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데이 클래스



   둥근 닭 모양 항아리
   가장 안쪽의 마트료시카처럼
   눈빛이 불온해 보인다

   이 항아리 버리면 자꾸 돌아오거나 그러는 건 아니죠?

   (왜 버릴 것처럼 얘기하세요?) (말 돌리지 마시구요)

   닭은 저랑 더 오랜 시간을 보냈으니까, 만약 돌아온다고 해도 저한테 돌아올 걸요?
   
   아직 구매하지 않았음에도
   무세는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 항아리가 버려도 버려도 돌아오는 저주받은 물건이라고 칩시다 그래봤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면 자기도 별수 없을 걸요?

   헉, 이거 유물이에요?

   작년에 원데이 클래스로 만든 건데
   한 백 년쯤 지나면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무세는 항아리를 옆 좌석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더이상 눈빛이 무서워 보이지 않는
   둥근 닭 모양 항아리
   텅 빈 복도에 세워둔 장식장에서
   메추리알 껍질 안쪽 같은 하늘색을 뿜어내고 있다

   이 닭을 지금 내쫓으면 나에게 올까 도공에게 갈까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닭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채
   
   아침에 울면 어떡하지 알을 낳으면 어떡하지
   그런 상상을 하며
   무세는 도공에게
   닭 항아리를 돌려줄까 했는데

   손가락이 터질 만큼
   반지를 아주 잔뜩 선물 받아서
   둥근 닭 항아리는 반지 보관함이 되었고

   눈감고
   원하는 것이 손에 걸릴 때까지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무세는 백 년쯤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설 매장



   1

   백 년 후의 폐허에서 가스 검침원이 무너진 아파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전생에 호수에 빠뜨린 칼을 찾는 남자처럼
   과도 모양의 물을 마시는 할머니처럼

   쿵 쿵 쿵
   대문을 세 번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러도 보고 거주자를 불러도 보고 점착 메모지로 안내문을 붙여도 보고
   그것이 문의 원래 용도인 양 쪼그려앉아 기대어 잠든

   검침원에게 귀여운 거주자가 필요합니다

   제가 다녀올게요

   소요가 지하 벙커에서 올라와 수원의 아파트로 들어가는 데
   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2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나팔수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 뒤
   분수대의 네 번째 기둥에 입을 맞췄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분수대에 고인 물과 뒤섞이고 있다

   저 사람 누구예요? 왜 저런대요?

   저도 모르겠어요 여기 신설인데요…… 백화점 짓기 전에도 창고였는데요

   사방에서 진주 목걸이 뜯어지는 소리 들려오고
   검고 뜨거운 구슬이 지붕을 태우며 굴러떨어진다


   3

   주기적으로 우리를 찾아오기로 한 천사가 있어서 (예를 들면 한 달 내지는 백 년) 그 주기의 일정함이, 때때로 지연되거나 앞당겨지는 패턴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를 통해 천사의 목록을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홍수, 장학사, 송년회, 해일, 지진, 예언자, 건강 검진, 일식, 동창회, 방문 판매원, 혜성, 주택 청약.


   4

   “선생님이 여기 세대주분이세요?”
   십 년 만에 지상에 올라온 소요에게 가스 검침원이 말을 건넨다

   네 맞아요 지금 바로 문 열어드릴게요

   소요가 열쇠를 찾기 위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주머니에서 아무것도 꺼내지 마세요 백 년 전의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네요”

   검침원은 소요를 달래고
   인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주위를
   사방을

   정면을

   노려보았다

김민식

오도된 신성의 입장에서 지구라는 공간은 언제든 방문할 수 있는 상설 매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게는 매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아울렛을 방문하는 손님처럼 느껴진다. 나는 손님을 상상하며 백 년 동안 직원 동선과 고객 동선을 이리저리 재배치하는 매니저가 된 것만 같다. 백 년이라는 시간이 좋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백 년. 함부로 발음하고 상상하지만, 나와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사라질 백 년. 이 침묵을 노려볼 사람은 누구일까. 백 년 뒤에도 닭은 꼬댁거릴까.

2022/02/22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