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익뉴타운



   젊고 바른 사람들이었다
   둘은 날이 밝으면 함께 불행을 그려볼 수 있었지만 둘의 불행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고 밤에는 낮의 일들을 잊었다 주말에는 밖으로 나가 함박스테이크와 삶은 감자를 사 먹었다 건조기가 조용히 돌아갔다

   ***

   살진아 살진아
   할머니가 고양이를 부르고

   베란다에는 죽은 화분이 모여 있다
   타일 사이 물때 위로 빛은 고여

   조용하고
   아무도 대답할 수가 없다

   ***

   카펫 위의 잠든 고양이와 쌓여가는 털실 뭉치들 벽난로 앞의 흔들의자와 할머니를 한 장에 욱여넣고
   아이는 잠에 빠진다 흔들의자는 최선을 다해
   느리게 흔들리고
   할머니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

   기도는 한 번에 하나씩 해야 한다고
   여자는 믿었다
   새벽에 나가 새벽에 돌아오는

   “가엾게 여기시어 돌보아주시니 주시는 이 뜻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여자는 벤치에 앉아
   오른발을 까딱였다
   기쁜 마음에 대해 헤아리며

   기도가 다할 때까지

   ***

   이제 노인들과 함께 비바람을 구경하자

   고모와 할머니와 거실에 나란히 앉아 베란다 바깥으로

   오래된 비를 보자

   비바람은 그치지 않고

   할머니는 마늘을 갈아놓아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비가 계속 내리고

   ***

   아이는 입을 다물고
   장롱 밖으로 나간다

   꼬리를 살랑이며 다가오는
   털이 찐 늙은 개 보리

   눈곱을 떼주고 착하다 착하다

   착하다
   한번 더 써야 했다





   뉴타운



   3월의 공원이다
   빈 나무에 감긴 크리스마스 전구가 깜빡인다
   자기들도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는 듯이

   너는 하얀 꽃나무 하나를 본다
   여전히 눈이 쏟아지고 있는 3월의 한밤에 대해 생각하면서

   마스크와 목도리를 한 노인이 목줄을 손에 감고
   털이 희고 조그마한 개를 따라 걷는다

   개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 노인의 두 눈을 마주하고
   웃는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지나가는

   그늘진 정자에 히잡을 쓴 사람들이 앉아 있다
   모두가 아이를 품에 안고서
   웃고 있는 것 같다 돌아보면
   작은 목소리로
   하하
   하하 웃는다

   너는
   전구는 작고
   단단한 빛을 태운다고
   본다 밤은 얼마나 검은지
   얼마나 더 검정일 수 있는지

   발밑에서
   크고 두툼한 꽃잎 하나
   부드럽게 물크러져 가고

   우리도 흰 개를 키우게 되겠지?

   너는 해줄 말이 없었고

   그건 눈을 상상하지 못할 만큼 희고
   네가 손을 대어보면 아주 미지근하다
   마치 살아 있던 때처럼

조용우

창밖의 새소리, 아파트 어린이집의 산책 시간, 아무도 없는 놀이터의 오후를 박스에 넣고 닫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새들이 내는 소리는 매번 이토록 현실처럼 느껴질까요. 다시 쓰고 더 지워 봐도 현실과 구별되지 않는 새소리가 저기 울리고 있습니다.

2021/05/25
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