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대국



   우리는 밤새도록 사랑을 했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쉰 살의 당신과 열아홉 살의 나
   첫 직장에 입사하는 나와
   대학교를 졸업하는 당신

   산산조각으로 희고 검은

   우리는 밤새도록 사랑을 했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돌을 던진 당신과 사표를 쓴 나
   기차를 타러 가는 당신과
   실업급여를 타러 가는 나

   산산조각으로 산산조각으로

   우리는 밤새도록 사랑을 했네
   죽여줄 때까지 죽고 싶을 때까지
   중력과 권력 AI와 고독에 맞서며
   서른 살의 나와 아홉 살의 당신
   탈을 쓴 당신과 털을 기른 나
   검은 돌이 흰 돌을 사랑하듯

   희고 검은 산산조각으로

   우리는 밤새도록 사랑을 했네
   죽여줄 때까지 죽고 싶을 때까지
   무한하면서 유한한 유한하면서 무한한
   미래이면서 반미래인 반미래이면서 미래인
   하나의 거울이 두 개의 얼굴을 비추듯
   두 개의 얼굴을 하나의 거울이 비추듯





   변신 마스크



   봄에 신촌에서 만납시다 벚꽃 대국 함 가시죠 난 흑돌 진심으로 빛나는 까망 털은 길러도 좋구요 탈이요? 요즘은 마스크죠 백돌 같이 순백의 KF94가 먹어줍니다 대접 커피요? 독수리다방 대접 커피 말씀하시는 건가요? 진심 모르시나 본데 음악다방은 한물갔죠 정 그러시다면 통 크게 별다방 아메리카노 473ml 그란데 테이크아웃으로 쏘겠습니다 그런데 그란데가 뭐냐구요? 진심 모르시나 본데 미래와 음악다방은 한물갔다니까요 요즘 대세는 별이죠 미친 거 아니냐구요? 다행이네요 난 진심으로 울부짖는 돌멩이 미치지 않고서야 아스트랄한 이 별에서 대접이나 받겠어요? 봄에 신촌에서 만납시다 마스크 대국 함 가시죠

안현미

꿈에 아흔아홉 살의 나를 찾아갔다. 명랑하고 발랄한 할머니가 웃고 있었다. 다행히 마스크는 벗은 지 오래라고 했다. 그란데 시나 한잔하고 가라고 했다. 고마웠다.

2021/01/26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