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 식으로 굴면 도와주지 않을 거야


   연애와 막말이요? 저기 영상은 보셨어요? 영화관에 오는 여성 관객은 대대로 고무신 관객, 손수건 부대, 아줌마 부대로 불리면서 폄하되어 왔다는 거. 이놈의 한남민국 역사와 전통이 유구하죠. 영화판은 더하거든요. 그래서 여기 오면 맘이 편해요. 지금도 봐요, 이 공간에 쓸데없이 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저기 자봉분들이나 포스터 속 여성1)도 안 웃고. 제가 자봉할 때 지긋지긋하게 들었거든요. 화났냐? 좀 웃어라. 여자가 웃어야 주변이 환해지지. 그러니까 옆에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던 새끼가 구남친.
   같은 과 한 학번 선배였고, 다른 선배 졸작 도와주다가 친해졌어요. 같이 영화 보러 다니고 자봉 하고 술도 마시다가 어느 날 걔가 1박 2일로 여행을 가자는 거예요. 거절하면 분위기 싸해질 것 같고 그때는 나도 호감이 있었으니까 갔죠. 낮에 잘 놀고 밤이 됐는데…… 나는 안 하고 싶었어요. 여행 같이 가면 다 하는 건가. 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 새끼가 대뜸 덤벼들었어요. 지금 같으면 바로 신고했을 텐데. 다음 날 여기저기 멍이 들고 출혈도 있었으니까. 근데 그때는 그게 성폭력이라고 인식을 못 했어요. 더 최악은 그러고 나서도 이 자식이 사귀자는 말을 안 하는 거예요. 학교에는 내가 이 새끼랑 단둘이 여행 간 게 소문이 짝 났는데. 둘이 여행 갔는데 그 소문은 누가 냈겠어요? 애들은 다 사귀는 줄 알고 물어보는데 어쩌겠어요. 결국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죠. 그랬더니 그럼 그러지 뭐 하면서 받아주는 척하는데……
   시작이 그랬으니 어땠겠어요. 관계의 주도권이 그 새끼한테 있는 거예요. 뭔지 알죠, 자꾸 내가 매달리고 부탁하듯이 되는 거. 지금은 수가 빤히 보이는데 그때는 애가 타는 거예요. 쟤는 별 미련이 없으니 나만 놓으면 끝날 거 같고. 그러다보니까 맞춰주고 무리하고…… 그 새끼가 맨날 나한테 충동적이라고 그랬어요. 넌 술도 너무 마시고, 말도 너무 막하고, 웃음도 너무 헤퍼. 여자애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널 아끼니까 이런 말도 해주는 거야. 이건 진짜 쪽팔려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 새끼 때문에 남자 동기들 번호도 다 지웠다니까요. 나중에 졸작 찍으면서 스태프 구하느라 개고생 한 거 생각하면……
   그 새끼는 진짜 때리는 거 말고 다 했어요. 그리고 때리지만 않으면 뭐 해, 말로 팼는데. 얼마 전에 연인을 살해하는 남성의 8단계2)라고 연구 결과 나온 거 보셨어요? 내가 3단계 '강압적인 통제'에서 4단계 '상황 발생'으로 넘어가려는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걔가 제 카드도 잘랐거든요. 제가 친구들이랑 술 마신 다음 날에. 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갈팡질팡할 때 강남역 사건이 터진 거죠.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처음에는 울기만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내 인생의 순간순간이 하나씩 플래시백 되는 거예요. 일곱 살 때 고등학생이던 사촌 오빠가 재워준다고 방에 눕혀놓고 내 성기를 만졌지. 방 분위기가 이상했다는 것만 떠오르고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팍 떠오르더라고요. 중학교 2학년 때, 학주가 브래지어 입고 왔는지 검사한다면서 브래지어 끈을 잡았다 놓았다 했던 거, 버스에서 변태 새끼들이 엉덩이 만진 거, 이런 건 일상이었지. 우리 과 실습 담당 교수가 진짜 성중독자였는데, 그 새끼는 그래도 미투 때 잘렸어요. 내가 이렇게 폭력에 무뎠구나. 성적으로 착취당했구나. 진짜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구나. 책 읽고 글 쓰고 토론하면서 매일매일 새롭게 울분이 차오르는 거예요.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때 태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연애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 새끼가 태세 전환이 빠르더라고요. 갑자기 폭력적인 성향이 사라지더니 눈치보면서 나한테 맞추는 거예요. 그래봐야 빈껍데기라 금방 들통났지만. 강을 건넌 사람이 강 저편에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떻겠어요. 아득하겠죠? 그때 걔 입에서 나온 말들만 조각조각 기억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 피해 망상이다. 그 사람은 조현병자일 뿐이다. 여성혐오를 증명해봐라. 꽃뱀한테 당한 거다. 페미니즘은 변질되었다. 역차별이다. 그렇게 나오면 남자들도 마음 닫힌다. 너 이런 식으로 굴면 도와주지 않을 거야.
   그 새끼랑 영화만 보면 그렇게 싸웠어요. 지금은 한남 영화 보지도 않지만, 예전 영화 보면 여성은 토막토막 소비되고 전시되잖아요. 여성의 나체 위에서 윙윙거리는 파리랑 폭력적인 성관계가 군사주의 체제에 대한 환멸과 권태로움의 표현 방식이 되는 식이죠. 이제는 어때요? 제대로 다룰 자신이 없으니까 아예 지워버려요. 여성 배제가 습관이고 디폴트예요. 마블 봐요, 눈치라도 보고 맥락이라도 읽잖아요. 한남 영화는 눈치도 더럽게 안 봐. 제가 이런 말 하면 그 새끼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그래, 투자 받아서 꼭 만들어봐. 응원할게. 참 흥행이 잘되겠네.
   그 새끼가 한 말만 가지고도 막말의 연애사를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거예요. 연애요? 나는 요즘 이성애자로 태어난 게 혐오스러울 지경인데요. 아니, 이성애자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렇게만 강요받으면서 자랐으니까. 요즘은 내 성 지향이 어떤지 찾아보고 있어요. LGBTQI 다음 +에 카테고리를 새롭게 하나 만들어서 들어갈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도 돼요? 신문고처럼 쓸 건데 그래도 되나? 그럼 할게요. 이 찌질한 새끼야. 데이트 통장 먹튀해서 살 만하냐? 신고하기 전에 잔액 절반은 카뱅으로 보내라.



   #2. 모자란 여자



   나한테 연애가 네 아빠밖에 더 있겠니. 그때 다른 데서도 중매가 들어오긴 했지. 읍내 여관집 아들이었는데, 당시에 벌써 포니 차를 끌고 다녔다고. 외할머니는 그 사람한테 가야 고생 덜한다고 성화였는데, 나는 네 아빠가 더 눈에 찼어. 외사촌 결혼식장에서 처음 봤는데,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는 게 눈에 띄더라고. 지금은 술에 찌들어서 얼굴이 팍 삭았지만, 그때는 뽀얀 게 부잣집 아들 같았다니까. 그날 양가 어른들이랑 인사 나누고 나는 일터로 돌아왔는데, 다음 주에 네 아빠가 편지를 써서 보낸 거야.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편지에 약하잖아.
   결혼 초에는 안 그랬지. 물론 내가 자기 동생들을 다 데리고 살면서 밥해 먹이고, 친구들 데려오면 술상 봐주고, 다음 날 해장국까지 끓여다 바쳤으니 당연히 잘해야지. 안 그러면 사람도 아니지. 그래도 틈만 나면 고맙다면서 말도 예쁘게 했다고. 지금은 봐라, 네 할머니 병원에 누워 계셔도 자식새끼들이라고 코빼기도 안 뵈는데, 며느리인 나만 매일 가서 들여다봐도 고맙다는 말 한번 안 하잖아. 당연한 거 하면서 생색낸다고 되레 화를 버럭 낸다니까. 기가 막혀. 네 아빠는 내가 자기랑 한 몸인 줄 알아. 자기야 부모니까 그렇다 쳐도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는! 내가 모시지도 못하고 혼자 그 고생을 하다 돌아가셨는데…… 그 생각만 하면 정이 뚝 떨어져서 숨 섞고 살기도 싫어. 그런 얘기 하면 네 아빠라는 인간이 그래, 과거의 망령이라고. 자기는 미래로 나아가고 싶은데 이 모자란 여자가 자꾸 발목을 잡는다고.
   그래도 네 아빠가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욱해서 그렇지. 어느 땐 폭탄 같아. 갑자기 폭발하면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모르니까. 옆에서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몰라. 분위기 봐가면서 다른 얘기로 입을 막거나 변명을 해야 하니까 나는 하나도 즐겁지가 않지. 그러니 같이 모임에 가고 싶겠어. 저번엔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자리에서 대뜸 그러더라고. 다 보수 꼴통이라고. 면전에서 그런 얘기 듣고 화 안 날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래서 다들 네 아빠만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데 자기 빼고 다 보수 꼴통들이라서 그런대. 그러면서 나보고 같이 안 따라다닌다고 불만은 어찌나 많은지…… 나도 즐거운 자리를 가고 싶지,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면서 따라다니고 싶겠냐고.
   그놈의 모자란단 소리나 안 하면 좋겠어. 자기 뜻대로 안 따라주고 자기편 안 들어주면 맨날 모자란 여자라고 그러잖아. 그딴 소리 들으면 다 때려치우고 싶어. 지금까지 내가 자기 집안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철천지원수 간이 된 게 내 탓이냐고. 네 아빠도 안되긴 했지. 장자라고 그렇게 희생했는데, 이놈 집구석은 그게 당연한 거니까. 대접은 눈곱만큼도 안 해주면서 깎아내리기나 하고. 그래도 네 아빠는 자기 가족이잖아. 나는 뭔 죄라고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 내가 자기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진짜 가만있으면 복장이 터질 것 같아서, 집을 좀 나가야 숨 쉬고 살 것 같아서 공부 시작한 거야.
   요즘은 지나간 하루하루가 아까워 죽겠어. 너희 키울 때 뭐라도 더 했어야 하는데. 공부든 자격증이든 내 거를 더 만들걸. 내가 네 나이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 요즘 시험이며 과제 때문에 절절 매지만, 방통대 들어간 건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얼마 전에는 레포트 쓰느라 나혜석의 『경희』라는 소설을 읽었거든. 거기서 주인공이 ‘내 이름은 무엇이지? 사람이지! 사람이다!’3) 그러는데 갑자기 내 속이 뻥 뚫리는 거야. 그런 글자는 읽기만 해도 행복하고,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는 거 자체가 환희야.
   네 아빠는 처음에는 팍팍 밀어준다면서 자식들 앞에서 생색은 다 내더니, 지금은 불평불만이 얼마나 쌓였는데. 맨날 집구석에 늘어놓은 거 버리라고, 냉장고도 싹 비우라고, 먹을 만큼만 사다 먹으면 된다고, 마누라만 빼고 다 버려도 된다고 큰소리치더니 지난번에는 저녁때 밥솥에 밥이 없다고 나보고 자격이 없다느니, 그따위로 할 거면 때려치우라느니 얼마나 들볶았다고. 그날 스터디 모임이 저녁때 있어서 김치찜을 한 솥 끓여놓고 놔왔거든. 밥만 깜박한 거지. 네 아빠는 매사에 그런 식이야. 겉으로는 진보적이고 앞서나가는 척하면서, 뱃속에 조선 시대 영감탱이가 들어 있어.
   그래도 네 아빠만 한 사람도 없어. 책임감도 강하고 너희한테 얼마나 잘하니. 너희까지 나서서 아빠한테 뭐라고 하지는 마. 자식들한테 한마디 듣고 나면 밤잠도 못 자는 사람인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가게도 정리해야 하는데, 얼마나 속이 끓겠어. 평생 그거 하나뿐이었는데. 저렇게 잘하고도 부모며 가족한테 인정도 못 받고. 그게 다 상처가 돼서 칼날이 된 거야. 너희가 아빠는 너무 방어적이라고 그러잖아. 그게 다 속에 울분이 쌓여서 그래. 그래도 말은 조심해야 하는데…… 너무 막말을 하잖아.



   #3. 버커리



   나는 시집가기 싫었어. 서울 아가씨가 갑자기 충청도 산골짝으로 들어가고 싶겠어. 근데 큰오빠가 이미 혼처 정했다니까 찍소리 못 하고 간 거지. 오빠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일본 놈들도 악랄했지만 해방 후에는 미군 놈들이 흉악스러웠거든. 하도 여자애들을 건드리고 다니니까 마을 어른들이 여자애들을 뒷산에 숨겨놨어. 우리가 해 뜰 때 올라가가지고 컴컴한 굴방에 들어앉아 있다가 해 지면 몰래 내려와서 자고 그랬지. 그렇게 뒤숭숭할 때니까 하기야 얼른 보내긴 해야 했을 테지. 오빠가 딴에는 막냇동생 고생 덜 시키겠다고 골라 골라 땅 좀 있다는 데로 보낸 건데, 속았어. 꽝이야. 와서 보니까 땅뙈기만 좀 있지,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거야. 땅이 그냥 놀아. 놔두면 알아서 벼가 나고 감자가 묻히나.
   영감이 일머리가 없었어. 손끝도 무뎌터지고. 오죽하면 동네에서 디딤발이4)라고 불렀다고.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어. 누가 내 앞에서 그 소리 하면 화를 버럭 냈다고. 근데 이 영감은 속없이 허허 웃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더 놀리는 거야. 그때는 일을 집집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자꾸 우리는 빼버리는 거지. 그럼 우리 모내기하고 피 뽑을 때 누가 와. 내가 영감 몫까지 곱절로 할 수밖에 없지. 그렇게 하는 게 인이 박인 거야.
   새벽같이 아침 짓고, 바로 밭일 나가고, 중간에 잠깐 들어와서 점심이랑 새참 준비하고, 다시 밭일하다가 저녁 짓고, 치우고 바느질 좀 하다 보면 장지문 한쪽이 점점 환해져. 날이 밝는 거지. 그럼 그냥 그대로 일어나서 다시 아침부터 짓기 시작하는 거야. 그때는 그렇게 날밤 새우는 게 부지기수였어. 맨날 그러니까 버릇이 돼서 피곤한 줄도 모르는 거야. 물론 한번 잠들면 옆에서 한바탕 난리가 나도 세상모르고 자지.
   그때 영감이 그러더라고. 내가 몇 날 며칠 안 자고 일하고 있으니까 소뿔 같은 여편네라고. 그러면서 한 번씩 기절했다 일어나면 이번엔 둔한 여편네래. 그렇게 시끄러워도 꿈쩍을 안 한다면서…… 내가 둔한 건 그렇다 치는데, 소뿔 같다는 말이 듣기가 영 싫었어. 그래서 그 소리 좀 안 하면 안 되냐고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이랑 꼭 같이 굴어. 아주 여봐란듯이 더 놀려대는 거야. 소뿔 같은 여편네가 또 안 자고 쇠심줄처럼 일한다고.
   시집온 이듬해에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이제 막 젖 뗀 고모며 학교 들어간 삼촌들까지 다 내가 키웠지. 거기다 자식 넷에 영감까지……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는데 다 가고 나니까 이렇게 다리병신만 남았어. 다리만 괜찮으면 아직도 몇 날 며칠 새워도 끄떡없을 거 같은데…… 맘 같아선 뭐든 하겠는데 이놈의 다리가 펴지질 않으니까. 방에서 화장실 가는 것도 편히 못 하니 이게 사람 사는 거야. 영감 가고 금방 따라갈 줄 알았는데, 강산이 변하도록 이 모양이니……
   영감도 딱하지. 이제 쉴 만하니까 암이 뭐야, 암이. 안 그래도 병원이며 약이며 주사가 제일 무서운 양반이 고생깨나 하다 갔지. 막판에는 생전 안 그러던 사람이 죽 그릇도 뒤집어엎고 내 속도 여러 번 엎고 갔지. 항암 치료니 뭐니 안 하는 건데, 고생만 하다 갔어. 그래서 그때 한 말은 다 잊어먹었어. 어디 맨 정신에 나온 말이겠어. 근데 그 말 하나는 안 잊히더라고. 왜 영감이 나한테 버커리, 버커리5) 했잖아.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가 싫더라고. 나도 내가 박색인 거 알지 왜 몰라. 인물 참 없지. 눈도 키도 쥐똥만 하고. 그래서 그만하라고 하면 더 하는 거야. 속없는 손주 놈들이 죄다 따라서 버커리, 버커리 합창을 해대고……
   그것도 다 옛날 얘기지. 이젠 정말 버커리 맞으니까. 옛날에는 환갑만 넘어도 잘들 죽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안 죽어지나 몰라. 병원 가면 약만 한 박스씩 주니까 내가 속 빈 강정이야. 약으로 홑껍데기를 살려놓은 거라고. 이제 그만 갔으면 좋겠어. 너무 오래 살아서 못 볼꼴을 다 보잖아. 연애는 무슨…… 나는 안 태어났으면 좋겠어. 그냥 가면 영영 끝인 거지. 어쩔 수 없이 태어나야 하면 저 산골짝 깊은 데, 사람도 안 들어오는 데에 나무로나 박히면 좋겠네. 경치나 내려다보면서 그냥 한없이 늘어지게. 이제 진짜 버커리가 됐는데 영감은 나보다 한참 젊으니 만나기도 면구스러워. 또 싫은 소리 할 테지. 진짜 버커리가 돼서 왔다고……



일단공작단

유재영은 소설을 쓰고, 최고라는 책을 만듭니다. 서로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는 상대입니다. 대개는 다정한 말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달하지만, 이따금 차갑거나 뜨거운 말을 던져 파문을 일으킵니다.

2019/10/29
23호

1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스터. http://siwff.or.kr/kor
2
제인 몽크톤 스미스, ”연인을 살해하는 남성의 ‘8단계 행동 패턴’”을 참고할 것. 링크 바로가기
3
나혜석, 『나혜석 전집』, 태학사, 2000, 102쪽. 원문은 “그러면 내 명칭은 무엇인가? 사람이지! 꼭 사람이다.”이다.
4
‘뒤뚱발이’의 충청도 방언.
5
늙고 병들거나 또는 고생살이로 쭈그러진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