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에 작은 종이배 하나가 물 위를 동실 떠 간다. 마치 그 배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듯이 새들의 그림자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
당신이 두고 간 것은 무거운 것이다. 아주 무거운 것. 이렇게 무거운 것은 지닐 수 없다. 지니는 것, 그러니까 품어야 하는 것은 죄다 가벼운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당신이 두고 간 것을 돌려주려 한다.
  태희는 이런 생각을 했다. 늘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날 하루는 그랬다.

*
태희는 사방을 천으로 차단한 노상 점집에서 나왔다. 왠지 부끄러워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희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는 행위는 두 가지가 있었다. 점집에서 나오는 것과 복권을 사는 것. 삶에 대한 기대와 애착이 지나치게 큰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부끄러웠다.
  점쟁이의 말은 맞는 게 없었다. 시종일관 못 미더운 얼굴로 흘려듣고 일어서는데 그가 태희를 나무라는 듯이 말했다. 거슬러 가지 마세요. 보이는 길로 가세요.
  태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제주도의 여름 하늘을 바라보았다. 치마 끝자락에 붙은 실밥을 떼어내며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걸음을 옮기려는데 뭔가 찜찜했다. 뭘 빠트렸더라.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꼬인 느낌이었다. 가방을 뒤져 담배를 찾다가 그제서야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는 점집을 끼고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골목에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짐이 한가득 든 에코백이 아이 옆으로 나동그라져 있었다. 아이는 나뭇가지로 개미의 진로를 방해하는 장난에 골몰해 있었다. 태희는 아이를 부르려다 말고 잠시 바라보았다.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뚱뚱했다. 이목구비는 살에 파묻혀 희미해 보였는데 토핑을 빈약하게 올려놓은 피자 도우 같아 보였다. 태희가 부르자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느릿느릿 일어났다. 어쩜 저 아이는 일어설 때 무릎을 짚는 거하며 이마 양끝 부분에 머리숱이 없는 거, 코끝이 뭉뚝한 거, 엉덩이가 둔하게 큰 거하며 죄다 제 아빠를 빼닮았을까?
  아이는 바닥에 팽개쳐두었던 목발을 주워 들고 태희를 향해 걸어왔다. 목발을 바닥에 끌다시피 한 동작이었다. 태희는 골목에 팽개쳐진 에코백을 챙기며 아직은 목발에 의지해 걸어야 한다고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이는 목발을 쥔 손에 힘을 주더니 바닥을 탕탕 쳤다. 태희가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이렇게 쥐라고. 땅을 짚어야지.”
  아이는 손에 힘을 풀더니 목발을 바닥에 팽개쳐버렸다.

아이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중섭 거리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약속 시간과 장소를 마음대로 변경하기는 했어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는 울지도 웃지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딱한 처지를 감지한 새끼 짐승처럼 사뭇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골이 난 것처럼 묻는 말에 아예 대꾸를 하지 않기도 했다.
  “예전에 제주도 왔었는데 기억나?”
  “몰라. 그렇지만 왜 자꾸 걷는 거야?”
아이는 말끝의 억양을 한껏 내려, 묻는 건지 혼자 한숨짓듯 말하는 건지 애매하게 말했다.

아이는 일곱 살이지만 어딘가 늙어 보였다. 표정이 없고 배를 내민 채 팔자걸음으로 걸어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태희는 절뚝이는 아이를 다독이며 주변을 걸었다. 한때 제주도에 살면서 게와 모래와 바다와 아이들을 많이 그린 화가의 거리. 관광객들이 곳곳에서 사진을 찍거나 상점에 진열된 기념품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화가의 얼굴이 그려진 입간판을 손으로 만져보거나 물건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을 입을 벌린 채 바라보았다. 가로등을 손으로 짚어보기도 하고 상점 앞에 세워놓은 피노키오의 무릎을 건드려보기도 했다. 태희는 걸으면서도 아이 아빠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아이는 목발을 바닥에 끌며 따라왔다. 관광객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평화롭게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태희는 이 거리에서 자신과 아이만이 안개처럼 겉돈다고 생각했다. 한쪽에서 기념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살 수 있는 장터가 열렸다. 태희는 아이에게 열쇠고리와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늘 마음대로잖아.”
  아빠 말을 잘 듣고 지낼 수 있냐고 묻자 아이가 한 발짝 물러서며 대답했다. ‘늘’이라는 단어를 길게 빼며 발음하는 아이의 음성이 태희의 신경을 긁었다. 아이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그렇지만’이라고 토를 다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지만 바다와 강의 차이는 뭐야, 그렇지만 제주도에만 사는 곤충이 있어? 그렇지만 다리가 아파. 이런 식이었다. 누가 아이로 하여금 말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반박하는 접속어를 사용하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아이는 인생에 대해 무언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엄마 말 들어. 아빠랑 한 달만 같이 있어.”
  “그렇지만 상관없어.”
  태희가 아이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려 하자 아이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아이는 화가의 <길 떠나는 가족>을 본뜬 모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달구지와 그 위에 탄 사람들을 꼼꼼히 바라보더니 황소의 눈을 손가락으로 찔러보았다. 먼지가 잔뜩 묻을 텐데, 태희가 속으로 생각하며 하품을 했다. 며칠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무 데나 누워 쉬고 싶었다. 태희는 쪼그리고 앉았다. 세운 무릎에 얼굴을 기대고 아이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모형물 옆에 서 있는 아이 또한 모형물 같아 보였다. 화가의 가족과 황소, 기어가는 게와 함께 아이가 저기, 저쪽에 서 있었다. 태희는 모형물 곁에서 아이가 그대로 굳어가는 상상을 했다. 아이는 길 떠나는 가족들 틈에 껴 어디론가 함께 떠날지도 모른다. 태희는 그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무릎을 펴고 일어서는 순간 아이가 태희의 생각을 읽은 듯 눈을 치켜떴다. 태희는 관자놀이를 타고 턱 아래로 떨어지는 땀을 닦았다. 아이 아빠는 오늘 끝내 전화를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어디로 갈 거야?”
  태희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오른쪽 콧구멍에서 콧물이 삐져나와 있었다. 태희는 콧물을 닦아주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배고파.”
  아이는 손등으로 코를 훔치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벌써?”
  태희는 앞서 걸으며 아이가 따라오는지 돌아보았다. 아이는 몸을 목발에 의지해 절뚝이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오른쪽 목뒤에 땀띠 난 곳을 긁어서 티셔츠 목 부분이 오른쪽으로 늘어나 있었다. 사춘기 소녀처럼 젖가슴이 셔츠 위로 도드라져 있었고, 배는 둔덕처럼 불룩 나와 있었다. 아이는 조그만 입을 벌린 채 헉헉대며 걸었다. 벌린 입 양 끝으로 거품 같은 침이 고여 있었다. 태희는 아이를 공연히 뜯어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아이가 태희를 힐끗 보고는 앞질러 갔다.
  “엄마가 넘어져 코가 깨질 뻔했는데, 눈도 끔쩍 안 하기야.”
  태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깨에 멘 에코백의 한쪽 끈이 끊어졌다. 물건 몇 가지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아이가 고집을 부리며 우겨넣은 장난감 트럭이 떨어지면서 두 동강 났다. 아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손가락으로 트럭을 가리키며 엉엉 울었다. 아이는 상체를 한껏 젖혀, 바닥에 누울 듯한 자세로 울어댔다. 목청을 키워 우는 울음이었고 눈물은 소리 다음에 겨우 몇 방울 참깨처럼 떨어졌다. 태희는 손잡이가 끊어진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험악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더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태희는 바닥에 떨어진 아이의 양말과 장난감을 주워 가방에 넣었다.
  “그러니까 저놈에 트럭을 넣으라고 했어 안 했어?”
  “그렇지만 엄마가 떨어뜨렸잖아!”
  “이럴 줄 알고 넣지 말자고 한 거야. 다른 짐도 많은데 저걸 왜 하필!”
  “엄마가 떨어뜨렸잖아! 내 트럭!”
  “저거 없으면 죽니, 죽어?”
  “죽어!”
  아이는 태희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길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중년 남자가 태희와 아이 쪽으로 다가오더니 멀리 떨어져 있던 엄지손가락만 한 팽이를 주워주었다. 남자는 아이의 손에 팽이를 쥐여주며 눈으로는 태희의 젖가슴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거 길에서 애 좀 울리지 마시오.

태희는 울다 지친 아이를 데리고 식당을 찾았다. 아이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태희는 두어 번 더 전화를 하다 관두고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태희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
  “순대국.”
  태희는 피식 웃으며 순대국집을 찾았다. 식당이 밀집해 있는 거리에 들어섰지만 순대국집은 없었다. 태희는 설렁탕을 먹는 것으로 아이와 합의를 보았다. 태희는 설렁탕의 고기를 아이 그릇에 더 덜어주고, 설렁탕 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천천히 비웠다. 태희는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그리고 또 한 병.

태희의 머리카락 끝이 동치미 국물에 푹 담겼다 나왔다. 태희는 고개를 들고 머리카락을 입으로 가져가 빨았다. 시큼한 맛에 코끝이 찡해졌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태희는 동치미 국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코밑으로 가져가, 시큼한 냄새를 들이마셨다. 아이는 태희 옆에 앉아 식탁에 이마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아이의 몸이 아까와 다르게 작아 보였다. 이 아이가 이렇게 작은 아이였나, 언제 이렇게 작아졌지? 생각하는데 옆 테이블에서 중년 여자들의 수다가 들려왔다.

“전에 엄마랑 목욕탕을 갔어.”
  “목욕탕?”
  “엄마 등을 밀어주는데 우리 엄마는 어린애처럼 등을 맡기고, 고개는 무릎 아래로 푹 수그리고, 팔은 축 늘어트린 자세로 있어. 그러고는 자꾸 한걱정을 한다. 김 서방이 돈을 잘 벌어야 할 텐데. 김 서방이 어디 아프면 안 되는데. 김 서방이 한눈팔면 안 되는데. 김 서방이 바람은 안 피워야 할 텐데. 짜증이 나서 때수건을 내려놓으며 한마디했지. 내가 우리 엄마한테 뭐라 그랬게?”
  “뭐라고?”
  “엄마, 내 걱정이나 해. 내가 바람피울지도 몰라!”

여자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태희는 텔레비전을 보듯 식당 안 풍경을 관망했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좀 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잠들면 오백 년 동안 깨어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식당에 꽤 오래 머물렀는지 밖이 어둑했다. 식탁에 기대 졸고 있는 아이를 깨워 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목발과 끊어진 에코백까지 들고 걷자니 피곤했다. 길은 바닷가로 이어져 있었다. 태희는 한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마른세수를 했다. 모래를 실은 바닷바람이 피부를 긁고 지나갔다. 더운 바람이었다. 머리카락은 해풍의 소금기 탓에 뻣뻣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래 속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알갱이가 파고들었다. 진공상태 속을 걷는 것처럼 걸음이 무거웠다. 태희는 아이를 데리고 벤치에 앉았다.

졸음에 겨운 아이가 태희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들숨과 날숨에 아이의 몸통이 들썩였다. 벤치 위에서, 태희와 아이는 시간이라는 배에 탄 승객 같았다. 태희는 아이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져보았다.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더듬어보며 아이의 얼굴을 만졌다.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듯 만졌다. 바다는 캄캄했고 파도는 잔잔했다.
  “지금 우리가 커다란 배를 타고 있는 거라고 상상해봐.”
  태희의 말에 아이는 대꾸하지 않았다. 잠이 들었는지도, 그렇지 않은지도 몰랐다. 태희는 흔들리는 몸을 느꼈다. 파도를 느꼈다. 바람에 배를 맞댄 돛을 느꼈다. 무릎 위로 묵직하고 따뜻한 것이 느껴졌다. 지니려면 온 힘을 다해 품어야 하는 것이었다.
  파도와 밤이 아이의 얼굴에 일렁임을 만들었다. 태희는 아이의 목덜미와 팔꿈치, 손목, 손가락을 꼼꼼히 만져보았다. 아이의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만져보았다. 작고 토실하고 따뜻했다. 아이의 몸 곳곳에 얼룩 같은 게 묻어 있다면 닦아주고 싶었다. 태희는 잠든 아이의 몸에 기댔다. 배가 조금씩 흔들렸다.

박연준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했고,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를 썼다.

2024/11/20
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