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할 때까지라면 백 번도 넘게 배를 타야 하는데 이준은 벌써 바다가 이물스럽게 느껴졌다. 새벽 세시에 시작한 조업은 정오가 다 되어 끝이 났다.
  바다 밑에서 끌어올린 그물엔 어패류보다 쓰레기가 많았다. 갑판에 부려진 개흙 더미는 가까이 가지 않아도 악취가 진동했다. 바다는 거대한 무덤 같았다. 빤빤히 빛나는 가면을 쓰고서 속을 감춘 채 썩어가고 있었다. 그물이 그물을 망가뜨리고, 깡통이나 페트병 혹은 패각이 잔뜩 들어찬 폐타이어들이 물 밑에서 줄줄이 딸려나왔다. 이준은 쓰레기로 분류된 더미에서 유리병 하나를 발견했다. 침전물을 털어내니 병 속에 든 내용물이 언뜻 보였다. 돌돌 말린 종이와 아무런 장식 없는 반지 하나.
  “그런 거 만지지 마라, 재수 없다.” 선장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은 선장이 자리를 뜨자 유리병을 한쪽에 치워두었다.
  오늘의 포획물은 그물망에 담겨 운반선으로 옮겨졌다. 어구 정리를 마치고 갑판에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 이준은 밥 한 공기를 겨우 비워냈다. 조리장 김씨가 낱개로 포장한 한약 봉지 하나를 이준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냐고 이준이 눈으로 물었다.
  “힘쓰려면 먹어야재.” 조리장이 이준의 어깨를 툭 쳤다.
  이준은 사양하지 않았다. 봉지를 찢어 즙을 들이켰다. 뒷맛이 씁쓸하고도 약간 비릿했다.
  “그기, 나비탕이다.” 기관장이 은근슬쩍 말했다.
이준은 즙을 쪽쪽 빨아 먹으며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기관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냐옹냐옹.” 기관장이 이준의 귀에 대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별안간 이준이 눈을 치켜뜨더니 난간 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러고는 바다를 향해, 누군가 그의 입속으로 손이라도 밀어넣은 것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며 토하기 시작했다. 한순간, 이준은 혀를 깨물고 말았다.
  “염소야, 흑염소.” 등뒤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준은 숙소에 들어가기 전 담장 앞 평상에 앉아 오후가 저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앞산엔 가을볕이 한창 여물고 있었다. 복자기를 비롯한 단풍나무들이 붉은 색소를 뿜어내며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준은 수목원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산림연구원을 보조하는 단순 업무였지만 고요히 뿌리를 내리고 제자리를 지키는 식물들을 만지는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뿌리를 내리는 삶. 현실에 발을 딱 붙이고 살어라. 오래전 아버지가 남긴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준은 물비린내를 맡으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왼발과 오른발이 늘 불화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군대 가기 전, 새우잡이 배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풍랑이나 노역보다 무서웠던 건 산책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항구 모퉁이에 호객행위를 하는 무리가 있었다. 붉은 고무대야엔 주먹만 한 문어 한 마리. 얼굴이 구릿빛인 남자가 문어를 움켜잡아 이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마지막 돌문어 이만 원!” 돌멩이처럼 생긴 바다의 현자. 남자의 아내인 듯, 파마머리 여자가 손바닥 위에 두 손가락을 세워 걸어가듯 재게 움직이더니 별안간 눈을 부릅뜨고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오늘도 걷냐고요.” 남자가 산책하는 이준을 종종 봤다는 여자의 수어를 통역했다.
  이준이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여자에게 보였다. 여자가 잇몸을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이준은 수협위판장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계단 앞 배수구 철망 덮개를 비집고 작고 노란 꽃이 머리를 내밀었다. 털별꽃아재비인 줄 알았는데 앱으로 검색해보니 도깨비바늘꽃이었다. 안녕! 거기가 네 집이니? 이준은 몸을 숙이고 꽃을 바라봤다. 꽃이 웃었다. 천진한 낯빛으로 살랑거렸다. 넌 내색하지 않는구나. 이준은 꽃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싱긋 한번 웃어 보였다.

이준은 입속에 있던 거즈를 세면대에 뱉었다. 거즈는 더이상 붉지 않고 옅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혀의 통증은 점심때보다 조금 덜했다. 하루 종일 말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시비가 없어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는 배에서 내리면 습관처럼 이어폰을 꼈다. 소음을 소음으로 차단하는 것.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면 자발적으로 현실에서 격리되는 느낌이었다. 창문이 없는 방. 잠수함 같은 반지하 숙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귀를 막는 건 눈을 감는 것과 비슷했다. 숙소 곳곳에 검은 얼룩이 침전물처럼 묻어 있었다.
  엊그제 선원 한 명이 밧줄을 풀다 손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이준은 모처럼 숙소에서 혼자 지내며, 선원 숙소에 어울리지 않는 마호가니 책상에 앉아 휴대폰을 켜고 라디오 앱을 클릭했다.
  누가 붙였을까. 심해 풍경 포스터가 방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깊고 어둑한 구덩이 같은 바닷속, 다이버 한 명이 수면에서 쏟아지는 둥근 빛을 향해 헤엄쳐 올라간다. 청어떼가 다이버를 둘러싸고 원을 그린다.
  이준은 선원들의 눈을 피해 유리병을 숙소로 가져왔다. 병 주둥이 양쪽에 고리가 달려 있어 뚜껑을 걸어 잠글 수 있는 밀폐형 병이었다. 그는 뚜껑을 열었다. 짭조름한 해조 냄새가 확 풍겼다. 헐거워진 고무 패킹이 삭은 천처럼 툭 끊어졌다. 종이는 새어들어간 물 때문에 젖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며 쓴 편지 같았다.
  편지엔 알 수 없는 얼룩과 흐릿한 글자들이 암호처럼 남아 있었다.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건 ‘반사구공원묘지 제46번 나무’라는 글자였다. 그는 반지를 꺼내 치약을 묻힌 천으로 닦아보았다. 오래 문지르지 않았는데도 반지는 옅은 금빛을 내며 반짝거렸다. 그는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보려다 그만두었다.
  이준은 진통제 세 알을 한꺼번에 삼켰다. 기지에서 보내는 교신처럼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리듬이 흘러나왔다.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푸르트뱅글러의 실황 음반이었다. 바암빰빰바암바암, 바암빰빰바암바암, 바암빰빰바암바암, 바암빰빰밤. 장송행진곡 같은 리듬이 ‘조금 빠르게’ 계속 반복되었다. 빛줄기가 해저에서 흐릿하게 쌓여가고, 수면 위에는 초조한 물새들이 발목을 숨기고 날아다녔다. 이준은 점점 수압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잠수함이 가라앉고, 칙칙하고 암울한 감정의 찌꺼기가 부유물처럼 떠다녔다. 생각이 생각을 낚고, 그 생각에 낚여 길을 잃은 그는 조난신호를 보내보지만, 구조될 확률은 희박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가라앉으며 현기를 느끼는 것뿐. 잠수함을 벗어나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잠수함 안은 춥고 허기지고 정적이 가득하다. 정말 추운 곳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이산화탄소가 늘어나고, 그는 쏟아지는 졸음을 쫓을 수가 없다.

경사진 언덕엔 만육천여 기의 무덤이 있었다. 죽은 자들의 집에는 창문이 없었다. 공원묘지를 에워싼 두둑에 보초병처럼 번호를 단 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제46번 나무는 공원묘지 북쪽 산등성이에 있었다. 어디선가 찌르레기가 제 이름처럼 울었다. 이준은 공원묘지 입구로 들어가지 않고 북쪽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거쳐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제46번 나무 그늘에 두 사람이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었다. 이준이 그들의 발치를 지나가는데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여자는 엎드려서 노트에 뭔가를 쓰더니 북 찢어버렸다. 남자는 한쪽 팔꿈치에 체중을 싣고서 반쯤 모로 누워 책을 읽었다. 남자가 읽는 책은 작은 묘비처럼 특이한 판형의 책이었다. 표지엔 ‘비碑_stèle’라고 쓰여 있었다. 이준은 제44번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다. 제44번 나무는 푸조나무였다. 바람이 불자 푸조나무 그늘이 움직였다. 햇볕에 달궈진 마른 풀내가 풀썩 끼쳐왔다. 갈등과 불화가 빠진 풍경을 바람이 흔들었다.
  “여기선 모든 죽음의 크기가 같아.” 남자가 말했다.
  자꾸 먼산을 보는 남자의 귀를 여자가 잡아당겼다. 남자가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힙 플라스크를 열어 내용물을 한 모금 마셨다. 흐릿한 송진 냄새가 퍼지는 것 같았다. 여자는 남자의 주름살에 입을 맞췄다. 여자의 두 눈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렸다. 여자의 입에서 꿈과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과 번개 같은 단어가 빠져나왔다. 남자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드론이었다.
  “드론을 띄워 수직 부감으로 공원묘지를 촬영하면 거대한 퍼즐 판처럼 보일 거야.” 남자가 말했다.
  “육십 년이 지나면 묘지 주인이 모두 바뀔지도 몰라.” 여자가 빙긋 웃었다.
  이윽고 드론이 저공비행으로 묘지 쪽으로 날아갔다. 여자가 드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별안간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푸조나무 우듬지가 흔들리고, 이파리들이 사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드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돗자리 끝이 바람에 들썩였다. 순간, 흙바람이 불었다. 바람 때문인지 여자가 눈을 비비며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무덤가에 곤두박질치고, 여자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코맹맹이 소리로 짜증을 냈다. 여자의 눈가에 눈물이 얼룩졌다. 남자는 엄지와 검지로 여자의 눈꺼풀을 벌리고는 혀끝으로 더듬더듬 여자의 눈알을 핥았다. 그러고는 퉤퉤, 침을 뱉었다. 여자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 때문인지 눈물을 흘리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먹장구름이 능선 위에 걸려 있었다. “우리의 최후는 한 조각 퍼즐에 지나지 않아.”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비좁은 숲길로 나란히 걸어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말줄임표처럼 사라질 즈음, 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제46번 나무 아래, 여자가 떨어뜨리고 간 종이를 집어 들었다. 거기엔 ‘반사구공원묘지 제44번 나무’라고 쓰여 있었다. 이준은 고개를 홱 돌려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았다. 재빨리 걸음을 옮겨 그들을 따라잡았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그들의 좌표를 알려주었다. 그들은 걷다가 서로 몸이 부딪칠 때면 소리내어 웃었다. 구름을 뚫고 나온 햇빛이 만물의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갤러리 유리문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룹 전시 제목은 ‘무덤과 낚시’였다. 이준은 두 사람을 쫓아 실내로 들어갔다. 분리된 공간에 여러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홀의 우측 벽에는 가로로 긴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목탄으로 스케치한 공원묘지 그림이었다. 그림 앞 궤짝 위엔 릴낚싯대를 걸쳐놓아 낚싯줄이 그림까지 팽팽히 이어지게 연결해두었다. 작품 캡션 보드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가벼운 죽음과 공원묘지에 안장된 몇 세대의 죽음에 관해 고민했다’고 쓰여 있었다.
  갤러리 중앙엔 1미터가 넘는 둥근 파이프 위에 공간 박스를 올려놓은 조형물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박스 안에는 액정화면을 설치해 영상과 사운드를 송출했다. 이준은 고개를 숙여 박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몽돌해변과, 높은 파고를 정면에서 잡은 영상에 이어 갖가지 해변 풍경이 반복해서 펼쳐졌다. 이준은 물고기처럼 조형물 사이를 돌아다니다 한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박스 안 액정화면에 그들이 나타났다. 이준은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생각하려 애썼지만,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제46번 나무 아래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댄 채 정지화면처럼 앉아 있었다. 이준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한동안 조형물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이준은 중앙홀에 연결된 구석 공간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두 평가량의 작은 공간은 벽지 대신 온통 거울을 붙여 놓았다. 이준은 돌아보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흠칫 놀랐다. 거울 속에는 무수한 거울 속의 이준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거울 속 거울들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 무덤과 무덤, 죽음과 죽음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것처럼.
  이준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모호한 경계 위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또다른 난 누구인지 문득 의문에 휩싸였다. 그때, 낯익은 리듬이 이준의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이었다. 이준은 반짝 눈을 떴다. 손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빠진 이어폰 한쪽을 마저 이준의 귀에 끼워주고 있었다.

임택수

202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오랜 날 오랜 밤」이 당선되었고
동시에 장편소설 『김섬과 박혜람』으로 제20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속 이준은, 늦은 밤 누레진 얼굴로 지쳐 돌아온 조카이기도 하고요, 잠깐 몇 마디를 나누고 돌아선 거울 속의 나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듣게 된 한 마디가 소설의 시작이 되어 나는 오래 침잠해 있었습니다. 기포 같은 문장을 적어나가며 ‘반사구공원묘지’를 떠올렸습니다. 그곳에선 혼자만 살아있대도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실과 꿈과 환상이 아우러져 ‘제46번 나무 아래’는 그렇게 소통되었습니다.

2024/11/06
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