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고르기



   우리는 목장을 잃어버렸다
   아흔두 마리의 말과 일곱 마리의 염소들을
   방목하고 있었다 우리가 양치기는 아니었지만
   범인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늑대를 의심했다
   매일 밤 사라지는 굴뚝같은 것
   구름은 아침이면 모습을 바꿨다
   감추거나 변하거나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으므로
   우리는 아침에 치즈를 얹은 스테이크를 먹으며
   서로의 이를 검열했다
   고기가 끼어 있는 이가 범인이야
   구름은 양치를 하지 않지
   서로가
   서로의 입을 벌리고
   서로의 목구멍으로 눈알을 들이밀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누군가 소리치기도 했지만
   금세 늑대로 오해받은 이는
   다음날 새벽이 오기 전 송곳니를 잃어버렸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틀니를 끼기도 했다
   사람들은 수염이 구름처럼 새거나 죽었다
   아무도 구름을 의심하지 않았다
   말고기를 씹으며 말하지 않았다





   스위치



   서랍에 사과를 두고 왔다

   서랍은 꽉 다물어진 어둠의 세계였지만

   전구는 너무 쉽게 밝혀졌고

   나는 빛나는 사과를 깎는 상상을 했다

   조명이 빈 의자 위로 떨어지고

   아무도 출석을 부르지 않았는데

   비명도 없이, 서랍에 손이 끼인 친구들

   사과 하나가 빈 교실 바닥을 나뒹굴었다

   붉고 희고를 반복하는 동안

   조용한 복도에서처럼

   침 삼키는 소리마저 너무 크게 들려왔는데

   아무도 사과를 멈추려 하지 않아서

   서랍의 침묵을 참을 수 없어서

   나는 사과를 찔렀다

   반으로 가르자

   어둠의 눈 틈으로 단내가 새어나왔고

   그때 세상은 잠시

   길고 어두운 목구멍 같았다

최윤빈

친구가 말했다. 시 같은 거 쓰지 말고 시를 쓰라고. 개를 보지 말고 개의 마음을 보라고. 믿지 못했던 마음들을 오래 들여다보기로 한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