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반 골키퍼가 공을 찼다. 공은 멀리 날아가 하프 라인 근처까지 갔고 네 명의 아이가 공을 쫓아 달려갔다. 가벼운 몸싸움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 반 세호가 무리를 뚫고 빠져나왔다.
   세호는 공을 잡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지 아이 둘이 따라붙었지만 어림없었다. 오른쪽에서 5반 선수 하나가 달려와 세호 다리 쪽으로 백태클을 했다.
   “어머, 저거 반칙 아니야?”
   옆에 앉은 수미가 소리쳤다. 내가 보기에도 반칙이 분명했다. 하지만 세호는 반칙 따위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무자비한 태클을 가벼운 점프로 피했고 보란 듯이 다시 공을 잡았다. 그리고 공을 가볍게 드리블을 해서 5반 진영으로 깊숙이 들어섰다.
   마침내 세호가 멈췄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패스할 곳을 찾는 것 같았다. 직접 슛을 쏘기에는 골대까지 약간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세호가 직접 슈팅을 했다. 골대에서 한참 먼 거리였지만 공은 힘 있게 날아갔다. 하지만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가는 슛이었다. 골키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
   아슬아슬한 건 딱 질색이라며 수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을 감았으면 그 장면을 놓칠 뻔했다. 공이 뱀처럼 휘어 날아가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이상하게 구불거리다가 갑자기 뚝 떨어졌다. 그리고 골키퍼 왼쪽, 골문 구석 쪽으로 정확히 빨려 들어갔다. 골인이었다.
   “와!”
   우리 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골인이야?”
   수미는 그제야 눈을 뜨고 펄쩍펄쩍 뛰었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기 때문이다.
   공 때문이었다. 공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았다. 날아가는 공은 꿈틀거리다가 갑자기 방향까지 바꿨다.
   “무회전 킥이야!”
   그때 뒤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킥이야. 차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불규칙적으로 막 휘어서 어디로 갈지 모르거든. 아무도 예상 못 한 곳으로 갑자기 들어가.”
   나는 시끄러운 틈 속에서도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었다.
   세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우리 반이 응원하고 있는 계단 앞으로 달려왔다. 양팔을 비행기 모양으로 쭉 펴고 유유히 나는 시늉까지 하며 멋진 세러머니를 했다. 바람 때문에 얼굴을 덮고 있었던 세호의 덥수룩한 머리가 바람에 날렸고 응원석에 앉은 아이들은 환호했다. 수미는 꺅 소리를 내질렀다.
   그 후로도 세호는 두 골을 더 넣었고 우리 반은 3대 1로 5반을 이겼다. 아이들은 해트 트릭을 기록한 세호 주변에 몰려들었고, 선생님은 승리 기념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사주셨다.
   그러나 나는 우리 반의 승리와 세호의 해트 트릭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내 마음을 뺏은 것은 따로 있었다. 공이 뱀처럼 휘어 날아가다가 골키퍼 왼쪽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던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회전 킥이라고 했다. 불규칙적으로 움직여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래서 차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킥이었다.
   그 무회전 킥을 나도 차고 싶었다.

   수학 학원을 마치고 수미와 같이 집에 가는 길이었다. 수미는 학원에서부터 줄곧 세호 얘기만 했다. 세호가 세러머니를 할 때는 정말 심장이 멎을 뻔했다나. 나는 공이 움직이는 장면만 떠오른다고 했더니 수미가 막 웃었다. 같은 시간 우리는 각자 다른 것에 빠져 버린 것이다.
   집에 가려면 학교를 지나야 했다. 마침 교문 앞이었다. 서로를 한심해하며 깔깔거리던 참이었다.
   뻥!
   뻥!
   운동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공 차는 소리 아니야?”
   내가 먼저 말했고, 나와 수미는 동시에 달려갔다. 우리는 둘 다 교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누군가 축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어머! 웬일이니? 운명이야! 유진아, 쟤 허세호 맞지?”
   수미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정말 세호였다. 수미한테도 운명이었지만 나에게도 운명이었다. 잘하면 세호의 무회전 킥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호야!”
   수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호를 불렀다. 세호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여기 웬일이야?”
   세호가 교문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공 차는 소리가 들려서.”
   수미가 말했다.
   “계속 연습해. 우린 구경할게.”
   내가 말했다.
   “그럼 들어올래?”
   그런데 세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좋아.”
   나랑 수미는 잠시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러나 교문이 잠겨 있었다.
   “문이 잠겼는데.”
   “저기 개구멍으로 들어오면 돼.”
   전혀 예상 못 한 방법이었다. 개구멍이라니. 뭔가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둘 다 절박했고 어느새 함께 개구멍을 통과하고 있었다. 만날 티격태격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마음이 맞았다.
   “연습해. 방해 안 할게.”
   수미가 말했고, 나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호가 공을 바닥에 놓고 섰다. 그리고 뒤로 달려가 힘차게 공을 찼다. 공이 휘이익 오른쪽으로 휘어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와! 진짜 잘한다.”
   수미가 박수를 쳤다. 나도 박수를 치기는 쳤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은 무회전 킥은 아니었다.
   세호는 다시 공을 주워 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참 숨을 고르더니 다시 공을 찼다. 공이 날아가 골대 앞에서 꿈틀꿈틀 두 번 움직였다. 그대로 골대를 벗어날 것 같더니 아래로 뚝 떨어지며 골문 위 오른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무회전 킥이었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멋있다! 허세호.”
   수미도 옆에서 환호했다. 세호가 손을 번쩍 들어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수미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오늘은 그만해야겠다. 너희들 오기 전에 벌써 많이 했거든.”
   세호가 숨을 헐떡이며 우리 곁으로 왔다.
   “너 축구 진짜 잘한다. 축구 선수 될 거야?”
   수미가 물었다. 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여기서 연습했어?”
   수미는 쉬지 않고 질문을 쏟아냈다.
   “며칠 안 됐어. 밤에 킥 연습할 때가 없어서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개구멍을 발견했지 뭐야.”
   세호가 웃으며 말했다.
   “무회전 킥 말이야. 연습하면 나도 할 수 있을까?”
   수미가 잠시 쉬는 틈에 내가 잽싸게 질문을 던졌다.
   “무회전 킥? 왜 하필 무회전 킥이야?”
   세호가 물었다.
   “너무 멋있어서. 꿈틀거리며 가는 게 꼭 살아있는 것 같잖아.”
   “하하하. 니가 뭘 좀 아는구나. 연습하면 찰 수 있어. 쉽지는 않지만. 인터넷에 보면 무회전 킥하는 법에 대한 동영상도 많이 올라와 있어.”
   세호는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세호야, 그러지 말고 너 연습 끝나는 시간에 우리 무회전 킥 좀 가르쳐 주면 안 돼? 나도 그거 엄청 배우고 싶거든.”
   수미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제안을 했다. 세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 다에게 정말 완벽한 일이었다.

   학원을 마치자마자 학교로 달려왔다. 이제 개구멍으로 들어가는 건 전혀 걸림돌이 아니었다. 우리는 재빨리 개구멍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세호가 운동장 가운데 서서 손을 흔들었다.
   “무회전 킥은 말이야. 공의 중앙을 발등 중앙으로 정확히 차는 게 포인트야.”
   세호가 공을 들고 서서 우리에게 설명했다.
   “발목 힘으로 엄청 세게 차야 한다는 데 맞아?”
   내가 덧붙였다. 어젯밤 무회전 킥에 대해 검색을 하고 관련 동영상도 몇 개 찾아봤다.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였다.
   “오호! 훌륭한 학생이네. 예습까지.”
   세호가 칭찬했다.
   “이거 배신이다.”
   수미가 나를 노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예습한 유진이부터!”
   결국 나 먼저 공 앞에 섰다. 떨렸다. 어제 동영상으로 공 차는 걸 수십 번 보긴 했지만 실전은 처음이었다. 마법처럼 내 첫 킥이 무회전 킥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무회전 킥은 공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도움닫기 거리를 너무 멀리하면 안 된다. 나는 딱 두 걸음 정도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공의 중앙을 정확히 노려보며 발등으로 세게 공을 찼다.
   휙!
   골문을 향해 오른발을 높이 뻗었다. 그런데 날아가는 공이 보이지 않았다.
   “풉”
   수미가 웃었다.
   아래를 보니 공이 세호가 놓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정확히 헛발질이었다. 수미가 웃을 만했다. 예습했다고 잘난 척이나 하지 말 걸.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처음엔 다 그래.”
   다행히 세호가 나를 위로했고, 나는 연달아 킥을 여러 번 더 시도했다. 더이상 헛발질은 없었지만 땅으로 굴러가는 공이 대부분, 떠서 가는 공은 총 세 번이 다였다. 무회전 킥은 고사하고 킥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수미도 나와 봐.”
   세호가 수미를 불렀다.
   “난 그냥 구경만 해도 되는데.”
   수미가 레이스 달린 치마 바지를 펄럭이며 앞으로 나갔다.
   “공 중앙을 세게 맞힌다고 생각해.”
   세호가 말했고, 수미가 그대로 달려가 공을 찼다. 공이 세게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공은 골문 앞에서 휘익 휘더니 그대로 골문을 벗어났다.
   “야구도 아닌데, 홈런이네.”
   수미가 부끄러워하며 세호를 봤다. 하지만 세호는 놀란 눈으로 공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야! 박수미, 방금 무회전 킥이었어.”
   세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내가 더 놀랐다. 세호도 아니고 수미가, 무회전 킥을 차다니. 이거야말로 배신이었다.
   세호는 수미가 찬 공이 회전 없이 날아갔다고 했다. 물론 골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무회전 킥이라는 게 워낙 불규칙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무회전 킥의 달인 호날두도 가끔 홈런을 날린다는 것이었다.
   “어머, 나 진짜 호날두처럼 한 거야?”
   수미가 웃으며 세호에게 하이파이브를 제안했고, 세호도 웃으며 마주쳐 주었다.
   “또 해 볼래?”
   세호가 공을 수미 앞에 두며 말했다.
   “또?”
   수미는 웃으며 달려가더니 바로 공을 찼다. 공은 이번에도 휙 날아가다가 갑자기 위로 치솟았다. 세호가 말하는 홈런성 무회전 킥이 틀림없었다.
   “하하하, 너 소질 있다.”
   세호가 그렇게 말했다. 수미는 힘들어서 그만하겠다며 내 옆으로 왔다. 갑자기 속이 뒤틀렸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달려가서 수미가 찬 공을 주워왔다.
   “나 다시 해 봐도 돼?”
   그리고 공을 바닥에 놓고 다시 그 앞에 섰다.
   “그래, 몸에 힘 빼고, 수미처럼 편하게 툭 차봐.”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세호 말대로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수미처럼 편하게 공을 찼다. 그러나 너무 편하게 찬 모양이었다. 공이 힘없이 앞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가볍게, 세게, 힘껏. 다 다르게 찼지만 제대로 맞은 공은 없었다. 다시 하지 말 걸 그랬다.
   내가 못하는 것도, 수미가 너무 쉽게 하는 것도 화가 났다. 약이 바짝 올랐다. 집에 가는 내내 나는 한마디도 말을 안 했다. 그러나 세호와 수미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고 떠들고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었다.
   “주말에는 축구 클럽에서 시합이 있어서 못 나오는데.”
   헤어지기 전에 세호가 말했다.
   “어머, 나도 오늘 밤부터 여행이야.”
   수미가 말했다.
   “잘됐네. 그럼 월요일에 다시 보자.”
   뭐가 잘 됐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연습이 급한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로서는 얼마간의 시간을 번 셈이었다. 혼자서 특별 연습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세호와 수미 앞에서 더이상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았다. 특히 무회전 킥에 관심도 없는 수미한테 이대로 질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무회전 킥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원리를 알고 공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무회전 킥의 원리도 읽어보고, 무회전 킥 주위의 공기 흐름에 대해 설명해주는 그림도 찾아봤다. 무슨 말인지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럴수록 무회전 킥이 더 대단해 보였다.
   무회전 킥 차는 법을 알려주는 동영상도 하나씩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동영상마다 설명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발등 전체로 공 한가운데를 차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발의 안쪽 면과 발등의 중간 부분으로 공의 한 가운데서 약간 밑 부분을 때리라’고 했다. 뭐가 맞는 말일까 싶어 다른 동영상을 더 찾아봤는데 동영상마다 다 달랐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수미에게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수미는 홈런성 무회전 킥이라도 성공한 사람이니 발의 위치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수미가 무회전 킥에 성공했을 때 같이 기뻐해 주지 못한 것도 걸렸다.
   그래서 수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미야.”
   “어머, 유진. 웬일?”
   “너 아까 무회전 킥 잘하더라.”
   “하하하, 고마워.”
   “그런데 무회전 킥할 때 말이야.”
   “또 그 얘기야?”
   “일단 들어봐. 너는 발등 전체로 공을 차? 아니면 발의 안쪽 면과 발등 중간 부분으로 차?”
   “응?”
   “그리고 공의 한가운데를 차? 아니면 한가운데 바로 밑을 차?”
   “뭐라는 거야?”
   “아니, 아까 어떻게 찼냐고?”
   “몰라, 나는. 그냥 막 찼어.”
   “뭐? 너 일부러 나한테 알려 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야, 내가 뭐 하러 그래. 여행 잘 다녀오라고 전화한 줄 알았더니 계속 무회전 킥 타령이야. 제발 그만 좀 해.”
   “알았어. 그럼 여행 즐겁게 다녀오든지.”
   신경질이 나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냥 막 찼는데 무회전 킥이라니. 더 화가 났다.
   수미는 우연히 무회전 킥을 찼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행운이 계속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사이 나는 연습을 통해 진정한 실력을 키우리라 다짐했다.
   “아빠, 우리 검은색 펜 있어요?”
   거실로 나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가 주는 펜으로 발등 가운데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아빠, 바로 여기야. 여기!”
   그러고는 바닥에 있는 양말, 인형, 휴지 등을 발로 툭툭 찼다.
   엄마 아빠는 다행히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를 조용히 쳐다보기만 했다.
   토요일 낮에는 공원에 나가서 연습을 했고 밤에는 방에서 두루마리 휴지로 연습을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유벤투스 FC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와 우리나라 여자축구 국가대표 정설빈 선수의 무회전 킥 동영상을 시청했다.
   일요일 저녁이 되자 마음만은 거의 무회전 킥의 달인 호날두가 된 것 같았다. 월요일 저녁이 기다려졌다. 이번에야말로 무회전 킥을 성공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왔다. 수미의 킥처럼 골문을 한참 벗어나는 홈런이 아니라 뱀처럼 휘어가다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진짜 무회전 킥을 말이다.

   월요일이 되니 아침부터 온몸이 아팠다. 주말 내내 나 자신에게 너무 혹독했다. 결국 엄마가 챙겨주는 약을 먹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서 종일 정신이 몽롱했고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학원을 마치고 학교로 다시 달려갈 때는 다행히 몸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결국 공 어느 부분을 차기로 했어?”
   개구멍을 통과하자마자 수민이가 물었다. 분명 놀리는 듯한 말투였다.
   “무슨 상관이야?”
   나도 말이 이쁘게 안 나왔다.
   “축구공이니까 손이 아니라 발로 차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해. 그리고 말이 나와서 얘긴데, 공이 회전을 하든 무회전을 하든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대충해.”
   수미가 작정한 듯 따지고 들었다.
   “중요해. 공이 회전하느냐 안 하느냐는 나한테 무지 중요해. 니가 뭐라고 하든 난 무회전 킥을 꼭 성공시키고 싶다고. 알겠어? 그래서 여기에 오는 거고.”
   “정말 못 말려. 누가 널 말리겠어?”
   “뭐라고?”
   세호가 운동장에서 우리를 불렀다. 세호 아니었으면 크게 한판 붙을 뻔했다.
   “오늘은 수미 먼저 해 볼래?”
   세호가 말했다.
   “그럴까?”
   “오늘 너는 스핀킥, 그러니까 공이 휘어져 들어가는 바나나킥을 한번 해 봐. 발 안쪽으로 공을 차서 이렇게 휘어지게 할 거야.”
   세호가 손으로 공이 날아갈 모양을 그리며 설명했다. 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앞에 수비벽이 있어도 공을 넣을 수가 있거든. 알겠어?”
   세호가 다시 덧붙였다.
   “응.”
   수미가 자신 있게 대답하고 공 앞에 섰다. 그리고 달려가서 공을 찼다. 그런데 이번에도 공이 휘익 날아가 골문 앞에서 하늘로 솟아 홈런이 됐다. 또 홈런성 무회전 킥이었다.
   “넌 무회전 홈런 전문인가 보다.”
   세호 말에 수미도 웃고 나도 웃었다.
   “나는 그냥 나 차고 싶은 대로 차. 그래서 저거밖에 못 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안 되는데, 수미는 무회전 킥밖에 못 한다는 게 웃겼다.
   “홈런만 하면 곤란한데. 무회전 킥이면 뭐해, 골이 들어가야지.”
   세호가 웃으며 말했다.
   “몰라. 그만할래. 여행 다녀와서 피곤해. 유진이나 더 가르쳐줘.”
   그러고는 자기가 찬 공을 주워서 나에게 주었다.
   “꼭 성공해! 나처럼 홈런 치지 말고 진짜 무회전 킥으로! 송유진 파이팅!”
   수미는 윙크까지 했다. 대충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나는 수미에게서 공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골대 앞에 섰다.
   “긴장하지 말고 해봐.”
   세호가 말했다.
   그러나 공을 보자 갑자기 긴장이 됐다. 이번에는 정말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
   ‘발등 전체로 공 한가운데를 차라.’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공 한가운데를 노려보고 또 노려봤다.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세게 찼다. 정확히 공 한가운데였다.
   뻥!
   그런데 공은 왼쪽으로 휙 날아가 버렸다. 골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진짜 어이가 없었다. 주말 내내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세호랑 수미도 조용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침묵을 깬 사람은 우리 중 한 명이 아니었다. 운동장 끝에서 다른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그 사람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손전등까지 비추면서 말이다.
   “어머, 학교 지킴이 보안관 아저씨야.”
   수미가 말했다.
   “어떡하지?”
   세호였다.
   “일단 뛰자.”
   내가 수미를 잡아당겼고, 우리는 개구멍을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세호도 우리 바로 뒤에서 열심히 뛰었다.
   마침내 내가 개구멍을 통과했고, 수미와 세호도 무사히 빠져나왔다. 세호는 마지막까지 개구멍을 완벽히 숨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숨을 고르며 담벼락에 잠시 숨어 있었다.
   “사람이 아니었나?”
   담벼락 반대편에서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우리 셋은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무서웠어.”
   수미였다.
   “집으로 가자.”
   세호가 일어나려고 했다.
   “얘들아.”
   내가 수미와 세호를 불렀다.
   “왜?”
   수미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시 들어가자.”
   내가 말했다.
   “지금 장난해?”
   세호가 말했다.
   “아니. 딱 한 번만 차고 나오자. 지금 차면 진짜 무회전 킥일 것 같아서 그래.”
   내 말에 수미와 세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수미가 웃기 시작했다. 세호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시간이 없었다. 빨리 개구멍으로 들어가야 했다.

전수경

저에게 동화 쓰기란 무회전 킥을 배우는 것과 같아요. 힘들고 어렵지만 그 매력에 빠져 버려서 헤어날 길이 없으니까요. 정말로 글은 날아가는 공과 닮아서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알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연습합니다. 다른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2019/07/30
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