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콘택트



   현관 비밀번호를 까먹자 철 맛이 난다
   왔던 길에는 식은땀과 믿음이
   송골송골

   여기서 제일 멀리 가면
   여기로 돌아오게 된다고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이들이
   네모난 숟가락을 들어올렸다
   구호가 없어
   도리어 팔뚝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벅찬 식사

   창문 없는 오늘의 숙소
   불을 끄면 저녁이거나 내일
   밤이 오지 않는 마을의 담벼락에 적혀 있는
   내일의 해 운운하는 속담

   아니지
   열두 시 지났으니 오늘이지
   규칙적 무박 여행객
   어느 사막의 취급 주의 품목으로 우산이 있었으나
   열에 아홉이 양산을 잃어버렸다는
   그런 환상과 농담이 지척인 나날
   한 움큼

   국경에 두고 온 게 문득 그리워진 사람이
   아무 방향으로든 안부를 물었다

   그런 믿음으로 벽을 두드리면
   저쪽에서도 두드려주어
   번역이라는 종교가 생기고
   어쩌면 이젠 그것이 시차라는 것일지도

   저쪽으로 갔던 사람이 이쪽에서,
   습관처럼 우리는 선물을 사 왔지만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러니까 우리의 언어로 그게 무언지

   모르는 단어로 소리 질렀다
   누군가 안에서 의문형으로 말했다





   테디 메탈



   불쌍해지기 전에 교실로 돌아가야 하는데
   세수를 하다가 녹아버렸어요
   미간이 아릴 정도로 구름이 새하얗고
   그런 오후
   무대 오르기 전 심호흡
   이건 이상한 거 아니지?

   어떤 자세를 취해도
   눈물은 바닥으로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전진
   그런 진형을 갖추고 백팩
   속으로 영영
   과속

   움츠린 것뿐인데 친구들이 녹다운 되는 씬

   안녕하세요 저는 그저 물때가 낀 세면대를
   검지로 오랫동안 닦아 왔어요
   때, 라는 단어를 물과 함께 써도 되는 건지
   바꿔 부를 말이 사전에 없길래

   만지는 노하우를 익혔고요
   차갑지만 금방 달아오르고,
   기대하는 표정의 관객들을
   조금 흔들어 볼 뿐입니다

   손가락 하늘 위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방패
   내 얼굴
   일직선 발걸음 한 번에
   비명은 여러 갈래
   깨진 거울 워페인트
   그립감 좋은 나의 손목
   정말 든든해 미친다
   안쪽 면에 그려놓은
   곰돌이 같은 거.

채희범

하면 된다는 말 싫다. 근데 하는 게 되면 좋겠다.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