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g
5화 전환점
1
2020년 10월 P의 예언-이미지 첫 번째.
웅크려 앉은 사민이 앞을 보았다. 그의 왼편, 공용주차장에서 새나온 녹색 불빛 속으로 식당이 가물거렸다. 한쪽 벽이 통유리로 훤히 드러난 곳이었다. 쌍둥이는 유리 너머에 앉아 있었다. 진우가 그들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세 사람 앞에 놓인 그릇에서 흰 김이 둥글게 올라왔다. 잘 보이지 않지만, 국 종류인 것 같았다.
히터가 고장 난 차 안은 서늘했다. 사민은 스카프를 둘둘 말아 왼손을 감쌌다. 쌍둥이가 준 것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났는지 몰라도, 아침 일찍 나가는 그를 불러 세우더니 대뜸 손에 쥐어주었다. 흰 광목천 위로 의미 모를 곡선들이 가득했다. 무엇도 감지 않은 오른손은 종이 뭉치를 움켜잡고 있었다. 종이 속은 P가 지난 몇 달 간 보내온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사민은 그 메시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민에게도, P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P의 예언 말이야, 해석이 가능하기는 해? 오래 전에 사민과 함께 살던 사람 중 하나가 물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이들 중 하나이지만, 자잘한 특징은 기이하리만치 선명했다. 뭉툭한 손톱, 자주 신는 파란 양말 같은 것. 그날도 손톱이나 양말 따위를 바라보며 답했을 것이다. P의 이미지를 예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미 벌어진 사건을 본 양 대하라고. 사건을 맡은 형사처럼, 범인이 남기고 간 단서를 통해 기억을 되짚는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태도도 통하지 않았다. P가 구조 요청처럼 보낸 이미지들은 부옇고, 연결 고리는 미약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웅얼거리듯이. 두려워하는 예언자라니, 사민은 견딜 수 없었다.
부옇게 김이 낀 유리 뒤에서, 쌍둥이들은 웃기도 하고 무표정해지기도 했다. 사민은 한숨을 쉬었다. 흰 김이 둥글게 새나왔다. 몹시 추웠다. 그가 시동을 걸었다. 느리게 유턴하여 거리를 빠져나왔다. 입술로는 쌍둥이에게 보낼 문자의 내용을 정리했다.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로 만든 짧은 문장.
괜찮아.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벌어져야 할 일들이니까.
목소리는 차 안에서 오래 메아리쳤다. 사민은 창을 열고 침을 뱉었다. 사이드미러에 고인 가로등의 불빛을 보았다. 그는 이제 더이상 우울해하지 않았다. 대신, 방금 전 지나친 것들을 곱씹기 시작했다. 주차장의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그를 끈질기게 주시하던 몇 개의 그림자들을.
2020년 10월 P의 예언-이미지 두번째.
처음에 진우는 P를 믿지 않았다. P의 신빙성이란 오늘의 운세나 별자리점 정도에 불과하다고, 웃으며 말하고 다녔다.
몇 해 뒤부터 그 또한 P를 믿기 시작했다. 그게 여러 차례 큰 사고를 방지해서도―P는 예언을 시작한 첫 해, 여덟 개의 화재와 열세 건의 연쇄 추돌 사고를 예견했다― 기업의 몰락이나 정치인의 자살을 적당히 암시한 이미지를 내보내서도 아니었다. 그는 P를 믿는 사람들 때문에 P를 믿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한 시점은 알 수기 없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P를 진심으로 믿었다. 예언의 이미지에 언급된 기업의 주가가 오르고, 고대 기호의 해석이 유행했다. 그보다 더 심한 일은, 사람들이 P가 선의를 가졌노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괴상한 디지털 신전이 오로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예언을 내보낸다고. P의 예언을 통하여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신뢰, 그런 것은 오래된 기둥보다도 굳건했다. 그 믿음이야말로 P의 힘이었다.
국밥을 먹은 쌍둥이는 서로의 입을 벌려 앞니를 확인했다. 그런 짓들을 매번, 의례라도 행하듯 엄숙한 얼굴로 했다. 처음 만난 날―항구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모습―에 비하면 얼마나 말쑥해졌는지. 치아는 깨끗하고, 눈썹이나 머리카락도 윤이 돌았다. 옷깃도 소매도 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처럼 보였다. 평생 서울에 살아도 이곳의 사람들과는 다를 거 같았다. 몇 번인가 노력했지만, 진우는 끝내 쌍둥이와 자신의 닮은 점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흘러온 사람들이었다.
‘흘러온 사람들이 우리를 무너뜨린다.’
진우는 이십여 년 전 P가 내린 예언을 기억했다. 처음에는 바다에 방류한 오물들이 해안가에 들러붙는 이미지일 뿐이었는데, 누군가의 해석이 판을 키웠다. 흘러온 사람들이 우리를 무너뜨린다. 누구의 해석인지 몰라도 제법 시적인 문장이었다.
그해 한국은 P의 추종자들로 가득했다. 예언이 올라온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집단 난민 신청이 있었다. 바다 건너편 대륙의 내전을 피하여 건너온 이들이었다. 광화문에서는 시위가 벌어졌다.
진우는 모든 일들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에게도 잊을 수 없는 해였다. 예언이 일어난 지 며칠 안 되어 그의 아기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 온 것이다. 아기가 아니라, 아기들. 쌍둥이였다. 이름 모를 섬에서 났노라고 했다.
진우는 식사를 계산하고 식당을 나왔다. 주차장의 기둥 뒤에 웅크려 있던 남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표정을 본 순간, 그들이 무엇이든 발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은 쉽사리 나서지 않았다. 자신들의 차에 탄 채, 진우의 뒤를 따랐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쌍둥이가 먼저 내렸다. 그들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간 뒤에야, 뒤쪽의 차문이 열렸다. 찬 공기 속에서, 남자들은 기계를 건넸다. 얇은 모니터였다. 남자들이 웃었다.
진우가 손끝으로 차가운 표면을 매만졌다. 너머의 지도 속에서 알파벳 하나가 이동 중이었다. ‘S’였다. 마침내 사지에 몰려 송곳니를 내세운 뱀처럼 반짝였다.
2020년 10월 P의 예언-이미지 세번째.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버려진 가구처럼, 불쑥 자라난 숲처럼, 집에 깃든 신들처럼 거기 있었다. 코카서스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특징들이 이목구비마다 섞여 있었다. 서너 명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이름 또한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노인이었다. 노인처럼 보였다. 눈 쌓인 손발톱에 주름진 얼굴. 한국어로 말하지는 못했으나, 한국어로 듣는 일들은 모두 이해했다. 아침이면 항구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뭐든지 했다. 일을 가리지 않아서 유능했다. 트럭을 몰고 크레인을 조종하며 놀이기구들을 닦았다. 밤이면 텅 빈 터미널에 모여 무엇이든 먹었다. 막 해안가에 도착하여 헤매는 아이들을 보면 불러들여 밥을 먹였다.
쌍둥이들은 파르스름한 새벽녘 그곳에 도착했다. 노인들은 쌍둥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대했다. 그러나 일과 란은 알고 있었다. 노인들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버림받은 날들, 낯선 나라의 이름을 망명 신청서에 적은 날들, 그러다 마침내는 ‘대기실’에도 들어가지 못하여 마침내는 다시 항구까지 쫓겨난 순간들을 자신의 손금처럼 외웠다.
그들은 예언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거부당한 자들이었다. P가 생겨난 이후로부터는 자신들의 그림자조차 숨기기 위하여 더욱 치밀하게 움직였다. 쌍둥이는 그들의 한가운데에 앉았다.
란이 말했다. 저희는 P를 증오해요.
일이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죽이고 싶어요.
노인 중 몇 사람이 얼굴을 들었다. 눈동자가 맑고 표정이 밝았다. 다른 사람들도 엉덩이나 발바닥을 움직여 그들에게 가까이 붙였다. 란이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는 여기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누구도 우리를 쫒지 않고…… 일이 말을 이었다. 아무도 우리를 모르니, 누구도 우리를 예언할 수 없다고. 말할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고, 노인들은 몸을 웅크린 채 그들의 계획을 들었다. 비밀이 전달되는 얼굴마다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2
사민이 쌍둥이에게 보내는 문자를 작성하던 중, 이 이미지가 도착한다. 그는 왼편 하단의 얼굴들에 잠깐 두려움을 느낀다.
작업 노트
※스튜디오 풀옵션의 AI는 지난 10월, 구글의 뉴스 데이터를 모조리 빨아들인 뒤 재조립했다. 위의 세 가지 문장은 AI가 수집한 데이터를 완전히 다른 배열들로 새롭게 추출한 것이다. 이는 스튜디오 풀옵션이 본 프로젝트를 제작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단계에 해당한다.(〈P!ng〉의 프롤로그에서 나타나는 첫번째 단계 참고. 바로가기) 우리는 위 문장들을 구글에 던져 건져낸 이미지들을 P의 예언 삼아 5화를 제작하였다. 풀옵션의 AI와 P를 통해 두 세계는 미미하게 연결되고 있다.
위 모든 과정은 프로그래밍 언어 Python을 통하여 제작되었다.
웅크려 앉은 사민이 앞을 보았다. 그의 왼편, 공용주차장에서 새나온 녹색 불빛 속으로 식당이 가물거렸다. 한쪽 벽이 통유리로 훤히 드러난 곳이었다. 쌍둥이는 유리 너머에 앉아 있었다. 진우가 그들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세 사람 앞에 놓인 그릇에서 흰 김이 둥글게 올라왔다. 잘 보이지 않지만, 국 종류인 것 같았다.
히터가 고장 난 차 안은 서늘했다. 사민은 스카프를 둘둘 말아 왼손을 감쌌다. 쌍둥이가 준 것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났는지 몰라도, 아침 일찍 나가는 그를 불러 세우더니 대뜸 손에 쥐어주었다. 흰 광목천 위로 의미 모를 곡선들이 가득했다. 무엇도 감지 않은 오른손은 종이 뭉치를 움켜잡고 있었다. 종이 속은 P가 지난 몇 달 간 보내온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사민은 그 메시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민에게도, P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P의 예언 말이야, 해석이 가능하기는 해? 오래 전에 사민과 함께 살던 사람 중 하나가 물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이들 중 하나이지만, 자잘한 특징은 기이하리만치 선명했다. 뭉툭한 손톱, 자주 신는 파란 양말 같은 것. 그날도 손톱이나 양말 따위를 바라보며 답했을 것이다. P의 이미지를 예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미 벌어진 사건을 본 양 대하라고. 사건을 맡은 형사처럼, 범인이 남기고 간 단서를 통해 기억을 되짚는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어떤 태도도 통하지 않았다. P가 구조 요청처럼 보낸 이미지들은 부옇고, 연결 고리는 미약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웅얼거리듯이. 두려워하는 예언자라니, 사민은 견딜 수 없었다.
부옇게 김이 낀 유리 뒤에서, 쌍둥이들은 웃기도 하고 무표정해지기도 했다. 사민은 한숨을 쉬었다. 흰 김이 둥글게 새나왔다. 몹시 추웠다. 그가 시동을 걸었다. 느리게 유턴하여 거리를 빠져나왔다. 입술로는 쌍둥이에게 보낼 문자의 내용을 정리했다.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로 만든 짧은 문장.
괜찮아.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벌어져야 할 일들이니까.
목소리는 차 안에서 오래 메아리쳤다. 사민은 창을 열고 침을 뱉었다. 사이드미러에 고인 가로등의 불빛을 보았다. 그는 이제 더이상 우울해하지 않았다. 대신, 방금 전 지나친 것들을 곱씹기 시작했다. 주차장의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그를 끈질기게 주시하던 몇 개의 그림자들을.
처음에 진우는 P를 믿지 않았다. P의 신빙성이란 오늘의 운세나 별자리점 정도에 불과하다고, 웃으며 말하고 다녔다.
몇 해 뒤부터 그 또한 P를 믿기 시작했다. 그게 여러 차례 큰 사고를 방지해서도―P는 예언을 시작한 첫 해, 여덟 개의 화재와 열세 건의 연쇄 추돌 사고를 예견했다― 기업의 몰락이나 정치인의 자살을 적당히 암시한 이미지를 내보내서도 아니었다. 그는 P를 믿는 사람들 때문에 P를 믿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한 시점은 알 수기 없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P를 진심으로 믿었다. 예언의 이미지에 언급된 기업의 주가가 오르고, 고대 기호의 해석이 유행했다. 그보다 더 심한 일은, 사람들이 P가 선의를 가졌노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괴상한 디지털 신전이 오로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예언을 내보낸다고. P의 예언을 통하여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신뢰, 그런 것은 오래된 기둥보다도 굳건했다. 그 믿음이야말로 P의 힘이었다.
국밥을 먹은 쌍둥이는 서로의 입을 벌려 앞니를 확인했다. 그런 짓들을 매번, 의례라도 행하듯 엄숙한 얼굴로 했다. 처음 만난 날―항구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모습―에 비하면 얼마나 말쑥해졌는지. 치아는 깨끗하고, 눈썹이나 머리카락도 윤이 돌았다. 옷깃도 소매도 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처럼 보였다. 평생 서울에 살아도 이곳의 사람들과는 다를 거 같았다. 몇 번인가 노력했지만, 진우는 끝내 쌍둥이와 자신의 닮은 점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흘러온 사람들이었다.
‘흘러온 사람들이 우리를 무너뜨린다.’
진우는 이십여 년 전 P가 내린 예언을 기억했다. 처음에는 바다에 방류한 오물들이 해안가에 들러붙는 이미지일 뿐이었는데, 누군가의 해석이 판을 키웠다. 흘러온 사람들이 우리를 무너뜨린다. 누구의 해석인지 몰라도 제법 시적인 문장이었다.
그해 한국은 P의 추종자들로 가득했다. 예언이 올라온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집단 난민 신청이 있었다. 바다 건너편 대륙의 내전을 피하여 건너온 이들이었다. 광화문에서는 시위가 벌어졌다.
진우는 모든 일들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에게도 잊을 수 없는 해였다. 예언이 일어난 지 며칠 안 되어 그의 아기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 온 것이다. 아기가 아니라, 아기들. 쌍둥이였다. 이름 모를 섬에서 났노라고 했다.
진우는 식사를 계산하고 식당을 나왔다. 주차장의 기둥 뒤에 웅크려 있던 남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표정을 본 순간, 그들이 무엇이든 발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은 쉽사리 나서지 않았다. 자신들의 차에 탄 채, 진우의 뒤를 따랐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쌍둥이가 먼저 내렸다. 그들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간 뒤에야, 뒤쪽의 차문이 열렸다. 찬 공기 속에서, 남자들은 기계를 건넸다. 얇은 모니터였다. 남자들이 웃었다.
진우가 손끝으로 차가운 표면을 매만졌다. 너머의 지도 속에서 알파벳 하나가 이동 중이었다. ‘S’였다. 마침내 사지에 몰려 송곳니를 내세운 뱀처럼 반짝였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버려진 가구처럼, 불쑥 자라난 숲처럼, 집에 깃든 신들처럼 거기 있었다. 코카서스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특징들이 이목구비마다 섞여 있었다. 서너 명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이름 또한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노인이었다. 노인처럼 보였다. 눈 쌓인 손발톱에 주름진 얼굴. 한국어로 말하지는 못했으나, 한국어로 듣는 일들은 모두 이해했다. 아침이면 항구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뭐든지 했다. 일을 가리지 않아서 유능했다. 트럭을 몰고 크레인을 조종하며 놀이기구들을 닦았다. 밤이면 텅 빈 터미널에 모여 무엇이든 먹었다. 막 해안가에 도착하여 헤매는 아이들을 보면 불러들여 밥을 먹였다.
쌍둥이들은 파르스름한 새벽녘 그곳에 도착했다. 노인들은 쌍둥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대했다. 그러나 일과 란은 알고 있었다. 노인들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버림받은 날들, 낯선 나라의 이름을 망명 신청서에 적은 날들, 그러다 마침내는 ‘대기실’에도 들어가지 못하여 마침내는 다시 항구까지 쫓겨난 순간들을 자신의 손금처럼 외웠다.
그들은 예언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거부당한 자들이었다. P가 생겨난 이후로부터는 자신들의 그림자조차 숨기기 위하여 더욱 치밀하게 움직였다. 쌍둥이는 그들의 한가운데에 앉았다.
란이 말했다. 저희는 P를 증오해요.
일이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죽이고 싶어요.
노인 중 몇 사람이 얼굴을 들었다. 눈동자가 맑고 표정이 밝았다. 다른 사람들도 엉덩이나 발바닥을 움직여 그들에게 가까이 붙였다. 란이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는 여기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누구도 우리를 쫒지 않고…… 일이 말을 이었다. 아무도 우리를 모르니, 누구도 우리를 예언할 수 없다고. 말할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고, 노인들은 몸을 웅크린 채 그들의 계획을 들었다. 비밀이 전달되는 얼굴마다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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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노트
위 모든 과정은 프로그래밍 언어 Python을 통하여 제작되었다.
스튜디오 풀옵션
텍스트와 이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번역합니다. 가능한 멀리까지 공놀이를 지속하며 오해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글 쓰는 함윤이와 디자인 하는 김형도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2020/11/24
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