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카페를 드나드는 데 다음 단어는 필수였다
   진동벨은, 됐어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많은 경우 진동은 사람의 리듬을 닮아 있었으니까

   오빠는 장난을 좋아했고
   나는 종종 갇혔다
   나를 믿지 않는 엄마가
   냉장고를 채워 넣는 일에는 부지런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꿈속에선 냉장고 밖에서
   오빠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울먹이며 나를 불러댔다
   꿈에서 깨면
   착하지 착하지 했다
   점점 더 가까이에서 그렇게 했다
   목젖이 떠는 걸
   오르내리는 걸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매우 빠르게
   빠르게
   보통으로
   느리게
   아주 느리게

   사람의 진동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간혹 그 모든 진동을 기분대로
   골라 쓰는 사람도 있다
   진동 사이사이에
   목소리가 섞여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진동 사이사이에
   피가 새어나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가족과 미래와 예술 역시 틈새를 좋아한다

   나는 깨끗하게
   냉장고를 비운다

   냉장고를 열면 불빛부터 보았다
   불빛 뒤에 숨은 어둠부터 보았다

   아빠는 처음부터 없었고
   엄마는 너무 늦게 죽었고
   오빠와 오빠들은 이따금 울었다

   가족과 미래와 예술 같은 말에는 반드시
   작은따옴표가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다 그만두고

   오빠를 초대한다
   냉장고를 연다
   넣는다





   결근



   나의 이마는 종일 뜨거웠고 여자는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차가운 많은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자
   반쯤 얼어 딱딱해진 몇 개의 젖은 목장갑이 테이블 위에 올려집니다

   식은 죽 두 그릇 숟가락 두 개
   꽃무늬 쟁반을 챙긴 덕분에 꽃은 없어도 좋았습니다

   검은 피부로 둘러싸인 문어가 눈감을 때마다 눈앞을 채웠고
   괜찮아질 거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분명 여자 목소리 같았습니다
   여자는 출근하지 못했으니까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장갑을 낀 것도
   여자였을 겁니다 테이블을 더듬는 내 손은 가짜
   검은 문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은 문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매번
   내가 가위에 눌린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이야길 여자에게 전해주며 물었을 때 여자는 내게
   내가 하던 것처럼 똑같이 물어왔습니다
   가위눌린다는 게 그런 거예요?
   그게 매일인 사람은 뭐가 되는데?

   그때 여자의 얼굴은 치밀한 각얼음 위에 꼼짝없이 달라붙은 혀의 형상 같은 것이었지만

   열이 있는 나는 자꾸 눈이 감겼습니다

   검은 문어와는 낯선 광장과 복도와 폐업한 회사의 창고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치고받고 나뒹굴다 박살이 나고

   출근하지 못한 여자를 잊는 꿈까지 꿉니다

   꿈에서 깨면 다시 꿈입니다
   내 양손에 끼워진 장갑 두 개가 미지근해져 있는 건

   여자를 잊으려 한 꿈을 알아챈 꿈의 관리자가
   다른 꿈에서 나를 벌주려 하는 의도인 게 분명합니다

   아무리 꿈이라도 장갑들은 다시 얼려놓는 것이 꿈의 도리겠지요

   출근하지 못한 여자가 어디로 출근하지 못한 것인지
   도무지 알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희음

추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생각을 그만두고 다시 씁니다
아무것도 그만두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020/03/31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