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1회 상어 가족의 일원이 되어서 행복한가?
2017년 국내 유튜브 동영상 가운데, 공식 뮤직비디오를 제외하면 〈상어 가족 스페셜〉이 가장 사랑받은 동영상 1위를 차지했다.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 바닷속 뚜루루뚜루, 아기 상어!”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드물 것이다. 한번 입에 붙으면 자꾸 귓가를 맴돈다고 해서 수능 수험생 청취 금지곡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이 동영상은 조회 횟수 15억 건(2017년 12월 현재)을 넘어서면서 제작사의 주식 상장설이 흘러나오는 등 끝없이 화제를 몰아가고 있다. 영어판에서는 별다른 수식어가 없는데 우리말로 된 동영상에서만 엄마 상어에게 ‘어여쁜’, 아빠 상어에게 ‘힘이 센’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기 때문에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동영상을 가장 많이 보는 나이는 2, 3세의 유아들이다. 분명히 이 노래는 그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제작사 측은 북아메리카를 비롯해서 여러 지역에서 구전되던 동요(chant)에서 기본 멜로디를 가져왔고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일부 차용해서 만든 곡이라고 밝혔다. 노래뿐만 아니라 영상의 흡인력도 매우 강한 편이어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원아들을 집중시킬 때 이 동영상을 틀어주면 거짓말처럼 분위기가 바뀌면서 모든 아이들의 눈길이 상어 가족의 움직임에 모여든다고 한다.
예로부터 구전의 가장 충실한 전파자였던 어린이들은 시인이자 연행자로서 활약하며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도 자신의 몫을 이어가고 있다. 구전동요는 특별한 뜻이 없이 소리의 재미를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아동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르네이 추콥스키는 독자들이 보내온 수천 통의 편지를 자료로 삼아 어린이 언어의 규칙을 발견하려고 했다. 추콥스키에 따르면 어린이는 개념을 가지고 자유롭게 놀고 다양한 허구의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작은 언어학자들이다. 그가 사례로 제시한 “히텀, 피텀, 페니, 파이, 팝 어 로리, 징키 자이!”나 “이나, 미나, 메나, 모, 바사, 리바, 리나, 로!”1)는 영국의 전래동요인데 그 안에서 의미를 찾기는 어렵지만 구슬처럼 입안에서 굴리며 흥겹게 읽을 수 있는 소리들로 되어 있다. 할머니가 “겨울이 곧 올 거야.”라고 말하면 “겨울에 발이 달렸어?”라고 묻기도 하고2) “나는 회사는 절대 안 다닐 거야. 회사는 사람을 자르는 곳이잖아.”라고 말하기도 한다.3) 정말 사람의 몸을 잘라버리는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어린이가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말하면서 즐거워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그가 현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말을 아무리 뒤집고 비틀어도 현실은 그와 무관하게 건재할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말을 가지고 더 자유로운 실험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험은 어린이가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는 주체적 창작활동이다. 더 나아가서 고정된 현실을 바꾸고 싶을 때도 어린이는 노래를 부른다. “온종일 선물 타령을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라고 요구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편 어린이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노랫말은 은유적으로 세태를 반영하는 경향이 있어서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사회적 열망을 짐작할 수 있다. 어른은 자신의 입에 올릴 수 없는 비판이나 변혁적 내용을 아이들의 입을 빌어 퍼뜨린다. 어린이들이 꿩의 털이나 닭털을 실에 매달아 들고 불렀던 “서울 양반 벼슬 못 해 털-털, 시골 양반 농사 못해 털-털”이라는 노래는 양반의 허세를 능청맞게 비웃는다. 그밖에도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여러 편의 참요를 보면 근대성의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상어 가족〉을 비롯해 요즘 유행하는 어린이들의 노래에서는 어떤 사회적 징후가 나타나고 있을까. 본래 아동문학의 서사는 피식자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힘도 약하고 체격도 작으며 정치경제적 권리를 갖지 못한 자신을 약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동화에서도 토끼, 다람쥐, 개미 같은 약자가 어린이의 대행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어 가족〉의 중심 제재는 포획이며 서사는 포식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래는 상어 가족 다섯 마리가 작은 물고기들을 사냥하러 나서는 것으로 시작해서 산호초 속으로 아슬아슬하게 피신한 작은 물고기들이 결국 포크와 나이프를 든 상어 가족에게 포위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작은 물고기들은 ‘노래 끝’을 외친 상어들에게 잡아먹혔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리 짧은 서사라고 해도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서 공감의 순간을 겪는다. 감상자는 그 시뮬레이션 과정에 동참하면서 어떤 내면적 변화를 겪고 나아가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4) 〈상어 가족〉에서 스토리의 중심 주체를 형성하는 초점자(focalizer)는 포식자인 상어이며 카메라는 상어의 시선으로 작은 주황색 물고기를 훑는다. 노랫말에서 ‘우리는 상어 가족’이라는 1인칭의 주어를 공유한 어린이 감상자들은 상어 가족과 자신의 시선을 동일시하면서 덩달아 포획의 기쁨을 누린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블랙 유머와 달리 영유아 대상 서사가 좀처럼 포식자의 시선을 취하지 않는 것은 어린이들의 상식과 관련이 깊다. 어린이들은 대체적으로 추적자보다는 위기에 처한 도망자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그를 돕고 싶어한다. 그런데 〈상어 가족〉의 포식자 인물은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류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추적자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이 영상 속의 상어들은 고양이 톰처럼 무능력하지 않으며 작은 물고기의 생존을 무섭게 위협하지만 자신의 가족 구성원에게는 누구보다 다정하다. 일방적 강자인데도 어린이는 상어를 더 친밀하게 느낀다. 〈상어 가족〉 동영상 속에 나타나는 환하고 채도가 높은 상어 가족의 이미지는 우리가 흔히 접했던 무서운 상어가 아니다. 입에 잘 붙는 간결한 멜로디는 구전되기 좋은 매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덕분에 피식자가 아니라 포식자가 자연스러운 초점자가 되는 영유아 서사가 어린이들의 문화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어떤 징후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또하나의 인상적인 연구가 있다. 현대 구전동요에서 ‘놀이 끝에 벌칙이 따르는 노래’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구전동요 중에는 원래 ‘놀리는 노래’류가 있지만 상대방의 실수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부끄러움을 들추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또한 “털보 영감이 잠을 자다가 수염에 불이 붙어 깜짝 놀랐네.”처럼 어린이가 어리석은 어른을 놀리는 노래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의 구전동요를 살펴보면 노래에 연관된 벌칙이 발달해서 노래 후에 아이들끼리 서로 두드리거나 괴롭히는 일이 늘었다. 노랫말에도 “맞고 죽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놀이의 즐거움보다는 승패에 따른 가학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5) 〈상어 가족〉은 승패를 파악하는 기준이 거대하고 힘이 센 상어 쪽에 있고 포크와 나이프로 직접적인 폭력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영상 안에 들어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학적으로 보인다.
어떤 이야기가 약자를 응원하는 내용이거나 결말이 행복하다고 해서 반드시 거기로부터 이야기의 가치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진지한 이야기가 추구하는 가치와 진실은 기존의 도덕이나 규범이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윤리를 모색하도록 감상자를 ‘창조적 혼돈’ 혹은 ‘성찰의 혼돈’ 속에 빠뜨릴 때 효과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6) 특히 아동문학의 서사는 앞장서서 그런 길을 걸어왔다. 그러려면 어린이 독자를 포함한 감상자로서의 나 자신을 포식자가 되려는 욕망에서 바깥으로 불러내 경계에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상어 가족〉으로 대표되는 어린이들의 디지털 구전 문화는 그러한 창조적 성찰의 혼돈이 아니라 강한 자에 대한 복종의 대열 앞에 있지 않은가. 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그러한 노래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든든한 배경은 지금 이 사회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는 혐오의 문화다.
예로부터 구전의 가장 충실한 전파자였던 어린이들은 시인이자 연행자로서 활약하며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도 자신의 몫을 이어가고 있다. 구전동요는 특별한 뜻이 없이 소리의 재미를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아동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르네이 추콥스키는 독자들이 보내온 수천 통의 편지를 자료로 삼아 어린이 언어의 규칙을 발견하려고 했다. 추콥스키에 따르면 어린이는 개념을 가지고 자유롭게 놀고 다양한 허구의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작은 언어학자들이다. 그가 사례로 제시한 “히텀, 피텀, 페니, 파이, 팝 어 로리, 징키 자이!”나 “이나, 미나, 메나, 모, 바사, 리바, 리나, 로!”1)는 영국의 전래동요인데 그 안에서 의미를 찾기는 어렵지만 구슬처럼 입안에서 굴리며 흥겹게 읽을 수 있는 소리들로 되어 있다. 할머니가 “겨울이 곧 올 거야.”라고 말하면 “겨울에 발이 달렸어?”라고 묻기도 하고2) “나는 회사는 절대 안 다닐 거야. 회사는 사람을 자르는 곳이잖아.”라고 말하기도 한다.3) 정말 사람의 몸을 잘라버리는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어린이가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말하면서 즐거워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그가 현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말을 아무리 뒤집고 비틀어도 현실은 그와 무관하게 건재할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말을 가지고 더 자유로운 실험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험은 어린이가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는 주체적 창작활동이다. 더 나아가서 고정된 현실을 바꾸고 싶을 때도 어린이는 노래를 부른다. “온종일 선물 타령을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라고 요구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편 어린이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노랫말은 은유적으로 세태를 반영하는 경향이 있어서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사회적 열망을 짐작할 수 있다. 어른은 자신의 입에 올릴 수 없는 비판이나 변혁적 내용을 아이들의 입을 빌어 퍼뜨린다. 어린이들이 꿩의 털이나 닭털을 실에 매달아 들고 불렀던 “서울 양반 벼슬 못 해 털-털, 시골 양반 농사 못해 털-털”이라는 노래는 양반의 허세를 능청맞게 비웃는다. 그밖에도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여러 편의 참요를 보면 근대성의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상어 가족〉을 비롯해 요즘 유행하는 어린이들의 노래에서는 어떤 사회적 징후가 나타나고 있을까. 본래 아동문학의 서사는 피식자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힘도 약하고 체격도 작으며 정치경제적 권리를 갖지 못한 자신을 약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동화에서도 토끼, 다람쥐, 개미 같은 약자가 어린이의 대행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어 가족〉의 중심 제재는 포획이며 서사는 포식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래는 상어 가족 다섯 마리가 작은 물고기들을 사냥하러 나서는 것으로 시작해서 산호초 속으로 아슬아슬하게 피신한 작은 물고기들이 결국 포크와 나이프를 든 상어 가족에게 포위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작은 물고기들은 ‘노래 끝’을 외친 상어들에게 잡아먹혔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리 짧은 서사라고 해도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서 공감의 순간을 겪는다. 감상자는 그 시뮬레이션 과정에 동참하면서 어떤 내면적 변화를 겪고 나아가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4) 〈상어 가족〉에서 스토리의 중심 주체를 형성하는 초점자(focalizer)는 포식자인 상어이며 카메라는 상어의 시선으로 작은 주황색 물고기를 훑는다. 노랫말에서 ‘우리는 상어 가족’이라는 1인칭의 주어를 공유한 어린이 감상자들은 상어 가족과 자신의 시선을 동일시하면서 덩달아 포획의 기쁨을 누린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블랙 유머와 달리 영유아 대상 서사가 좀처럼 포식자의 시선을 취하지 않는 것은 어린이들의 상식과 관련이 깊다. 어린이들은 대체적으로 추적자보다는 위기에 처한 도망자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그를 돕고 싶어한다. 그런데 〈상어 가족〉의 포식자 인물은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류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추적자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이 영상 속의 상어들은 고양이 톰처럼 무능력하지 않으며 작은 물고기의 생존을 무섭게 위협하지만 자신의 가족 구성원에게는 누구보다 다정하다. 일방적 강자인데도 어린이는 상어를 더 친밀하게 느낀다. 〈상어 가족〉 동영상 속에 나타나는 환하고 채도가 높은 상어 가족의 이미지는 우리가 흔히 접했던 무서운 상어가 아니다. 입에 잘 붙는 간결한 멜로디는 구전되기 좋은 매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덕분에 피식자가 아니라 포식자가 자연스러운 초점자가 되는 영유아 서사가 어린이들의 문화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어떤 징후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또하나의 인상적인 연구가 있다. 현대 구전동요에서 ‘놀이 끝에 벌칙이 따르는 노래’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구전동요 중에는 원래 ‘놀리는 노래’류가 있지만 상대방의 실수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부끄러움을 들추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또한 “털보 영감이 잠을 자다가 수염에 불이 붙어 깜짝 놀랐네.”처럼 어린이가 어리석은 어른을 놀리는 노래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의 구전동요를 살펴보면 노래에 연관된 벌칙이 발달해서 노래 후에 아이들끼리 서로 두드리거나 괴롭히는 일이 늘었다. 노랫말에도 “맞고 죽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놀이의 즐거움보다는 승패에 따른 가학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5) 〈상어 가족〉은 승패를 파악하는 기준이 거대하고 힘이 센 상어 쪽에 있고 포크와 나이프로 직접적인 폭력을 연상시키는 내용이 영상 안에 들어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학적으로 보인다.
어떤 이야기가 약자를 응원하는 내용이거나 결말이 행복하다고 해서 반드시 거기로부터 이야기의 가치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진지한 이야기가 추구하는 가치와 진실은 기존의 도덕이나 규범이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윤리를 모색하도록 감상자를 ‘창조적 혼돈’ 혹은 ‘성찰의 혼돈’ 속에 빠뜨릴 때 효과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6) 특히 아동문학의 서사는 앞장서서 그런 길을 걸어왔다. 그러려면 어린이 독자를 포함한 감상자로서의 나 자신을 포식자가 되려는 욕망에서 바깥으로 불러내 경계에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상어 가족〉으로 대표되는 어린이들의 디지털 구전 문화는 그러한 창조적 성찰의 혼돈이 아니라 강한 자에 대한 복종의 대열 앞에 있지 않은가. 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그러한 노래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든든한 배경은 지금 이 사회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는 혐오의 문화다.
김지은
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어릴 때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은 어린이의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평론집 『거짓말하는 어른』과 『어린이, 세 번째 사람』을 냈으며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을 함께 썼고 『홀라홀라 추추추』 『우리 아기 좀 보세요』 『너무너무 무서울 때 읽는 책』 등을 옮겼다.
2017/12/26
1호
- 1
- 코르네이 추콥스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홍한별 옮김. 양철북, 2006, 107~108쪽.
- 2
- 같은 책, 25쪽.
- 3
- 같은 책, 29쪽.
- 4
- 최시한, 『스토리텔링, 어떻게 할 것인가』, 문학과지성사, 2015, 109쪽.
- 5
- 김현선·시지은, 「어린이들의 생활 문화와 민요·현대 구전동요 연구 시론」, 《구비문학연구》 제25집, 2008, 178쪽.
- 6
- 최시한, 같은 책, 230~231쪽.