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꽃샘추위 / 흩어진 구름
꽃샘추위
건물에서 나갈까? 어두운 물이다
나는 모퉁이를 돌아 물기를 따라간다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면 언젠가 발을 잘못 디뎌 넘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니, 사실
넘어진 건 내가 아니라 친구였다 친구의 무릎을 덮은 치마에는
주름이 많았다 플레어스커트였다
다가가 친구에게 손 내밀었을 때
친구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내 손을 쳐냈다
친구의 치마를 밟고 있었다 나는 붉은 원단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발자국이 끊이지 않았다 벽이 없었으므로
나는 계속 걸었다 친구의 형체가 작아 실루엣만 남은 것 같았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봄에 피는 식물이었지 시간 가는 것도
계절이 바뀐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두꺼운 옷차림이었다 목도리를 풀었다 바닥에 목도리가 끌리면
목도리를 두르고 떠날까? 망설이기도 했다 너의 눈에도 내가
보였을까? 나는 네가 허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도 너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까
많은 친구를 새로 사귀었다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느라 수업에
성실하지 못했다
창밖 벚꽃 잎이 다 떨어져도
흰빛이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교실 바깥에서 벌을 서고 있었다 복도에는
나뿐이었다
흩어진 구름
쪽문을 통과하기 전에 네가 머리를 숙였던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
복도를 지나면
정문이 나 있었다. 유리문이었다. 바깥은 차도였고
너는 맞은편 계단을 올랐다.
계단에 멈춰 선 네 모습이 사라졌다. 머리부터 흘러내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다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이 건물을 드나들었다. 따로 시간을 확인한 적은 없지만
아침에 와본 기억은 없다. 자정이 되기 전에
떠났던 적도 없는 것 같았다. 특별한 약속이나 일정이 생기지 않으면 이곳에 왔다. 오후에
일어났기 때문에 서둘러 채비를 마쳐도 카페에 도착하면
사람이 있었다. 같은 얼굴이 자주 보였는데
나는 일부러 그와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곤 했다. 사람이 없거나 그가 보이지 않을 때면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 명 한 명을 확인했다. 유리창에는 물결무늬 균열이 생겼고
불투명했다. 구름이 떠 있었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나는 유리창 같았다.
오은경
평소 자신을 모순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해명하려면 많은 문장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 분명해서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써보겠다.
2021/04/27
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