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엄마의 시간 / 첫눈은 다시 내리겠지
엄마의 시간
나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했지만
시간 참 빨리 간다는 엄마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됐다
나는 안 늙었는데
엄마만 늙었다
점점 더 빨리 간다는
엄마의 시간
이제 잠시 멈췄으면
멈춘 시간 안에서
아픈 허리 치료하고
못 다녔던 여행 실컷 다니고
마당에 꽃 필 때마다 잔치를 열어
사람들 웃음소리가 넘치는 집
그 집 주인으로 지냈으면
날마다 즐겁게 지내다가
어머, 너 언제 이렇게 늙었니
오랜만에 나를 보고 깜짝 놀랐을 때
엄마의 시간이 다시 흘렀으면
첫눈은 다시 내리겠지
첫눈이 내린 날 저녁
우린 만날 거야
나는 하얀 목도리 두르고
너는 빨간 장갑 끼고
8번 출구에서 만날 거야
스파게티 먹을 거야
캐럴이 흐르는
알전구 켜진 길
같이 걸을 거야
밤까지 둘이 놀 거야
둘이서만 어디든 갈 거야
지금 버스 타고 갈 거야
학원 수업 끝난 저녁
눈을 맞고 버스에 오른다
저녁은 오징어덮밥이랬나?
내년에 다시
첫눈은 내릴 거야
기회는 또 있을 거야
문현식
어린이로 남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어 동시를 쓴다.
동시집을 두 권 냈다.
동시를 읽고 쓰면서 가슴 벅차고 설레는 밤들이 많았다.
사람들에게 그런 밤을 선물하고 싶다.
2022/01/25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