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다. 왕년에 잘나간 적도 없는 늙은 배우 유미가 사는 집이다. 그 집엔 심한 변비를 앓는 애완견 제제도 더불어 살고 있다.
   유미가 사는 집은 북촌에 잔가지처럼 난 골목길들 중 한 갈래의 끝에 있다. 단지 처음 보는 골목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치기를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유미의 집 앞에서 싱겁게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집은 한옥을 세 번 정도 개조한 단층짜리 주택이었다. 기와로 덮은 지붕과 그걸 받치고 있는 소나무 골격을 빼면 한옥이라 부르기도 뭐했다. 마당은 용도를 알 수 없는 시멘트 둑과 흙바닥이 해변처럼 나뉘어 있었다. 또 큰 벚나무 한 그루가 있었으나 자투리 기와지붕을 덮어놓은 담장에 기대 밖으로 축 늘어져 사시사철 시들했다. 딱 한철 꽃을 피우는 때에야 비로소 그게 벚나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언덕길 막다른 곳에 선 장승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일까. 그토록 이상한 소문이 돌게 된 것이. 유미는 그 혐의가 자신이 아닌 이 집 안의 것들에게 있다고 생각한 지 오래였다.
   갈색 벽돌을 층층이 올린 담벼락 군데군데에 허물어진 데가 있어 시멘트로 대충 메워두었고 마당엔 흔한 항아리 하나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있긴 했는데 괜히 자리를 좀 옮겨보겠다고 유미가 들었다가 손에서 미끄러져 깨끗하게 두 동강이 났다. 그걸 포개서 그냥 자리에 두었을 뿐이지 그게 어디 항아리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노릇.
   유미는 마루에 걸터앉아 항아리 무덤을 보면서 자신이 했던 어떤 노릇들을 찬찬히 되짚어 보려고 했다. 막상 떠오르는 게 없었다. 생의 대부분을 학교 선생으로 지냈던 부모에게 있어 큰딸이 외설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구경조차 못 해본 시련이었다. 자식 노릇을 해보겠다고 처음 용돈을 쥐어준 날 유미의 아버지는 슬리퍼도 신지 않고 마당에 나가 담장 밖으로 지폐를 뿌렸다. 큰돈이었는데, 사정없이 뿌렸다. 야심한 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그걸 주워갈 이가 없다는 걸 알고서 한 퍼포먼스였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날 유미는 하염없이 울었었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눈물 없이 신음했다. 금지옥엽으로 키우진 않았어도, 뭐든 알아서 잘하기에 잘한다 하는 말은 않았어도, 얼굴에 분 바르고 충무로에 놀러 다니는 것을 그런가보다 하긴 했어도, 아무리 그랬어도, 내 딸이 딴따라라니. 딴따라 중에서도 그런 딴따라라니. 유미의 아버지는 탄식하면서 당신의 허벅지를 때리다가 아내의 허벅지를 때리다가 손바닥이 붉게 부르트도록 장판 바닥을 때렸다. 후에 그는 취한 날이면 어김없이 그날 일을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당시 선생의 한 달 봉급보다 컸던 돈을 뿌린 일은 그에게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었다. 자식 노릇, 학생 노릇, 여자 노릇, 남들 다 하는 구실들이 유미가 제대로 해보려고 할 때마다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야 말았다. 그것들을 다 포기하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배우 일 역시 이렇다 할 계기 없이 끝이 난지 오래였다.
   유미의 본명은 유미숙이다. 본인은 원래 이름을 나쁘게 생각한 적 없었으나 처음 주연을 맡았던 티브이 드라마의 감독이었는지 조감독이었는지 여하튼 카메라 뒤에 있던 사내 중 한명이 멋대로 이름에서 한 글자를 뚝 떼어가버렸다. 늙은 배우는 유미라는 이름 역시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름으로 굵직한 에로 영화 두 편과 드라마 배역 몇 개를 맡았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유미보다 조금 더 늙어서 임종한 어머니는 너도 이제 다 쭈그러졌다고 유미의 축 쳐진 살을 놀려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유미라는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은 있었다. 자주 들르곤 하는 호프집 주인 내외가 잊어버리지도 않고 꼬박꼬박 불러주곤 했다. 애완견 제제를 데리고 경복궁 근처까지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정확하리만치 그 호프집 앞에서 무릎이 신호를 보냈다. 이쯤에서 쉬어가야 한다고. 나중엔 제제가 알아서 그 가게 쪽으로 코를 대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면 ‘유미씨 오셨네요.’ ‘제제 엄마 오셨네요.’ ‘날이 덥지요, 유미씨.’ 하고 아내가 먼저 살갑게 굴었다. 어느 순간에 부턴가 대답이라는 것이 통 귀찮아진 그녀에게 지치지도 않고 질문을 던져대는 부부였다.
   유미를 먼저 알아본 것은 아내 쪽이었다. 한창때가 삶은 계란이었다면 지금은 노른자 터진 계란프라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알아볼 정도로 그 집 아내는 유미의 오래고 열성적인 팬이었다. 남정임씨도 문희씨도 관심 없었는데 유미씨만은 알고 있었다면서 감자프라이를 돈도 받지 않고 턱턱 내왔다. 부담감을 무릅쓰고 유미가 이 호프집에 계속 왕래하는 것은 적어도 자신을 내쫓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부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그 집에 대한 소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사실은 모를 일이다. 믿지 않는 건지, 그런 척을 하는 건지,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자신들의 생계에 그런 소문 따위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건지.
   유미와 마찬가지로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아내가 잔병치레가 많은 것 같던데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미가 대답을 잘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그들 부부는 묻지도 않은 말을 떠벌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살을 부비고 살아온 사람들치고 그네는 서로 친해보이지도 않았다.
   기실 그들은 유미보다 그녀의 애완견 제제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 손님이 남기고 간 닭고기의 살을 발라 두 손에 담아주면 손바닥에 남은 기름기까지 핥아먹는 제제를 귀여워했다. 동네에 날쌔고 윤기 나는 개들이 많이 돌아다녔는데 유독 제제만 예뻐하는 이들이었다. 요상하게 생긴 개들이 요상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볼품없이 늙은 제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느리게 걸어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한때 집집마다 윤기 나는 긴 털을 휘날리며 돌아다녔던 요크셔테리어 품종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처럼 말이다. 백내장이 낀 눈으로 무엇을 보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짖어야 할 때를 아는 똘똘함은 있었다. 여하튼 유미로서는 그런 제제에게까지 친절한 부부에게 적개심을 품을 필요가 딱히 없었다.

*
   해시시는 없어.

   담장에 써붙이는 대신 유미는 제 집 앞을 기웃거리는 정신 나간 놈들에게 일일이 해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별 해괴망측한 모양새를 하고서 친구를 엎드리게 해놓고 그 위를 밟고 올라 담장 안을 들여다보는 놈들이 간간히 있었다. 그러면 애완견 제제가 앙칼지게 짖어댔다. 유미는 두꺼운 몸을 일으켜 마루 밖으로 어기적어기적 나가봐야 했다. 시력이 원체 나빠 놈들의 눈 코 입도 흐릿하게 보이는데 그들로부터 이유 없이 욕을 들어먹기도 했다.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고 가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저와 자보지도 않은 것들이 창녀가 어쩌고 애미가 어쩌고 하는 걸 듣자 하니 황당하기만 했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놈들이 늘 같은 녀석들인지 다른 인물들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유미는 가시철조망이라도 둘러놔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물점에 찾아가는 게 사람들을 일일이 내쫓는 일보다 귀찮게 여겨졌다. 구태여 안경을 맞추어 그 치들의 맨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소문이라는 게 언제 없어질 지도 모르는 것이라 헛돈을 쓰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부서진 초인종을 구태여 고치지 않는 것이 유미의 노력이라면 노력이었다.
   대체 어떤 할일 없는 인간이 이 집에서 대마를 키우네, 난교를 벌이네 하는 소문을 뿌리고 다녔고 어떻게 그런 소문이 그리도 넓게, 지독하게 퍼질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유미가 기르는 것이라곤 화단에 기형으로 자란 상추 몇 잎과 씨를 뿌리고 한참을 기다려도 땅 밖으로 도무지 싹을 트지 않는 고추, 그 외에도 무언가를 심기는 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불발탄을 심어놓은 것 마냥 아무 것도 자라지 않았다. 굳이 더하자면 마루 한 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무나무까지가 다였다. 고무나무의 경우엔 유미의 어머니가 생전 집안의 자랑처럼 신경을 쓰던 것이었다. 나무 옆에 얇은 각목을 대고 깐깐한 무용 선생처럼 노끈으로 묶어 올곧게 자라도록 했다. 지금에 와선 내다버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가지가 멋대로 뻗어 보기 싫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뒤늦게나마 유미는 어머니의 정성을 이어받아 화분을 관리하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알아서 시든 잎을 떨어트리는 것을 보며 그냥 두기로 했다. 마시던 생수가 컵에 남아 있으면 화분에 나누어주기는 했다.
   어릴 때야 명동에서 우연치 않게 대마 말린 것을 몇 번 구경한 적은 있지만 그게 어떻게 자라는지는 본 적도 없는 유미였다. 혹여 자신의 행색이 약물 중독자처럼 보이는지 신경이 쓰여 외출 전에 거울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기도 했다. 제제가 괜히 다가와서 몸을 킁킁거리기라도 할 때면 민감해졌다. 그러면 유미는 제제를 저만치 밀어버리곤 했는데 그건 제제로서도 억울한 일이었다.

   최근 그 소문 때문에 시사 프로그램 제작 피디가 다녀갔었다. 최감독이라는 작자였는데 그는 정중했지만 어딘가 서툴렀다. 유미의 집에서 대마는 고사하고 텃밭 하나 발견하지 못하자 당혹감에 혼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유미는 최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심한 사람이었다. 차라리 담장에 매달려 집 안을 훔쳐보려는 애들이 낫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개중에는 분에 넘치는 큰돈을 가지고 와서 맛만 보여달라고 조르는 웃긴 애들도 있었으니까.
   이 집에 드나드는 손님이라면, 그중에서도 감독이라면 송감독 한 명으로 족했다.
   송감독은 삼 년 전쯤 실험 영화를 찍기 위해 섭외차 찾아왔다가 알게 되었다. 그는 깐느는 아니었고 대여섯 글자쯤 되는 프랑스의 어느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수상했을 즈음 이 나라에 큰 사건이 없었거나 보도를 감추어야 했는지 뉴스에도 몇 번 그의 이름이 나왔었다. 유명한 편이었지만 정작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후로 찍은 영화들 역시 봐야만 하는 이유보다 보기 싫은 이유를 더 많이 붙일 수 있었다. 흥행 성적이 형편없는 영화들 중 한 편에는 유미의 집과 유미가 직접 오 초 정도 출연하기도 했다. 그녀의 오 초짜리 컴백을 반가워하는 이는 없었다. 송감독이 스태프랍시고 대동하고 온 대학생들이 별것도 아닌 표정 연기에 호들갑을 떨어가며 한껏 바람을 넣어주긴 했지만 그 애들이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걸 유미는 알고 있었다. 그땐 한 줄도 채 안 되는 대사였지만 유미는 꽤 긴장한 상태였다. 그녀의 얼굴은 긴장 상태일 때 조금 기괴한 방식으로 구겨지는 편이었는데 그게 많은 사람을 겁먹게 만들기도 했다. 대충 설명하자면 큰 눈이 더 커지고 원래도 뭉툭한 코가 늘어난 콧구멍에 밀려 더 커지고, 여하튼 이목구비가 아주 커졌다.

   “배우님. 그 좋은 걸 왜 숨기셨습니까.”
   송감독은 유미를 놀리기 위해 장난기를 머금고 물었다. 그가 중국에 다녀온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며 포장도 뜯지 않고 가져온 우롱차를 나누어 마시고 있을 때였다. 담장 밖 가로등 불을 보면 비가 오는 것 같았지만 처마 밖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빗방울이 느껴지진 않았다. 송감독도 그걸 이상하게 여겨 마루 밖으로 맨발을 꺼내보았다. 찬찬한 행동들 다음에야 유미는 답했다.
   “그 귀한 걸 송감독에게 내줄 수 없지.”
   “멋지십니다, 정말로.”
   송감독은 제 무릎에 올라온 제제를 쓰다듬으며 웃었고 의미 없는 고개 끄덕임을 계속했다. 유미는 좀처럼 식지 않는 우롱차에 입김을 불면서 그를 힐끔 보았다.
   본인이 직접 배우를 해도 될 만큼 수려하게 잘생긴 송감독에게 한때 유미는 주책 맞은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추해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건만 어느 날 송감독은 제 여자친구를 부모에게 인사시키듯 유미에게 데려왔다. 그를 위했던 소소한 노력들마저 무안하게 느껴지고 확실히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진 않았다. 감독이라는 작자들에게 유미가 거는 기대감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늙은 강아지 제제를 유미네 집에 데려다놓은 것도 바로 그였다. 송감독은 소액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모아보면 큰 사기를 쳤던 선배네 집에 찾아갔을 때 제제를 발견했다고 했다. 가구며 액자며 돈 되는 것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조리 챙겨간 뒤였고 강아지 한 마리가 현관 문턱에 턱을 괴고 누워 눈만 치켜뜨고 있었더랬다. 너무 작고 말라 처음엔 죽은 쥐라도 되는 줄 알았다고. 그 작은 개를 무릎에 앉히고 집으로 운전해 가던 길에 송감독은 왠지 모를 웃음이 터져나왔다. 엉뚱하게도 반드시 이 개는 유미가 키워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마땅한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만 했다. 단지 그 상황에서 유미가 생각난 것 자체만으로도 그에겐 큰 재미였던 듯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제는 털이 다 어디로 빠졌는지 듬성듬성 남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약간 사팔뜨기인 게 이상하더라니 결국 검은자위가 점점 좁아져갔고 이제는 눈동자에서 검정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제제는 그런 상태로 유미에게 왔거늘 혹자는 그녀가 가엾은 강아지를 그렇게 만들고야 말았다는 식으로 보기도 했다. 낭설 중에는 사람의 나이에 7을 곱하면 개의 나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때 이미 십일 년을 살아온 제제는 유미보다 훨씬 어른인 셈이었다. 낭설과 헛소문의 주인공인 유미가 믿을만한 추측은 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몇 가지 담소를 나누다보니 앉은뱅이식탁 위엔 싱거운 우롱차 대신 소주와 계란프라이가 놓여 있었다. 술이 한 잔만 들어가도 목과 귀까지 빨개지는 송감독은 이상할 정도로 취하진 않아서 좀처럼 실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가끔씩 비가 억세게 퍼붓는 날이나 유미가 유독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날이면 그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자신의 숙모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것이 송감독이 가진 유일한 주사라면 주사였다. 열다섯이나 어린 그와 동년배 못지않게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유미는 알 수 있었다. 유미의 나이와 생김새가 그가 사춘기시절부터 흠모했던 숙모를 연상케 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유미도 송감독에게 전해들은 그 숙모라는 여자의 말투나 옷차림을 은근히 따라해보곤 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상도의 억양을 섞어 쓰고, 바람이 선선한 날에도 마 소재의 옷을 즐겨 입게 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그가 유미를, 유미가 그를 만질 수는 없었지만 서로에게 유대감 정도는 조심성 없이 가질 수 있었다.

   중학 시절부터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삼촌의 집에서 지내야 했던 송감독은 자연히 숙모와 가깝게 지냈다. 그가 기억하는 숙모는 꾀병이 심했던 여자였다. 때문에 정말로 임종이 다가왔을 때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동화 속 말괄량이 같았던 여자. 성정이 고약하기 그지없어서 살아생전 주변인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으나 또다른 새 사람들이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했다. 그건 그의 숙모가 가진 얄궂은 팔자라고 할 수 있었다. 자꾸 곁에 사람이 붙었고 그러면 그녀는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사람을 잡아두기 위해서도 그랬고 떼어놓기 위해서도 그랬다. 당시 시골뜨기였던 송감독에게 있어 숙모는 가장 흥미롭고 야릇한 인물이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을 거예요. 숙모가 장에 다녀와선 다리를 절더라고요. 심각하게 보였죠. 절뚝거리는 폭이 너무 커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했었는데. 병원엘 데려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삼촌에게 물었더니 한마디 하더라고요. 망할 년. 이렇게요. 정말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망할 년.”
   그 말을 전하면서 송감독은 진기한 일을 전언하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픈 아내에게 망할 년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때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말이다. 사실 그 얘기는 전에도 두 번 정도 이미 들었던 얘기였다.
   “그런데 망할 년이 맞았죠, 그 여자는.”
   그리고 그는 금방 마흔을 앞둔 영화감독으로 돌아왔다. 유미에겐 안타까운 일이었다. 새치를 숨기기 위해 짙은 갈색을 덮어놓은 머리칼 아래로 엿보였던 얼빠진 표정엔 어떤 중독성 같은 게 있었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간 이후부터 삼촌은 집에 들어오는 날이 뜸해지기 시작했어요. 모르겠어요. 내가 있으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럼 내가 있기 전엔 꼬박 집에 잘 들어왔던 게 숙모를 혼자 두기 불안해서였을까요? 정말 모르겠네요. 삼촌이 숙모를 사랑했는지.”
   사랑. 가만 생각해보니 송감독은 사랑이라는 말을 참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았다. 대수롭지도 않은 술안주를 얼굴 앞에 대고 제가 이걸 사랑하잖습니까, 하면서 먹곤 했다. 조그만 제제를 들어올리면서도 그랬고 연락도 없이 유미의 집에 들어오면서도 그랬고 볼품없는 벚나무를 보면서도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헤프다고 생각된 적은 없었다.
   송감독은 말을 잇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미가 눈짓을 하자 송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물어본 거예요. 배우님은 아실까 해서. 삼촌이 숙모를 사랑했을까요?”
   그런 적이 잘 없었는데. 시답잖은 조언을 바라지 않기에 송감독이 참 편했던 건데. 유미는 체온이 살짝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나보지.”
   “늘 피하시네요. 하긴. 거짓말보단 낫죠.”
   어쩐지 그 말이 유미에겐 건방지게 들렸다. 또 서운하게 들렸다. 거짓말을 온몸에 달고 살던 숙모보다 낫다는 말인데 그게 좋은 말처럼 들리진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숙모의 근사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유미는 경계하고 있던 것이다.
   “정말이지 쓸모없는 구라들이었단 말입니다. 몽골이며 대마도며 가본 적도 없으면서 알은 체를 해대고, 모기물린 자국을 긁어댄 탓에 난 상처를, 그깟 상처를 밤새도록 움켜쥐고서 사람 걱정시키고.”
   송감독은 조금 격앙되어 말했고 마침 마당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빗방울이 굵어진 것이 보였다. 점점 더 거세고 더 많은 비가 내렸다. 땅에 부딪힌 비가 다시 위로 튀어올라 바닥에서도 비가 뿜어져나오는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도무지 시끄러워서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제제가 꼬랑지를 감추고 유미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소란스런 틈을 타 유미는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었으나 겨우 한숨만 뱉을 수 있었다. 송감독은 처마 아래로 무릎으로 걸어가선 빗물에 손을 씻었고 입고 있던 카키색 티셔츠에 물기를 닦으며 웃어 보였다. 어쩜, 손바닥 모양의 물 자국이 고스란히 송감독의 가슴을 감싸쥐고 있는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우스꽝스러웠지만 유미는 웃지 않았다.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웃음을 삼키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돌아가실 때요.”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을 즈음 송감독이 다시 운을 뗐다. 숙모라는 여자가 죽었다는 그날의 이야기를 또 하려나보다, 라고 유미는 짐작했다. 너무 많은 약을 삼켜버려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망할 년 이야기보다 더 숱하게 들어왔었다. 고작 신경통 때문에 집에 있는 약이란 약은 다 입에다 털어넣었더랬다. 엄살을 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도 그랬다고 했다. 그때 상주 노릇을 하던 송감독은 벙 찐 기분에 사로잡혀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아팠던 게 아닐까. 그게 다 거짓말이 아니라 숙모에겐 진짜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때를 회상하며 송감독은 꼭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했다.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거짓말을 한 소년의 양만 죽은 건 아니라고, 그의 거짓말을 믿지 않은 모든 마을 사람들의 양도 죽어버렸다고 했다. 이왕 속는 거 끝까지 속을 걸 그랬다고 말하며 송감독은 웃음 짓곤 했다. 마땅히 할 표정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배우님 돌아가실 때 말입니다.”
   그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송감독은 유미의 죽음을 말하고 싶어했다.
   “누가 그 소식을 전해준답니까.”
   “나 죽어도 이 집은 송감독 못 줘. 분당 사는 동생 차지지. 혹은 그애 딸이나. 아쉬운 대로 저 나무는 가져가게.”
   “그게 아니라요.”
   많이 취한 듯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제 쇄골에 대고 숨을 뱉었다. 자신은 영영 죽지 않을 저승사자라도 된 듯 새삼스럽게 굴었다. 씁쓸한 얼굴이었으나 감동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변이 없는 한 제제보다는 나중에 죽게 되겠지. 이변이 있어도 이 집에서 죽게 되겠지. 유미는 죽음을 생각하는 일에 초연해지기를 애써왔다. 그게 자신과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송감독이 다녀가고 다음날, 동생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전화할 때가 되어서 전화하였다. 마땅한 때라는 것의 간극이 점점 멀어지긴 했어도 늘 먼저 전화를 거는 건 유미 쪽이었다. 전화를 받은 건 어린 조카였다. 오 년에 한 번쯤 경조사가 있는 날에만 겨우 볼 수 있던 조카아이의 목소리에선 제법 숙녀의 느낌이 났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지 천천히 가늠해보려고 했는데, 조카는 성급하게 엄마 바꿔드릴까요? 하는 물음만 반복했다. 멍청하게 자랐구나. 유미는 생각했다. 키는 많이 컸을지 모르겠다. 기억하기론 또래보다 한참 작아서 어른들 걱정을 사던 아이였는데. 유미를 따라 웃기도 잘 웃었었는데 동생은 제 딸이 유미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었다. 아이를 안고 유미로부터 등을 돌리곤 했었다.
   됐다.
   유미는 그렇게 말하고서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한 손에 그것을 쥔 채로 저 조차도 들리지 않을 만큼의 숨을 뱉었다.

*

   호프집이 오랜만에 문을 열었다. 가려다가 허탕을 친 적은 없었지만 앞을 지날 때 셔터가 내려가 있는 것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제 쓴 기름을 재활용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없었지만 문은 칼같이 열고 닫던 집이었으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미는 제제를 허벅지에 기대게 해놓고 밍밍한 맥주와 기본 안주를 시켰다. 아내가 보이지 않았고 사장의 얼굴도 어딘지 핼쑥했다. 불친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예전과 같이 살갑지도 않아서 유미는 허전함을 느꼈다.
   “가게를 내놨습니다. 중개사 말로는 금방 나갈 거라더군요.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습니까. 애들은 늘 빠르니까요.”
   일부러 대꾸하지 않는 것과, 뭐라 할말이 없는 것은 달랐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말을 선택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안사람이 유방암이랍니다. 장모님도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었는데.”
   갑자기 쏟아진 그들 내외의 안 좋은 일들이 마음 아프게 들리긴 했지만 유미는 뭐랄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나쁜 소문을 묵인해주었던 부부에게 심심한 위로를 해주는 게 맞는 걸까. 어떤 말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지도 몰랐다. 때마침 제제가 낑낑거렸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다간 유미의 무릎에서 내려와 문 쪽을 서성이는 게 이곳을 나가고 싶어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사장이 주는 닭고기도 몇 번 킁킁 거리다간 이내 먹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유미 역시 앞에 놓인 튀긴 감자가 아닌 물에 삶은 음식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누가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식욕이 떨어지고 마는 건지. 왜 자신은 이토록 무례한지. 알 수 없었다.
   유미는 흔한 가요도 틀어놓지 않는 호프집에서 한참이나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노상 말없이 맥주를 마셨지만 오늘은 스스로의 침묵이 퍽 새삼스러웠다. 사장도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유미 외에 다른 손님은 오지 않았고 사장도 딱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지 않았다. 외려 유미가 빨리 나가기를 바랄지도 몰랐다. 그에게 유미는 제 아내가 철없던 때 선망했던 여자일 뿐 지금은 늙은 강아지의 늙은 주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유미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는데, 아직 못다한 말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이 아니면 이들과 자신 사이에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유미의 발목을 잡았다. 사장의 말대로 가게는 금방 빠질 것이다.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인감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동네의 목 좋은 곳이라면 무작정 사고 보려는 투기꾼들이야 차고 넘쳤으니 말이다.
   유미는 그 아내의 얼굴을 좀처럼 기억해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불과 보름도 채 안 됐는데도 인상이 어땠다는 것만 어렴풋했다. 다만 항암제 부작용에 시달리는 여느 암환자의 초상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냉동된 식물처럼 연약하고 하얀 인상이었다. 단지 생각일 뿐이었지만 부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미의 머릿속에 뻔한 위로도 떠오르지 않는 건 애석하게도 아내가 죽고 말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었다. 단지 생각일 뿐인데, 왜 그런 못된 쪽으로만 흘러가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 안사장님 낫거든 우리 집에 한번 오는 게 어때요.”
   난데없이 튀어나온 유미의 목소리에 사장은 주문을 하는 줄로 알고 냉큼 몸을 일으키다 말았다. 다행히 말을 못들은 것은 아니라 한 번 더 어설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자신의 말에 사장만큼이나 유미 본인도 조금 놀란 터였다. 꼭 그래야만 했냐고 누가 묻거든 아니라고 답할 수 있는 초대였다.
   “안사람이 무척이나 좋아하겠네요.”
   사장은 당혹감을 감추려는 것 같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내에게 전해줄 것 같진 않았다. 퀭한 눈은 초점을 잃고 아무 것도 응시하지 못하면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떨떠름한 반응에 유미는 확실한 대답이 얻고 싶어졌다. 확실하게 오지 않겠다고 해도 좋았고 오겠다고 해도 좋았다. 유미는 맥주 거품이 말라붙어 있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씹었다. 오겠다고 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은 곧바로 재고했다. 집에 온 아픈 손님에게 내어줄 것이라곤 우롱차뿐이었다. 정말로 집에 해시시가 있다면 어땠을까. 길을 잃지 않는 이상 들러볼 일이 없는 집인데, 한편에서 대마를 기르고 또다른 편에선 약에 취해 난교를 치르는 집이었다면 줄 것이 차고 넘쳤을 지도 모르겠다. 아픔을 잊게 해주는 것들, 죽음을 잊게 해주는 것들, 늙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들, 아는 것을 모르게 하는 것들로 손님들을 맞이했을 것이다. 유미가 내려다보면 눈을 맞추고 낑낑 소리를 내던 제제는 이제 쇳소리를 냈다. 이따금 이빨을 드러내면서.
   “꼭 오세요. 줄 것이 있으니.”
   제제를 바닥에 내려놓고 일어서며 유미는 말했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처럼 작위적이고도 영악해 보이는 말투였다는 걸 유미 스스로도 느꼈다. 일부러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마녀처럼 굴었다. 만나본 적도 없는 송감독의 숙모 흉내를 내고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

*

   목줄을 차고 있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제제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무리 줄을 조여도 제제의 몸에 꼭 맞진 않았다. 헐렁하게 어깨뼈 위에 얹혀 있는 꼴이었다. 오늘 제제는 한 점의 닭고기도 삼키지 않았고 혀를 내밀고 헥헥 대긴 했어도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다. 그런 적이 많아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유미는 개 줄을 손목에 묶고 평소보다 느리게 걸었다.
   가만. 그 소문은 누구의 것인가. 누구로부터 잉태된 소문인지는 관심 없었다. 어떻게 그 소문이 당사자의 귀에까지 들어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유미는 그 옛날 아르키메데스가 물이 넘치는 욕조에서 그랬던 것처럼 행동을 멈춘 채 눈을 치켜떴다. 제제는 이미 저만치 앞서가 나무 밑동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아무리 제제와 멀어져도 기억나지 않았다. 왜 배우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지도, 귀여워하던 조카를 언제 보고 못 보았는지도 일일이 기억하지 않았던 탓일까. 이제 와서 기억한다 해도 하등 달라질 것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유보했던 기억들 중 하나이겠거니 했다. 유미는 다시 제제가 앞서간 방향대로 따라 걸어갔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비좁은 골목에 들어서도 유미는 길 가장자리로 걸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철물점을 지나면서 어딘가 낯설다고 생각했고 여름의 한가운데였으나 후덥지근한 게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유미는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상념에 빠진 채 집에 들어오는 길이면 앞이 막힌 것을 보고 다 왔구나,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옆집이 버려둔 화분 밑에서 열쇠를 꺼냈다. 세 개의 열쇠가 하나의 고리에 연결되어 찰랑거렸다. 유미는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 앞에 섰다가 다시 한 발짝 물러나 담장을 살폈다. 근래에 참 많은 공격을 받아야 했던 담장이었지만 보기 싫을 만큼 더럽진 않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진흙이 마른 자국이 묻어 있었고 어설프게 덧바른 시멘트가 보였지만 마지막으로 보수를 마쳤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옆집이 버려둔 것 같은 몽당 빗자루를 가져와 흙을 털어냈다. 유미는 들어가서 작은 텃밭을 살피고 싶었다. 정말로 대마를 키워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역시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리기 직전에 그만두었다. 손끝으로 가장 날카로운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다. 집에 들어서서 등 뒤로 두꺼운 대문이 닫혔다가 반동에 다시 살짝 열렸을 때, 유미는 손목이 가벼운 걸 알아차렸다. 제제를 놓쳤다. 분명 앞질러 걸어갔었는데 넋 놓고 걸어오는 사이 줄에서 몸이 빠진 모양이었다. 유미는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다시 당겨 열면서 재빠르게 골목으로 나섰다.
   저 아래 골목 초입 부근에선 차들이 빠르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위협적이게 보인 적이 없었다. 유미는 울렁거리는 속을 주체할 수 없었다. 거친 바닥이었지만 미끄러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여 마음만큼 빠르게 내려가질 못했다. 몇 걸음 내딛지 않았을 때였다. 멀리서 코를 바닥에 비비며 올라오는 제제가 보였다. 이 집 저 집을 노크라도 하듯 스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유미는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내려가는 심장을 부여잡듯 주저앉았다. 제제가 유미를 발견했고 늙은 강아지 역시 더이상 올라오지 않고 몸을 낮추었다. 제 힘으로 올라오려고 하지 않는 게 괘씸했지만 유미는 안도했다.
   뼈가 만져지는 가벼운 개를 두 팔로 안고 집에 다시 들어왔다. 이 소란을 누가 알까. 유미는 한동안 빈 개줄을 손목에서 끌러내지 못했다. 별 게 다 숨이 찼다. 무릎에 손을 얹고 마루에 걸터앉아 멍한 눈으로 대문을 쳐다봤다. 집에 있을 때면 걸어 잠근 적이 없었다. 단순히 귀찮아서였는데 담장에 매달려 소리치던 놈들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유미는 저답지 않게 바지런을 떨고 싶었기에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발바닥을 핥고 있던 제제가 꼬랑지를 흔들며 같이 일어났다.
   발끝으로 텃밭을 뒤적거렸다. 여기를 어떻게든 요긴하게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남몰래 대마를 키울 여력은 없었지만 별거 아닌 상추라도 열심히 길러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면 동생이든 누구든 오고 싶어하는 집이 되지 않을까 하는 큰 꿈도 스쳐갔다. 이곳까진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유미는 아예 허리를 숙이고 앉아 손에 잡히는 나무젓가락으로 흙을 헤집었다. 뭔가 뚝 하고 뚫리는 이질감이 있었다. 500원짜리 구권 지폐 한 장이 젓가락에 집혀 올라왔다. 유미는 헛웃음이 다 났다. 불에 타다가 만 것처럼 썩어 있었지만 그건 유미의 기억 속 돈이 맞았다. 손목에 묶인 개줄을 풀고 적극적으로 흙을 파보아도 더이상의 돈은 나오지 않았다. 실망할 일도 아니었다. 유미는 그걸 고스란히 젓가락에 꽂아 들고 마당 한가운데로 왔다. 알량한 불빛에 비추어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이런 집에 해시시가 어디 있겠느냐고, 유미는 따져 묻고 싶었다. 누구라도 붙잡고서.

박몽

서울에 잘 없는 서울 사람입니다. 모순을 발견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버릴 것을 수집하고 수집한 것을 버리기를 좋아합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