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공연 기획자이자 창작자로 살고 있는 성다인입니다.
  유네스코가 1980년 발표한 ‘예술가의 지위에 대한 권고’의 예술인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창조하거나 표현, 혹은 재창조하는 사람, 예술적 창조를 자신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예술과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 이 권고는 예술인을 위한 정책의 범위를 제시하면서 사회적 지위 보장, 노동 정책, 예술 활동 여건 지원, 교육·훈련 지원, 노동 조합 및 직업 단체 결성 지원, 이동 지원에 대한 항목을 명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공적 창작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예술계에서 창작활동 지원제도는 창작자들의 삶에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창작활동 지원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한국에서 창작자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떠올려야 합니다. 우리는 잘 살고 있나요? 어떻게 잘 살고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그런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소 설문조사 같은 질문으로 지원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창작활동 지원제도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너무 많은데요. 저는 이 지면을 빌어 지원제도와 관련해 현장의 창작자로서 체감하는 다소 이상한 문화와 다양한 영역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다만 하나의 주제로 끌고 나가는 글이 아닌, 위의 주제와 관련해 관찰하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소제목으로 나누어 나열하는 글이 이어질 예정이라, 독자분들께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공연 기획자의 루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9월인데요, 저는 요즘 공연 발표의 성수기라는 11~12월에 올라갈 공연들을 준비하고 올해 진행한 사업들을 정산하는 동시에 내년의 지원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원 사업 공고는 한창 바쁠 때 접수가 마감되니 미리 작년 사업들을 살펴보며 지원 조건과 시기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함께할 창작자들과 만나서 작품을 계획하고 내년에는 어떤 재미있는 작업을 하며 살 수 있을지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지원제도라고 하면 가장 먼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창작 지원제도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중에서도 발표를 지원하는 제도들이 대표적입니다. 저도 주로 서울문화재단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 지원금으로 공연이나 프로젝트 제작비를 마련합니다. 보통 2천만원에서 4천만원 사이의 창작 지원금이 한 편의 공연을 위한 예산으로 책정됩니다. 티켓값만으로는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공연예술, 그중에서도 소규모 프로덕션의 연극은 공적 지원금에 의존도가 높습니다. 그러니 매년 9월쯤 내년 준비를 미리 해두지 않으면 다음 해의 계획이 불투명해집니다.


지원서 작성의 시간

최근 몇 년간 ‘지원사업 공모 요령’을 주제로 하는 워크숍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몇 번의 워크숍을 거치며 여러 지원서를 보다 보니 자주 보이는 몇몇 스타일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의 작품이 공공의 영역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계속 주장하는 부류의 지원서입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예술 세계보다는 수혜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지원서에서의 오류는 이 이야기가 바라보는 대상이 비판 없이 이것을 수용할 것이라는 확신으로부터 생깁니다. 이런 방식은 또 다른 형태의 대상화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는 사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이야기처럼 (적어도 지원서에서는) 읽힙니다. 공적 자금을 쓴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고 한편으로 지원서 양식이 주는 견고함에 생각마저 딱딱해졌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사회에 이바지해야 할 것 같은 부담으로 인해 어렴풋한 수혜 대상을 붙잡아 등장시켜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또한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께 ‘이 프로젝트를 사회적 맥락과 연결해볼 수 있을까요?’ 혹은 ‘여기에서 자신의 당사자성을 찾는다면 무엇일까요?’ 같은 질문을 가장 많이 하기도 합니다. 앞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특히나 연극 분야에서는 이 이야기가 지금 시대에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내가 하는 이유가 뭔지를 지원서에 쓰는 것이 창작자의 의도를 좀 더 선명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래야 신진 예술가들이 선정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연극의 지원서는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재공연이 아닌 이상) 초기 아이디어 구상과 방향성만으로 작품을 설명해야 합니다. 때로는 동료들과 농담으로, 아이디어만 가지고 작성된 20페이지가량의 지원서는 그 자체로 작품으로 봐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그러다 보니 많은 지원서, 그리고 그 지원서를 씨앗으로 발전된 작품들이 그 시즌의 이슈를 공통적으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자칫 유행하는 주제처럼 다뤄져버리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창작 노동에 대한 사례비가 지켜지는 세계를 기다리며

창작진들과 사례비에 대해 소통할 때 저는 총사업비와 예산의 비율을 모두 공개하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례비의 근거가 창작자 개인의 역량이나 노동력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예산에서 가장 쉽게 조정할 수 있는 파트는 사례비이므로 저는 “이 작업에는 무대 예산이 이 정도 들어서……” 라던지 “어느 파트의 임차료가 이 정도 사용되어서……” 등의 이유를 머쓱하게 덧붙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의문이 생겨납니다. 왜 물가는 오르는데 창작 지원금의 액수는 늘어나지 않고 그 부담을 창작자들이 지게 되는 걸까요? 왜 사례비는 너무 쉽게 침범될까요? 이런 흐름 속에서 결국 창작자의 창작 노동에 대한 금액 책정은 ‘통상적 사례비’에 갇히게 됩니다.
  ‘통상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이 금액은 아마 장르별로, 프로젝트 규모별로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또 ‘통상적’이라는 건 뭘까요? 어쩌다가 ‘통상’이 되어버린 걸까요? ‘통상적’이라는 표현은 금액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분배 문화를 이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연극처럼 공동 작업으로 이뤄지는 작업에서 저는 종종 ‘나눠 갖기’의 문화를 경험해왔습니다. 사례비로 사용할 수 있는 총금액을 전체 창작자가 동일하게 나눠 갖거나 정말 적은 돈으로 공연을 만들 때는 모든 비용을 다 쓰고 남은 돈을 나눠 갖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배 방식의 기저에는 기본적으로 사례비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적거나, 없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창작자들은 한 작품을 만드는 ‘공동 창작자’로서 서로에 대한 존중을 이유로, 혹은 다른 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적은 사례비를 동일하게 나눠 가집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창작자들은 저마다의 이유에 따른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들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창작 지원금과 정책에서까지 ‘통상’의 금액과 문화가 된다는 점은 석연치 않습니다.
  2021년도에 저는 아무 지원금에도 지원하지 않고 지원 사업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도 기획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해에는 공연의 안내원이나 현장 스태프, 셋업·철수의 노동자 등 단기 근로자로 일하며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사례비를 지급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해보다도 투여한 시간 대비 가장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경력에는 도움이 안 되었지만 노동에 대한 대가는 더 온전히 보장받은 것입니다. 통상 임금이 지켜지는 세계가 만들어진 것 같아 기쁜 와중에 슬프기도 했습니다. 이 세계가 창작의 노동에는 아직 다가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창작자들은 열심히 할수록 가난해져야 하는 걸까요.
  그러니 또다시 창작 지원금의 예산 결정액과 그 시기에 대한 기준의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문제는 대여, 구매를 위한 비용과 단기 인력에 대한 사례비는 기준이 정해져 있으니 작품의 규모가 커질수록 정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연출, 배우, 기획을 비롯한 창작진들의 사례비가 예산에 맞추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럼 초기에 예측해서 예산을 수립하거나 규모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지원금을 신청할 때는 구체적 계획이 나오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입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적합하게 구현하기 위한 창작진들의 선택이 있을 것이고 그 뒤에는 예산에 맞게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 다 같이 사례비를 줄일지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연의 규모를 지원 금액에 맞춰서 제작해야 하는 것 또한 모호한 기준에서 발생한 문화입니다. 그러니까, 신진 연극인은 서울문화재단 연극 A트랙에만 지원할 수 있고 2천만원 내외의 예산을 받은 작품은 다른 지원이 없다면 대극장 공연으로는 올릴 수 없는 것입니다. 경력과 공연의 규모가 정비례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행정 구역을 넘어서는 정책적 상상력

저는 작품의 창작과 발표를 행정 구역으로 구분하는 지원제도의 원칙들이 창작자와 작품이 아닌, 행정적 절차에 기인한 선택이라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받은 작품은 서울에서 발표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광역문화재단 예술지원제도는 그 지역의 거주자(단체)를 대상으로 하며 해당 지역에서의 발표를 원칙으로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는 행정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만, 저는 현장의 창작자의 입장으로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서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서울의 창작자들이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반드시 서울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 장소나 지역을 거점으로 창작되어서 해당 장소에서 발표되어야 하는 작품이 아니라면요. 창작자들에게 거주 지역이 거주 지역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면 타지역에서 영감을 받은 창작자가 그 이야기를 해당 지역에서 발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시 간단하게 말하면 창작자의 창작과 영감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발생하지 않으니 이 또한 열려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예술인이 집중적으로 활동하는 서울은 정책적 상상력을 보다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공연 예술은 서울에서 집중적으로 발표됩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구분이 없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원금을 받거나 지역으로부터 초청받지 않는 이상 서울의 창작자들은 타지역의 창작자, 혹은 그 지역과 교류하고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어렵습니다.
  저는 2019년에 춘천의 레지던시에 머물며 동시에 서울시에서 청년 지역교류 지원사업 ‘연결의 가능성’에서 지원받은 프로젝트 ‘빈공간 협약’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빈공간 협약’은 앞서 제시한 문제의식으로부터 기인한 프로젝트입니다. 지역 간 창작자·공간 교류 협약을 맺고 정책적 한계를 창작자들의 네트워크로 해결해보려는 시도입니다. 프로젝트의 결과로 서울과 강원도 내 여러 지역의 창작자들이 서로 공간을 바꿔 발표하고 교류할 수 있었지만 사업이 종료되고 다음 해에 사업 자체가 사라져 해당 기획을 더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기획 또한 서울시가 정책적 상상력을 열어두지 않았다면 신진 창작자였던 저와 동료들은 시도해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지원제도들과 다양한 지원제도의 필요성

기획자로서 체감하고 있는 창작활동 지원제도는 해마다 크고 작게 변하고 있습니다. 시기마다 실험적인 지원제도, 사회 문제와 연결된 제도, 다양한 형태의 기회 제공이 특징적인 제도 등이 등장했다 사라집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변화해온 지원제도들도 많습니다. 최근 몇 년간만 보아도 다년간 지원제도나 정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상금 형태의 지원금, 지원금 안에서도 정산이 필요 없는 활동비를 배치할 수 있는 것, 나이가 아닌 경력을 기준으로 스스로 선택해서 지원하는 지원 방식의 개편 등이 정착되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앞서, 예술계의 지원제도라고 하면 가장 먼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발표를 위한 지원제도들이 먼저 떠오른다고 언급했지만 당연하게도 창작자의 창작활동은 발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창작자는 ‘예술적 창조를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작자들의 삶에 천착한 지원제도들을 만날 때면 반갑고 감사하게 되는데요. 제가 경험했던 반가운 지원제도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예술대학교 졸업생이나 전공자도 아니고 극단 소속도 아니었기 때문에 업계의 진입로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동료도, 선배도, 선생님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진입……한 걸까?’ ‘누구랑 뭘 할 수 있지?’ 같은 막막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신진 창작자인 저에게 진입로를 열어준 지원제도였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장르의 창작자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과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많았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동료들을 만났고 그중에는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지원 영역 중에는 발표에 대한 비평을 받을 수 있도록 작품에 맞는 비평가를 연결해주는 지원이 있었습니다. 비평을 받기 어려운 신진 창작자에게 자신의 작업을 읽어주는 비평을 받는 경험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발표를 위한 지원금을 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신진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고 홍보하고 남기는 과정들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발표에 초점이 맞춰진 제도들과 다른 특징을 가집니다. 한국창작예술아카데미는 올해부터 최초예술지원사업과 통합되어 ‘청년예술가도약지원사업’이라는 새로운 사업이 되었는데요, 바뀐 사업에서는 과정 중심형 기획의 방향성은 남았지만 이에 따른 지원 내용이 없어 아쉽습니다.
  생태계와 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지원제도들도 있습니다. 저는 서울혁신파크 청년청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입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청년청에는 각자 배정받은 방 외에도 공유 주방, 공유 작업실, 공유 창고 등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여타 공유 사무실과 청년청의 차별점은 공유 공간 운영 방식과 그것을 수행하는 입주자들의 문화로부터 발생합니다. 청년청의 입주자들을 전체 회의를 통해 청년청 내의 이슈를 다루거나 함께 프로젝트를 만듭니다. ‘방들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각자의 사무실을 열고 교류하는 행사를 하기도 하고 계단 중간층의 유휴공간을 이용해 청년청 내의 시들어가는 식물들을 돌보던 ‘유기 식물 보호소’라는 프로젝트도 진행되었습니다. 모두 입주자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해 운영하던 것입니다. 이는 청년청 내에서 자발적으로 공유지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다는 입주자들의 공통의 인식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공유지의 공동 사용자로서의 자세를 문화로서 체득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청년허브의 청년참은 다양한 자리를 만드는 지원사업이었습니다. 청년참은 청년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사업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창작자들이 많이 모이는 사업이었습니다. 청년참은 모임 지원금으로 100만원을 지원하고 정산 과정을 간소화한 지원사업인데, 금액이 적은 만큼 한 해에만 200팀이 선정되어 청년참 네트워킹 파티에는 언제나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 지원금은 모임의 성격과 욕망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을 남겼는데, 여러 생각이 모이고 발전할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지원제도였습니다. 청년참은 제가 처음으로 받은 지원금이기도 합니다. 100만원이라는 작은 부담과 원동력을 발판 삼아 프로젝트를 꾸렸고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젝트는 이후에 다른 기회를 통해 공연으로 발전될 수 있었습니다.


배리어프리, 접근성과 관련한 제도들

저는 접근성매니저/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반갑게도 배리어프리, 접근성은 공연예술계의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창작자가 이러한 문화에 동의하면서도 ‘배리어프리 장치’를 배치하기 위한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접근성매니저의 사례비를 비롯해 한국어 자막 해설 디자인, 수어 통역사 섭외, 이동 지원 인력 투입 등의 비용에 대한 부담입니다. 또한 최근 공연예술계 접근성의 영역에서는 고정된 몇 가지의 ‘장치’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 작품과 함께하는 미학적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예산을 제작 초반에 확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지난해부터 ‘배리어프리 연극공연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연 제작과 발표 과정에서 접근성과 관련된 항목만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이러한 지원제도는, 자칫 예산 사용의 중요도에서 뒷순위로 밀릴 수 있는 접근성 파트의 예산을 별도로 확보해 장애인 관객의 예술 접근권을 보장하고 다양한 접근성에 대한 기획과 실현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만 접근성, 배리어프리와 관련된 역할이 아직 공연예술계에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만큼 과업의 범위와 필요성에 대한 부분, 빈번하게 일어나는 저작권 침해 사례들에 대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결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자!

공적 창작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예술계에서의 창작활동 지원제도는 창작활동과 발표뿐 아니라 창작자의 삶에도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창작활동 지원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한국에서 창작자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살펴봐야 합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잘 살고 있나요? 어떻게 잘 살고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그런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적 지원제도의 의존도가 높은 것은 창작자들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창작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와 실천에는 창작자의 몫이 있습니다. 그러니 창작자인 우리는 나와 내 주변의 동료들의 삶을 관찰하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무엇이 어떻게 이상한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다인

주로 기획자와 접근성매니저로 일합니다. 성북구에서 월장석 친구들, 공탁 친구들과 함께 놀고 공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2024/11/20
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