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보리수 아래 흰 그늘을 보았나요
    꿈에 찾아온 아름다운 뱀처럼
    환하고 슬픈 꿈을 꾸었나요

    뱀의 배가 스쳐간 자리에
    휘었던 풀이 다시 서듯이
    사랑은 순서 없이 오가는 것이어서

    도처에 당신은
    흔적 없는 이별
    자취 없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오른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을 테니
    머리 위에 연꽃을 올려주세요
    귓불에 두 개의 달을 걸어주세요

    창호지를 오려붙여 눈을 가리고
    바람으로 천개(天蓋)를 열어
    불붙은 솜으로 귀를 막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지러운 걸음으로
    풀숲을 헤치는 맨발이 되어
    후회도 찬란도 없이 차게 식을 테니
    새날을 데려오는 이 새벽이
    내 것이 아니어도 좋을 테니

    벼락처럼 짧게 긋고 사라지는 황금의 얼굴
    눈도 코도 손도 다 문드러진
    사랑이 있었다고 말해주세요
    모서리 없는 사랑만을 이야기해 주세요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거울



   할머니는 종이 인형처럼
    납작하게 몸을 접어
    영정 사진으로 들어갔다

    내가 제사상에 올렸던 대추 씨를
    혀로 굴리고 있을 때

    할머니는 슬픔이 고단해서
    자기의 두 발을 오려버렸다

    할머니가 신던 버선을
    만지작거리면
    신기롭게도
    주름이 하나씩 펴지고
    피가 젊어져서는

    강보에 싸여
    이가 하나도 없이 웃는다
    걸음마를 떼지 못한 아기처럼 웃는다

    다시는
    이런 놀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신미나

장님처럼 썼습니다. 꼭 잠든 땅을 깨우려는 것처럼.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언어를 두드렸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산 것과 죽은 것들이 어떻게 한 몸이 되는지를.
저 무저갱의 말들이 저 혼곤한 어둠 속으로 나를 데려가는지를.

2018/10/30
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