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시나리오(2018~2022)
피의 밤
공동 작업실. 오후. 실내
어두컴컴한 호텔 로비에 팔짱을 낀 커플이 들어온다.
촌스럽고 어수룩해 보이는 승민(20, 남)과 유진(20, 여).
프런트데스크에선 껄렁한 인상의 호텔리어가 그들을 맞이한다.
승민과 유진이 엘리베이터에 타자 호텔리어는 비웃음을 흘리며 옆 직원에게 말을 건다.
#1. 호텔 방, 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승민과 유진.
방 한가운데 욕조가 있는 독특한 구조다.
먼저 침대에 걸터앉는 유진과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가져오는 승민.
승민은 머뭇대다 유진의 옆에 나란히 앉는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어색함을 극복하려 TV를 켜는 승민.
TV에선 하필 성인 영화의 야릇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잠시 화면에 눈을 고정하며 침을 꿀꺽 삼키는 두 사람.
리모컨을 들어 TV를 다시 끄는 유진.
유진의 손을 잡는 승민.
승민이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유진이 승민의 손목을 아직 잡고 있다.
유진에게 다가가 키스를 하는 승민.
cut to
승민이 방문을 닫고 호텔 복도로 나온다.
카드키를 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내려가는 승민.
#2. 골목길, 밤
호텔 입구에서 나와 골목길을 지나가는 승민.
으슥한 골목길에선 만취한 듯한 여자가 구토를 하고 있고,
남자가 그녀의 뒤에서 등을 두드려주고 있다.
그 모습을 힐끔 보며 걸어가는 승민.
남자는 눈빛을 의식했는지 승민을 노려본다.
겁먹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 곁을 지나쳐가는 승민.
#3. 순대 가게, 밤
사장에게 카드를 건네며 주문하는 승민.
사장이 결제를 하고 순대를 포장하는 사이,
가게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승민.
가게 입간판들의 불빛과 흐느적거리는 취객들로 바깥 거리는 어수선하다.
그러던 중 뭔가를 발견하고 승민은 흠칫 놀란다.
한눈에도 건달처럼 보이는 싸늘한 인상의 남자가 순대 가게 바로 앞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승민은 즉시 가게 기둥 뒤로 몸을 숨긴다. 입술을 살짝 깨무는 승민.
승민의 시선은 TV 화면으로 향한다.
뉴스에서 오늘의 사건 사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모자이크 처리된 자료 화면을 본 순간 승민은 인상을 찌푸린다.
잠시 후, 포장을 마친 사장이 진땀 흘리는 승민을 보며 의아해한다.
승민이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니 담배 피우던 남자는 사라지고 없다.
재빨리 음식을 받아서 나오는 승민.
그런데, 가게를 나오며 고개를 돌리자 가게 입구 바로 옆에 그 남자가 서 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승민을 보고 있는 남자는 바로 규태(20, 남).
승민은 긴장한 탓에 다리가 굳어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승민은 싫은 기색이지만 규태는 억지로 끌고 간다.
#4. 술집, 밤
지하에 있는 어두운 술집.
규태와 승민, 그리고 양팔에 문신을 드러낸 폭력배 같은 인상의 남자, 중만(35, 남)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다.
승민은 가게 구석에 있는 TV로 시선이 향한다.
아직 잘린 손목에 대한 뉴스 보도가 나오고 있다.
승민, 잔뜩 겁을 먹어 얼굴까지 창백해졌다.
가까스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승민.
소변을 보며 화장실에서 창문을 살피지만 전부 방범 철창이 되어 있어 도망칠 수도 없다. 고개를 돌리니 작게 열린 문틈으로는 규태가 보인다.
결국 단념하고 화장실에서 나온 승민.
규태가 승민의 어깨를 감싸며 다시 자리로 데려가려 한다.
그때 승민은 마음먹은 듯 규태의 몸을 힘껏 밀어버린다.
규태가 바닥에 쓰러진 사이 술집 입구로 냅다 도망치는 승민.
#5. 길거리, 밤
헐떡이며 도망쳐 나온 승민.
무단 횡단을 해서 도로를 건너려 하는데 택시에 치일 뻔한다.
클랙슨을 울리며 지나가는 택시.
승민은 건너가기를 단념하고 뒤를 돌아본다.
골목 어디선가 규태의 고함이 들린다.
방향을 틀어서 옆쪽 골목길로 도망친 승민은 허름한 건물로 들어가 숨는다.
계단 아래에 주저앉아 몸을 덜덜 떠는 승민.
핸드폰으로 유진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끊는 승민. 한숨을 돌리려 하는데,
바닥에 길게 드리워진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
승민이 절망적인 얼굴로 돌아보니 규태와 중만이 건물 입구에 와 있다.
규태가 나오라고 손짓하고, 승민은 체념한 듯 그에게 다가간다.
승민의 얼굴을 냅다 주먹으로 갈기는 규태.
승민은 바닥에 쓰러진다.
규태가 발을 들어 승민을 밟으려고 하는데, 승민은 몸을 굴려서 간신히 피한다.
이를 꽉 깨문 승민. 계단 옆에 세워져 있던 대걸레를 들어 규태에게 휘두르려 한다.
의외의 반격에 당황한 규태가 한발 물러서고,
승민은 대걸레로 겁을 주며 건물 밖으로 나온다.
그때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중만이 대걸레를 붙잡더니 승민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버린다. 엄청난 충격에 대걸레를 놓치고 무릎을 꿇는 승민.
배를 움켜잡고 꿇어앉은 승민의 얼굴을 걷어차는 규태.
승민은 바닥에 쓰러진 채 피가 흐르는 코를 부여잡는다.
그 사이 규태는 승민의 주머니를 뒤져서 소지품들을 전부 꺼낸다.
쓸모없는 카페 쿠폰과 영수증을 바닥에 버리고는 핸드폰도 멀리 던져버리는 규태.
지갑에 현금을 세어보지만 천 원짜리 밖에 없다.
승민의 시야에 바닥에 떨어진 호텔 카드키가 들어온다.
눈치를 보다가 용기를 내서 입을 여는 승민.
엎드린 승민 위에 앉더니 한쪽 팔로 승민의 목을 감싸는 규태.
숨이 막혀 발버둥치는 승민.
규태가 계속 조르자 승민의 눈이 뒤집히며 의식을 잃는다.
#6. 호텔 방, 밤
유진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그때 카드키로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말을 마친 유진. 고개를 돌린 순간 표정이 굳는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승민이 아닌 규태와 중만이었다.
#7. 길거리, 밤
기절해 있던 승민이 힘겹게 기침하며 깨어난다.
바닥을 더듬어보는데 지갑과 부서진 핸드폰, 포장한 순대만 떨어져 있을 뿐 카드키가 없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해보려 하지만 액정이 부서져서 화면이 켜지지 않는다.
울상이 된 승민이 비틀대며 일어난다.
#8. 호텔 계단, 밤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는 승민.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위층에선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있다.
#9. 호텔 방, 밤
살짝 열려 있는 302호실 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승민.
바닥에는 핏방울이 드문드문 찍혀있고, 안으로 들어가자
욕조에는 핏물이 가득 차 있다. 여전히 실내에는 유진이 흐느끼는 소리가 울린다.
승민이 다가가자 욕조 너머로 유진의 모습이 드러난다.
빨갛게 물든 가운을 입은 유진은 피가 흐르는 살코기를 우적우적 뜯어먹고 있다.
그제야 드러나는 욕조의 모습.
피 웅덩이 욕조에 규태와 중만, 두 남자의 시체가 포개져서 들어가 있다.
유진이 먹는 고기는 그들의 살점으로 보인다.
흐느끼면서도 허겁지겁 살점을 먹고 있는 유진을 보며 승민은 피식 웃는다.
그제야 유진도 안심이 된 듯 웃으면서 눈물을 닦는다.
유진의 앞에 마주 앉는 승민.
승민도 살점을 조금 떼어서 입에 집어넣는다.
호텔 방 바닥에서 그들의 기괴한 식사가 이어진다.
어두컴컴한 호텔 로비에 팔짱을 낀 커플이 들어온다.
촌스럽고 어수룩해 보이는 승민(20, 남)과 유진(20, 여).
프런트데스크에선 껄렁한 인상의 호텔리어가 그들을 맞이한다.
승민
(체크 카드 내밀며) 저…… 숙박할게요.
호텔리어
차는 안 가지고 오셨죠?
(결제한 뒤 카드키를 내민다) 302호실로 가시면 되고요.
퇴실은 내일 낮 12시입니다.
(결제한 뒤 카드키를 내민다) 302호실로 가시면 되고요.
퇴실은 내일 낮 12시입니다.
승민과 유진이 엘리베이터에 타자 호텔리어는 비웃음을 흘리며 옆 직원에게 말을 건다.
호텔리어
봤어? 저 꼴에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하네.
와꾸하며 옷 입은 거 하며……
호텔리어2
(피식 웃으며) 못난 애들끼리라도 만나야지 뭐 어쩌겠어.
#1. 호텔 방, 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승민과 유진.
승민
유진아 이것 봐. 욕조 신기하다.
방 한가운데 욕조가 있는 독특한 구조다.
먼저 침대에 걸터앉는 유진과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가져오는 승민.
승민은 머뭇대다 유진의 옆에 나란히 앉는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어색함을 극복하려 TV를 켜는 승민.
TV에선 하필 성인 영화의 야릇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잠시 화면에 눈을 고정하며 침을 꿀꺽 삼키는 두 사람.
리모컨을 들어 TV를 다시 끄는 유진.
유진
오늘 제대로 할 거지?
승민
……응. 걱정되지?
유진
피 보는 게 겁나.
승민
사실 처음도 아니잖아. 우리 저번에도……
유진
그땐 제대로가 아니었잖아.
네가 너무 서툴러서……
네가 너무 서툴러서……
승민
긴장하지 마. 이제 잘할 수 있어.
유진
승민아. 나 무서워.
여기에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버거워.
여기에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버거워.
유진의 손을 잡는 승민.
승민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우린 우리야.
우리가 즐겁게 살면 되잖아. 눈치 보지 마.
우리가 즐겁게 살면 되잖아. 눈치 보지 마.
유진
그래. 눈치 안 봐, 나는.
승민
나 금방 나가서 먹을 것 가져올게.
긴장 풀고 기다려. 알았지?
긴장 풀고 기다려. 알았지?
승민이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유진이 승민의 손목을 아직 잡고 있다.
유진에게 다가가 키스를 하는 승민.
cut to
승민이 방문을 닫고 호텔 복도로 나온다.
카드키를 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내려가는 승민.
#2. 골목길, 밤
호텔 입구에서 나와 골목길을 지나가는 승민.
으슥한 골목길에선 만취한 듯한 여자가 구토를 하고 있고,
남자가 그녀의 뒤에서 등을 두드려주고 있다.
그 모습을 힐끔 보며 걸어가는 승민.
남자는 눈빛을 의식했는지 승민을 노려본다.
남자
야. 뭐 구경났냐?
찐따같이 생긴 새끼가 기분 더럽게.
찐따같이 생긴 새끼가 기분 더럽게.
겁먹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 곁을 지나쳐가는 승민.
#3. 순대 가게, 밤
사장에게 카드를 건네며 주문하는 승민.
승민
순대 2인분 포장해주세요.
사장
네. 5분만 기다려요.
사장이 결제를 하고 순대를 포장하는 사이,
가게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승민.
가게 입간판들의 불빛과 흐느적거리는 취객들로 바깥 거리는 어수선하다.
그러던 중 뭔가를 발견하고 승민은 흠칫 놀란다.
한눈에도 건달처럼 보이는 싸늘한 인상의 남자가 순대 가게 바로 앞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승민은 즉시 가게 기둥 뒤로 몸을 숨긴다. 입술을 살짝 깨무는 승민.
승민의 시선은 TV 화면으로 향한다.
뉴스에서 오늘의 사건 사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기자
한강 하구에서 한 낚시꾼이 건져올린 손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낚시꾼들은 모형 장난감으로 생각해 신고가 늦어졌는데, 감식 결과 진짜 사람의 손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모자이크 처리된 자료 화면을 본 순간 승민은 인상을 찌푸린다.
잠시 후, 포장을 마친 사장이 진땀 흘리는 승민을 보며 의아해한다.
사장
순대 나왔어요.
승민
저기요…… 사장님. 밖에 말이에요.
머리 짧은 남자 지금도 담배 피우고 있나요?
머리 짧은 남자 지금도 담배 피우고 있나요?
사장
네? 밖에 담배 피우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승민이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니 담배 피우던 남자는 사라지고 없다.
재빨리 음식을 받아서 나오는 승민.
그런데, 가게를 나오며 고개를 돌리자 가게 입구 바로 옆에 그 남자가 서 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승민을 보고 있는 남자는 바로 규태(20, 남).
승민은 긴장한 탓에 다리가 굳어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규태
오승민. 오랜만이다.
승민
(당황하며) 어, 오, 오랜만이야.
규태
(갑자기 다가와 어깨동무하며) 새끼. 저녁 사 가는 거냐?
승민
으, 응. 나 지금 빨리 들어가봐야 해서.
규태
야. 친구를 1년 만에 만났는데 바로 쌩까는 게 어딨냐?
여기서 한잔만 하고 가자. 나 술 마시다 나왔어.
여기서 한잔만 하고 가자. 나 술 마시다 나왔어.
승민은 싫은 기색이지만 규태는 억지로 끌고 간다.
#4. 술집, 밤
지하에 있는 어두운 술집.
규태와 승민, 그리고 양팔에 문신을 드러낸 폭력배 같은 인상의 남자, 중만(35, 남)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다.
중만
규태 친구라고? 비주얼이 친구로 안 보이는데?
규태
형님 저희 고3 동창이에요. 얘랑 저랑 전교에서 제일 꼴통이었거든요.
졸업하고 얘는 정신 병원 가고 저는 교도소 가고.
너 증상이 뭐였냐? 우울증?
졸업하고 얘는 정신 병원 가고 저는 교도소 가고.
너 증상이 뭐였냐? 우울증?
승민
그, 그냥 이것저것.
규태
거기선 언제 나왔는데?
승민
지난달.
규태
타이밍 죽인다. 나도 한 달 전에 출소했거든.
중만
친구는 대학은 못 갔겠네? 지금 일은 하고?
승민
아, 아뇨. 아르바이트만……
중만
돈 부족하겠다 너. 그래도 우리 규태보단 낫네.
그런 짓 하고도 빵에서 1년 만에 나오다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야.
그런 짓 하고도 빵에서 1년 만에 나오다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야.
규태
제가 그때 생일 안 지나서 미자였거든요.
(승민을 툭 치며) 새꺄 근데 아까부터 왜 몸을 배배 꼬냐? 무섭냐?
사람 죽이는 거? 별거 아냐. 잘 썰어서 버리면 절대 안 들켜.
(승민을 툭 치며) 새꺄 근데 아까부터 왜 몸을 배배 꼬냐? 무섭냐?
사람 죽이는 거? 별거 아냐. 잘 썰어서 버리면 절대 안 들켜.
승민은 가게 구석에 있는 TV로 시선이 향한다.
아직 잘린 손목에 대한 뉴스 보도가 나오고 있다.
승민, 잔뜩 겁을 먹어 얼굴까지 창백해졌다.
승민
저기 근데 나 진짜로 바빠서……
규태
야 됐고. 너 돈 부족하지? 이제 성인인데 꼬라지 그러고 다닐래?
핸드폰 하나 새로 개통해. 중만 형님이 300까지 대출해 주신대.
핸드폰 하나 새로 개통해. 중만 형님이 300까지 대출해 주신대.
승민
나, 난 괜찮아. 다음에 할게.
규태
다음? 이 새끼가 동창 쪽팔리게 할래?
승민
……
규태
너 여기서 나가면 바로 폰 개통하고 도장 찍는 거다. 알았지?
승민
미, 미안한데 나 화장실만 다녀와도 돼?
중만
야 인간적으로 화장실은 보내줘라.
가까스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승민.
소변을 보며 화장실에서 창문을 살피지만 전부 방범 철창이 되어 있어 도망칠 수도 없다. 고개를 돌리니 작게 열린 문틈으로는 규태가 보인다.
규태
새꺄 대가리 굴리지 마시고요.
결국 단념하고 화장실에서 나온 승민.
규태가 승민의 어깨를 감싸며 다시 자리로 데려가려 한다.
그때 승민은 마음먹은 듯 규태의 몸을 힘껏 밀어버린다.
규태가 바닥에 쓰러진 사이 술집 입구로 냅다 도망치는 승민.
규태
야 이 개새끼야!
#5. 길거리, 밤
헐떡이며 도망쳐 나온 승민.
무단 횡단을 해서 도로를 건너려 하는데 택시에 치일 뻔한다.
클랙슨을 울리며 지나가는 택시.
승민은 건너가기를 단념하고 뒤를 돌아본다.
규태
(V.O) 오승민 개새끼 잡히면 뒤졌다 너!
골목 어디선가 규태의 고함이 들린다.
방향을 틀어서 옆쪽 골목길로 도망친 승민은 허름한 건물로 들어가 숨는다.
계단 아래에 주저앉아 몸을 덜덜 떠는 승민.
핸드폰으로 유진에게 전화를 건다.
유진
(V.O) 승민아? 왜 이렇게 안 들어와?
승민
유, 유진아. 나 먹을 것 구하려는데 도, 동창을 만나는 바람에.
(울먹이며) 3년 동안 나 괴롭히던 앤데 어떡해야 될지 모르겠어.
(울먹이며) 3년 동안 나 괴롭히던 앤데 어떡해야 될지 모르겠어.
유진
(V.O) 거기에 잡혀 있어?
승민
아니…… 지금 도망쳐 나와서 숨어있어.
유진
(V.O) 승민아 침착해. 내가 말했잖아. 우린 남들이랑 좀 달라. 지금은 세상이 다 무서울 거야. 그래도 잘 헤쳐갈 수 있어. 어떻게 돼도 좋으니까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줘.
승민
응. 유진아. 미안해. 꼭 돌아갈게.
전화를 끊는 승민. 한숨을 돌리려 하는데,
바닥에 길게 드리워진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
규태
숨바꼭질 그만하고 나와라 친구야.
승민이 절망적인 얼굴로 돌아보니 규태와 중만이 건물 입구에 와 있다.
규태가 나오라고 손짓하고, 승민은 체념한 듯 그에게 다가간다.
규태
형님도 보셨죠? 이 새끼가 먼저 친 거.
나 이거 정당방위다.
나 이거 정당방위다.
승민의 얼굴을 냅다 주먹으로 갈기는 규태.
승민은 바닥에 쓰러진다.
규태가 발을 들어 승민을 밟으려고 하는데, 승민은 몸을 굴려서 간신히 피한다.
이를 꽉 깨문 승민. 계단 옆에 세워져 있던 대걸레를 들어 규태에게 휘두르려 한다.
승민
물러나! 물러나라고!
규태
이, 이 새끼 봐라? 존나 컸다 너?
의외의 반격에 당황한 규태가 한발 물러서고,
승민은 대걸레로 겁을 주며 건물 밖으로 나온다.
그때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중만이 대걸레를 붙잡더니 승민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버린다. 엄청난 충격에 대걸레를 놓치고 무릎을 꿇는 승민.
중만
아가야, 친구끼리 치고받는 데 흉기는 아니지.
배를 움켜잡고 꿇어앉은 승민의 얼굴을 걷어차는 규태.
승민은 바닥에 쓰러진 채 피가 흐르는 코를 부여잡는다.
그 사이 규태는 승민의 주머니를 뒤져서 소지품들을 전부 꺼낸다.
규태
아까 선빵 맞은 거 위로금 받아야겠다.
쓸모없는 카페 쿠폰과 영수증을 바닥에 버리고는 핸드폰도 멀리 던져버리는 규태.
지갑에 현금을 세어보지만 천 원짜리 밖에 없다.
규태
그지 새끼가 돈도 안 들고 다니지?
폰도 똥폰 쓰는 주제에.
폰도 똥폰 쓰는 주제에.
승민의 시야에 바닥에 떨어진 호텔 카드키가 들어온다.
눈치를 보다가 용기를 내서 입을 여는 승민.
승민
다 가져가도 좋은데 그 카드키만은 돌려줘. 부탁이야.
규태
뭐? 이게 뭔데?
중만
(바닥에서 카드키 주우며) 야 이거 호텔 방 열쇠 아냐?
규태
오 진짜네. 이 새끼가 이 시간에 왜 호텔?
너 여친 있냐?
너 여친 있냐?
중만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얘 호텔 방에 깔치 두고 왔나 본데.
안 그렇게 생겨서 재주 있다?
안 그렇게 생겨서 재주 있다?
규태
오, 오승민 다시 봤는데? 정신 병원에서 여친도 만들어서 나왔나 봐?
승민
(흐느끼며) 제발…… 그건 안 돼요.
엎드린 승민 위에 앉더니 한쪽 팔로 승민의 목을 감싸는 규태.
규태
안되긴 뭘 안 돼? 형님이 제수씨한테 인사 좀 한다는데.
승민
그…… 그만…… 그만……!
숨이 막혀 발버둥치는 승민.
규태가 계속 조르자 승민의 눈이 뒤집히며 의식을 잃는다.
중만
(카드키 흔들며) 그니까 여기 가면 웬 여자가 옷 벗고 기다린다는 거 아냐? 구경 한번 가보자.
#6. 호텔 방, 밤
유진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그때 카드키로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유진
승민이 왔어? 너무 늦어서 걱정했잖아.
아까 일은 잘 해결됐어?
아까 일은 잘 해결됐어?
말을 마친 유진. 고개를 돌린 순간 표정이 굳는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승민이 아닌 규태와 중만이었다.
#7. 길거리, 밤
기절해 있던 승민이 힘겹게 기침하며 깨어난다.
바닥을 더듬어보는데 지갑과 부서진 핸드폰, 포장한 순대만 떨어져 있을 뿐 카드키가 없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해보려 하지만 액정이 부서져서 화면이 켜지지 않는다.
울상이 된 승민이 비틀대며 일어난다.
승민
안 돼…… 안 돼 유진아. 유진아 제발……
#8. 호텔 계단, 밤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는 승민.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위층에선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있다.
#9. 호텔 방, 밤
살짝 열려 있는 302호실 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승민.
바닥에는 핏방울이 드문드문 찍혀있고, 안으로 들어가자
욕조에는 핏물이 가득 차 있다. 여전히 실내에는 유진이 흐느끼는 소리가 울린다.
승민
유진아!
승민이 다가가자 욕조 너머로 유진의 모습이 드러난다.
빨갛게 물든 가운을 입은 유진은 피가 흐르는 살코기를 우적우적 뜯어먹고 있다.
그제야 드러나는 욕조의 모습.
피 웅덩이 욕조에 규태와 중만, 두 남자의 시체가 포개져서 들어가 있다.
유진이 먹는 고기는 그들의 살점으로 보인다.
승민
피 보는 거 겁난다더니……
유진
미안해. 너무 배고파서.
승민
나랑 같이 했어야지, 들키면 어쩌려고 그랬어?
(순대 봉투를 보이며) 그리고 빈속에 바로 먹으면 안 좋잖아.
(순대 봉투를 보이며) 그리고 빈속에 바로 먹으면 안 좋잖아.
흐느끼면서도 허겁지겁 살점을 먹고 있는 유진을 보며 승민은 피식 웃는다.
그제야 유진도 안심이 된 듯 웃으면서 눈물을 닦는다.
유진
나 흉측하지? 이런 모습만 보여서 어떡해.
승민
울지 마, 유진아. 너 허기 잘 못 참는 거 알아.
유진의 앞에 마주 앉는 승민.
승민도 살점을 조금 떼어서 입에 집어넣는다.
승민
미안해. 제대로 유인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못했어.
유진
연습하면 나아지겠지. 이렇게라도 먹을 걸 구했으니까 됐잖아.
근데 어떤 친구였어? 저항이 심하던데.
근데 어떤 친구였어? 저항이 심하던데.
승민
죽어도 되는 놈이야.
유진
그렇게 말하진 마. 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래.
승민
후…… 근데 우리 계속 이래도 되는 걸까?
유진
우린 남들이랑 좀 다른 것뿐이야.
선생님도 그랬잖아. 우리가 정신적으로 이상 있는 건 아니라고.
눈치보지 말고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아가면 돼.
선생님도 그랬잖아. 우리가 정신적으로 이상 있는 건 아니라고.
눈치보지 말고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아가면 돼.
호텔 방 바닥에서 그들의 기괴한 식사가 이어진다.
유진
이제 강은 안 되겠어. 남은 건 산에 버리자.
경민선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으로 작가 일을 시작했다. 현재는 드라마와 소설, 웹툰 등 다양한 매체의 글을 쓰고 있다. 이상하고 괴이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만들어내는 데 관심이 많다.
2021/11/30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