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연이 코를 훌쩍였다. 나는 코를 풀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30분 후면 방학이었다. 담임이 주의사항을 이야기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만 다른 생각을 하는 거면 어떻게 하나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던 듯싶었다. 저마다 짝과 떠들었다.
   고개를 슬쩍 돌아보니 여전히 콧물과 씨름 중인 해연이 있었다. 콧물을 삼키는 건 이해가 갔지만, 왜 코를 풀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해연이 휴지로 코를 닦았다. 해연은 방학 때 수영을 배울 계획이었다. 해연은 자기가 병뚜껑 없는 병처럼 물에 가라앉기 때문에 수영을 꼭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코가 막혀서 걱정이었다.
   해연이 수영을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이야. 몸에 힘을 빼야 하고 숨을 참으면 돼. 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해연이 되물었다.
   “넌 수영 잘해?”
   “당연하지.”
   “그럼 넌 물에 안 뜨는 내 맘을 몰라.”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라니까.”
   나는 몸을 부풀리는 개구리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라앉지 않으려면 몸 안에 공기가 있어야 한다고. 머금은 공기를 내뱉다가 숨을 멈추면, 가라앉던 몸이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해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에 마음이 쉽게 드러났다.
   해연은 이게 다 사람들이 잘못된 걸 가르쳐서 그런 거라고 했다. 물에 뜨지 않는 건 가르쳐 준 대로 하지 않은 탓이니까. 가르쳐 준 대로 못하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힘을 빼?”
   나는 해연의 말을 곱씹었다. 정말로 안 되는 걸까?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해연을 상상해보았다. 가라앉기 위해 힘을 쓰는 꼴이었다. 물 밖에서 몸에 힘을 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손과 발이 자신의 마음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포다란 아비라오켄 소와카!”
   나는 해연에게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들은 해연이 왼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나는 오른손으로 딱 소리가 나게 해연의 왼 손바닥을 쳤다. *
   늦게 일어나서 늦게 잠드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시계를 이불을 껴안고 뒹굴다가 시계를 보곤 조금 더 자기로 했다. 하지만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 소리에 깼다.
   며칠 만에 듣는 해연의 목소리였다.
   나는 열려 있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해가 환했다.
   해연은 어제부터 수영교실에 갔다고 했다. 이제 코는 막히지 않나 싶어 물으려고 했는데, 해연의 목소리가 커졌다. 종일 수영장 물에 머리를 넣었다 뺐다만 반복한다고 했다. 수영장 물을 마셔서 배가 아프다고.
   “목욕탕 물을 마신 거잖아. 맨살이 들어갔다가 나온 물을.”
   해연은 투덜거리는 말을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고집이었다. 무책임한 행동에 한숨을 뱉었다.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싫어하는 물에서, 싫어하는 수영을 하려고, 수영장 물을 질리게 마시다니. 덧붙여 해연이 말이 많고, 또 말이 엄청 빠르다는 걸 알았다. 해연이 흥분했기 때문이다.
   “계속 수영을 배울 거야?”
   나는 발가락으로 선풍기 버튼을 누르며 물었다. 바람을 강하게 틀어놓고 나니 더위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싫은 걸 할 줄 알아야 어른이래.”
   “누가 그래?”
   “캔디맨.”
   “캔디맨?”
   “내가 좋아하는 가수야. 목소리가 달콤해서 그렇게 불러.”
   ‘도토리씨앗 두 묶음과 게으른 고양이 크리스티아를 데리고 먼 길을 떠났지요. 파슬리-축제 때 데려온 농가의 아이. 여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다락방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지. 세이지, 로즈메리-도축업자의 쌍둥이 딸. 술을 마시면 때리던 아버지로부터 구원받은 귀여운 아가씨들. 다임-이웃 나라의 공주님. 가지고 있던 루비 목걸이보다도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있지. 페페-철부지 꼬마. 제임스-다람쥐 옷을 입히기 전까지 매일같이 울던 아이,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만 잠이 들었지. 그리고 제임스와 반대로 말이 없던 스핀. 너희들의 무덤을 만들어주어야겠지.’
   해연은 노래 제목이 <도토리나무를 키우지>라고 했다.
   처음 듣는 노래였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노래 속에서 아이들은 비둘기가 되어 소식을 전하거나, 거위가 되어 농장을 지키거나, 고양이가 되어 쥐를 쫓거나, 다람쥐가 되어 숲의 도토리 열매를 주워 먹었다. 그러나 캔디맨은 불행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노래를 마친 뒤에 말했다.
   아무래도 전화로는 해연의 생각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했다. 수영교실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나간다고. 그러나 캔디맨이 행복을 노래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해연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전화를 끊고 집에서 수영장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따져보았다.
   그나저나 수영을 배우려면 코 막힌 게 다 나았어야 하는데.
   나는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탔다. 꿉꿉한 날씨가 여름이라는 걸 알렸다. *
   수영교실 앞에서 해연을 기다렸다.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더위 때문인지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편의점에서 얼음 컵에 따라 마시는 코코아를 샀다. 에어컨 밑에서 찬 음료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해연이 가방을 빗겨 매고 수영교실 앞에 묶어둔 자전거에 올랐다. 여전히 코를 훌쩍였다. 크흡하고 콧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해연을 보고 있으니, 해연이 사람들의 목욕물을 마시는 게 아니라, 해연의 콧물을 사람들이 마시는 것 같았다.
   두 대의 자전거가 수영교실 앞을 빠져나갔다. 내 앞에서 빠른 속도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해연이 보였다. 희미한 그림자가 해연을 뒤따르고 있었다.
   물 위를 헤칠 때 따라붙는 물그림자 같았다.
   나는 바다를 생각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곳에 남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물빛과 푸른 하늘. 바다의 소금은 영원히 마르지 않아서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은 평생토록 썩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해연이 바다에 뛰어들면서도 콧물을 흘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꼴사나웠다. 하지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실을 말하면 미안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멋모른 채 속도 경쟁을 하며 달리는 개처럼 해연의 뒤를 따라붙었다. 해연이 내 앞을 지그재그로 막아서며 장난을 걸었다. 그러나 나를 화나게 하지 못했다. 코 때문일 것이다. 훌쩍임을 멈추지 못하는 해연의 코 말이다. 다른 건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코를 훔치는 소리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자전거 브레이크를 당기는 소리만 들리지 않았더라면 그때의 상상은 조금 더 지속됐을지도 몰랐다.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멈췄다.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올해 생일엔 케이크를 살까?”
   “달자는 단 걸 안 좋아해.”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것처럼 해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해연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까.
   하늘에서 움직이는 구름이 햇살을 가렸다. 나는 해연이 얘기한 것들을 생각했다. 달자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과 수영을 배우는 것. 아니면 그 밖의 것들을.
   “갈까?”
   바뀐 신호등 색깔을 보며 나는 물었다.
   해연은 다연을 달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을 해자라고 불렀다.
   해연의 꿈 이야기에선 해보다 달이 빛나고, 달맞이꽃이 계수나무보다 컸다. 달자는 토끼처럼 하얀 피부에 빨간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다람쥐나 작은 요정처럼 씨 없는 무화과 속에 잠들어 있었다.
   달자는 죽은 물고기가 떠오르듯 나타났다. 휴대전화로 사고 소식을 검색하던 해연은 수업을 마치기도 전에 학교를 나갔다. 전화를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그날 해연은 꿈속으로 갔고, 달자를 만났다고 했다. 캄캄한 밤을 무서워한 동생을 위해 달이 되었다는 옛날이야기를 떠올리며, 해와 달이 된 남매처럼 사이좋은 자매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해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달자는 해연의 꿈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연과 같은 꿈을 나눴을까. 멀어지는 구름을 따라 그늘이 사라졌다. 햇볕이 거리를 채웠다.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담벼락을 지났다. 잎이 무성한 가로수가 푸르름을 자랑했지만, 지문이 말라버린 달자의 손가락은 나이테를 그리지 않았다.
   해연은 말했다. 꿈속을 헤엄치면서 약속했을지도 모른다고. 사이좋게, 오래오래, 함께 놀자고. 나이테를 두르는 나무처럼, 몸에 이불을 돌돌 말아가며 꿈을 꾸었다고. 두려움 없이 꿈속으로 뛰어들었다고.
   “그래도 가끔은 달자를 잊어버릴 때가 있어.”
   크흡, 해연이 콧물을 삼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을 안 들은 것처럼 대답을 얼버무렸다. 가방을 멘 등에 땀이 흥건했다.
   ‘땅에서 자랄 나무의 이름은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 다임, 페페, 제임스, 그리고 스핀. 두 발로 걷는 재주 따위는 없는 고양이 크리스티아가 지켜주지요.’
   해연이 <도토리나무를 키우지>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면서 페달을 밟았다.
   그것은 파슬리의 무덤, 세이지의 무덤, 로즈메리, 다임의 무덤, 페페의 무덤, 제임스의 무덤, 그리고 스핀의 무덤이기도 했다. 게으른 고양이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하품을 하면, 고양이의 발자국을 따라 구구―구구― 거위가 뒤뚱거렸다.
   콧등에 맺힌 땀을 닦으며 편의점에 들렀다. 우리는 캔 음료 두 개를 샀다. 생수도 한 병 사서 가방에 넣었다. 해연이 알루미늄 캔을 얼굴에 붙이고 더위를 식혔다.
   나는 음료를 마시면서 휴대전화로 캔디맨을 검색했다.
   가수가 아니라, 청소년관람 불가라고 표시된 공포 영화만 나왔다. 행복을 노래한다는 해연의 말과 어울리지 않았다. *
   자전거를 타고 꼬박 한 시간을 달렸다. 언덕 너머로 공원이 나타났다. 우리는 공원 안에 있는 인공 호수로 갔다. 갈대숲 사이에서 청둥오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가 웃고 떠드는 것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가방에서 튜브와 공기주입기를 꺼냈다. 입수금지라는 팻말이 우리 앞에 붙어 있었다. 내가 공기주입기를 튜브에 꽂고 펌프질을 하는 동안, 해연이 수영교실에서 입었던 수영복을 꺼내 팻말에 걸었다. 도넛처럼 튜브가 부풀었다.
   벚나무 잎사귀를 뚫고 넓게 들어오는 햇볕이 우리를 감쌌다.
   해연은 허리춤에 튜브를 끼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수영모도 쓰지 않은 채였다. 나는 해연을 바라보았다. 해연은 조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듯이. 땅으로 올라오기 직전에도 발장구를 치며 물 위에 떠 있으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 척했다. 한 모금, 두 모금, 호수의 물을 삼킨 해연의 목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손을 뻗어 땅으로 올라오려는 해연의 팔을 붙잡았다. 물에 젖은 해연의 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해연은 생각보다 멀리 다녀오지 못해서 실망한 듯했다.
   해연이 바닥에 주저앉아 옷을 말리는 동안, 나는 운동화를 벗고 호수에 발을 적셨다. 물이 발가락 사이로 흘러와 물과 땅의 경계를 알려주었다.
   “헤엄칠 만 했나 보네?”
   나는 물었다. 공원의 벚나무들이 우리의 얘기를 엿듣기라도 하는 듯 가지를 조아리고 있었다.
   해연은 수건을 꺼내 콧물을 닦았다.
   “코가 뚫리면 더 좋아질 거야.”
   “그런데?”
   나는 또 물었다.
   “그런데?”
   “수영은 왜 배우려는 거야?”
   “그냥. 이번 생일엔 달자가 무서워했을 일을 대신 해주고 싶어서.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여름이 끝나면 달자는 열한 번 이후로는 세지 않은 생일을 또 한 번 맞게 될 것이지만, 해연은 축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해연처럼 생각을 하는 것도 괜찮겠지 싶었다.
   두 발을 호수에 담근 채 튜브를 건네받았다. 나는 튜브의 마개를 뽑고 공기를 뺐다. 새어나오는 바람 때문에 얼굴이 간지러웠다.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 다임, 페페, 제임스, 그리고 스핀을 돌보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단다. 우리는 도토리나무를 키울 거예요. 도토리나무가 살을 찌우죠. 열매를 맺으면 맛보겠죠.’
   해연이 <도토리나무를 키우지>를 불렀다.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뭐?”
   해연이 되물었다.
   “오늘,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간 거.”
   나는 수영복이 걸려 있는 입수금지 팻말을 가리켰다. 해연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수영복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왼 손바닥을 보이며 말했다.
   “가자.”
   나는 오른손으로 딱 소리가 나게 해연의 손바닥을 치며 주문을 외웠다.
   “포다란 아비라오켄 소와카!”
   주문을 외우자 해연의 코에서 콧물이 흘러내렸다.
   크흡, 해연이 콧물을 삼켰다.
   목구멍으로 콧물을 넘기는 해연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코를 훌쩍이는 건 이해가 갔지만, 왜 코를 풀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휴지를 꺼내 해연에게 건넸다. 얼마나 더 지나야 해연의 콧물이 멈출까. 홀딱 젖어버린 옷 때문에 콧물이 심해질지도 모른다.
   다만 해연이 콧물을 훔치지 않는다면, 조금은 허전할 것도 같았다.
   해연이 콧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훌쩍훌쩍.

주서요

씁니다.

2018/08/28
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