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18회 여행소설과 방房-캉스cance
intro
임시적일 줄 알았던 삶이 기약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개학을 연기할 때까지만 해도 철없이 좋았다. 등교도 못해보고 ‘헌내기’로 직행했으나 절대평가를 위안삼아 참았다. 말이 재택근무지 번거롭기 이를 데가 없었으나 신경쓰지 않고 ‘탈-브라’를 할 수 있어 참았다. 재난대책본부가 애인보다 더 자주 연락을 해도, 발산하지 못한 흥이 내 속에서 썩어가도, 회식의 ‘ㅎ’도 못 꺼내는 부장님을 고소해하며 참았다.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잠시 멈춤’이라는 구호는 반년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더니, 여름휴가에도 아랑곳 않고 정지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해외여행은 옛말이 되었고, 워터파크나 영화관을 가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힘껏 마련한 ‘사회적 거리’는 집 안의 과밀로 이어졌는데, 아무래도 긴긴 여름을 꼼짝없이 반려인간들과 나야할 것 같다. 부대낌을 피해 방구석 셀프 격리에 도달했다면, 이번 기회에 기존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방-캉스’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예년보다 덥고 습하니 관계의 재정립도 일단 소설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비대면’으로 연습해보자. 사우나, 하와이, 동네 산책…… 어떤 트랙을 고르든 지금보다 좀더 나은 기분이 기념품처럼 남을 것이다.
01 여성 한증(혹은 여성 간증) 사우나와 이모들
송지현의 「흔한, 가정식 백반」(『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문학과지성사, 2019)의 ‘나’는 금색 자동차에 103호 이모, 고목 이모, 엄마를 태우고 해변으로 가는 중이다. 이모들의 이름이 왜 이렇냐고? 일행은 ‘24시간 여성 전용 사우나’에서 만난 사이니까. 홀딱 벗고 만나는 사이에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 복잡할 리 없지 않은가. 덩치가 고목처럼 크면 ‘고목 이모’, 103호에 살면 ‘103호 이모’인 거다. 게다가 “명절 전날 전도 부치지 않고 한가하게 한증씩이나”(134쪽)하며 친해졌으니, 집에 남자가 없으리라는 건 새삼 물을 필요도 없다. 묻지 않아도 알 법한 사정과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각자의 서사를 가진 여자들이 언니 혹은 이모가 되는 세계. 바로 이곳이 우리의 첫번째 여정이다.
이모들은 ‘나’의 실연을 핑계로 여행길에 나섰으나, 사실 이 여행의 목적은 알 법한 사정 뒤에 혼자 끌어안고 있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고목 이모에게 이번 여행은 ‘친구들과의 여행’이라는 소원성취이고, 103호 이모에겐 소식 끊어진 전남편의 부인을 찾아가는 일이다. 103호 이모의 사연으로 이야기가 한여름 ‘여성 한증’ 속으로 빠지는 게 아닌가 싶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모의 남편은 작가가 나서서 교통사고로 퇴장시켜버렸고, ‘여성 한증’은 “이모 남편의 전부인”도 이모나 언니로 만들어주는 세계이니까. (이쯤 되면 ‘여성 한증’이 곧잘 ‘여성 간증’이라고 불리는 건 실수가 아니라 고백이라 여겨도 좋지 않을까. 자매님의 우정에 대한 간증.)
그리하여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시 24시간 여성 전용 사우나였다. 전국 어디에나 24시간 여성 전용 사우나는 있었고, 이모들은 그걸 기막히게 찾아냈다.(150쪽)
이모들은 낯선 도시의 사우나에서 나란히 앉아 좌욕을 하고, 서로 등을 밀어주며, 철 지난 뽕짝을 흥얼거린다. 처음 만난 이모들과 드라마를 보며 함께 악녀 욕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모들 중 누구는 혹은 모두의 인생의 한 시절은 그런 사연에 붙들려 있을 터였고, 그러므로 여자들은 ‘말 안 해도 알 법한 사정으로’ 동시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사연으로’ 이모나 언니가 된다. ‘나’는 각자의 서사를 가진 이모들을 바라보며 사우나 수면실에서 설핏 잠든다. 꿈에서 이모들은 해변에서 모래찜질을 즐기고 있다. 고목 이모가 그토록 바라던 친구들과의 바다 여행이다. 물 꿈은 길하다니 ‘여성 한증/여성 간증’의 세계가 망망대해처럼 펼쳐지리라 점쳐보는 것은 어떨까.
이곳에서 우리는 대가족이었다. 수많은 언니와 이모 사이에서 어떤 날은 이곳이 진짜 집이고 모두가 진짜 가족인 양 느껴졌다.(152쪽)
02 모계 대가족의 하와이 제사 여행
이모와 언니로 이루어진 ‘여성 한증(여성 간증)’ 대가족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내친김에 모계 대가족의 동화 같은 하와이 여행에 합류하자.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2020)는 심시선의 10주기 기일을 맞아 그녀의 자손들이 하와이에서 제사를 올리는 이야기다. 물론 제수는 손 많이 가는 까탈스러운 음식이 아니라 하와이에서 만든 멋진 추억이다.
그런데 왜 하필 하와이일까? 이는 심시선이 ‘사진 신부’1)로 이민을 가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 하와이인 까닭이다. 여기에서 소설의 범상치 않은 면모가 드러난다. 소설은 ‘가장 멋진 기념품으로 제사상 차리기’라는 다소 동화적인 설정을 표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전쟁-하와이 이민-70~80년대 독재시대’라는 한국사의 질곡이 심시선의 인생을 경유하여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여성 예술가이자 비평가로서 심시선의 삶은 특별하게 보이지만, ‘사진 신부’가 되었던 것이나 교육의 기회를 준다는 말에 낯선 남자를 따라 나선 것, 그녀 자신도 그림을 그렸으나 온 세상이 남성 예술가의 뮤즈로, 혹은 남성 예술가를 파멸시킨 악녀로 기억한다는 것 등에서 심시선의 삶은 20세기의 보통 여자들이 겪었던 차별과 폭력을 공유한다. 따라서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을 기리는 여행이자 20세기 보통 여자들의 제사상을 마련하기 위한 ‘보물찾기’다.
심시선의 자손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길을 잃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길은 정해져 있지 않고, 어디서든 자신만의 보물을 찾으면 되니까. 그런데 대가족의 관계 속에서는 곧잘 헤매게 된다. 이는 시선의 가족이 성(姓)으로 구별되는 가부장제를 거스르고 있는 탓이다. 심시선은 요제프 리와 결혼하여 삼남매를 낳았는데, 그중 둘째 딸은 호주제가 폐지되자 엄마의 성으로 바꿔버렸다. 따라서 3남매의 이름은 이명혜, 심명은, 이명준이다.(아버지 요제프 리의 성은 ‘Lee’가 아니라 ‘Leigh’이므로 명혜, 명준도 아버지의 성을 온전히 따른 것은 아니다.) 더하여 심시선은 “아들에 대해서나 딸에 대해서나, 자기 자식에 대해서나 데려온 자식에 대해서나”(22쪽) 편애 없이 대했으므로, 두번째 결혼으로 얻은 막내 홍경아나 며느리 김난정까지 시선의 딸처럼 여겨진다. 그러니 독자로선 좀처럼 가족 관계가 파악되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이 낯선 감각이 아버지 성에 따른 일목요연한 가족 관계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족들의 여행을 쫓으며 우리 ‘방-캉스’ 여행자들도 각자의 기념품을 발견해보면 좋겠다. 가족들이 마련해 오는 제수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해도 좋고, 흩뿌려져 있는 보석 같은 문장을 발견하는 일도 멋지다. 이렇게 소설 안팎에서 다채롭게 차려진 제사상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는 폭력의 세기를 온몸으로 맞섰던 20세기 여성들의 삶에 대한 애도이자 그들이 남긴 세계의 가장 가치 있는 단면을 선물하는 일일 테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속박하는 허울만 남은 의례가 아니라, 각자 자기 삶의 가치를 재확인하며 소중한 이름을 기억하는 진짜 예식! 그러나 이 제사를 지난 세기의 폭력에 종언을 고하는 의례라고 하기엔 아직 우리의 세계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1세기를 어느새 20년이나 흘려보냈으니, 우리는 좀더 서둘러야하지 않을까. 무지개 너머 세계를 좀더 빨리 지금 여기로 당겨오길 바라며 각자의 제수를 정성껏 올려놓아보자. 나는 심시선의 문장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아무것도 당연히 솟아나진 않는구나 싶고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 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299쪽)
03 마녀할머니와의 산책
할머니 이야기를 이어간다. 최근엔 할머니의 삶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소설들이 부쩍 많아졌다. 『나의 할머니에게』(다산책방, 2020)에는 지금 여기의 시점에서 할머니의 서사를 쓰는 여섯 명 작가의 소설이 실려 있다. 여기에선 ‘한국문학의 소풍 장인’ 윤성희의 「어제 꾼 꿈」을 따라가보도록 한다. 윤성희는 작품 초기부터 가족 여행이나 세계 여행을 떠난 인물들, 혹은 무작정 동명이인을 찾아 나서거나 진위가 의심스러운 보물지도를 쫓아가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근작 「어느 밤」 「남은 기억」에 이르러서는 ‘귀여운 할머니’들의 소풍이 시작되었는데, 「어제 꾼 꿈」도 이들 작품의 연장선에서 보는 것이 좋겠다.
서사의 기본 골격은 이렇다. 남편은 지난 10년 동안 기일만 되면 ‘나’의 꿈에 나타났다. 웬일로 올해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지난 추석에 자식들과 다투는 것을 목격했나보다. 자식들이 집을 팔재서 이럴 거면 제삿날도 오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이제 각자의 여정이 시작된다. 남편은 딸, 아들, 처제의 꿈에 찾아간다. ‘새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딸을 찾아가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고, ‘한심한 놈’이라 타박만 했던 아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마지막으로 처제를 찾아가 어려울 때 도와주지 못했음을 사과한다. 남편의 소풍은 처제로 이어진다. 그녀는 형부를 용서한다는 말을 전하러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지냈던 언니를 찾아 나선다.
남편과 동생, 두 사람이 분주한 걸음을 옮기는 동안 ‘나’의 하루가 지나간다. 윤성희가 ‘소풍 장인’이라는 건 등장인물이 사방을 누리고 다녀서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것들로 가득찬 일상적 하루도 반짝이는 소풍처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지만 사소한 일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오늘을, 아니 삶 전체를 아름다운 산책처럼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조금 걷고 싶어서 일부러 후문 쪽으로 돌아 걸었다. 후문 앞에는 코끼리유치원이라고 유치원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봄에 거기서 동시 발표 대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플래카드를 보고 구경 갔었다. 앞니가 빠진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서 동시를 읽었다. (…)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이거였다. 비가 오면 손가락을 벌려요. 그 사이로 비가 지나가게. 그 후로 비가 오면 나는 창밖으로 손바닥을 내밀고 한참 서 있어보곤 했다.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는 걸 상상하면서. 유치원은 없어졌고 그 자리에 갈치조림집이 생겼다. 유치원이 없어진 게 속상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갈치조림집은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13~14쪽)
손녀를 데리고 ‘나’를 찾아온 동생과 함께 이제 소설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된다. 마침 조카손녀의 생일이라 길래 무엇을 갖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선물은 필요 없고 생일마다 하는 마녀할머니 놀이에 이모할머니도 같이 하잔다. 무슨 놀이인가 했더니 온갖 사물들을 넣고 마녀 스프를 끓인 뒤 소원을 비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할머니와 손녀의 마녀수프 재료를 모으기 위한 산책이 시작된다. 장난감 반지, 솔방울, 깃털, 장갑, 단추, 소리가 나지 않는 호루라기, 공주 스티커…… 빛바래고 낡은 사물들,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의 행복을 기억하고 있는 사물들. 산책에서 주워온 사물들을 잔뜩 넣고 휘휘 저어가며 마녀들은 소원을 빈다. 사실 소원보다 저주를 더 많이 내리지만 아주 나쁜 흑마술은 아니므로 넘어가자. “우리 현관 앞에 침 뱉어놓는 놈, 변비 걸리게 해주세요.”(33쪽)
마녀수프 레시피가 우리 여정의 마지막 코스다. 여행을 따라 오며 주워온 아름다운 장면이나 문장을 우리의 좁은 마음속에 놓인 커다란 냄비에 넣고 휘휘 저어보자. 무엇이 나오든 그것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해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 사우나 이모와 이웃들에 대해 달리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이렇게 훈훈한 마무리가 불만일 만큼 아직 앙금이 남았다면, 마녀수프를 끓여서 저주를 부려보는 것도 괜찮다. 단, 할머니의 법칙대로 사흘 이상의 아픔을 주어선 안 된다.
이지은
잘 읽고 잘 쓰고자.
2020/08/25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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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1905년 동안 농장 노동력이 되어 하와이로 이민해 간 조선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이민자 중 여성 비율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조선인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본국의 여성과 사진만 교환하여 중매결혼을 하는 일이 생겨났다. 이렇게 하와이로 이민 가는 젊은 여성을 ‘사진 신부’라고 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웨인 패터슨의 『하와이 한인 이민 1세』(정대화 옮김, 들녘, 2003) 참조.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