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세상에나 / 코로나 19
세상에나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기를 안고 이모가 돌아왔다.
아기는
여기가 처음일 텐데
이모 집을 낯설어하지 않는다.
아기는 이모 식구를
한 번도 본 적 없을 텐데
이모부 얼굴을 쏙 빼닮아가지고 왔다.
한 번도 나와 만난 적 없는 아기가
글쎄, 내 품에 안기더니
코코, 잠이 든다.
세상에나!
코로나 19
세계가
3일만 쉰다면
하늘은 목욕을 마친 얼굴처럼 맑아지겠다.
먼 산은 성큼 다가오고
달아난 별들은 밤하늘로 돌아오겠다.
자동차 바퀴에 밟힌 고들빼기는
다시 일어설 테고
공장 굴뚝은 노란 장미꽃을 피워낼지 몰라.
세계가
단 3일만 손을 놓는다면
북극곰은 마을로 찾아와
썩은 생선을 주워먹지 않을 테고,
아마존 밀림의 나무들은
또 죄없이 베어져 지구를 울리며 쓰러지지 않을 테다.
세계가 3일만 쉰다면
아빠는 너무 심심한 나머지 잠자는 내 얼굴을
기분 좋게 들여다볼 테고,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골라
멋있게 읽어줄지도 몰라.
쪼꼬만 바이러스가
잃어버린 하늘을 되찾아주었는데
달복아, 우리라고 못할 게 뭐겠어.
3일이 아니라 1년인들.
권영상
동시의 주된 독자는 어린이다. 그러나 동시가 동심의 문학이고 보면 어른들의 동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동시의 독자는 일본의 어느 아동문학자가 말했듯 0세에서 100세까지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어린이 쪽으로 글이 쏠리면 자칫 유치해질 수 있고, 어른 쪽으로 쏠리면 어린이 독자가 힘들어진다. 나의 동시 창작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되며, 늘 이 문제 앞에서 갈등한다.
2020/04/28
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