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3회 ‘전주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에 창작자 7명이 책방을 열었다’를 넘어
2018년 12월 전주의 삼사십대 예술인 일곱 명이 의기투합해 2만2760㎡(약 6890평) 규모의 서노송동 선미촌 성매매업소 지역에 자리를 잡고 ‘물결서사’라는 이름의 책방을 열었다. ‘Artist lab 물왕멀’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인 이들은 같은 장르 예술인이 모인 동인(同人)아니라, 문학, 미술, 음악, 영상, 사진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이 모인 이인(異人)들의 자발적 결사체이다. 하루에 한 명씩 예술인이 책방을 책임지며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지역을 이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려는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다.
‘물결서사’라는 작명이 퍽 흥미롭다. 물이 많은 물터였던 물왕멀 지역에서 성매매 여성을 비롯해 지역 주민들 사이에 사람의 물결과 예술의 물결 그리고 책의 물결……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려 있다. 그리고 지역에서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생산하고 창작하는 예술인이 되겠다는 의지 또한 읽힌다. 일곱 명의 예술인들은 아직 스무 곳 가까운 성매매업소가 운영되고 있는 선미촌 유곽(遊廓)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리모델링하며 ‘관계의 물결’이 굽이치는 물결서사를 꿈꾸고 있다. ‘천천히 재생’되는 문화적 도시재생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문화적 과정에서 이인(異人)들의 자발적 결사체인 물결서사의 예술인들은 기존의 나와는 조금 다른 예술인이 되고, 조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세상에서 ‘터무늬’를 복원하려는 물결서사 예술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길 잃기 안내서(리베카 솔닛)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단체 채팅방 없는 평화를 꿈꿨으나, 하루도 단톡방 없이 살 수 없는 책방 세상이 1년째 펼쳐지고 있다. 서로의 말에 성실히/무심히 반응하며 일상 공동체가 된 창작자 일곱 명은 이제 명절에도 주말에도 근무하기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자영업자가 됐다. 여기에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주일에 한 명씩 돌아가며 책방을 지키는 동업자로 거듭나기까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홀로 벅차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한방살이 운영자가 됐을까?
#물왕멀이라는 말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2길 9-6. 2018년 가을, 창작자 일곱 명은 서노송동 선미촌의 한 낡은 집 앞에 쪼르륵 섰다. 귀신들이 박쥐처럼 매달려 있을 것 같이 컴컴하고 습하디습한 슬레이트 집 앞. 1960년대에 지어져 성매매업소로 쓰이던 곳.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아 사방이 바짝 말라버린 것 같기도 하고 물에 고여 있는 것 같기도 한 침침한 공간.
나는 흰색 외벽에 붙은 ‘물왕멀’이라는 주소명을 오래 바라보았다. 수많은 단어 조합이 있지만 범상치 않은 이 물왕멀은 무엇인가…… 어딘가 물방울로 꽉 찬 듯한 이 낯선 말이 좋았다. 직역하자면 물이 좋은 마을이고, 이야기를 찾아보면 왕이 마셨던 우물이 있던 자리라는 곳. 그날 이후 책방 이름과 팀명을 짓자고 매일같이 모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물왕멀’보다 좋은 말은 없어 보였다.
선미촌 골목, 이웃집.(그림 서완호)
#선미촌 골목 한가운데
책방은 전주 성매매업소가 모여 있는 집결지 ‘선미촌’ 골목 한복판에 있다. 착하고 아름답다는 뜻의 ‘선미(善美)촌’은 원래 철도 둑 너머에 있다고 해서 ‘뚝너머’라 불리다 집결지 앞에 시청이 들어서면서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규모는 2만2760㎡(약 6890평)으로 1950~60년대 현재 전주시청 자리인 전주역 주변에 사람이 모이면서 만들어졌다. 반세기 넘는 시간이 쌓인 지금, 모습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아직 스무 곳 가까운 업소가 남아 있다.
대형마트와 고등학교와는 불과 500m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지만, 이 구역만 지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미용실, 고물상, 중국집, 술집, 슈퍼 등 낡고 오래된 상점들이 유리방과 마주 보는 낮의 거리엔 리어카에 박스를 가득 싣고 고물상으로 향하는 노인들과 편한 옷을 입고 젖은 머리를 털며 미용실로 들어가는 여성들이 교차한다.
전주시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선미촌의 성매매업소 건물을 하나씩 매입했다. 일방적으로 내쫓거나 부수는 불도저 방식이 아닌 선미촌 주변 환경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가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자는 취지다. 시가 매입한 다섯 채 중 네번째 건물인 ‘4호점’이 지금 책방 건물이다. 우리 팀은 지난해 전주시에 자발적으로 제안서를 넣었다. 건물 리모델링은 타 기관에서 지원받아 진행하고, 예술가들이 모여 운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물결서사라는 공간
그렇게 계약을 체결하고 공간을 임대받은 후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지만, 이곳이 정말 책방이 될 수 있을지 매번 실감나지 않았다. 책을 놓을 선반부터 화장실 벽에 붙일 타일 하나까지 손수 고르는 동안, 우리의 운영 회의도 계속됐다. 어떤 건 살리고 어떤 건 버릴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선택하는 것은 중요한 공동의 일이었다.
우린 ‘매일 다른 책방지기가 있는 예술가 책방’이라는 컨셉을 잡고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 예술 서적을 큐레이션하기로 했다. 격월로 새로운 주제를 정해 기획도서를 선정하고, 워크숍과 세미나를 통해 이야기를 좀더 확장시켜보기로 했다. 공유책방(헌책방)의 책은 손님들과 지인들에게 기증받고, 새 책은 서로 지갑을 털어 한 박스, 두 박스씩 주문했다. 날은 점점 추워졌지만, 책방은 열기를 모으고 있었다.
그나저나 책방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돌아다니길 며칠…… 파도치듯 ‘물결’이란 말이 왔다. 물결은 어떤 말을 붙여도 흐르게 만드는 긍정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물결에 서점이란 뜻 ‘서적방사(書籍放肆)’의 줄임말 ‘서사’를 붙였다. 서점인 동시에 이야기란 의미를 줄 수 있어 좋았다. 창작자는 유일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
우리는 동시에 ‘연재’도 진행했다. 책방이 우리 일곱 명의 배부른 아지트가 아니라, 선미촌에 머물고 있는 창작자들의 기지가 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만들어 주 1회 선미촌과 물결서사에서 느끼고 감지한 개인 작업물을 올렸다. ‘물결서사 출간 미정 책’이라는 컨셉이었다. 그렇게 시, 사진, 그림, 영상 등 5개월 동안 100여 개가 넘는 콘텐츠를 업로드 했다. 우여곡절 우당탕탕 시즌1을 끝내고 시즌2에 들어간 지금 우리는 생각한다. “계속 뭐가 나올지 몰라.”
조금 멀리서 바라본 골목 전경. 파란색 지붕 건물이 물결서사다.
#물왕멀팀의 시작
‘우리’가 된 물왕멀팀 일곱 명1)은 전주에 사는 삼사십대 창작자들로 미술(서양화·한국화), 문학(시), 음악(성악), 영상(다큐멘터리), 사진 작업 등 각자 장르가 다르다. 이렇게 한 팀으로 모이게 된 건 사진가 팀원의 섭외가 계기였다.
그는 3년 동안 선미촌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사진 작업을 하다 이곳에 새로운 공간과 사람이 절실하다는 것을 매일 깨달았다. 성매매 집결지라는 완력이 너무 세서 사람들이 다가서지 못하고 주민들과 그들을 둘러싼 이들 모두 고립되어 있는 모습에 긍정적인 반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계속 머물다보면 작은 답지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당시 책방 매니저로 일하고 있던 나를 시작으로 동료 예술가들을 한 명 한 명 붙잡고 말하기 시작했다. “책방을 열자, 책방을.”
우리는 대부분 선미촌 전시 참여작가이자 적극적인 관람자였던 터라 그 취지와 의미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가 기획한 선미촌 전시는 성매매업소를 전시장으로 사용해 그들의 이야기와 생각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저녁, 나는 어지러운 마음을 잡고 간신히 생각했다. 다신 이 전시를 보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물결서사 바로 건너편에 성매매업소 건물이 있다. 책방 문을 닫을 때쯤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그림 고형숙).
#왜라는 첫번째 질문
우리는 왜 선미촌에 책방을 만들었을까. 나는 늘 첫 질문을 생각하곤 한다.
먼저 사진가 팀원이 느낀 것처럼 선미촌이란 공간에 대해 더 면밀히 알고 싶었다. 더불어 이곳에 사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려면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주민의 얼굴이 되길 원했다.
그리고 아무나 쉽게 다가오기 어려운 곳에 누구도 시도하려 하지 않았던 것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우리가 하는 예술 활동이 선미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어떤 그림이 나오게 될지 알고 싶었다. 나아가 선미촌에 있는 나날들이 우리의 작업으로 녹여지길 원했다.
또, 이 동네에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책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주민들의 말을 실현하고 싶었다. 선미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성과 맞물려 계속 낙후되어온 이곳에 필요한 활력을 함께 만들고 싶었다.(하지만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들이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생계를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다.)
이것과 연결지어, 책이라는 경계 없는 영역에서 책과 사람을 잇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특히 저자와 독자가 만나 소소한 이야기가 지속되는 공간,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작가들의 책이 이곳에서만큼은 중요하게 다뤄지길 바랐다.
여기에, 사회적 제도와 간섭을 최소화하고 예술가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일방적인 방식의 공모, 획일화되고 재미없는 기획이 아닌 우리 스스로 주체가 되어 지금 이곳에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무대에 설 후배들이 열정 노동하지 않고 귀하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조그만 발판을 만들고 싶었다.
지난 4월, 물결서사에서 열린 김성철 시인 첫 시집 낭독회 모습.
#앞으로의 책방
책방 문을 연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은 물결서사의 존재를 알리고 사람들을 선미촌으로 안내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 공간이 주민들의 마이크가 되고 창작자들의 스피커가 된다는 것을 차츰 증명하고 싶다.
내부적으로는 나를 포함해 각자 본업이 있는 가운데 책방을 지키는 팀원들이 좀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고 싶다. 어렵겠지만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다. 그동안은 너무 조심스러워 다가가지 못했고, 그것 또한 폭력이라는 생각에 가까이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선미촌에 머무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더 늘려 그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그리하여 ‘전주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에 창작자 일곱 명이 모여 책방을 열었다’를 넘어 새로운 담론이 계속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처음 모인 마음처럼 책방이라는 공동체가 무모한 모임이 되지 않기 위해 계속 시도 중인 까닭은 여기 있다.
답은 없어도 이야기는 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결정한 자들은 오늘도 말없이 출근한다. 우리가 벌인 책방으로. 좋아하는 것을 향해 몸과 마음은 직행한다. 함께 펼친 책의 드넓은 공간으로.
책방의 하나뿐인 창문은 종종 생방송 TV가 된다. 지난 6월, 물결서사 공연을 앞두고 나란히 앉은 성악가 김성혁과 조현상(왼쪽부터).
임주아
1988년 태어났다. 201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전주 책방놀지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낭독회와 음악감상회 등을 기획했다. 현재 물결서사 대표로 활동 중이다.
2019/10/29
23호
- 1
- 고형숙(한국화가), 김성혁(성악가), 민경박(영상크리에이터), 서완호(서양화가), 임주아(시인), 장근범(사진가), 최은우(서양화가) 이상 일곱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전주 선미촌에 서점 물결서사를 열고 함께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