몇 차례 엄마를 묘사한 적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내가 어릴 적에 상상하던 ‘진짜 엄마’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무슨 연유로 그리하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소설 속에서 나는 ‘이경’이라는 이름의 삼십 대 여자로 등장한다. 어느 초여름, 이경은 일본의 도쿄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 십 년 넘게 근무하던 회사에서 명예퇴직하며 받은 위로금을 여행에 전부 써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경은 난생처음 호텔 스위트룸에서 머물며 끼니때마다 인근 레스토랑에 들어가 그곳에서 가장 값비싼 메뉴를 주문해 먹는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예전부터 보고 싶어 하던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작품을 종일 관람하고, 고쿄 정원의 잔디밭에 누워 한가로이 볕을 쬐기도 한다. 한밤중에는 도쿄타워에 올라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도시의 야경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사흘째 되는 밤 디즈니랜드에서 프로즌포에버쇼를 본 이후로 모든 것에 시들해져간다. 시부야의 활기 넘치는 스크램블 교차로를 거닐어도, 진보초의 규카츠를 맛봐도 좀처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닷샛날 아사쿠사 센소사에서 백 엔을 넣고 뽑은 점괘가 ‘흉(凶)’이었을 때, 이경은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는 일본어 밑에 적힌 영문을 담담한 심정으로 읽어 내려간다.

몸은 하나인데 마음은 둘이 됩니다. 벚꽃이 풍파를 겪고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당신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개기일식처럼 어두운 시간이 펼쳐집니다. 당신의 병은 한동안 낫지 않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물건은 되찾을 수 없습니다. 가급적 결혼과 이사, 장거리 여행은 피하세요.

그날 이경은 나쁜 점괘를 뽑았을 경우 바로 옆 철망에 묶어 봉인하라는 문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선다.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대충 저녁을 때운 뒤 숙소로 돌아와서는 캔맥주를 홀짝이며 텔레비전만 본다. 그러다가 자정 뉴스에서 본 자료 화면을 계기로 여행 마지막 날에는 카사이린카이공원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일본 최대 규모의 대관람차에 탑승하여 하늘 높은 곳에서 자신의 점괘를 찢어버리고 싶어서다.

이튿날 오후, 이경은 케이오선을 타고 이동해 카사이린카이코엔역에서 내린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고, 소풍 나온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로 플랫폼은 시끌벅적하다. 역사를 나서자 탁 트인 초록빛 들판 너머로 멀리 대관람차가 보인다. 그래서 이경은 공원 입구에 설치된 지도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무작정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관람차까지의 거리는 상당하고, 곳곳의 표지판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걸었음에도 길을 잃고 만다. 어쩌다 보니 공원과 상접한 도쿄만 연안에 다다르게 된다.
  이경은 한숨 돌릴 겸 바다 앞 벤치에 앉아 유백색 모래사장 위로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본다. 혼자서 해변을 배회하는 여자아이를 눈으로 좇기도 한다. 열 살쯤 되었을까. 분홍빛 원피스에 노란색 고무장화를 신은 아이는 투명한 비닐봉지에 소라 껍데기를 주워 담고 있다. 넘실대는 바닷물을 사뿐사뿐 지르밟으며 쉬지 않고 껍데기를 모은다. 그러다가 한순간 고개를 들어 이경을 바라본다. 이경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자 아이는 허리를 펴고 일어선다. 돌연 제 어머니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달음박질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소라 껍데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바닷가에 던져버린다. 아무 미련 없이.

대관람차는 광활한 초원에 우뚝 서 있다. 그 주변에는 은빛 돗자리를 펴놓고 도시락을 먹는 남녀와 고무공을 튕기며 노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한 남자아이가 버블건의 방아쇠를 당기자 공중에 크고 작은 비눗방울이 쏟아져 나온다.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며 사방으로 흩날린다. 이경은 그들을 지나쳐 곧장 매표소로 향한다. 긴 줄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고, 무료로 진행되는 기념사진 촬영은 거절한 채 홀로 관람차에 오른다. 마침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밀폐된 공간은 더디게 상승한다. 천장 한구석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이경이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 방송이 낮은 볼륨으로 흘러나온다. 지직거리다가 뚝 끊어진다. 사위는 쥐 죽은 듯 고요해지고, 이경은 딱딱한 등받이에 기대앉아 두 무릎을 끌어안는다. 창 너머로 조금 전에 지나쳐온 공원의 소로가 내려다보인다. 입체적이던 지면은 서서히 멀어지며 실감을 잃고 한 폭의 그림처럼 평평해진다. 지상의 모든 것이 극소한 크기로 변모하자 그 옆으로 광막하게 펼쳐진 잿빛 바다도 어쩐지 거짓말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경은 관람차 내 산소가 희박해지는 걸 느낀다. 이국의 공중에 홀로 떠 있다는 감각에, 마치 세상의 끝에 당도한 것만 같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적요 속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자신의 숨소리만 듣는다. 그사이 정점에 이른 관람차에는 말간 햇살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이경은 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는데, 맞은편 좌석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한다.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러보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엄마.”
  이경은 가까스로 입을 뗀다.
  “엄마.”
  엄마는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이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이경은 뭔가를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데, 이 순간이 곧 지나가리라는 예감에 조급해지는데, 그래서 어떤 말도 꺼낼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엄마에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그동안 너무 많았으니까.
  “엄마……”
  이경은 빛이 따가워 다시 눈을 감는다. 떠보면 맞은편에는 아무도 없다.

그러다가 관람차가 덜컹하고 멈춰 섰을 때, 이내 폐곡선을 그리며 하강하기 시작했을 때, 주위의 빛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이경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옷소매로 눈가를 눌러 닦고, 태연한 얼굴로 다시금 부풀어 오르는 창밖의 풍경을 응시한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점괘 종이를 꺼내 든다. 펼쳐서 다시 한번 읽고는 그대로 구겨버린다.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다가 꿀꺽 삼킨다.
  지상에 도달하자 웃는 얼굴의 남자 직원이 다가와 문을 열어준다. 이경은 가벼운 동작으로 관람차에서 내린다. 땅에 두 발을 디딘 채 주변을 둘러본다. 세상은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경은 회랑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좁고 긴 통로의 끝에는 출구가 있으리라.

*


*

그리고 나의 첫 기억.
  생애 최초의 시퀀스에 대해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유원지에서 엄마를 잃고 혼자 헤매고 다녔을 때, 녹음이 우거진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했을 때, 나는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목이 쉬도록 엄마를 외쳐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나는 그 장면들을 여전히 꿈으로 꾸곤 한다. 서른일곱 살이나 되었지만 번번이 꿈속에서 생애 최초의 시퀀스로 되돌아간다. 작은 몸으로 울부짖으며 숲속을 헤매고 다닌다. 나비를 놓치고, 휘청이며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기절하고, 젖은 얼굴로 깨어나면서 내 방의 천장을 마주한다.

집 안은 고요하다.
  나는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문지르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앞으로도 쭉,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를 찾아오는 꿈. 아니, 내 안에서 부지불식중 날개를 펼치며 의식의 표면 위로 날아오르는 꿈.

그때마다 나는 미아(迷兒)의 시간이 끝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박선우, 김재원

일주일에 닷새를 편집자로서 일하고 이틀을 소설가로서 글을 쓰며 산다. 요즘은 내가 퀴어가 맞나 싶다.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 『햇빛 기다리기』를 썼다. (박선우)

영상, 사진, 언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미술 작가. 무엇 때문인지 할 말이 많다가도 사라지는 요즘이다. ‘HIV Science as Art’(2023), ‘Day With(out) Art’(2022) 등을 통해 작품을 선보였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김재원)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멜랑콜리를 앓는다. 그중에서 퀴어는 좀 더 멜랑콜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자각한 순간부터 분리, 소외, 고립,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제도와 사랑으로부터 수시로 외면받기 때문이다. 퀴어의 삶에서 멜랑콜리는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 멜랑콜리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헤집고, 헤매고, 헤엄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박선우, 김재원 공동 집필)

2024/07/03
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