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非詩)각각
2화 경고! 비시에 주의하시오
경고문
비시(非詩) 조심
지난 화에서는 비시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했다. ‘비시각각 프로젝트’는 시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 내리지 않고자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분과 함께 시와 시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과정 자체가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동원되는 모든 판단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는 여러분의 몫이다. 앞으로 당신이 어떠한 판단을 내리든 개의치 않고 시와 비시의 경계를 탐색해볼 것이다.
이것이 비시인지 시인지 묻기도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접하는 텍스트 자체에 관심이 없다. 수많은 텍스트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무심코 그것들을 지나친다. 도처에 널린,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사람들의 의식과 감각 속에 무방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텍스트들을 떠올려보라. 아마 무엇인가를 보긴 보았지만 그것이 명확히 무엇이었는지 잘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텍스트임에도 그렇다. 이를테면 경고문 같은 것. 이번 화에선 평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법한 경고문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려 한다.
경고문의 문장은 간결하다. 꼭 필요한 말만 강조한다. ‘주차 금지’라고 크게 써놓고 그 아래 협조를 부탁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가장 중요한 말을 크고 명료하게 제시하고 그 아래 이 경고문을 보는 이들에게 정중한 부탁을 하고 있다. 이 경고문을 보시는 차주들께선 협조를 부탁드린다.
‘음식물 금지’라는 명료한 문구 아래에 부가적인 설명을 넣은 경고문이다. ‘Do not eat or drink here’라는 문장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외국인 독자를 위한 것이다. 반입 금지되는 음식물은 물을 제외한 모든 음식물이며 반입시 경고 및 제재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아래에 이러한 경고를 하는 이유에 대해 정중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간결하게 말할 것은 간결하게, 설명할 부분에 대해선 자세하게 쓴 경고문이다.
아마 잘 지켜지지 않는 경고문이 아닐까 싶다. 오른쪽 상단부터 읽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고 있나요?’ 먼저 우리에게 어떤 상황인지 묻고 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마세요!’ 만약 걷거나 뛰고 있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 어투가 친근하다. 조금 의아하긴 하다. 이미 걷거나 뛰는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에 부착된 경고문을 보지 못할 텐데, 앞서 ‘지금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진 바람에 이미 걷거나 뛰는 사람에게만 경고를 하는 셈이니까. 보다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걷거나 뛰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 경고문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겠지만 말이다. 왼쪽 화면에는 에스컬레이터 그림과 함께 에스컬레이터 사고의 피해 정도를 나열하여 경각심을 주고 있다. 오른쪽 하단에도 통계를 제시한다. 이 모든 것은 유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에 최대한 재빨리 훑어보라! 어쩌면 이 경고문은 당신의 독해 순발력을 테스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빙워크에서 뛰면 넘어지거나 어딘가에 부딪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즉 위험하므로 뛰지 말아야 한다. 경고문에서는 ‘위험’이라는 단어 뒤에 ‘-하므로’ 등의 부가적인 말은 넣지 않았다. 그리고 ‘뛰지 마시오’ 경고한다. 핵심어를 강조하기 위해 생략이 나타난 문장이다.
여러분에게 묻는다. 이것은 시인가 시가 아닌가?
관계자외 출입금지
수많은 경고문 중에서도 이 문구를 대할 때의 심정은 특별히 복잡하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영어로는 대개 STAFF ONLY(관계자만)라고 표기되는 문구. 이 문구를 보면 다른 경고문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나는 (알 수 없는 곳에) 관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알 수 없는 곳에) 들어서는 것이 불가능하다. 관계? 어떤 관계? 이를테면 이곳의 직원이 아니면 나는 관계자가 아니다. 어쩌면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되지 않으면 출입금지 처분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문구는 유심히 보는 자에게 관계에 대해 묻게 한다. 나는 당신과 어떤 관계입니까? 문에게 묻는다. 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닫힌 문, 그리고 침묵. 그 침묵 속에는 그 안에 무엇이든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있다. 나는 열지 못하는 저 문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내가 알 수 없는 저곳의 관계자가 되면, 저 공간에, 저 문 안에 어떤 미지의 것이 있는지 알 수도 있겠지. 이 문 앞에 서서 경고문을 읽는 한 나는 관계자가 아니고, 그 속을 모르는 한 더욱 그 속을 알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발칵 문을 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경고문은 말한다. 어쩌면 이 안에서 당신도 나도 원치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나는 그 말에 수긍하고 돌아선다.
비시 인터뷰 : 당신이 생각하는 시가 아닌 것
다른 사람들은 비시(非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지극히 필자 중심의 비시 탐구를 벗어나 비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자리 또한 마련해보았다. 첫번째로 문보영1)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보영 시인.
Q. 비시, 즉 시가 아닌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기. 나의 일기다.
Q.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누가 내 일기가 좋다고 해서 한번은 일기를 시로 발표했다가 내적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막상 그것을 시, 라고 발표하고 나서 지면으로 보니 나 자신에게 창피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다시는 일기를 시로 우기지 말아야지. 그것은 성의 없는 짓이다. 이게 내 결론이다.
Q. 일기와 시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기와 시의 차이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니까 일기와 시의 거리를 좁히는 것에 대해. 왜 일기로 쓰면 좋은 글이 시로 읽으면 좋지 않은가. 그래서 일기를 시로 생각하고 읽어보았다. 나의 느낌은 ‘왜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이 많나, 시인데’였다. 일기에서 설명을 빼면 시가 되는구나! 느꼈다. ‘일기-설명=시’인 것이다. 그래서 일기에서 설명을 빼보았더니, 이렇게 되었다. ‘일기-설명=0’. 즉 ‘일기=설명’이다.
따라서 일기에서 설명을 빼면 시가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왜냐면 일기는 본질적으로 설명이고 시는 본질적으로 설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는 ‘설명의 배반’ ‘설명의 극복’ ‘이야기로부터 달아남’이다. 일기가 시가 되려면 그것이 일기가 되지 않으려는 발악을 하거나 아니면 시가 되지 않으려는 발악,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 일기와 시는 지금보다 더 자주 부딪치고 실망하고 사랑해야 한다.
Q.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
일기를 닦달하면서 너는 왜 시가 못되니, 책망하지 않기로 했다. 일기는 일기대로 시는 시대로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글을 쓰고 고민을 이어가기로 했다. 물론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양지윤
비시(非詩)에 대해 탐구합니다. 시가 아니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텍스트를 다룹니다. 직접 목격한 비시 텍스트를 상시 제보 받습니다. 관련된 생각과 일화도 보내주세요. 함께 나누며 생각하고 싶습니다. 메일 jiyangyoon@gmail.com, 인스타그램 @bisi_write
2018/01/30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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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2017년 시집 『책기둥』으로 제 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