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옷장이에요, 옷장. 아주 튼튼하고, 소매가 긴 겨울 코트가 족히 다섯 벌은 들어가는 옷장이죠.”
    엄마는 손을 양쪽으로 흔들어대면서 말했다. 고시원 총무 아저씨는 우리 방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휘휘 둘러보았다. 우리 방에는 고시원에 원래부터 있던 옷장이랑 트렁크 가방 하나랑 작은 책상 하나랑 발을 다 뻗을 수 없는 침대 하나가 있다. 아, 그리고 나도.
    나는 엄마 겨울 코트 사이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총무 아저씨가 나를 발견할 수 없도록. 나 때문에 우리가 또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분명히 옆방에서 아이 소리가 난다고 건의가 들어왔습니다. 진짜 아무도 없는 거 맞습니까?”
    “아니 지금 보셨잖아요. 이 방 어디에 아이가 있어요?”
    총무 아저씨는 대답 없이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엄마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옆방이 오 년째 임용고시를 준비한다던 그 아가씨 맞죠? 그 아가씨 너무 예민해요. 한번은 내 라면 먹는 소리까지 시끄럽다고 쪽지를 붙이더라니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총무 아저씨는 옷장 근처로 다가오며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나는 숨을 꿀꺽 삼켰다. 살짝 열린 옷장 문틈으로 총무 아저씨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총무 아저씨의 반쪽짜리 얼굴에서 새카만 눈이 유난히 번뜩거렸다. 들키면 안 된다. 나는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가슴을 두 손으로 꽉 눌렀다. 엄마 목소리가 순간 높아졌다.
    “내가 총무님 고생하는 거 아니까 그냥 참고 넘긴 거지. 옆방 아가씨, 이젠 내 숨소리까지 시끄럽다고 할 기세야. 저렇게 예민한 사람은 공동생활 못해요. 내보내야지!”
    “제가 한번 주의를 줄 테니까 걱정 마세요.”
    커다란 총무 아저씨 얼굴이 서서히 옷장에서 멀어졌다. 그제야 엄마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옷장 경첩 사이로 두 사람을 보았다. 엄마의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무튼 우리 방에 애 같은 건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총무 아저씨는 미심쩍다는 듯 엄마를 훑어보았다.
    “정말이라니까요.”
    엄마가 조금 기분이 상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쉬세요.”
    탁, 문이 닫혔다. 엄마가 옷장으로 다가왔다. 나는 후다닥 옷 뒤로 파고들어갔다. 엄마 손이 옷 사이를 마구 헤집었다. 흰 손은 뱀처럼 꾸불꾸불 움직였다. 나는 안쪽으로 더 깊이 숨었다. 엄마가 내 소매를 낚아챘다. 힘을 주고 버텼지만 엄마가 나보다 훨씬 더 힘이 셌다. 나는 옷장 모서리에 쿵, 하고 머리를 찧으며 밖으로 끌려나갔다.
    “엄마가 뭐랬지?”
    엄마 목소리는 속삭이고 있는데도 천둥처럼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내 머리는 정전기 때문에 하늘로 번쩍 솟아 있었다. 엄마는 내 머리를 팍팍 문질렀다. 삐삐삐 소리를 내면서 공중에 솟아 있던 머리카락들이 다시 밑으로 가라앉았다. 옷장 모서리에 부딪혀서 그런지 귓속이 막 욱신거렸다.
    “엄마가 묻잖아. 엄마가 방에서 어떻게 있어야 한다고 했어?”
    “얌전히.”
    “근데 왜 말을 안 들어?”
    화가 난 엄마 목소리는 바람처럼 쉭쉭거린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장판에 그려진 나무 무늬를 세기 시작했다. 엄마는 참 이상하다. 내가 하는 말을 믿지도 않을 거면서 꼭 저렇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본다.
    엄마 입술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엄마도 힘들어, 나루야.”
    엄마는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엄마를 괴롭히거나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도, 내가 작은 목소리로 구구단을 외우는 것도,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도, 감기에 걸려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것도, 잠꼬대를 하는 것도.
    “총무 아저씨한테 들켜서 쫓겨나고 싶어?”
    “아니.”
    “그렇게 시끄럽게 굴면 나루도 엄마도 쫓겨나는 거야. 엄마가 말했잖아.”
    엄마도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내가 아주아주 어렸을 때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엄마를 기쁘게 했다고 했다. 바닥을 짚고 엉금엉금 기어다니거나, 엄마를 부르는 것, 울다가 엄마를 보면 뚝 그치는 것, 발가락을 입에 넣고 빠는 것, 모두 다 엄마를 행복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한마음집에 보냈다가 다시 데리고 온 거라고 했다. 자꾸 눈에 밟혀서. 눈에 밟힌다는 건 생일 케이크 같은 거다.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어서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자꾸 생각이 나는 거. 재복이가 말해줬다. 재복이는 한마음집에서 날 제일 괴롭혔던 녀석이다.
    “제발 엄마 말 좀 들어, 나루야. 여기서도 쫓겨나면 나루 넌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없어.”
    한마음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거기엔 하나같이 멍청한 녀석들뿐이다. 나처럼 엄마가 다시 찾아온 아이들은 많지 않다. 새 부모를 만나서 입양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애들도 많다. 재복이는 새 부모의 진짜 아들이랑 심하게 싸워서 한마음집으로 돌아왔다. 나 같아도 재복이 같은 가짜 아들이 진짜 아들을 때린다면 꼴도 보기 싫을 거다. 재복이는 힘만 세지 눈치는 하나도 없다.
    한마음집에 돌아왔을 때, 재복이는 원래부터 새 부모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 집엔 자동차도 없고, 큰 집과 큰 개도 없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새 부모가 되는 건 생각하기도 싫다고 했다.
    하지만 재복이가 새 부모랑 한마음집을 나가던 날을 얼마나 기다렸었는지는 내가 다 안다. 새 부모에게 주겠다고 나한테 색종이로 어울리지도 않는 카네이션까지 만들게 시켰으니까. 재복이가 돌아온 날, 카네이션 꽃잎이 찌그러졌었다고 재복이한테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잘못했어요, 엄마. 다신 안 그럴게요.”
    나는 엄마 품에 매달렸다. 엄마는 자꾸 한숨을 쉬었다.
    재복이는 우리 엄마가 분명히 얼굴에 주름이 오백 개도 더 있는 마귀할멈일거라고 말했는데, 내 진짜 엄마는 한마음집에 찾아온 엄마들 중에 제일 예쁘고 어렸다. 다른 엄마들처럼 손에 주름도 안 졌고, 인어공주처럼 긴 생머리에 입술에도 새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엄마가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예쁜 소리도 났다. 재복이는 우리 엄마가 날 데리러 왔을 때부터 나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날 데리러온 게 새 부모가 아니라 진짜 엄마라는 걸 알았을 때 재복이는 어땠을까?
    나는 일부러 재복이가 있는 곳에 엄마 손을 끌고 쫓아다녔다. 진짜 엄마가 없었으면 재복이는 분명히 나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흠씬 때려줬을 거다. 하지만 재복이는 그냥 슬그머니 나를 피하기만 했다. 나는 한마음집을 나오면서 재복이한테만 손을 크게 흔들었다. 재복이는 땅만 보고 있었다. 골목을 돌아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꼭 친한 친구가 떠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루야. 우리는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엄마랑 나루랑 같은 편이고 나머지는 전부 술래야. 총무 아저씨도 마찬가지야.”
    “술래?”
    “그래. 그러니까 절대로 잡히면 안 돼. 엄마가 없을 때도 나루는 아무한테도 눈에 띄지 않게 꼭꼭 숨어 있어야 돼. 그래야 나루가 엄마를 지킬 수 있어.”
    “만약에 나루가 먼저 잡히면?”
    “그러면 우린 여기서 쫓겨나고 엄마는 마녀한테 끌려가. 다신 나루를 볼 수도 없고.”
    나는 엄마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엄마는 매달린 나를 천천히 떼어냈다.
    “그러면 나루는 꼭꼭 숨어 있을래.”
    엄마가 내 눈 앞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엄마랑 약속할 수 있지? 꼭꼭 숨어 있기로?”
    “응! 약속할 수 있어!”
    나는 엄마 새끼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숨바꼭질은 내가 제일 잘하는 거다. 내가 마음먹고 숨으면 원장님도 재복이도 나를 찾지 못한다. 원장님이 아끼던 비싼 화분을 재복이가 깨뜨렸을 때, 나는 지하실 캐비넷 안에서 꼬박 하루를 넘게 숨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지나니까 배가 너무 고파서 내가 먼저 나와버리고 말았지만. 재복이는 나한테 멍청이라고 했다. 원장님은 너 같은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왜 숨었냐고. 내가 안 숨었으면 재복이는 분명히 그 화분을 내가 깼다고 말했을 거다. 그럼 원장님은 나를 혼내고 재복이는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숨어버려서 재복이는 다른 애한테 그 일을 덮어씌운 거다. 재복이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거짓말을 제일 많이 하는 녀석이다.
    그러니까, 엄마를 지킬 수 있다면 나는 그때처럼 꼭꼭 숨어만 있을 거다. 엄마가 마녀한테 잡혀가지 않도록, 내가 숨어서 엄마를 지킬 거다.
    “엄마는 이제 일하러 갔다 와야 해. 나루가 잘 참고 있으면 엄마가 꼭 돌아올 거야. 기다릴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내 볼을 한번 쓰다듬고 계단처럼 높은 구두를 집어들었다.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하고 까만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공주님처럼 예쁘다. 새빨간 립스틱은 꼭 크레파스로 칠한 것 같다. 엄마는 문을 열고 고시원 복도를 한번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사뿐사뿐 걸어서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숨바꼭질을 할 때 젤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그건 바로 미리 오줌을 싸놓는 거다.”
    재복이가 한 말이다. 오줌이 마려우면 술래가 찾기 전에 제 발로 걸어나올 수밖에 없다는 거다. 나도 재복이 말에 대공감이다. 이젠 진짜 십 분도 더 못 참는다.
    ‘엄마는 언제 돌아오는 걸까?’
    복도로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귀는 접시처럼 커지는 것 같다. 터벅터벅 소리는 302호 아저씨의 발걸음 소리, 지이익 지이익 슬리퍼를 끄는 소리는 건넛방 누나의 발걸음 소리. 엄마는 사뿐사뿐 발소리도 없이 걷는다. 피곤할 때는 가끔 타박타박 걷기도 한다. 나는 눈을 감고도 엄마 발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걸어오고 있는 건 분명히 엄마다. 아주아주 많이 힘들고 피곤한 엄마.
   조금씩 문이 열린다. 바깥 냄새를 몰고 엄마가 온다.
   “엄마!”
   나는 달려가 엄마 목에 덥석 매달렸다. 엄마는 휘청휘청 뒷걸음질을 쳤다.
   “엄마, 엄마, 엄마! 나 오늘 방에서 한 번도 안 나가고 소리도 안 내고 오줌도 참았다? 나루 잘했지?”
   엄마는 목에 매달린 내 손을 확 뿌리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무서운 얼굴로 날 노려봤다. 엄마는 복도로 나가 옆방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옆방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 나는 오줌이 터질 것처럼 마려워서 다리를 배배 꼬았다.
   “엄마 나 오줌……”
   “제발 좀!”
   엄마가 화를 내니까 나는 너무 억울했다. 엄마를 막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재복이가 아니니까 주먹을 꽉 쥐고 참았다.
   “조용히 해.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옆방 여자가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엄마가 내 어깨를 꽉 붙들었다. 어깨가 아팠다. 엉덩이가 뜨뜻했다. 다 엄마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잘 참고 있었는데, 약속을 지켰는데. 엄마가 화를 내는 건 반칙이다.
   “나루야.”
   발밑으로 오줌이 번져나가는 게 보였다. 발바닥이 뜨끈했다.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는 물끄러미 바닥을 바라보더니 걸레를 들고 조용히 오줌을 닦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오줌 싼 걸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걸레를 빨아 와서 다시 한번 바닥을 깨끗하게 닦고 젖은 수건으로 내 몸을 말끔하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가방 속에서 조각 케이크랑 우유를 꺼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맨 위에 딸기가 올라간 생크림케이크였다. 달콤한 냄새 때문에 입에 침이 고였다.
   “배고팠지?”
   엄마는 조각 케이크를 더 작게 다섯 조각으로 잘랐다. 그리고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이 꼭 마녀의 성에 갇힌 공주처럼 슬퍼 보여서 나는 그냥 아까 엄마가 화낸 걸 용서하고 싶어졌다.
   “나루가 잘 숨어 있으면 엄마는 기뻐?”
   엄마는 대답 없이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엄마랑 처음 한마음집을 나왔을 땐 정말 좋았다. 그때 엄마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웃고 훨씬 더 많이 말을 했다.
   “얼른 먹어. 나루 딸기케이크 좋아하잖아, 그치?”
   엄마는 내가 조각 케이크를 다 먹는 동안 내 앞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가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마녀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가 힘든 건 나 때문이다. 지난번 고시원에서 쫓겨날 때도 사람들이 그랬다.
   “애를 데리고 고시원에 들어오다니 어쩌자는 거람.”
   사람들은 좁은 공용 식당에 엄마랑 나를 세워놓고 계속 꾸짖었다. 매일매일 엄마에게 음료수를 갖다주던 옆방 아저씨가 제일 많이 화를 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엄마를 좋아했던 걸 안다. 엄마가 없을 때마다 그 아저씨가 복도 창문으로 엄마 방을 매일 훔쳐봤던 것도 안다. 나를 한마음집에서 데려오지 않았으면 엄마가 그 고시원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역시 아까 엄마한테 화를 내지 않은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재복이였으면 분명히 성질을 부렸을 거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옷장 속은 깜깜하다. 숫자 놀이가 지겨워지면 옷장에 있는 나뭇결을 센다. 배가 고프면 엄마가 옷장 속에 넣어준 빵이나 시리얼 같은 걸 먹는다. 처음에는 옷장이 너무 깜깜해서 다 흘리고 그랬는데,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옷장 속에서 지내는 건 조금 답답하다. 하지만 내가 옷장 속에 오래오래 있을수록 엄마는 더 많이 웃고, 한숨을 조금 덜 쉰다. 그래서 처음엔 엄마가 없을 때만 옷장에 있었는데, 이제는 엄마가 와도 옷장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엄마가 나오라고 하면 나가려고 했는데, 엄마는 사실 내가 여기 있는 게 더 편한 것 같다.
   “나루가 최고야. 나루는 엄마를 지켜주는 왕자님이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아니다. 마녀는 없다. 그건 엄마가 날 위로하려고 다 꾸며낸 얘기다. 산타클로스 같은 거다. 내가 숨바꼭질에서 잡히면 마녀가 잡아가는 게 아니라 엄마가 힘들어서 날 두고 갈 거다. 그러니까 난 절대로 잡힐 생각이 없다. 마녀가 없어도 엄마를 지킬 거다. 죽을 때까지 엄마 옆에 꼭꼭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엄마가 날 왕자님이라고 부를 땐 어깨가 으쓱해진다. 재복이 녀석은 한 번도 못 들어봤겠지? 걔한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재복이 녀석은 뭘 하고 있을까. 재복이한테는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지만, 노래는 진짜 가수처럼 잘 불렀다. 기분 좋은 날에는 내가 불러달라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잘난 척 하는 건 정말 꼴도 보기 싫었지만 그럴 때 재복이는 조금 멋져 보이기도 했다.
   밤이 왔나보다. 엄마가 나갈 준비를 한다. 깜깜한 옷장 속에서 엄마 웃음소리를 들으면 꼭 새소리처럼 들린다. 엄마는 요새 일하러 가기 전에 인사하는 걸 자꾸 잊어버린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인사도 없이 엄마가 그냥 나가버리면 좀 쓸쓸해진다. 엄마랑 만나면 쓸쓸한 일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재복이 노래를 들었으면 재복이 새 부모들도 걜 조금은 더 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옷장 속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다보면 가끔씩 재복이가 부르는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이번주까지만 있겠다고 하셨죠?”
    “네, 그렇게 됐어요.”
    “여기만큼 싸고 괜찮은 고시원이 없을 텐데.”
    “……”
    “더 싼 데로 가려고?”
    “네.”
    주인아줌마가 혀를 쯧쯧 찼다.
    “그래요, 그럼 나갈 때 방 열쇠는 잊지 말고 반납하고 가세요.”
    “네.”
    엄마가 대답했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저벅저벅 멀어졌다.
    “싸긴 뭐가 싸. 길 건너엔 더 싸고 좋은 고시원들이 널렸는데.”
    엄마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옆방 여자가 똑똑 벽을 두드렸다. 조용히 하라는 거다.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주는 얼마나 남았을까? 옷장 안은 늘 밤이라서 이번주가 얼마나 지났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 얼굴을 본 지도 오래되었다. 사실 가끔 엄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안 난다. 기억하기도 싫은 재복이 얼굴은 이렇게 잘 떠오르는데, 왜 엄마 얼굴은 자꾸 잊어버릴까?
    옷장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엄마는 등을 돌린 채 바쁘게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잘 숨어 있는 바람에 엄마는 내가 숨어 있다는 걸 잊어버린 걸까?
    “혼자 지내는 데 웬 짐이 이렇게 많담.”
    엄마는 탁탁 소리나게 먼지 쌓인 이불을 털었다. 뽀얀 먼지가 옷장 속으로도 흘러들어왔다. 나는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엄마는 옷장 문을 활짝 열었다. 나는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착착 꺼내들었다. 얇은 차렵이불 한 장도 꺼냈다. 침대 위에 차렵이불을 펼쳐놓고 그 위로 옷들을 차곡차곡 내려놓았다. 이불을 둘둘 마니까 짐 보따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엄마는 내가 있는 곳을 슬쩍 쳐다보았지만 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옷장 문을 열어둔 채로, 엄마는 몇 권의 노트와 화장품과 칫솔과 치약과 비누를 종이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그릇과 작은 컵 하나를 넣고 종이상자를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옷장에는 두꺼운 겨울 점퍼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엄마는 그걸 꺼내 입었다. 그리고 침대 밑에 있던 트렁크를 꺼내 바닥에 펼쳤다. 트렁크를 펴자 좁은 방이 꽉 찼다.
    “잊은 게 있는 것 같은데……”
    트렁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엄마가 중얼거렸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엄마는 도리질을 치며 침대 위에 누웠다. 옆으로 웅크린 채 엄마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방 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조용했다. 나는 옷장에서 걸어나왔다. 허리가 찌르르르 아팠다. 어깨도 돌처럼 딱딱했다. 나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엄마는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펼쳐놓은 트렁크를 바라보았다. 트렁크는 아주 컸다. 안쪽에는 수건 한 장만 덩그러니 굴러다녔다. 나는 트렁크에 오른발을 넣었다. 발 하나가 들어가도 아직 자리가 많았다. 왼발도 넣어보았다. 그래도 자리가 많았다. 나는 트렁크 속으로 들어갔다. 트렁크는 마치 엄마가 나를 위해 준비해놓은 것처럼 몸에 꼭 맞았다.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웅크렸다. 엄마 냄새가 났다.
    나는 다리를 끌어안고 작게 더 작게 몸을 말았다. 내일 엄마가 빼놓지 않고 나를 데려갈 수 있도록.

배성주

희망을 노래하는 동화들이 가득하고, 슬픈 아이들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힘을 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백 명의 아이들에게는 백 가지의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되어본 적 없는,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