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버스정류장

   박성진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다.

     특별한 능력을 발견한 것은 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밤이었다. 정확히는 자정을 지나 29일 수요일로 넘어간 밤이었다. 평소라면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보느라 어느 정도 시간을 눈치채는데, 그날은 버스 안에서 폰을 좀 보다가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속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눈을 감으니 후각이 예민해졌다. 특히나 내 손에 들린 비닐봉지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선명해졌다.
    봉지에는 차장님이 술집에서 챙겨준 마른안주들이 담겨 있었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갈수록 더 울렁거렸다. 주량을 넘도록 마신 탓이다. 차장님은 소주를 마시고 과장님은 소맥을 마시니까 나는 둘 다 마시느라 좀 힘에 부친다. 하지만 다들 즐겁고 신이 나서 기분 좋게 술을 따라주는데 거절하는 게 쉽지 않다. 잘 거절하는 것도 능력이라는데 나한테는 그런 능력이 없는 모양이다. 듣기로는 거절하는 것도 연습하면 는다는데, 연습해서 얻어지는 게 능력이라면 나는 거절의 능력보다는 술 마시는 능력을 갖고 싶다. 그래서 매번 노력하지만 항상 실패해서 이 모양이다.
    잠실역에서 집까지는 버스로 20분 정도 걸린다. 다 해서 아홉 정류장이다. 나는 일곱 정류장이 남았을 때부터 괴로워했다. 손에 쥔 비닐봉지를 바스락거리며 고민했다. 내려서 토할까. 하지만 이건 막차인걸. 집까지는 버스로 20분이면 가니까, 내려서 걸어간다고 해도 못 걸을 거리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 늦은 밤이고, 무엇보다도 춥잖아. 그러니 한 정거장만 더 참아보자. 하나만 더, 그리고 하나만 더.
    그렇게 아홉 번째 정류장에 도착했다. 뜨겁고 시큼한 것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삼키며 카드를 찍고 버스에서 내렸다. 찬바람을 맞으면서 느꼈다, 이제는 정말 한계라는 것을.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 단지 후문으로 들어가서 우리 동의 공동 현관에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집의 비밀번호를 누른 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변기에 토하고 물을 내리는, 깔끔하고 현대적인 구토는 불가능하다. 내가 지킨 현대인의 존엄성은 버스에서 토하지 않은 것까지였다.
    나는 길바닥에 토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방금 내가 내린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시간을 위해 아주 잠깐,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 찰나의 순간 내 시야에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들어왔다. 나는 땅바닥을 향해 비닐봉투를 털었다. 조미오징어 서너 가닥과 땅콩 몇 알이 굴러떨어졌다. 어쩐지 가볍더라니. 차장님도 취했구나, 저 ‘쬐금’을 기어이 싸주고. 하여간 봉지는 땡큐예요. 비닐봉지를 확 벌리고 그 안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비닐봉지 특유의 플라스틱 냄새와 건어물의 비린내, 오래된 땅콩냄새 같은 것들이 섞인 공기를 들이마셨다. 입을 벌리자마자 구토가 시작되었다.
    잠시 후, 나는 토사물이 담긴 비닐봉지를 든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쓰레기통이 없었다. 예전에 봤는데.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며 김밥 같은 걸 먹던 노숙자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료수를 꺼내 마시는 걸 분명히 봤단 말이다. 그때는 쓰레기통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없지,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았다. 쓰레기통이 없는 버스정류장은 너무 깨끗했고, 차 한 대도 다니지 않는 밤의 도로는 무척 깔끔했다. 토하기 전에 내가 털었던 한줌의 마른안주는 어느새 사라졌다. 어두운 거리를 희미하게 비추는 가로등 불빛은 땅콩 몇 알, 조미오징어 몇 가닥을 숨겨버렸다. 나는 토사물이 든 비밀봉지를 바닥에 살짝 내려놓아보았다. 하얀 봉지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이 났다. 봉지 안에 든 토사물의 실루엣도 전부 비쳤다. 나는 쓰레기봉지를 도로 집어들었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의 유일한 쓰레기가 나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부끄러웠고 사라지고 싶었다.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거나.

    그리고 나는 하늘로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몸이 약간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취해서 그런 줄 알았다. 뭔가 둥실둥실한 기분도 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발밑이 허전한 듯해서 내려다보니 발이 바닥에서 떨어져 있었다. 잘못 본 줄 알고 발을 움직여보았는데, 발끝을 까치발처럼 쭉 뻗어도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이었다. 뭐야, 미쳤나봐.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리는 중에도 내 몸은 꾸준히 위로 떠올랐다. 느릿느릿, 비닐봉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도록 부드럽게.
    나는 버스정류장의 벤치 높이만큼 떠올랐다. 이내 버스 도착 안내화면과 눈높이가 같아졌고, 곧이어 버스정류장의 지붕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어두워도 지붕 위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 지붕 위를 누가 치우겠어, 보이지도 않는걸. 그러고도 내 몸은 계속 위로 위로 떠올라서 손을 뻗으면 가로등의 전구를 만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먼지가 잔뜩 묻어서 더러웠기 때문에 나는 그냥 보기만 했다. 평소에 올려다볼 때보다 가까이서 보니 가로등 전구는 엄청 컸다. 나는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떨어지면 죽지는 않겠지만 아프겠지. 이제 그만 올라가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자 내 몸은 떠오르던 것을 멈추었다.

    내가 날다니.

   나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냥 위쪽으로 둥실둥실 떠오른 것이라고 해도 날기는 난 것이다. 나에게 이런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니. 놀랍긴 한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느꼈다. 발아래가 허공인 느낌, 가로등이 책상 스탠드 조명처럼 가까워 보이는 느낌, 버스정류장의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느낌, 무엇보다도 지독한 추위.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버스에서 내린 뒤로 시간이 꽤 지났고, 공중에 떠 있다보니 바람을 더 적나라하게 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쓰레기봉지를 들고 있던 손은 장갑도 없이 맨손이라 너무 시려서 아플 지경이었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찍은 사진. 가로등 옆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쓰레기봉지가 있다. 이 사진은 2017년 12월 21일에 촬영했다.

   맞다, 쓰레기. 이거 처리해야 돼.
    나는 가까운 나뭇가지를 붙잡아서 거기에 쓰레기봉지를 걸었다. 추워죽겠네, 집에 가고 싶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춥고 졸리다. 빨리 집으로.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간밤의 기억은 깨끗이 사라졌다. 나는 컨디션 최악이었다. 늦잠을 잔 건 아니지만 움직일 때마다 끄응끙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전날 밤에 안 씻고 잤기 때문에 샤워를 해야만 했고, 젖은 머리로 나가면 얼어붙을 테니까 드라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걸치고 얼굴에는 로션만 슥슥 문질렀다. 화장은 회사에 가서 하기로. 속 쓰리니까 500밀리리터 생수병도 챙겼다. 버스정류장 가서 마셔야지.
    버스앱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정문 쪽으로 가면 8분이나 버스를 기다려야 하니까 오늘은 후문으로 간다. 이 시간대는 애매해서, 자칫하면 통조림처럼 부대끼며 한 시간 가까이 서서 가게 될 수도 있다. 하필이면 컨디션 안 좋은 날에 이게 뭐람. 그럴 만도 한 것이 어제 토할 만큼 마셨잖아. 길거리에서, 봉지에다가…… 그래서 그걸 어떻게 했더라. 버스정류장으로 다가가던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집 앞 버스정류장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쓰레기봉지를 처음 보고 찍은 사진. 촬영날짜는 2017년 12월 1일인데, 이 정류장을 매일 이용하는 것은 아니기에(나는 버스앱을 참고하여 버스 도착시간에 따라 정문 쪽, 후문 쪽 정류장을 번갈아 이용한다) 11월부터 매달려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박윤선 작가에게 보내준 것은 이날의 사진이다. 


하루 이틀이면 곧 치워질 줄 알고 서둘러 사진을 찍었건만 쓰레기봉지는 새해가 되어도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저기에다 매달았을까? 저 봉투는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까? 동네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니는 길인데 아무도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지 않는 걸까? 다들 모른척하기로 한 걸까? 그렇게 궁금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내렸는데, 2018년 1월 중순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보니 사라졌다.



   수상한 열매

   박윤선

   2017년 말 겨울. 서울.

   수년간 산성비, 오존층 파괴 문제, 미세먼지, 배기가스……

   ……방사능, 전자파, 인터넷(?), 이산화탄소, 황사 등이 쌓이고 쌓여……


   언제부턴가 가로수에 이상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다.



   비닐봉지라니. 참 망조야.

   근데…… 비닐봉지가 저 나무에만 열리는 걸까? 저게 무슨 나무였지…… 은행나무? 플라타너스?

   어?! 

   !!!

   아, 아니…… 이런!!!



   흠, 거 참 편리하군.



   가로수 비닐봉지는 며칠 후 사라졌지만, 내 손목에는 여전히 붙어 있다.

   때문에 샤워를 할 때마다 그 위에 다른 비닐봉지를 하나 덧씌우게 되었다.

   봉지에 물이 들어가면 질척거리니, 달고 다니기가 영 불편하길래 생각해낸 일종의 방수 장치랄까?


   인터넷 질문 게시판에 내 상황을 써올렸다. 처음엔 다들 농담인줄 아는지 말도 안 되는 댓글만 달더니, 한 달 전부터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찾아와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비닐봉지를 돌돌 말아 팔찌처럼 손목에 두르니 유니크한 아이템이 되었다며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늘 그렇듯, 북한 배후설과 ‘이게 다 누구 탓이다’라는 식의 글로 잠시 게시판이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 Re: 치료를 하셨다고요? 어디에서? 어떻게??
   - Re: Re: 우리 동네 최안과에서 했는데요. 그 안과 지금은 문 닫았지만……

   - (이어서) 원장 선생님이 예전부터 약간 이상하긴 했는데, 어느 날부터 막 눈에서 레이저빔을 쏘시는 거예요! 그걸로 비닐봉지를 뗐어요. 참 고마웠죠. 근데 그 뒤로 불법시술 소문이 돌아서……

   - (이어서) 결국 이민 가셨어요. 거기서도 안과 한다던데, 함 찾아보시죠? 근데 여기서 워낙 데여서, 비닐봉지 이야기 하면 예약 안 받으실텐데…… 그냥 시력 검사하러 왔다 하고, 슬그머니 말 꺼내면서 좀 달래보세요.

   그 뒤 나는 최안과를 찾아 프랑스의 앙굴렘이라는 한 시골 마을로 향했다.
   첫 유럽 여행이라 우선 빠리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관광도 하고……

   #빠리 #에펠탑 #유럽 배낭여행 #Rue Eugene Poubelle 


   ……떼제베 기차로 한 세 시간 걸려 그 마을에 도착했다. 동네가 작아 최안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시력 검사하러 왔는데요.
   - 6개월 뒤에 가능합니다. 무슨 요일로 예약해드릴까요?
   - 네?? 더 빨리 안 되나요? 2주 뒤에 한국 들어가는데……
   - 그럼 거기서 하시면 되겠네요. 여기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 다 6개월 기다린 사람들이예요. 다른 동네 가봐도 안과는 다 비슷해요.

   결국 6개월 뒤로 예약을 잡고, 중간에 예약 취소자가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병원에서 빠져나와 나는 비행기 날짜를 미룰 수 있는지 비행사에 전화를 했다.
   - 고객님, 혹시 비자가 계신가요?
   - 프랑스에 비자가 필요해요?
   - 90일 미만 체류에는 필요 없으시지만, 거기서 하루라도 더 있으시려면 비자가 계셔야 합니다. 아님 불법체류가 되시거든요. 저희 책임은 아닙니다만……
   -비자는 어떻게 따나요?
   -그건 대사관에 문의하셔야 합니다, 고객님. 다른 문의사항은 없으십니까?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며, 고객님께 고객만족도조사 전화가 곧 갈 거거든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고객님.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프랑스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 연락을 했다.
   - 아이고…… 여기는 프랑스 사람이 한국 가는 비자를 해주는 데예요! 한국 사람이 프랑스 비자를 받으려면, 한국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엘 가셔야지, 여기에 물어보심 어떻게 합니까, 참나.

   아……
   오기 전에 전화로 안과 예약부터 해볼 것을!!

   _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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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결성된 프로젝트 팀으로 우리의 일상을 호기심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팀 이름은 영어의 ‘comment’(코멘트)와 불어의 ‘comment’(꼬멍)의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멤버인 박성진과 박윤선은 대학교 때 디자인을 전공하며 만났고 졸업 후에는 디자인과 무관한 길을 가고 있다. 박성진은 서울과 성남을 오가며 소설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박윤선은 앙굴렘에서 일러스트와 만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8/02/27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